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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2화 <장기투숙자>
작성일 : 20-01-14 14:21     조회 : 104     추천 : 0     분량 : 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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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이 야경 불빛보다 환한 흔치않은 밤이었다. 호텔 복도까지 침범한 달빛이 유진의 발에 닿았다. 그러나 유진은 이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다.

 

 Bar Bz가 있는 호텔 Bz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넓은 정원이나 스퀘어를 만들지 못하는 대신 위로 높게 건물을 올렸다. 스카이라운지 바로 아래의 36층. 그곳이 유진의 방이었다.

 유진은 호텔 Bz의 최장기투숙객이었다. 여섯 살 때 처음 체크인하여 스무살이 되는 오늘까지 체크아웃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호텔 Bz의 지박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텔이 처음 세워진 것은 30년 전이었지만, 가장 오래된 직원이자 호텔 실무를 담당하는 총지배인조차 14년 전에 왔으니 어쩌면 호텔 Bz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유진일지도 모른다.

 

 36층의 객실은 모두 6개였다. 하지만 유진이 투숙한 방을 제외한 5개의 객실은 1년 365일 중 360일이 공실로 비어있다. 그래서 더욱 고요한 곳이었다.

 

 오늘 같은 날만 빼고. 인기척이 들렸다. 유진이 머무는 객실의 손잡이가 따뜻했다. 누군가 안에 있다.

 

 [딸깍]

 

 방의 불은 꺼져있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달빛이 드는 창가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성혁이었다.

 

 

 

 방 전체에 전기가 돌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자그마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성혁과 유진이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한 벌의 옷이 놓여있었다. 톡톡톡톡. 마치 피아노를 치는 듯한 유진의 손가락에 옷에 숨어있던 먼지가 폴폴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립무원에 손발이 모두 묶여 있네요. 꼭 술병에 담긴 뱀 같아요.”

 “술병에 담긴 뱀?”

 “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품은 독기를 버리지 않고 뚜껑이 열릴 마지막 기회만 노리는 뱀이요. 왠진 모르겠지만 원한이 굉장히 크네요.”

 “술병 속에서 죽어간다... 그럼 결국 일신에 큰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니?”

 “일신의 문제는 이미 있어요.”

 “이미 있다고?”

 “네. 이미 한 번 피를 본 거 같은데... 그래서 안 그래도 꺼져가던 생명이 더 약해져 있어요.”

 

 성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있던 옷을 거두었다.

 

 유진이 호텔 Bz와 연을 맺은 지 15년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성혁과 알게 된 지도 15년이었다. 이 두 인연 사이에는 성혁의 할머니이자 호텔 Bz의 소유주인 인경자 여사가 있었다. 15년 전, 경자가 갈 곳 없는 고아 소년이었던 유진을 거둬 후원자가 되면서 호텔 Bz에 머물도록 편의를 봐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후원이 공짜였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베풀었던 것만큼 유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냈는데, 바로 유진이 가지고 있었던 예지력이었다. 유진의 예지력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해서 당시 사업 확장을 도모하던 경자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미신에 의존하는 어머니를 못마땅해 하던 성혁조차 고민이 있을 때면 찾아와 이런저런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럼 어쨌거나 이 뱀은 더 이상 누군가를 공격하지는 못하겠네. 그지?”

 “음...”

 

 생각에 잠긴 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유진을 보는 성혁의 눈도 더욱 매서워졌다.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

 “네. 말씀드렸잖아요. 뚜껑이 열릴 마지막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요. 뚜껑이 열리는 순간,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독을 모두 뿜으면서 마지막 공격을 시도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 말은 뚜껑이 열려야 한다는 건데... 그게 가능할까, 과연?”

 “그럼요. 곧 잔치가 다가오거든요. 원래 잔치에서는 귀한 술을 따는 법이잖아요.”

 

 밝은 표정으로 말을 맺은 유진이 성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본 적 없이 무시무시한 성혁의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생각에 빠진 채 유진을 바라보던 성혁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채고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느 새 성혁의 얼굴에는 아까의 매서운 눈빛이 아닌 예의 개구진 웃음이 떠올랐다.

 

 “참 신기해? 남들이 흔히 쓰는 책도 카드도 없이 줄줄 말하는 거 보면.”

 “그건 공부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고요. 전... 공부할 새도 없이 이렇게 됐잖아요.”

 

 성혁은 손을 뻗어 유진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리고는 예쁘게 포장 된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

 “아...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른이네?”

 “덕분이죠.”

 “내가 뭐 한 게 있나.”

 “공치사 바라시는 거죠?”

 “이 녀석 봐라?”

 

 성혁이 능글맞게 웃었다.

 

 “뭔지 안 궁금해? 풀어 봐도 돼.”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유진이 바라는 선물은 최소한 이 상자에 들어갈 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성혁의 시선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던 터라, 유진은 마지못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최신형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방에 TV도 컴퓨터도 없는 애가 폰까지 구형이니, 보는 내가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 넌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지? 내가 이번에 재선된 건 알아?”

 “에이... 그거야 알죠. 원하시는 바 이룰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용케 성혁의 재선은 맞췄지만, 바깥 사정을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호텔 객실임을 감안하더라도 유진의 방에는 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옷가지 몇 개를 제외하고 유진은 그 흔한 책 한 권 소유한 게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벽에 걸려있던 TV조차 유진의 요청으로 떼어낸 탓에 유진은 그 기막힌 예지력과 별개로 세상 소식에는 밝지 못했다.

 

 “아무튼 내가 여기 올 때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오는 기분이야. 잠깐만 있어도 지루해 죽겠는데 넌 이걸 어떻게 견디니?”

 

 딱히 불편함을 느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유진은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냥 스마트폰을 두 손에 받아들고는 감사의 표시로 꾸벅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좋아서 방방 뛸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너무 밋밋한 반응에 김이 샌 듯, 성혁이 얼굴을 긁적였다. 하긴, 저 아이가 기대하는 건 따로 있었을 터였다.

 

 “아, 그리고 유진아...”

 

 성혁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러자 유진의 얼굴에 작은 기대감이 떠올랐다.

 

 “내 아들 녀석 일인데 말야.”

 “아... 민우요...”

 

 잠시 떠올랐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를 눈치 못 챌 성혁이 아니었지만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사춘긴가 봐. 갑자기 안하던 반항을 하고 난리다.”

 “그 나이 땐 다들 그렇죠.”

 “아냐, 아냐. 이건 좀 심하다니까? 오늘도 공부 잘 되어가냐 물었을 뿐인데 빼액 소리부터 지르고 말이야. 명색이 내가 가장인데. 아주 그냥 죽겠다, 진짜.”

 

 유진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톡톡톡. 이번엔 원목 테이블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민우,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안 그래도 짝사랑 때문에 괴로울 텐데, 기름 부으실 필욘 없잖아요.”

 “이런... 그럼 연애질 하느라 나에게 짜증을 낸 거야? 이 녀석이 진짜.”

 “놔두면 알아서 사그라질 거예요. 물론 인생의 쓴 맛은 좀 보겠지만.”

 “그거 반가운 소리네. 녀석, 쌤통이다.”

 

 성혁이 자켓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도 따라 일어나 성혁을 배웅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조만간 본가에 와. 할망구가 요즘 많이 심심한지, 사람 붙잡고 수다가 아주 장난이 아냐.”

 “찾아뵌다는 걸 깜빡했네요. 오늘 낮에 들를게요.”

 “그래. 그리고 니가 부탁했던 것 말인데...”

 

 유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마 이것이 그가 기다렸던 선물인 듯 했다.

 

 “계속 찾고 있어. 하나는 조금 걸리겠고... 그래도 하나는 곧 나올 거 같아.”

 

 실망스러운 소식 반, 희망찬 소식 반이었다. 유진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으이그. 넌 절대 거짓말 할 위인은 못 되겠다. 그렇게 감정 하나하나 전부 얼굴에 티를 내서 어떡하니?”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필요한 건 없고?”

 

 더 필요한 것... 그러고 보니 하나 있었다. 잘 말할 수 있을까?

 

 “거처를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사고수가 있어서요.”

 “사고수?”

 “네... 아무래도 여기랑은 연이 다 됐나 봐요.”

 “하긴... 너도 언제까지나 호텔 객식구처럼 있을 수는 없지. 안 그래도 너 이렇게 사는 거, 전부터 계속 신경 쓰이긴 했어. 이참에 아예 옮기자고. 좀 집다운 데로.”

 “감사합니다.”

 “오늘 바로 부동산 연락해서 알아볼게. 어차피 넌 몸만 가면 되지? 짐 없잖아.”

 “네.”

 “그래. 진행되는 대로 연락하마. 생일 잘 보내고.”

 

 딸깍거리며 문이 잠기고, 넓은 방에 다시 유진 혼자 남겨졌다.

 

 유진은 곧 떠나게 될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분명 15년 동안 지내온 방인데, 유진의 흔적이 깃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진의 부탁으로 없애버린 TV를 빼고는 침대부터 테이블, 옷장, 매일매일 보충되는 어매니티까지, 15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새삼 감회가 새로워진 유진이 벽을 쓸었다. Bz호텔의 컨시어지는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벽에서도, 바닥에서도 먼지 한 톨 묻어나오지 않았다.

 

 “더 오래 같이 할 수 있었는데, 맘대로 먼저 떠나서 미안해. 그치만 꼭 해야 할 게 있어서.”

 

 생명이 없는 벽과 바닥에도 뭔가가 깃들어있는 것일까? 유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벽과 바닥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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