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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와 그녀 사이의 거리
작가 : 와짜
작품등록일 : 2020.1.13

좀비로 가득히 변해버린 세상.
그녀를 찾기위해 그와 친구들이 여행을 떠난다.

 
2화. 전조
작성일 : 20-01-13 18:51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6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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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느새 창문 사이로 하광(霞光)이 호의 집을 기웃거렸다. 잠시 후 불그스름해진 노을빛이 호의 얼굴에 아른거렸다. 주행이 창문을 열자 노을빛과 바람은 손을 맞잡고 호의 얼굴을 무대 삼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야, 정호! 일어나. 현기증 나게 배고파!”

  주행이 끝까지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

  “일어나라니까!”

  주행이 호에게 다가가 마구 흔들어댔다.

  “아, 씨... 몇 신데?”

  “벌써 7시가 넘었어.”

  “벌써?”

  “어!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알겠어, 잠깐만. 아휴,..”

  호가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

 

  노을빛이 점점 옅어질 즈음 호와 주행은 밖으로 나왔다. 사라진 노을빛이 소방차와 경찰차 사이렌 속으로 스며들었는지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다.

  “아오, 시끄러. 한산한 동네에 이게 뭔 일이냐?”

  “그러게, 날씨는 선선하니 좋은데 말이야.”

  “사고가 안 나는 날이 없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려~”

 

 

 

  호와 주행은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국밥집에 들어갔다. 밝은 조명이 흰색으로 깨끗하게 칠해진 실내를 밝혔다. 며칠 전에 새로 페인트칠을 했는지 그 흔한 국물 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녁시간이라 제법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로지 뉴스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나이 든 종업원 한 명도 뉴스에 빠져 호와 주행이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야, 또 뭔 일 났나 봐. 저거 봐봐.”

  주행이 호를 툭 쳤다.

  “하루 이틀이냐. 밥이나 먹자.”

  호와 주행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소머리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국밥이 나오는 동안 이들도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동물들이 이상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길거리로 나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헤치고, 산에선 야생동물들이 내려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

 

 

 

  “저게 뭔 소리지?”

  주행이 얼굴을 찡그렸다.

  “움... 뭔가 큰일 난 기분인데. 야 내가 유튜브 검색해볼 테니까 기사나 그런 것 좀 찾아봐.”

  호는 서둘러 유튜브를 켰다. 동물이라고 검색하자 생방송 중인 수많은 채널이 보였다. 그중 ‘대박! 광견병 걸린 미친 동물들의 살육 현장!!’이라는 제목이 달린 방송을 클릭했다.

 

  “야! 이거 봐봐 생방송 중이다.”

  30대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방송을 하고 있었고, 화면 너머론 경찰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금 막 경찰들이 발포를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최대한 높이 올려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원이 부족한지 이 남자를 비롯한 몇몇의 구경꾼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시끄럽게 흔들리는 화면 속엔 사람들과 동물들이 엉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쓰러지는 동물들과 이미 쓰러진 사람들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조각나버린 몸뚱이 또한 여럿 보였다.

 

  “여러분!!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미친 동물 새끼들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어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대신 제가 방송으로 알려드릴 테니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빠짐없이 눌러주세요!!”

 

  “야, 이 사람 위험해 보이는데?”

  주행이 말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모르냐?”

  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풉,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확실히 너무 위험해 보이긴 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글쎄... 그나저나 집에 갈 때 저것들 만날까 무섭다.”

  “만나면 전부 때려잡아.”

  “나~ 참. 일단 무조건 도망가야지.”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배고파 죽겠네. 언제 나오냐.”

  호와 주행은 얘기를 하면서도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여전히 티브이에선 뉴스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도 모두 뉴스에 정신을 빼앗겨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헬스클럽 관장 같은 큰 키와 커다란 근육. 반바지와 민소매 셔츠를 걸쳐야 할 것 같은 그는 통 넓은 정장 바지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피로 흥건한 셔츠와 안개가 피어난 듯 뿌옇게 변해버린 눈동자가 기이함을 자아냈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벽에 몸을 박고 쓰러졌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 남자를 쳐다봤다.

 

  “어머나, 이게 뭐야!”

  나이 든 종업원이 그에게 달려갔다.

  “이봐요. 괜찮아요?”

  종업원이 엎어져있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가녀린 늙은 여인이 통나무를 들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종업원은 그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사는 화장실을 갔는지 이런 난리 통 속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방에선 열기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내가 갔다 올게.”

  주행이 일어나자 호는 빠르게 그의 팔목을 잡았다.

 

  “왜?”

  “가지 마.”

  호는 고개를 저었다.

  “뭐? 도와줘야지!”

  “느낌이 안 좋아. 그냥 구급차나 부르자.”

  호가 다른 한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음...”

  주행은 자꾸 뒤를 돌아봤지만 호의 만류에 그냥 자리에 앉았다.

 

  웅성거리는 소리만 무성할 뿐 아무도 나서지 않자 혼자 밥을 먹던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색 운동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여자였다. 그녀가 종업원한테 가서 뭐라고 하더니 둘은 힘을 합쳐 남성을 뒤집었다.

 

  “꺄아아악!!!!”

  그녀들이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남성의 등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남성의 얼굴을 보자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얼굴은 가게의 벽보다도 더 하얀, 아니 마치 뿌연 유리 같았다. 이 유리 위를 지렁이가 기어 다니듯 핏줄이 꿈틀거렸고, 검은 눈동자는 이미 지독한 안갯속에 파묻힌 힘없는 가로등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땀인지 진물인지 모를 이상한 액체에서는 상한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 냄새가 났다.

 

  종업원은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보며 뒷걸음질을 치려했지만, 어느새 다시 몸을 돌린 거구의 남성이 종업원의 발을 잡아챘다. 나뭇가지가 꺾이듯 ‘뚝’하는 소리와 함께 종업원이 뒤로 나자빠졌다. 바닥에 그대로 머리를 부딪친 종업원은 숨소리도 한번 못 내보고 기절을 했다.

 

  “아주머니...?”

  옆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을 지켜보던 여성이 종업원에게 팔을 뻗었다.

  “안 돼, 위험해!!!”

  갑자기 주행이 소리를 치며 여성에게 달려갔다. 호의 눈은 여전히 종업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남성에게 향해 있었다.

 

  “저게 뭐야!!!!”

  식당에 있던 손님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쓰러져있던 남성이 종업원의 발목을 뜯어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남성에게 붉은 수염을 만들며 하얀 벽에 그림을 그렸다.

  조명이라도 더 어두웠으면 좋았으련만. 선명한 조명은 그 광경을 더욱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믿을 수 없는 기막힌 상황에 가게에 있던 사람들은 마리오네트처럼 입만 뻥끗거렸다. 모두들 당장에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터였지만, 남성이 있는 쪽에 문이 있어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한편 자신의 눈앞에서 생중계로 펼쳐지는 식인 행위에 여성은 넋이 나갔다. 그녀는 발을 떼어보려 했지만 흘러내린 피가 족쇄가 된 듯 자신을 휘감았다.

  “조심해요!!”

  주행이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

  그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주행을 쳐다봤다. 주행이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거는 동안 갑자기 호가 괴성을 지르며 주행에게 달려갔다. 종업원의 다리를 1등급 한우 스테이크 먹듯 해치운 남성이 주행에게 팔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한 손은 여전히 종업원의 다른 발목을 잡은 채였다.

 

  “야 아아악!!!!!”

  호가 달려가서 남성의 팔을 냅다 걷어찼다. 충격이 있었는지 그는 ‘끄르릉’ 소리를 내며 이번엔 호에게 손을 휘둘렀다.

  호가 손을 피해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피로 흥건한 바닥 때문에 발이 미끄러졌다. 호는 처음 스케이트를 타본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어??”

  주행의 눈이 눈썹을 뚫을 듯이 커졌다. 남성의 팔이 날파리를 낚아채듯 호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50년 된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점점 다가왔다.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수십 개의 발이 달린 대왕 지네였다. 호는 징그러움에 몸서리쳤지만 다리는 지면에 뿌리를 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지네의 모든 다리가 각각 생명이 있는 애벌레처럼 쉴 새 없이 꿀렁거리며 호의 허벅지를 스윽 훑었다. 호는 감전이라도 당한 듯 온몸이 쩌릿쩌릿했고 모든 털은 도망치려는 듯 삐쭉하게 곤두섰다. 하지만 그런 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늘처럼 꼿꼿이 서있는 털들 사이로 사람 손가락만 한 지네 다리가 미로를 통과하듯 꿈틀거렸다. 그렇게 몇 번을 훑더니 이번엔 점점 위로 올라왔다.

 

  “야!!”

  깜짝 놀란 주행이 호의 옷을 잡아챘다. 호는 낚인 물고기처럼 어둠의 바닷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괜찮냐?”

  주행이 양손으로 호와 여성을 꼭 붙잡고 뒷걸음질을 쳤다.

  호의 눈엔 아직도 허우적대는 붉은 손이 보였다. 이내 호는 자신을 살폈다. 왼쪽 허벅지 위에 선명하게 찍힌 자국들이 보였다.

 

  한편 아무리 휘둘러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남성은 다른 손에 꽉 붙들고 있던 다리를 먹기 시작했다.

 

  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어디선가 경험했던 끔찍한 느낌이었다. 호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눈을 빠르게 돌렸다. 반대쪽엔 이미 자신만의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 보였고 식탁 위엔 주인 잃은 뚝배기들이 보였다.

 

  “야, 괜찮아?”

  주행도 한쪽 무릎을 꿇고 호를 쳐다봤다. 땀으로 범벅이 된 호의 얼굴 가운데서도 눈알은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애야애...”

  호가 중얼거렸다.

  “뭐?”

  “이버넨...”

  말을 하다 말고 호가 육상 선수처럼 튀어나갔다. 주행이 말릴 틈도 없이 근처에 있던 뚝배기를 집어 들고 단숨에 남성에게 달려갔다.

 

  “@#$%@#$%”

  주행이 뭐라 말을 했지만 호의 귀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와 맛있게 씹어대며 질겅이는 소리만 들릴 뿐. 호는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온 힘을 다해 남성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퍽. 퍽.

 

  피가 사방으로 튀겼고 호도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식인종과 괴물이 뒤엉킨 괴이한 모습에 식당 안에는 오로지 뚝배기 깨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심지어 주행조차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뚝배기 4개가 깨질 때까지 호는 남성의 머리를 내리치고 내리쳤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폭발해버린 음식물처럼 그의 머리가 변했을 때, 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호의 손에선 그의 피인지 남성의 피인지 모를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이미 전신에 피 칠갑을 한 모습을 보면서 그의 손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야...?”

  침을 삼키며 주행이 호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호는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했다. 반대편의 사람들도, 주행도, 양발이 잘린 종업원도 아니었다. 무언가 오싹함을 느낀 주행이 호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정호!!”

 

  호는 아무 말 없이 벽에 손을 뻗었다. 흰색 벽엔 피가 이리저리 튀어 마치 추상화를 연상시켰다.

  “응? 저게 왜?”

  “...”

  “왜 그래?”

  주행이 벽과 호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때...”

  호는 말끝을 흐리며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야? 어디 가?!”

 

  주행은 호를 따라 나가려다, 같이 있었던 여성이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근처에 있던 식탁을 붙잡고 돌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휘청거리고 있었다. 주행이 여성을 부축하며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은 무언의 압력에서 벗어난 듯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에서 그런 난리가 있었는데도 바깥은 적막했다. 사이렌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반짝이는 간판들과 바뀌는 신호등 불빛만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주행이 밖으로 나왔을 땐 호는 이미 횡단보도를 건넌 상태였다.

 

  “야!! 집에 가는 거야?!!”

  주행이 몇 번이고 고함쳤지만 골인을 하지 못한 소리들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미치겠네...”

  주행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

  주행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퀭한 눈으로 주행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아, 네! 그런데 괜찮으세요?”

  “네. 그냥 너무 놀라서...”

  “그나저나 집이 어디세요?”

  그녀가 신호등 건너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켰다.

  “호랑 같은 아파트 사시네요. 데려다 드려도 되나요?”

  “네, 고마워요.”

  “아니에요. 가시죠.”

  주행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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