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가 방 전체를 뒤덮고 있어 조금은 어두운 작은 방. 중앙 검은색 유리 탁자 위에 두 명의 남자가 문서를 잔뜩 쌓아두고 있었다. 형식은 하품을 길게 하며 말했다.
“이거 뭐 백날 본다고 뭐가 나오겠냐. 안 그래?”
형식의 말에 후배 형사인 이형사 역시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애초에 증거가 될 만한 것이 너무 없습니다. 공조수사라고 다른 사건 현장에서 가져다준 정보도 짜고 친 것처럼 다 똑같습니다.”
이형사의 말에 형식은 의자로 몸을 뉘이며 말했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우리만 잡아 족치니 내 참.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쩌겠습니까.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뭔가 하긴 해야죠.”
“이건 딱 봐도 미제 사건이구만. 에휴.”
형식은 지겹다는 듯 문서를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길게 하품을 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이게 뭐야?!”
이형사는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형식을 보았다. 하지만 형식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야기는 놀라기에 충분한 만한 이야기였다.
형식의 휴대폰에는 초록색 바탕의 검색포털사이트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급상승 검색어라는 글씨와 함께 1번부터 10번까지 숫자와 함께 여러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중 1번 옆에 적혀있는 글씨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범 자수였다.
“연쇄살인범 자수?!”
형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 화면이 켜져 있던 휴대폰에서는 ‘반장님’이라는 글씨가 떠오르며 벨 소리를 울려댔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반장의 목소리는 방금 형식이 보았던 뉴스가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둘은 당장 문을 부술 듯 열어서 밖으로 나갔다.
창현과 동식 역시나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남자 앵커가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이 오늘 오후 12시경 경기도에 위치한 경찰서로 자수를 해왔다는 소식입니다. 경찰은 현재시각인 8시까지 검찰과 함께 합동 조사를 해왔으며 거의 모든 증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자수라고?!”
동식은 비명처럼 외쳤다.
“그림자가 자수라니 말이 돼?”
동식은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탕수육이 바닥에 떨어진지도 모른 채 말을 하고 있었다. 창현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림자가 자수라니.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여태 죽여 온 사람이 몇이던가. 여태 죽여 온 사람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수준인데 갑자기 자수라니. 그림자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창현과 동식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본부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였다.
‘살인범 확실. 추가적인 세부정보는 추후 따로 공고하겠음. 모든 파수꾼은 평소와 같이 각자 구역에 충실할 것.’
그 시간 형식과 이형사는 반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자수라니요. 맞아요 이게 지금?”
형식의 물음에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워낙 관심이 높은 사건이다 보니 검찰에서 부리나케 달려와서 합동 조사를 했다는데 진범이 맞는 모양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뭐 발견된게 있어야 진범으로 확신을 하던지 하죠. 현장에서 나온게 꼴랑 칼자루 하나뿐인데.”
“낸들 아냐. 저쪽 동기한테 전화 넣어봤는데 꺼져있더라. 난리인 모양이야.”
그때 최형사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 반장에게 웬 서류를 주며 말했다.
“동기 놈이 보내준 건데 범인 신상이랍니다.”
반장이 서류를 집어 들자 형식과 이형사는 반장의 좌우에 붙어 무엇이든 뚫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다.
서류에는 검경이 합동 수사를 진행한 내용이 대강 적혀있었는데, 주로 범인이 스스로 자백한 내용이 전부였다. 반장이 마지막 A4용지를 넘기자 형식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게 지금 수사내용이야? 저건 초등학교 애들한테도 시키면 하겠다. 뭐 죄다 범인이 스스로 자백한 거구만.”
형식의 말에 이형사 역시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게요. 어디를 봐도 진범이라고 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 같은 건 없는데.”
형식과 이형사의 말에 문서를 건네준 최형사는 말했다.
“동기 말에 따르면 저쪽에선 그냥 진범으로 확신하는 모양이던데요?”
“아니 이따위로 허술하게 조사해놓고 진범이라고?”
“위에서 정하면 따르면 되지. 뭘 그렇게 궁금한게 많아.”
반장의 말에 형식이 말했다.
“아니, 보세요. 사람이나 죽여 봤을 것 같아요? 무슨 샌님같이 생겨가지고 밥숟가락도 못 들게 말랐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시끄럽고 이제 대충 해결됐을 테니 오랜만에 밖에서 밥다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반장은 형식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철창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형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따랐다.
북적이는 음식점 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음식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놓아진 것은 검은색 뚝배기 하나. 오늘도 어김없이 국밥이었다. 그리고 그 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반장과 달리 형식은 못마땅하다는 듯 숟가락으로 국밥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손으로 뚝배기를 들어 국물까지 다 마신 반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휴지를 꺼내 입 주변을 닦았다. 그러다 갑자기 뜬금없이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덮으려는 모양이다.”
조용하고도 차분한 반장의 말에 형식이 되물었다.
“뭘 덮어요?”
“검찰 쪽에서도 알겠지. 지금 이 정도 증거만으로 범인을 잡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걸. 너도 알다시피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이 이리로 쏠려있다. 이 사건 해결 못 하면 위에서 몇 명이 옷을 벗을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러니 미제로 남기 전에 자수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어떻게든 끼워 맞춰서 덮지 않겠냐.”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반장은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말이 안 될 것도 없지.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다고요?”
하지만 형식의 물음에 반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국밥을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
연쇄살인범이 자수한 뒤 일주일. 대한민국의 모든 이목은 연쇄살인범의 자수로 쏠렸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인권에 대해 찬반 인원들이 각자의 논리로 싸우고 있었다. 재판이 열리기에는 꽤나 시간이 남았지만, 뉴스, 혹은 여러 프로그램에서 최고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괴담들이 퍼졌지만,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밤거리를 활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에게 경찰이란 믿을 수 없는 단체가 되어 국민들의 경찰 조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그 누구도 자수한 연쇄살인범의 범행 수법이나 동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범인이 자수를 했고, 대한민국 검찰이라는 믿음직한 단체가 멍청한 경찰의 부족함을 채워 알아서 잘 수사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는 사람은 경찰 내에서도 김형식과 이형사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