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물밑에서 (2)
작성일 : 19-12-11 02:03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437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5 : 물밑에서

 

 

  녹스에게 부탁한 일은 차치하기로 했다. 비비안은 책상으로 돌아가 읽던 신문을 마저 훑어 내렸다. 빛바랜 귀퉁이에는 1838년 1월 18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즉, 그녀가 찾는 것은 오늘자 소식이 아니라 자그마치 9년 전의 기록이었다.

 

  [오리카 국립대학, 뿔난 암소에게 붙들려 곤욕을 치르다]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으로 내걸린 기사를 비비안은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아스타인 최고의 교육기관인 오리카 국립대학을 상대로 한 젊은 처녀가 여성의 입학을 허가해달라며 소송을 걸었다는 내용이었고, 거기에 ‘다이애나 레브론’이란 이름이 등장했다.

 

  ‘크리스토퍼 백작의 죽은 아내가 이 여자였구나.’

 

  비비안이 일전에 기시감을 느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먼 옛날 신문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기에.

 

  현재 아스타인의 그 어떤 대학도 여학생을 받지 않는다. 오로지 남성만이 고등교육을 소화할 지적 능력을 갖췄다고, 역사가 말해왔기 때문이다.

 

  다이애나는 9년 전에 이 명제에 반기를 들었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먼 나라인 수말까지 가고 싶지 않다며 오리카 국립대학에 여성의 입학을 허가할 것을 요구했다. 오리카에서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하자, 이듬해에 그녀는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세상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시끄럽기만 했다. 변한 건 없었다.

 

  신문사마다 사설을 쏟아냈다. 지식을 습득한 여자는 필히 탐욕을 함께 배운다고. 마녀 로잘린드나 희대의 악녀 베아트리스처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지식을 담을 그릇 대신에 아이에게 베풀 젖가슴을 가지고 태어났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어린 비비안은 신문을 읽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분통을 터뜨렸다. 11살의 그녀가 다이애나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내겠다고 울며불며 떼쓰던 것을 유모가 시네프리드 공작 모르게 뜯어 말리느라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그걸 보냈어야 했어….”

 

  비비안은 저도 모르게 힘주어 중얼거렸다. 다이애나에 관한 보도가 점차 줄어들자 그녀도 자연스레 그 일을 잊어갔던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왜 잊었지? 그리 물으면서도 답을 알았다. 비비안은 다이애나와 처지가 달랐으니까. 좋은 환경과 애정 가득한 부모 밑에서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ㅡ16세 이전까지는ㅡ 받을 수 있었으니까. 결핍에 절망해본 적 없었기에, 1차원적 분노 이상의 절박함을 알지 못했다.

 

  …절박함이라. 그건 정말이지 큰 차이였다.

 

  ‘절박함만이 다이애나를 살아가게 했습니다. 소송 중에도, 그 후에도.’

 

  비비안이 다이닝룸에 실수로 발을 들였던 그날. 크리스토퍼 백작은 소송 이후의 다이애나 레브론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 어떤 잡지기사도 다루지 않았던. 비비안은 다이애나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했다.

 

  ‘소송 이후로 줄을 서던 구혼자가 뚝 끊겼지만 당연하게도 다이애나는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설득해서 결혼한 건 저였어요. 제 역할은 남편이란 자리를 빌려주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제 이름을 빌려 평생을 염원하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마법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마법만이 자신이 바라는 답을 줄 수 있다고, 그녀는 늘 말해왔지요. 무슨 뜻인지는 아직까지도 모호합니다만….’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집필했지만 출판사에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여자가 쓴 교양서적을 누가 읽겠냐는 건데… 웃기는 일이죠. 필명만 바꿔서 투고했더니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렇게 다이애나는 죽기 전까지 마법에 관한 서적을 다섯 권 넘게 집필했다. 전부 다 다른 이름으로 출간되었으며, 몇 부 팔리지는 못했다. 그 무렵 시네프리드 가문의 일이 흉흉하여 마법에 대한 적대감이 세간에 만연해진 탓이었다.

 

  크리스토퍼 백작은 다이애나의 저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책을 무리하여 집필한 탓에 아내의 지병이 악화된 거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그래서 비비안은 그에게 더 캐묻는 대신 녹스더러 책들을 모두 수집해오라고 일렀다. 그랬더니 책은 하나도 못 찾았고 8시에 귀가한다는 소리나 되돌아왔지만.

 

  시침은 아직도 6과 7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비비안은 녹스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9년 전 일간지를 정리하기로 했다. 솔직히 그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는데, 비비안은 자신이 왜 이토록 다이애나의 흔적 찾기에 몰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설픈 동지애를 느꼈던 데 대한 책임감일까, 타인의 절박함에 대한 뒤늦은 공감일까.

 

  더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비비안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 1841년 4월 7일자의 다른 기사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돌팔이 박사 ‘레브론’의 주장대로, 마법사 대부분은 여자인가? … ]

 

 ***

 

  “확실히, 쓸 만한 피를 가진 건 여자들뿐이야.”

 

  프라이스 남작이 창 너머로 하녀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분수대를 청소하러 나온 하녀들이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남작은 그중 손에 붕대를 감은 한 명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느릿하게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알싸한 포도향 끝에 신선한 피의 비릿함이 느껴졌다.

 

  “음….”

 

  남작은 그것을 오랫동안 음미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13년산 륌푸르 와인에 섞인 처녀의 피를,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을 느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닌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아리따운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왜 여자들의 피에만 마력이 흐를까?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씹어뱉듯 불만을 토해내며 프라이스 남작은 휙 뒤돌았다. 그의 뒤에는 은백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젊은 여인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있었다.

 

  “말해봐, 엘레나 러빙. 왜 그럴까?”

  “…….”

  “왜 내가 아닌 네가 마법을 쓰고, 하녀들의 피에 마력이 흐르는 걸까? 정작 마법의 힘이 필요한 건 난데 말이야.”

 

  프라이스 남작의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엘레나 러빙은 금빛 눈동자를 은밀하게 굴려 이를 확인한 뒤 언제나와 같이 천천히 대답했다.

 

  “저희는 남작님을 위한 소모품이니까요.”

 

  그녀는 가끔씩 히스테릭해지는 자신의 후견인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손끝이 잘게 떨렸다. 남작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웃었다.

 

  “하긴. 네가 먹고 입고 배우는 모든 것이 내게로 되돌아오니까…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훈련시킨 장본인도 나지.”

  “…….”

  “저기 저 하녀들은 제 피에 마력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평범하게 늙어죽을 텐데….”

 

  프라이스 남작은 창밖을 보며 진심으로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찼다. 곧바로 엘레나 러빙을 향해 돌아서서는 거의 연극하는 톤으로 말했다.

 

  “그러니 넌 정말 선택받은 거야, 엘레나 러빙.”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소모품 취급이라고 서운해 하지 마.”

  “당치도 않습니다. 그건 제가 누리는 영광이에요.”

 

  비록 기계로 찍어낸 듯한 대답이었지만, 적어도 대답하는 그 순간에는, 엘레나 러빙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프라이스 남작은 미천한 그녀를 거두어들였고, 그가 아니었으면 그녀는 거리에서 시체로든 매춘부로든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은인이자 구원자이며, 그에게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스스로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욱여넣으며 엘레나 러빙은 몇 번이고 프라이스 남작의 희극에 장단 맞춰주었다. 이 저택 모든 곳이 기형의 무대이리라….

 

 ***

 

  까마귀가 울어 겨울 아침을 알렸다. 동이 트기도 전이라서 저택 안팎이 어두컴컴했다. 녹스는 창틈으로 스며와 뺨에 부딪히는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칼 같은 6시 정각이었다.

 

  침대 시트에서 술 냄새가 조금 났다. 부스스 눈을 뜨며 생각했다. 이건 갈아달라고 부탁해야겠군…. 아니, 어차피 내가 하게 되려나. 그럴듯한 생각에 혼자 픽 웃은 그는 머리맡으로 팔을 뻗었다. 밤사이 차갑게 식어버렸을, 자기 전에 벗어둔 상의를 더듬어 찾았다.

 

  그러다 따끈한 뭔가를 툭 건드렸다.

 

  “뭐…”

 

  녹스는 그대로 경직됐다. 건드린 걸 저도 모르게 손에 쥔 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덮고 있는 이불도 차갑고, 드러난 제 상반신도 차갑고, 방 안의 공기도 차가웠다. 혼자 쓰는 방에서 따끈함이란 스스로가 남기는 체온밖에 없었으니, 지금 손에 느껴지는 따끈함은 몹시도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그 따끈한 게 별안간 움직였다.

 

  “으악!”

 

  그것은 녹스의 팔뚝을 옭아매려 들었고, 그 일이 발생하기 전에 녹스는 몸을 꺾어 그것을 걷어차 버렸다. 그것은 침대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악! 아, 아야야야….”

 

  아픔을 호소하는 목소리의 주인이 에밀리임을 알아차린 건 그 직후였다. 녹스는 사색이 됐다. 그러니까 반사신경을 탓해야 할지, 과민반응을 탓해야 할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여자를 발로 찼다.

 

  그가 제 침대에 놓인 그녀의 존재에 대한 충격과 스스로에 대한 충격, 그리고 물밀 듯 밀려오는 미안함에 할 말을 잃은 사이, 어쨌든 자다가 봉변을 당한 에밀리는 진심을 담아 아침인사를 건넸다.

 

  “미친… 당신 미쳤어요?”

 

 

 
작가의 말
 

 1) 세계관 읽기 쉽게 풀어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군요.. 솔직히 저도 로판 보면서 세계관 구간점프 하는 인간인지라.. 할 말 X.... 짧은 분량을 이렇게나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해요ㅠ.ㅠ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6 물밑에서 (2) 2019 / 12 / 11 226 0 4373   
15 물밑에서 (1) 2019 / 12 / 3 224 0 5326   
14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7) 2019 / 11 / 29 216 0 6749   
13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6) 2019 / 11 / 16 206 0 5337   
12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5) 2019 / 11 / 10 213 0 2569   
11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4) 2019 / 11 / 9 257 0 4052   
10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3) 2019 / 10 / 31 226 0 4676   
9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2) 2019 / 10 / 28 228 0 4749   
8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1) 2019 / 10 / 26 231 0 4662   
7 수상한 손님맞이 (6) 2019 / 10 / 23 212 0 3494   
6 수상한 손님맞이 (5) 2019 / 10 / 21 198 0 4384   
5 수상한 손님맞이 (4) 2019 / 10 / 15 231 0 4745   
4 수상한 손님맞이 (3) 2019 / 10 / 14 214 0 5549   
3 수상한 손님맞이 (2) 2019 / 10 / 11 251 0 5504   
2 수상한 손님맞이 (1) (1) 2019 / 10 / 8 254 1 3959   
1 붉은나무 저택과 에밀리 2019 / 10 / 6 416 0 215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아리따운 주꾸미
정민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