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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문을 열어드립니다
작가 : 반루아
작품등록일 : 2019.9.3

[미스터리 판타지]
완벽주의자 프로파일러 피아와 귀차니즘 마신이 인간계와 마계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서스펜스

 
28. 다른 건 다 참아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작성일 : 19-11-13 16:25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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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추측일 뿐인지라 알려 드리기 곤란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추론을 피아는 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번 사건은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결코 성사하기 힘든 일이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피아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봤으나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뭔가 이야기해줄 내용이 있는 것처럼 힐끔거리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도 임원들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고.

 

 “USB는 확실히 전달했고 기록을 복사했는지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벽에 기대선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수호를 바라봤다. 복잡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낸 그가 피아 주위를 맴돌았다. 일단 뒤로 물러선 그녀는 수호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시했다. 피아가 사용했던 컴퓨터에 자리하고 앉은 수호는 느릿하게 여러 개의 창을 띄우며 확인했다.

 

 “사실 제 고향 친구도 이번에 갔는데 그녀석....”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 또한 진실을 알고 싶어 여기저기 뒤져봤으나 이미 현장은 훼손되어 있었다. 경찰이 조사하려 할 때 수호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직장을 잃기 싫다면 입조심하라는. 처자식이 있었던 그는 선뜻 나설 수 없었다. 회사에서 요구한 조건을 외면한 사람들은 모두 권고사직 당했고 그들의 앞날은 시궁창이었다. 당사자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취업은 커녕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확실하게 확인된 부분은 없습니다.”

 

 그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었으나 피아는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확인한 결과 지금도 누군가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삼엄한 감시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그에게 섯불리 정보를 알려주는 건 곤란했다. 물론 밖에서 만나는 것조차 위험해 보였고. 그녀의 의중을 읽은 수호가 일부로 이 자리를 비추는 CCTV 위치를 바꿨다.

 

 "아, 잠시만요."

 

 그 사실을 알아차린 피아가 컴퓨터로 다가갔다. 이리저리 마우스 커서를 움직인 그녀는 수호가 눈치챌 수 있을 만한 피해자 사진과 법의학자 소견서를 은근슬쩍 창에 띄워 놓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수호가 모든 정보를 확인하는 동안 그녀는 준비되어 있던 차를 마셨다.

 

 "제가 확인한 다른 것들도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수호는 정자세로 자리하고 안아 피아가 띄어놓은 창을 하나 둘 띄우며 확인했다. 사진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화장실에서 자살한 시체에 나타난 시반의 위치는 둔부에 있었다. 피해자가 낮은 위치에서 목을 매달았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포착된 것이다. 또한,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 속에 숨겨진 오늘이 디데이라는 암호도 석연치 않았고.

 

 “활발한 녀석이 자살했다는 게 믿어지지않아 제가 헛소리 했으니 잊어 주세요."

 

 짧게 호흡을 끊으며 상황을 설명하려던 수호는 다시금 그녀가 조사한 내용을 훑어봤다. 하나둘 증거를 확인하던 그는 일순간 숨을 멈췄다. 피아가 조사한 내용을 보니 자살한 6명 모두 사이안화수소(HCN) 즉 청산에 중독되어 있었다. 청산가리가 극소량으로도 즉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독극물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으나 즉사가 아닌 중독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라는 법의학자의 소견이 있었다. 즉 6명 모두 HCN에 꾸준히 노출되고 있다가 같은 시간에 사망한 것이다. 창을 하나하나 확인한 수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틀어 피아를 쳐다봤다.

 

 “이건?”

 

 투신자살로 사망한 시신에는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목이 졸린 시반까지 보인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피해자를 겁박했다는 의미였다. 피해자가 죽은 다음 옥상에서 떨어진 것이라는 소견까지 발견된 이상 타살임이 분명했다. 수호가 보기에도 이 사건은 분명 치밀하게 짜져 있는 계획적인 살인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입가에 잠시 미소를 지어 보인 피아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눈치 빠른 그가 표정을 굳힌 채 컴퓨터 자체를 포멧해버렸다. 나중에 추궁당한다면 다른 직원들이 혹시라도 호기심에 확인할까 염려되었다고 둘러될 생각이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녀가 사용한 이력이 완전하게 지워진 걸 확인한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정중하게 인사한 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안실을 벗어났다. 회사에서 나온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요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감님 사건 현장에 확인할 부분이 있어서... 우욱.”

 

 “피아야? 왜 그래!”

 

 당황한 그의 음성이 수화기 넘어서 들려왔으나 피아는 답변할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가 요민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피아는 속이 메스꺼워 계속 헛구역질이 났다. 갑자기 느껴진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그녀가 전봇대 옆에 기대서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왜 이러지?”

 

 머리가 아찔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진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려졌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한적한 시골 길에서 의식을 잃은 피아 곁으로 6명의 영혼이 에워쌌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엔 걱정이 한 가득 묻어나 있었다.

 

 “이 여자도 우리처럼 희생양이 되는 건가?”

 

 얼굴의 반이 함몰된 남자 직원이 그녀 앞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손가락으로 피아를 톡톡 건드렸다. 그의 손을 쳐낸 책임 연구원은 거리낌 없이 그 남자 머리를 쥐어박았다.

 

 “우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우선 이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니 네가 들어가.”

 

 “라져.”

 

 그녀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남자가 피아 몸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가갔다. 스며들 듯 그 둘의 몸이 연결되기 바로 직전 피아 허벅지에 새겨진 문양이 검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일렁거렸다. 빙의를 시도하려던 남자 직원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벽에 그대로 처박혔다. 잔뜩 몸을 웅크린 그가 극심한 통증에 거친 기침을 쿨럭거렸다.

 

 “말도 안 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황을 지켜본 영혼들은 다시금 그녀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로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피아가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녀 몸에 중화된 독을 하루빨리 제거해야만 했으니까.

 

 “너랑 이분의 파장이 안 맞나? 이번엔 네가 들어가 봐.”

 

 책임 연구원의 명령에 따르듯 목에 시반이 나타난 남자 직원이 피아 몸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그 또한 거부당했다. 6명의 영혼이 모두 빙의를 시도했으나 상황은 동일했다. 난처해진 영가들은 그녀 주위를 에워싼 채 웅성거렸다.

 

 “그 자식은 회사와 상관없는 사람도 건드리는 건가?”

 

 피아 곁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계장의 입가에 허무한 미소가 걸쳐졌다. 두고두고 상황을 곱씹어 보는 그에게 다가간 선임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계장님, 그런 걸 신경 쓸 놈이었음 우리도 안 죽였겠죠.”

 

 “하긴.”

 

 그들은 느리게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은 불쾌감에 한 남자 연구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것보다 이 여성분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켜야지요! "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들은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로 이번 사건에 관련된 피해자 영혼들은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

 

 피아가 자리를 비운 사이 리암은 잠을 자고 싶어도 마력들이 그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켜 쉽게 잘 수 없었다. 갑갑한 마음에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리암이 양반 다리를 한 채 침대에 앉았다.

 

 “제 집 나누고 도망치진 않았겠지.”

 

 다시금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운 그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리암이 말렸음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놓고 밖으로 나가버린 피아. 고집스레 입술을 다문 그가 가만히 자기 손을 주시하다 거둬들였다. 리암도 그녀의 온기가 이렇게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나 보다.

 

 “아씨 잠이 안 오네”

 

 마력을 제어하기 곤란할 정도로 열기가 끓어오르자 리암은 제 뒷목을 긁적였다. 지금 당장 피아의 온기를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그는 꼼짝도 하기 싫었다.

 

 ‘째깍째깍.’

 

 작은 소음을 만드는 시계가 열심히 시간을 알려왔다. 그녀가 사건 현장으로 간 지 12시간이 넘게 흘렀는데 멀리서 느껴진 피아 기척이 흐릿해졌다.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힌 그는 초조함에 몸을 들썩거렸다.

 

 “마중 나가볼까?”

 

 현관문까지 걸어나가던 리암이 다시 침대로 돌아와 대자로 누웠다. 피아는 분명 왜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고 그는 그것을 답변하기 싫었다. 내적 갈등이 심해지자 리암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비워버렸다.

 

 “뭐 어린 애도 아닌데 알아서 오겠지.”

 

 대자로 침대에 누웠지만 리암의 따가운 시선이 현관문에서 고정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피아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아씨,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해야 하느냐고.”

 

 갈팡질팡 집 안을 돌아다니던 리암이 이내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것도 잠시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피부에 느껴지자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니 애는 뭘 먹은 거래?”

 

 불쾌한 무언가가 그녀의 몸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지워버리면 될 문제이니 리암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사실 그는 피아가 홀로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 그녀 몰래 문양을 새겨놓았다. 피아 손을 잡지 않더라고 갑작스레 마계로 끌려가는 일이 없기 위한 작은 장치였다. 문양으로 그녀와 연결되어있던 마신은 여러 영혼이 피아 몸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를 고스란히 느꼈다.

 

 “응? 원혼 주제에 겁도 없이?”

 

 자꾸만 피라미들이 그녀 곁을 맴돌더니 이내 빙의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거기다 피아가 의식까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리암은 그녀의 기운에 연결된 끈을 따라 날아올랐다.

 

 “너희 뭐하는 거야?”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기운을 느낀 영혼들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여성이 손바닥에 차오르는 식은땀을 제 허벅지에 문댔다.

 

 “퇴마사이신 건가요?”

 

 “원혼 주제에 감히 인간의 몸을 탐해?”

 

 리암 몸에서 피어오르는 서늘한 기운에 영혼들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그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목덜미에 붉은 시반이 있는 남자 직원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피아씨가 사이안화수소에 중독되셔서 쓰러지셨는데 악귀에게 잡아 먹히실까 봐 이동시키려고....”

 

 “너희들은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아 됐고. 신경쓰기 귀찮으니 그냥 사라져줘.”

 

 곰돌이 잠옷을 입은 채 정신없이 이곳으로 이동한 탓에 그의 머리카락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는지 영혼들은 리암을 말똥말똥 쳐다봤다. 자신의 명령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원귀 모습에 그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영혼을 쏘아봤다.

 

 “내 말이 우스운 거야?”

 

 지금 이 순간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력은 그의 제어를 벗어나 버렸다. 세상을 파괴해 버릴지도 모르는 힘이었으나 리암은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의 기운에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영혼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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