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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11. 소등(1)
작성일 : 19-11-13 14:35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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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역사를 가진 새하얀 탑의 존재는 브리카 왕국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다. 지금은 천년의 세월 동안 많은 증축이 이루어져, 더욱더 넓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도 주변을 내려보듯 높이 솟아있는 첨탑의 위용은 여전했다.

  바로 이 소니힐 사원은 에테르 교회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엔, 왕의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현자들이 머물던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 없었다.

  데미안 퀸은 이 장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라는 수도원에 불과했던 이 장소가, 왕가의 예식을 담당해오면서 랭커튼 대교구를 맡는 대성당의 기능도 수행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사원이라 불리면서도, 사실상 수도원장에 가까운 존 래컴이 대주교란 사실도 그는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 또한 교황청의 결정이니 자신이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데미안은 소니힐 사원의 탑을 오르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다.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의 긴 수단 차림이, 계단을 오르기에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우선 대주교의 방이 이 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단 사실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페럴 추기경의 방도 이렇게 높은 곳에 있지 않았다. 신과 가까운 곳에서 섬기기 위해서란 말로, 오만함을 포장하는 행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교황청의 부름에 그가 자릴 비운 사이에 의회의 회의를 통과한, 하나의 안건 때문이었다.

  탑의 꼭대기 층에 이르자 데미안은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안에선 새하얀 예복을 차려입은 존 래컴 주교가 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데미안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데미안. 당신이 이곳을 직접 찾는 건 처음 있는 일이군요."

 "어떻게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어쩌다 보니 시기가 그렇게 되긴 했습니다만, 의도한 건 아닙니다."

 

  이 얼마나 뻔뻔하기 그지없을까! 데미안은 자신이 성직자만 아니었다면, 래컴 주교의 매부리코를 반대로 움푹 들어가도록 주먹으로 내려치고 싶었다.

  그만큼이나 데미안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지만, 래컴 주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 남자의 반응은 예상하고 진행했던 일이다. 애초에 그의 저항은 다소 성가시긴 해도, 근심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 시치미를 떼고 계신 겁니까? 원래라면 정상적으로 통과할 사안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의회를 통해 결정된 사안입니다. 우리끼리 논할 얘기는 아니지요."

 

  흔히 말하는 법대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저 조금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긴 했어도, 엄연히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 일이었다.

  오히려 뒤늦게 손바닥 뒤집듯이 없는 일로 하자고 번복한다면, 그거야말로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데미안에겐 안된 일이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은 쉽게 뒤집을 수 없다. 그렇기에 원래라면 의회의 모든 일이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존.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자고로 사제란 신께서 내린 곳간의 문을 두들기는 자이지, 그것을 걸어 잠그는 자가 아닙니다!"

 "교회법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에테르를 제한하는 건 교회의 권한 안의 일입니다."

 

  교리는 해석의 문제이고, 교회법은 이미 명시되어 있는 규율이었다. 래컴 주교의 말은 정론이고, 데미안의 말을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장이었다.

  데미안은 성직자를 곳간의 문을 두들기는 자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에테르 교회의 성전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곳간의 문을 두들기자, 신께서 열쇠를 손에 쥐여주셨다고. 래컴 주교도 엄연히 성전에 적힌 대로, 열쇠 지기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기는 했다.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얘기해보겠습니까? 정말로 평등원칙에 의해서 이번 일을 반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동안 자유혁명군의 활동으로 알게 모르게 이득을 봐 왔기 때문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지금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물론 의도적으로 그러셨단 얘기는 아니지요. 단지 결과론적인 얘기입니다."

 

  너희가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건 변함없지 않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데미안은 그 주제를 놓고 얘기를 하려 들면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입장에선 이 주제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지금 마주하는 두 사람은, 엄연히 교황파와 국내파의 두 파벌의 우두머리로서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그들은 다 같은 성직자에 불과했다. 설사 래컴 주교 개인의 독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교회 전체의 입장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교황청에다 보고는 해두겠습니다. 부디 당신이 교황 성하께서 임명한 주교라는 사실을 잊으신 게 아니길 빕니다."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서품식을 받던 그 날의 풍경은 아직도 떠오르곤 합니다."

 

  물론 그 자리에 교황은 없었다. 아무리 교황에 의해 최종적으로 임명되는 주교라 해도, 서품식에 참석하는 건 랭커튼의 주교들이었다.

  데미안에게 있어서 래컴 주교의 태도는 그야말로 오만불손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저자가 무얼 믿고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베크햄 공작과 비밀스럽게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작이 뒷배로 작용할 만큼, 교회와 관계가 밀접한 것도 아니다. 엄연히 교회의 권위는 교황청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내파 사제들이 가진 나름의 영향력을 인정해주고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자신과 같은 교황파 사제들과 직접적인 대립을 하지는 못했다.

  직접 래컴 주교와 담판을 지을 생각으로 찾아왔건만, 그의 행동은 생각 외로 너무나 뻔뻔했다. 저 정도로 나오면 아예 교황청과 직접 대립각을 세우겠단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역시 하루빨리 전하의 유지를 이어가지 않으면..."

 

  데미안은 탑의 계단을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그의 걸음걸이만큼 마음도 점점 초조해졌다.

  이번 일은 한 번의 돌발행동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분명히 전초전에 불과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공작과 주교가 꾸미고 있던 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임이 분명했다.

 

 "전하께서 살아계셨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죽은 페럴 추기경을 떠올리며, 데미안은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어쩌면 자신이 좀 더 일찍 손을 썼어야 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역할만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그에게 새로이 주어진 일들이 많았다.

  그 많던 계단을 모두 내려오자, 그를 수행하는 사제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이들이 없음을 확인한 데미안은, 손가락질로 그를 좀 더 가까이 오라며 지시했다.

 

 "아무래도 래컴 주교와 공작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작정인 것 같네. 하지만 전하의 뜻을 이루려면, 그들보다 한 발 더 먼저 움직임이어야 할걸세."

 "아시다시피 이곳에 머물던 형제자매들도 다 정리당하여, 이젠 그들의 동태를 살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번 일도 원래 뜻을 함께하던 분 중에서 등을 돌리신 분들이 생긴 것 같더군요."

 "전하께서 서거하신 뒤로 래컴 주교의 세력이 너무 커져 버렸어. 필요하다면 다소 편법을 사용해도 상관없네."

 "편법... 말입니까?"

 

  주변에 들을 사람은 없지만, 굳이 불법이란 단어를 살짝 돌려 말했다. 데미안의 말을 들은 사제는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이 모든 것이 전하의 이루지 못한 꿈... 신성국가 브리카를 세우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데미안은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느끼기엔 래컴 주교는 신앙심은 고사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성직을 악용하는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와 같은 귀족 가문 출신의 사제들이란 대체로 그렇다.

  장자로 태어나지 못해 작위를 상속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회적 권력을 얻기 위해 차선택으로 택하는 방법이 바로 성직자였다. 물론 교회의 입장에서도 그런 이들이 필요하기는 했다. 애초에 그런 자들이 없었으면, 지금 브리카 의회의 한쪽에 사제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래컴 주교와 같은 자들은 거기서 만족할 줄 모른다. 그들의 타고난 오만은 끝을 모르며, 넘봐선 안 될 영역까지 넘보기 일쑤였다.

  데미안의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사명감이었다. 신실한 신앙심이었다. 일개 노동자에 지나지 않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가, 오늘날 주교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순수하고도 진실한 그의 마음 덕분이라 여겼다.

 

 "당신은 신을 섬기는 이가 아니라 무덤지기에 지나지 않아, 존."

 

  데미안은 경멸을 담아 위를 향해 중얼거렸다. 반드시 그 대주교란 이름마저도 내려놓게 만들리라 결심했다.

  한편 그 경멸의 대상이던 래컴 주교는 책상머리에서 무언가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방금 왔다 간 데미안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데미안은 그다지 안중에 없었다. 그에겐 데미안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부모에게 쪼르르 가서 징징대는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생각을 마친 래컴 주교는 수화기를 들었다. 다이얼을 돌리지 않고 몇 초 동안 가만히 있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십시오, 각하."

 "에드먼드 모젤의 행방은 파악되었는가?"

 "송구스럽게도 아직 조그마한 단서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라진 날에 방을 나온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당당히도 성과가 없음을 보고했다. 하지만 굳이 그의 무능을 꾸짖지 않았다. 래컴 주교는 아랫사람의 능력을 쉬이 얕보지는 않았다. 결국 그들을 고른 것은 자신의 안목이었다. 그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자신의 안목을 의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에선, 생각지 못한 어떤 외부적 변수가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맞았다.

 

 "혹시 누군가에 제거되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보이는가?"

 "일단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쪽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원래 하던 일도 잊지는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옛 현인들의 영광을 위해."

 "옛 현인들의 영광을 위해."

 

  래컴 주교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른 쪽 일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으니, 짧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문득 앞을 바라본 그의 눈에 반쯤 열린 방문이 보였다. 데미안 그자는 나가면서 제대로 문도 닫아 놓지도 않았다. 그에게 데미안은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애송이었다. 처음에 페럴 추기경이 데리고 왔을 때부터 그렇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 옅은 푸른빛이 감싸는 것 같더니, 방문이 쿵 하고 닫혔다. 그리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펜을 들고, 평소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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