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잘 할 수 있어
작성일 : 19-11-11 08:45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35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우리는 간신히 루꼬를 내려왔다.

 봉고차에 후드와 환기통을 넣어 놓고 담벼락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나는 편의점으로 가서 빵과 우유를 사 왔다.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없어서 그걸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노빨, 빵이라서 미안해.”

 “괜찮아요.”

 

 빵을 게걸스럽게 먹은 노빨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인도네시아산 담배의 독한 연기가 내 코를 찌르고 하늘로 올라갔다.

 

 “원래 담배 피웠어? 한 번도 못 봤는데.”

 “가끔 피워요.”

 

 노빨은 지치고 우울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몇 주 동안 그는 나를 위해 온 자카르타를 누벼야 했다.

 

 “미스뜨르. 슈퍼마켓을 해보세요. 친구 보스 중에 슈퍼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짜 돈 많이 번대요.”

 “난 식당이 좋아.”

 “식당은 힘들어요.”

 “난 그냥 사람들이 먹는 거 보는 게 좋아.”

 

 나는 카스테라를 천천히 씹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카스테라의 속살이 보랏빛으로 보였다.

 노빨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미스뜨르, 화교를 믿지 마세요. 미스뜨르는 너무 순진해요.”

 “노빨은 화교에 대해 편견이 너무 심해.”

 “화교는 교활하다고요. 사람을 밥 먹듯 속여요.”

 “난 지금까지 화교한테 속은 적 없어. 오히려 한국인한테 속았지.”

 “나라를 망치는 것도 화교에요.”

 “솔직히 부패가 화교 때문은 아니잖아. 이 나라 정부가 잘못이지.”

 

 노빨은 ‘꼬럽시’(부패)라는 단어를 들으면 흥분했다.

 민족주의자에겐 그것이 이 나라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화교가 경제를 쥐고 있잖아요. 부패를 조장하는 것도 화교에요. 부패 때문에 부자들만 잘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못살아요. 그래서 수하르토 독재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어요.”

 

 나는 캐서린의 약혼자 레오가 부패는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노빨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강한 이슬람’을 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 가자. 늦었다.”

 

 다음 일정은 그랜드 인도네시아였다.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인테리어 업자에게 후드와 환기통을 전해줘야 했고, 간판업자가 간판을 제대로 다는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남 자카르타에서 중앙 자카르타까지 또 차가 막혔다.

 

 “노빨, 날 내려주고 퇴근해. 나는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

 “괜찮아요. 인도네시아인은 신의를 지켜요.”

 

 마침내 도착했다.

 우리는 그랜드 인도네시아 주차장에 내려 후드를 꺼냈다.

 번쩍이는 스텐리스 후드를 비치파라솔처럼 두 사람이 받쳐 들고, 그 상태로 뒷문을 통과해 삿빰이 내미는 서류에 사인까지 하고, 그랜드 인도네시아 푸드코트로 들어왔다.

 

 영업이 끝난 푸드코트는 조용했다.

 공사 중인 돌담에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인테리어 인부들이 우리가 가져온 후드를 끼워 맞췄다.

 다행히 사이즈가 비슷해 몇 군데만 손보면 됐다.

 간판 업자는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았다.

 

 “노빨, 정말 괜찮겠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괜찮아요.”

 

 인테리어 인부들이 공사를 마치고 푸드코트를 빠져 나갔다.

 공사를 위해 켜놓은 환한 형광등이 꺼지고, 희미한 비상등 불빛만 남았다.

 우리는 어두운 푸드코드에 서 있었다.

 노빨은 그 잘 하던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내 옆에 서서 간판업자를 기다렸다.

 

 나는 불 꺼진 다른 코너들을 돌아보았다.

 베트남 쌀국수집, ‘박미’라는 인도네시아 국수집, 간판에 땅꾸반 쁘라후를 요란하게 그려 넣은 반둥 스테이크집, 일본 라멘집, 주먹밥을 바나나 잎에 싸서 주는 가게와 딤섬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돌담의 경쟁자들이었다.

 하나같이 푸드코트 시스템에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브랜드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위축되지 않았다.

 왠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부딪치면 된다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노빨, 그거 알아?”

 “뭘요?”

 “난 여기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뜨르스라.”

 

 마침내 간판업자가 도착했다.

 그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늦는 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보조 인부들과 작업을 시작했다.

 

 돌담의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부들이 철사로 간판을 고정하는 동안 우리는 수평을 봐주었다.

 

 “빡! 빡! 까난! 까난!”

 “띠닥(아니요)! 아따스!(위로).”

 

 우리는 글로독 사람들이 차를 인도해주듯 그렇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인부 한 명이 스위치를 올렸다.

 돌담 간판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빡! 중간 D자에 불이 안 들어와요!”

 “그래요? 이상하네.”

 

 간판업자가 다시 사다리에 올라 전선을 만졌다.

 어두운 D자가 깜박거리더니 환한 빛을 쏟아냈다.

 

 “됐어요. 고맙습니다.”

 “여기 명세서요.”

 

 간판업자가 푸드코트를 빠져 나갔다.

 우리도 서둘러 나가야 했지만 나는 몇 초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미스뜨르. 스위치 끌게요.”

 “잠깐만. 몇 초만 참아줘.”

 

 DOLDAM.

 나는 불 켜진 글자들을 멍하니 보았다.

 뿌리인다에 돌담의 첫 간판을 달았을 때 나는 그 밑에서 빈땅을 마셨다.

 그때는 모든 게 불안했다.

 조각배를 타고 깜깜한 망망대해를 노 저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기, 그랜드 인도네시아에 와 있다.

 풍랑에 휩쓸릴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며 인도네시아의 얼굴에 상륙했다.

 지금 내 손엔 빈땅이 없지만 술 취한 기분이 들었다.

 노빨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엔 미스뜨르가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훌륭하게 해내고 있어요.”

 “고마워.”

 

 나는 나의 작은 성공을 자축했다.

 이날만은 자만하고 싶었다.

 

 “노빨, 이제 가자.”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3월 마지막 주 수요일, 디데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손님이 뜸한 오후 3시에 주방팀과 미팅을 열었다.

 

 “석쇠로 구운 맛은 어때?”

 “괜찮아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랜드 인도네시아 푸드코트에선 그릴기를 사용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가스 불에 석쇠로 구워야 하는데, 다행히 맛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돌담이 해온 대로 좋은 고기를 잘 재는 게 더 중요했다.

 

 “인드라, 아침마다 준비할 수 있겠어?”

 “쉽진 않아요.”

 “주방팀을 한 명 더 뽑아볼게.”

 “인력이 문제가 아니에요. 공간이 문제에요.”

 

 나는 주방을 둘러보았다.

 주방팀은 아침마다 두 가게 분량의 떡갈비를 빚고 고기를 재야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물량도 만만치 않은데, 돌담의 좁은 주방에서 소화하기엔 버거워 보였다.

 

 “미스뜨르, 센트럴키친이 필요해요.”

 “알아. 당분간만 이렇게 버텨보자.”

 “그쪽 직원이 나눠서 만들면 안 돼요?”

 “음, 그건 좀 힘들 거야.”

 

 나는 ‘서울스트릿’에서 세 명의 직원을 인계 받았다.

 캐셔 겸 매니저 역할을 하는 함자 외에 조리담당 한 명, 서빙 담당 한 명이었다.

 나까지 합세하면 푸드코트 한 코너 쯤 굴릴 수 있지만, 고기를 재는 등의 중요한 일까지 맡길 순 없었다.

 

 “나중에 인드라가 와서 교육 좀 시켜줘. 그때 고려해볼게.”

 “예. 어쩔 수 없죠.”

 “다대기는 만들어 봤어?”

 

 인도네시아어에는 다대기에 해당하는 말이 없어 나는 그냥 한국어를 썼다.

 다대기가 뭔지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 설명을 해야 했다.

 

 인드라가 한숨을 쉬며 다대기 통을 꺼냈다.

 푸드코트는 돌담 본점처럼 끓는 육수에 일일이 양념을 넣어가며 탕을 만들 수 없다.

 공정을 최대한 단순화해야 했다.

 그러려면 모든 양념을 뭉쳐 1인분씩 포장한 다대기가 필요했다.

 육수에 다대기를 툭 털어 넣고 나머지 재료를 넣으면 되는 것이다.

 

 인드라가 다대기로 끓인 육개장을 내놓았다.

 우리는 둘러앉아 한 사람씩 맛을 보았다.

 

 “음... 괜찮은데. 다대기로 만든 떡볶이도 괜찮았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인드라가 일일이 간을 봐가며 양념을 맞춰 넣은 맛보단 떨어졌지만, 이 정도로도 ‘무수리’나 다른 한식 푸드코트를 능가했다.

 

 나는 우리의 경쟁자를 떠올렸다.

 ‘박미’의 조미료 가득한 비훈(튀긴 국수) 국물이나 반둥 스테이크집의 요란한 단맛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두려운 상대는 바나나잎 주먹밥집이었다.

 만들기도 먹기도 편할 뿐 아니라, 주먹밥에 들어간 른당의 맛이 기가 막혔다.

 

 “다들 어때?”

 

 나는 주방팀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그럭저럭 만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인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대기 싫어요. 맛이 다쳐요.”

 “나도 싫어. 하지만 이게 시스템이야.”

 

 줄리가 물었다.

 

 “가격은 어떻게 가요?”

 “일단은 뿌리인다랑 똑같이 가. 그랜드 인도네시아에선 싼 편이지. 하지만 난 더 낮출 거야.”

 

 그랜드 인도네시아는 남자카르타의 몇몇 쇼핑몰을 제외하면 가장 음식 값이 비싼 곳이다.

 푸드코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가격을 더 내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캐서린과 함께 한국 장류를 수입하는 유통업체를 뒤진 끝에, 재고를 많이 갖고 있는 큰 회사를 찾아냈다.

 아직은 물량이 적어 주문할 수 없었다.

 앞으로 그랜드 인도네시아점이 활발히 가동된다면, 더 싼 값에 장류를 수입해올 수 있을 것이다.

 

 석쇠, 다대기, 가격 얘기가 끝났다.

 나는 이제 인드라와 마지막 담판을 벌여야 했다.

 

 “인드라, 이전 가게에선 삼계탕이 인기 메뉴였어. 손님을 유지하려면 그걸 해야 돼.”

 “아직 완성 안 됐어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9 잘 할 수 있어 2019 / 11 / 11 304 0 4354   
38 헌신하는 사람 2019 / 11 / 8 297 0 4802   
37 와서 보세요 2019 / 11 / 8 319 0 4006   
36 왜 열심히 해요? 2019 / 11 / 7 273 0 5207   
35 권, 빠기! 2019 / 11 / 6 300 0 5294   
34 나답지 않아 2019 / 11 / 5 314 0 4340   
33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2019 / 11 / 4 283 0 4302   
32 왜 내게 온 거야 2019 / 11 / 1 288 0 4944   
31 보이지 않는 것들 2019 / 10 / 31 309 0 5517   
30 당신은 어울리지 않아 2019 / 10 / 30 293 0 5010   
29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2019 / 10 / 29 299 0 4916   
28 우린 약하니까 2019 / 10 / 28 303 0 4837   
27 도와주지 마세요 2019 / 10 / 25 310 0 4828   
26 가족이란 뭘까 2019 / 10 / 24 297 0 4898   
25 맛은 마음이야 2019 / 10 / 23 322 0 4482   
24 난 인도네시아인이야 2019 / 10 / 22 312 0 4322   
23 깊은 사랑은 깊은 미움 2019 / 10 / 21 296 0 4332   
22 다행이야, 여기라서 2019 / 10 / 19 288 0 4175   
21 비가 와, 축축히 2019 / 10 / 16 303 0 4498   
20 그 말을 놓지 마 2019 / 10 / 15 306 0 4573   
19 약속을 지켜요 2019 / 10 / 14 317 0 4767   
18 올 사람은 와 2019 / 10 / 11 313 0 4571   
17 쉬어, 하느님도 쉬거든 2019 / 10 / 10 292 0 5009   
16 안 돼, 일어 서 2019 / 10 / 8 304 0 4758   
15 후회를 남기지 마 2019 / 10 / 4 294 0 4505   
14 때론 흔들리지 2019 / 9 / 23 302 0 4364   
13 찐따는 사랑이야 2019 / 9 / 20 296 0 4443   
12 도망치지 마 2019 / 9 / 17 301 0 4182   
11 맛있어요, 에낙 2019 / 9 / 16 304 0 4276   
10 나, 잘하고 있는 거니 2019 / 9 / 11 298 0 4260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죽음 프로젝트
히타히타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