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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작가 : 고은찬
작품등록일 : 2019.9.5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흡혈귀와 그를 흡혈귀로 만든 여자의 슬픈 사랑이야기.

 
14화
작성일 : 19-11-10 22:25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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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이수는 정말 지구 밖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온몸을 적셨지만 오히려 그게 나았다.

 

 ‘빈 트림이라니. 빈 트림!’

 

 정원을 지나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은 없었지만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큰 길로 나가 편의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수가 성당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수야!”

 

 시윤이 이수를 와락 안았다.

 4년 만이었다.

 그녀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여긴 어떻게…"

 “찾아서 다행이다."

 "오빠.."

 "가자. 우선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시윤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 밖으로 이끌었지만

 이수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시윤을 볼 뿐이었다.

 

 "오빠 여기 있으면 안 돼. 가."

 “아직 용서 못했구나.”

 

 이수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시윤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홍주와의 일은.. 정말 실수였어. 나한테 기회를 줘 이수야.”

 "오빠 이러지 말고 일어..."

 “일어나.”

 

 재욱의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깔아뭉갰다.

 어느새 왔는지 재욱이 이수의 뒤에 서서 머리위로 우산을 받치고 있었다.

 시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재욱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재욱은 가소롭다는 듯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빛이 건방진 인간이네."

 “가자 이수야.”

 “싫다잖아.”

 

 시윤의 이수의 손목을 잡자,

 재욱이 시윤의 손목을 잡아 힘을 주었다.

 

 "그만 가."

 

 그가 시윤의 손목 안쪽으로 힘을 주자 엄지가 파고들었다.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절로 손가락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는 시윤을 보며 이수가 다급하게 재욱을 말렸다.

 

 "하지 말아요!"

 “함부로 널 만졌잖아.”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재욱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그녀의 말에 잠시 힘이 풀린 재욱을 틈타

 이수가 시윤을 일으켜 세웠다.

 

 "오빠 괜찮아?"

 "이수야. 이리 와."

 

 시윤이 이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췄다.

 

 "아니야. 오빠 이 사....사람은.."

 “너 뭐야.”

 

 적의 가득한 시윤의 물음에도 재욱의 눈은 이수에게 고정됐다.

 지그시 자신을 내려 보는 재욱에 눈빛을 받은 이수는

 마음이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표정은 없었지만 재욱이 상처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당장이라도 시윤을 죽일 것만 같았다.

 

 "가자."

 

 성당 밖으로 자신을 이끄는 시윤을 보며,

 이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빠를 찾기 전까지 절대 시윤을 보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한 그녀였다.

 

 "나 안가."

 "이수야!"

 "이 사람 내가 사랑 할 사람이야."

 "뭐?"

 "내가 사랑 할 사람이라고."

 

 이수는 지금 자신이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시윤을 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반면 이수의 말에 놀란 이는 시윤 뿐만이 아니었다.

 재욱이 흔들리는 눈으로 이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많은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사랑 할 사람이라고 밝히던 해월.

 

 “거짓말 하지 마.”

 "오빠.."

 

 시윤의 내면이 한 순간에 무너지듯,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이수 또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지는 않았어도 좋아했었다.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곁에있으면 편안했다.

 아빠 다음으로 큰 태산처럼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역시 일단 나가서..'

 

 더 이상 시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수가

 한 걸음 발을 옮겼을 때,

 재욱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의 옆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딱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못참아."

 

 냉소적인 말만 남기고

 재욱이 대문을 닫아버렸다.

 

 철컥-

 

 이미 이수와 재욱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데도..

 망연자실한 그는 오도카니 서 있기만 했다.

 

 "크크큭. 큭하하하."

 

 뒤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나,

 시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와.. 서재욱.. 찾았구나."

 

 한이었다.

 

 "해월을.. 기어코 찾아냈어."

 

 즐거운 코미디를 보 듯 박수를 친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차이수 죽이기 싫어졌는데. 네가 직접 와서 죽일래?"

 

 수화기 밖으로 욕지거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은 한이 웃음을 멈추고-

 잔인하게 눈을 빛냈다.

 

 "이번에야 말로 악연을 끝내자고."

 

 *

 이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을 막았다.

 이미 자신 때문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늘 자신을 위로해주느라고 상처를 돌보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냥 잊고 본인의 삶을 살길 원했는데...

 추위에 입술까지 시퍼렇게 질려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손에 재욱은 우산을 쥐어줬다.

 삐딱한 시선으로 퍼런 이수의 입술을 스치듯 만진 그가

 이수의 손을 잡고 위로 올렸다.

 우산을 더 높이 잡으라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아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산을 놓은 그의 시선이 이수의 가슴 언저리에 머물렀다.

 재욱은 자신이 입은 셔츠를 훌렁 벗어 이수에게 입혀주었다.

 그동안 이수는 재욱의 말대로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이 분노로 일렁이고 있었기에.

 그는 화가나 있었다.

 이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본의 아니게 재욱을 이용하게 되었고 허락도 없이 그에게 또 기대고 말았다.

 

 “먼저 들어가.”

 ‘하지만…’

 “말 들어. 비라도 안 왔으면 문 밖에 저 남자 벌써 불타고 없었으니까.”

 “!”

 

 서슬 퍼런 목소리였다.

 이수는 그를 지나쳐 성당으로 향했다.

 

 덜컥-

 

 그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비에 젖는 그가 걱정되어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성당에서 얌전히 그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두려웠다.

 뒤돌아봤을 때, 그가 사라지고 남은 빈 정원을 보기 싫었다.

 

 

 *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이미 수업이 시작한지 한창이었지만 지고는 일부러 늦게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자취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얻어터진 얼굴을 볼 가족들은 없었지만 학교는 달랐다.

 하필이면 과대까지 맡고 있어 눈에 띄기 쉬었고

 얼굴이 괜찮아 질 때까지 수업에 빠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안 왔나?'

 

 맨 뒷자리 구석에 앉은 지고는

 모자도 벗지 않고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았다.

 

 덜컥-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뒤로 쏠렸다.

 한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뭐가 저렇게 좋아?'

 

 한눈에 봐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한 때문에

 지고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때 휙- 뒤돌아 한이 지고를 보았다.

 

 아주 뚫어지게 마치 거대한 아가리가

 사냥감을 삼키기 직전처럼 맹렬한 눈이었다.

 

 '왜 저렇게 봐..'

 

 지고가 고개를 푹 숙이자,

 한이 기분 좋게 웃었다.

 중간고사가 코앞이었지만 다른 의미로 그 둘은

 강의내용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고는 한의 시선에 마음이 복잡할 뿐이었다.

 그날, 한은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주고는 쿨 하게 가버렸다.

 잘 들어갔냐는 지고의 톡에 답장도 없어

 그는 강의실에 내내 휴대폰만 확인해야 했다.

 

 '저 자식 완전 바람둥이 아니야?'

 

 뒤통수가 빳빳하게 당겨왔다.

 지고는 생각을 그만두고 차라리 엎드려있기로 했다.

 얼굴이 안 보이는 방법으로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었으니까.

 

 *

 “일어나.”

 “…….”

 “일어나라고요. 게이선배.”

 “헉!”

 

 ‘게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일어난 지고는

 깨운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수업이 끝난 후였다.

 그는 비몽사몽 한 얼굴로 자신을 깨운 사람이 누군지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어?... 어?!... 어!"

 “정말 태평한 인간이네.”

 

 흐리멍덩한 초점이 한곳에 모이자 한이 보였다.

 수업이 끝난 지 한참인 교실에는 그와 한 단 둘뿐이었다.

 자신을 깨운 사람이 한임을 확인한 지고의 귓불이

 부끄러움으로 활활 타올랐다.

 지고가 창피함을 털어내기 위하여

 거칠게 고개를 흔들어 잠을 깨우는 순간

 한이 동의도 없이 지고의 모자를 벗겼다.

 며칠이 지났어도 퉁퉁 부은 얼굴이 가관이었다.

 한은 심사가 뒤틀린다는 표정으로 다시 지고에게 모자를 씌었다.

 

 “그 새끼 죽여줄까요?”

 “너랑 상관없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지고도 당장이라도 그를 쫓아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한이 정말 뱉은 대로 실행할 것 같아서였다.

 죽여준다는 말이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한은 그만큼 지고가 보기에 충동적인 인물이었다.

 

 “근데 너 왜 왔다 갔다 해.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하나만 해.”

 “너무 못생겨서 같이 못 다니겠어요. 강의실에서 봐요.”

 “뭐? 야!”

 

 *

 *

 다음 수업은 1학년 필수전공수업이었다.

 지고는 2학년이었으나 지난 학기 술 먹고 노느라고

 F학점을 받아 강제 재수강 행이었다.

 모자를 눌러썼는데도 알아보는 몇몇 후배들 때문에

 마스크까지 쓴 지고는 강의실로 들어서 눈으로 한을 찾았다.

 

 "뭐야.."

 

 그는 중간 자리에 앉은 한을 발견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는지 한의 옆에는 다른 여학생이 있었다.

 입학과 동시에 예쁜 얼굴로 여신이라도 불리 우는 세나였다.

 

 "점심 뭐 먹었어?"

 "......."

 

 '저게 또 날 무시해?'

 

 사실 세나는 그가 좋아서 옆에 앉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을 만나기 전까지 여태껏 누구에게 무시당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무시했으면 무시했지 거절이라는 것은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는 그녀인데 한만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했다.

 처음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새롭기도 하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마음표현에 서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동아리에서도, 수업시간에도,

 어쩌다가 마주친 복도에서도 시우는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한은 별 생각 없이 인간 자체에 관심이 없는 거였지만

 세나는 얼굴 여신! 몸매 여신! 성격까지 완벽한 자신을

 무시하는 한 때문에 바짝 약이 올라 있었다.

 

 "완전 비주얼 커플이네."

 

 ‘커플은 무슨. 눈치 드럽게 없네.’

 

 "야아~ 커플 아니야. 아직.."

 "아직? 오올~ 그럼 곧 이겠네?"

 

 ‘목소리 좀 줄여라. 쪽팔리잖아.’

 

 속으로 뒷자리에 앉은 동기를 욕하며 그저 웃던 세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에 한을 쳐다봤다.

 그가 대놓고 세나를 비웃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한아. 지난번에 집까지 데려다준 건 고마웠어."

 

 세나의 목소리가 한톤 높아졌다.

 

 "집?"

 "우리 집~"

 

 한은 더 해보라는 식으로 아예 세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세나가

 한의 팔에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한의 몸에 배어들도록 가깝고도 은밀하게-

 

 “왜 있잖아. 축구 뒤풀이 끝나고 밤길 무섭다고 같이 가준 거.”

 “아. 그랬지.”

 

 지난번 무섭다고 하고 칭얼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어쩐 일로 자신의 말을 받아주는 한을 보며

 완전한 자신감을 찾은 세나가 말을 이어가려는 그때….

 

 “미안해. 거기 내 자리야.”

 

 들려오는 지고의 목소리에 한이 씩 웃었다.

 그가 터진 얼굴이 노출이 되든 말든 마스크를 벗으며

 세나에게 비키라는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드디어 가까워지고 있는 건가?’

 

 사람들의 앞에서 마음을 꽁꽁 숨기던 지고였다.

 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넘어오지 않는 지고 때문에 짜증이 날 찰나였는데

 드디어 달리던 차에 브레이크를 떼어버린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하하. 선배자리였어요?”

 

 세나는 짜증이 확 솟구쳤다.

 다된 밥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지고 때문에 일을 망쳐버린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당황을 숨기고 온화한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선

 세나가 옆으로 비켜서자 지고가 자리를 빼앗길세라 얼른 앉았다.

 

 “어. 선배가 맡아달라고 했어.”

 “그래. 둘이 앉아.”

 

 민망하겠다는 표정으로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동기에게 향하던 세나는 힐끔 지고를 노려봤다.

 

 ‘비실이 주제에 감히 날 망신 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한편 세나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고는 초조한 기색으로 한에게 물었다.

 이제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시윤이 물었다.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

 “대답해.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반말.”

 

 한의 대답에 지고는 결심을 굳혔다.

 이제부턴 무조건 직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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