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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10화. 거미와 수정구슬 - 1
작성일 : 19-11-10 19:23     조회 : 210     추천 : 8     분량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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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일은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믿어왔다. 속거나, 속이거나, 속고 속이는 관계를 관찰하거나. 카일은 항상 자신이 관찰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남의 불행을 카메라 필름에 담아 구역 신문사에 투고하고, 신문 어디에라도 자신의 기사가 담기면 날아갈 듯 행복했다.

 

  가끔 카일의 취재 활동에 불만을 품고 어떤 형태로든 복수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정도는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아첨 섞인 거짓말로 회유하는 것은 카일의 장기였고, 자신에게까지 불행이 닿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과 다른 입장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신경 끄고 살아도 인생에 지장이 없었다.

 

  카일은 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동네에 끌려오고 나서야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깨달았다. 입장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었다. 단순한 일이라고 떠맡긴 로렌스에게 '속아서' 기관차에 오르게 됐고, 카일이 말실수를 하면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돼 있는 제시카에게 '관찰'당했다. 즐겨 하던 보드게임 속 주인공이 사실 자신이었다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더러운 침낭을 들어내 오물이 뒹구는 바닥을 청소하는 데 카메라는 필요 없었다.

 

  방독면을 써도 이놈의 냄새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고 콧구멍을 강타했다. 방호복에 옮겨붙은 오물을 떼어내며 쉬려고 치면 기다렸다는 듯 직원이 다가와 또 다른 일을 지시했다. 다리는 휘청휘청 흔들리고 어깨는 녹아 없어지는데, 봉지 하나를 들쳐멘 모리스가 다가와 엄살 부리지 말라고 한 마디 던지고 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실실 웃는 세탁반 녀석들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야! 너네가 힘든 게 뭔 줄 알아? 튀어나온 돌멩이에 이마 한 번 박아봐야 이게 얼마나 개 같은지 알지.

 

  그 와중에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난 제시카는 베라가 지목하는 대로 건물을 뛰어넘으며 꼭대기 층에서 물건을 빼오고 있었다. 하긴, 누나는 이런 일에 최적이니 즐거울 만도 하지. 그런데 똑같은 구역 출신에 온갖 잘난 척은 다 한 주제에 로렌스는 뭘 하는 거야?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수레를 끌며 세탁소를 들락거리던 로렌스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아저씨."

 

  낑낑대며 이불 더미를 내려놓고, 그걸 가져가려고 다가온 수송반 직원을 카일이 붙잡았다.

 

  "키가 저보다 살짝, 진짜 조금만 더 큰 남자애 못 보셨어요? 아까까지 여기서 일하고 있었는데."

 

  "뭐? 남자애?"

 

  직원이 걸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름은 로렌스인데요. 방독면 위에 동물 귀 꽂아 넣은 이상한 애 있잖아요."

 

  "아아, 네가 생쥐 동생 친구구나?"

 

  "예에. 카일인데요."

 

  카일이 애매하게 뭉그러뜨려 대답하는데 직원이 그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마침 잘 됐다. 그 친구 저기 창고로 보냈거든? 가서 일 좀 도와줘라.”

 

  “예?”

 

  예상도 못 한 대답에 목소리에 파열음이 섞여 나왔다. 직원이 가리킨 쪽에는 낡은 주점을 재활용한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상자를 들쳐멘 사람들이 나와 베라가 있는 구호반 쪽으로 물품을 조달하는 중이었다.

 

  “너도 친구랑 같이 일해야 편하지 않겠니. 여긴 저 아가씨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얼른 가라.”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직원은 카일의 어깨를 두드리고 수레를 끌며 세탁반을 향해 가버렸다. 카일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고, 잠깐 폐가 쪽으로 돌아갔다가 창고를 향했다. 사람들이 메고 다니는 상자의 크기만 봐도 창고에는 절대로 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구호반으로 돌아가자니 더는 끔찍한 모리스의 잔소리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깐, 로렌스를 이용하면 되잖아.’

 

  카일의 머릿속에 음흉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다들 로렌스를 좋게 보는 듯하니, 그의 옆에 붙어 다니기만 하면 일이 아주 편해진다. 로렌스는 제시카를 제외한 타인에게 쉽게 화를 내지 못할뿐더러, 일을 도중에 내팽개칠 정도로 책임감이 없지 않다. 어린아이들에게 상자를 나르라고 시킬 리는 없으니, 잘만 이용하면 끝날 때까지 손끝 하나 까닥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카일은 곧바로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외곽 구역치곤 돌과 시멘트를 바른 벽에 철제 기둥을 세워 매우 튼튼해 보였다. 간판도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안내용 피켓도 없었는데, 카일이 이게 과거 주점이었다고 깨달았던 이유는 서부 영화에서 보일 법한 간이문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점은 창고 바로 옆에 여러 색깔 딱지가 붙은 상자가 수도 없이 많이 쌓여 있었다.

 

  “거기 아니라고 말했잖아!”

 

  기가 센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갔던 카일은 순식간에 움츠러들어 문 앞에서 굳어버렸다. 한때 바였던 기다란 탁자를 제외하면 의자나 테이블이 있어야 할 자리를 수많은 상자와 포대 자루가 차지했다. 사람들은 중간에 서 있는 거구의 작업반장이 지시하는 곳에 옮기거나 바깥으로 꺼내 새로 쌓고 무너뜨리고를 반복했다. 그들은 내부 일이 절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주었다. 전원 방호복 차림임에도 땀내 나는 뜨거운 공기가 창고 내부를 가득 채웠다.

 

  “난 두 번 말 안 한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죽는다, 알겠냐?”

 

  그 틈바구니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우직함이 실려 있었다. 카일은 처음엔 누구의 목소리인지 몰라 두리번거렸는데, 곧 작업반장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순간, 작업반장과 카일의 눈이 마주쳤다. 카일은 그녀의 방독면 안쪽에 억겁의 염화처럼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았다.

 

  “거기!”

 

  “니옛!”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카일은 심장에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카일은 외곽 구역에 와서 가장 빠릿한 동작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네가 도둑질하다 걸린 사고뭉치냐?”

 

  “아뇨! 아닙니다!”

 

  “흠!”

 

  작업반장의 행동 하나하나는 확실하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법과 윤리가 먹히는 세상에서 살아왔어도 이런 생물 병기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다. 까불면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게 돈이고 목숨이다. 카일이 아무리 어리더라도 생물으로서 본능이라는 게 존재했다. 기어올라도 되고 안 되고는 칼같이 구분할 줄 안다 이 말이다.

 

  “그러면 도촬하다 걸린 쓰레기냐?”

 

  “예...에! 맞습니다!”

 

  ‘난 왜 쓰레기야?’

 

  그래서 불합리한 평가가 내려져도 카일은 그냥 닥치고 있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들이댈 만큼 카일은 멍청하지 않았다.

 

  “여긴 너 같은 쓰레기들이 자주 찾아온다. 네가 눈물 콧물 쏙 뺄 이 창고의 작업반장이 바로 나다. 지금부터 너는 쓰레기 이 호다. 알겠냐, 쓰레기?”

 

  “옛!”

 

  칼같이 정확한 경례. 는 아니고, 대강 경례를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카일이 동작을 흉내 냈다. 겉으로 따르는 척을 해도 마음속에서 ‘내가 교도소로 잘못 찾아 왔나?’ 하는 의문은 당최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작업반장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여섯 명의 직원들도 어딘가 인간성이 결핍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쳐다보았다.

 

  “식량은 왼쪽, 자재는 오른쪽이다. 숟가락 물고 상자 나르기 싫으면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인즉슨, 못 끝내면 밥도 안 줄 거라는 으름장이었다. 카일은 작업반장의 말을 듣자마자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 쌓아놓았을 리는 없으니, 아까 봤던 상자 더미가 오늘 옮겨야 할 할당량이라는 말이 된다.

 

  “그걸 전부요?”

 

  “전부 다 옮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카일의 마음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저녁 먹기 전까지 전부 끝낸다. 움직여!”

 

  심지어 하루 전부도 아니고 지금부터 저녁까지였다. 엉겁결에 움직이면서도 눈대중으로 상자의 개수를 빠르게 세어보았다. 뒤주 정도 크기의 상자와 포대가 각각 가로로 열 개, 세로로 열 개, 거기에 앞뒤 간격이 다섯 개쯤이니까 대략 천 개의 상자가 쌓였다는 숨이 턱 막히는 수치가 나왔다. 직원 여섯 명에 로렌스와 카일을 포함하면 단순 계산으로 인당 팔십 개는 옮겨야 겨우 끝나는 양이었다. 게다가 보급품 대부분이 옷과 청소 도구인 대신 상자의 크기가 커서 무게가 상당했다.

 

  쓸데없이 입구는 넓어 비좁아서 빠르게 작업하기 힘들다는 변명도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직원들은 한 번에 두 개씩 옮기니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 적은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개개인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니까’라는 회피는 이미 자신을 ‘쓰레기’라고 부른 시점에서 끝난 거다. 기분 따라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행히 카일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던 점은, 어떻게든 상자를 들어보려고 낑낑대는 로렌스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밀고 당기며 악을 쓰는 그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면 적어도 카일에게 있어서 자신이 이 공간에서 제일 덜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형.”

 

  깜짝 놀라 고개를 드는 로렌스도 적지 않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역시 아는 얼굴이 반가운 듯 카일을 보자마자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너도 여기서 일하래?”

 

  “아니, 잠깐 도와주래서 온 거야.”

 

  카일이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 흐읍...!”

 

  로렌스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니 무릎 높이까지 상자가 들어 올려졌다. 하지만 반대편은 힘이 전혀 받지 않아 바닥에 질질 끄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바보. 도와달라고 말을 해. 흐읍...!”

 

  로렌스를 따라 카일도 상자를 받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격통이 카일의 어깨를 덮쳤다. 새삼 카일은 아까 수송반 아저씨가 얼마나 힘이 강했는지 체감했다. 한술 더 떠서 제시카는 이 상자를 메고 건물 위를 날아다녔으니 괴물이 따로 없었다.

 

  “내가... 크흑! 왜... 이 개고생을...”

 

  카일은 새삼 열이 뻗쳐 으르렁거렸다. 로렌스가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이런 곳에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간식 먹고 침대에 누워있을 시간인데, 늙은 개마냥 휘청거리면서 남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이만한 시간 낭비가 없었다. 차곡차곡 상자가 쌓일수록 허리의 디스크가 하나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다섯 번째 상자를 옮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다리에 힘이 전부 빠져나가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결국, 떼쟁이로 탈바꿈한 카일은 바닥에 주저앉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해, 힘들어, 귀찮아, 짜증 나.”

 

  “야, 뭐 해?”

 

  깜짝 놀란 로렌스가 달려와 카일을 일으켜 세웠다. 로렌스도 힘이 다 빠져 손이 부들부들 떨렸으나, 카일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게 다 형 때문이잖아! 왜 그딴 걸 시켜서 나까지 말려들게 만들어? 형이고 제시카 누나고 전부 다 미워!”

 

  로렌스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렸다. 카일이 자제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작업반장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일단 일어나자? 힘든 거 나도 알아.”

 

  “알면 뭐 어쩌겠다고? 왜 다들 나만 가지고 그러는 거야. 상자는 무겁고, 선생님은 우리 신경도 안 써주고. 이제 됐어! 굽든 삶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

 

  카일이 먼지 쌓인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덕분에 로렌스는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시시각각으로 작업반장이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데, 카일은 뒤집힌 개구리마냥 팔을 허덕이며 울부짖었다. 로렌스는 작업반장이 양팔에 낀 상자로 카일의 머리를 찍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간신히 카일을 일으켜 세우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쿵-

 

  작업반장이 상자를 떨어뜨리자, 정말로 꿇어앉은 로렌스의 무릎이 덜컹거리며 들어 올려졌다. 그녀의 커다란 몸집에 세기말 제삿집 풍경과 상자가 더해져 지옥에서 돌아온 장의사가 한 대 먹이러 온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것들이 일하는 데 농땡이를 피워?”

 

  작업반장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로렌스는 짧은 일생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생각보다 많이 경험해봤다. 하나는 가스 폭발, 하나는 지붕 위를 날았던 그 순간이라면, 지금은 어떠한 물리적 충격도 없이 피가 말라가는 신묘함을 체험하고 있었다.

 

  “옮겨!”

 

  의외로 작업반장은 상자 두 개를 남겨둔 채 아무 제재도 없이 물러났다. 잔뜩 긴장했던 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반면에, 로렌스는 상자의 라벨이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회색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로렌스는 상자 옆에 앉아 라벨 내용을 확인했다. 식량과 옷가지가 한 데 모인 주민 지급용 구호품이었다. 바로 밑에 숫자와 알파벳이 규칙적으로 섞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천천히 옮기자. 설마 우리 보고 전부 다 하라고 하겠니.”

 

  “죽는 줄 알았네. 진짜 천천히 하는 거다?”

 

  카일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로렌스를 쳐다보며 상자에 손을 올렸다. 그때 한 직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카일은 비교적 행복했을 것이다.

 

  “너네, 주소 볼 줄은 아냐?”

 

  로렌스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수레에 옮기는 데 주소가 무슨 쓸모인지 설명이 먼저 필요했다.

 

  “예... 볼 줄 아는데요.”

 

  뭔가를 하고 나서 갑자기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순간이 있다. 고민 상담을 들어줄 때 내가 해준 대답이랑 문맥이 전혀 달랐다고 스스로 깨닫거나, 졸지 않은 척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책상 앞에 섰는데 잠에서 일어나라는 말이었거나.

 

  비슷한 맥락으로 로렌스는 그가 주소를 언급한 이유를 눈치채고 경악했다. 창고에 들어오기 전 주민들이 모인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폐가도 존재했다. 거긴 수레가 들어가지 못할 만큼 길이 좁아 몇몇 직원들은 직접 등에 상자를 들쳐메고 배달에 나서기도 했다.

 

  “저희끼리...요?”

 

  소심한 로렌스의 질문에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등짝에 손바닥을 날리는데 로렌스는 묵직한 둔기로 맞은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벌 받으러 왔잖냐, 너희 둘이.”

 

  ‘지당하신 말씀.’

 

  바로 그랬다. 징계를 받고 온 학생들에게 관용을 베풀 만큼 이 바닥 사람들은 상냥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외곽 구역 주민들에게 휘둘려 간이고 쓸개고 죄다 내어줬을 테니 말이다.

 

  “내가 밖에 꺼내놓을 테니까 알아서 옮겨라. 이것도 많이 도와주는 거다?”

 

  남자는 상자 두 개를 번쩍 들어 올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처음 카일이 있던 곳까지 상자를 옮겨주고 매정하게 창고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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