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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5화. 맹수
작성일 : 19-11-10 19:09     조회 : 194     추천 : 6     분량 : 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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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과의 점심 식사 이후, 시계탑 광장에 익숙한 세 명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덩치가 큰 사내가 꼬마와 세 갈래로 땋은 머리의 여자를 데리고 상가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 세 명 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중 머리를 땋은 여자는 험악한 눈매로 주변 사람들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지금 사과하러 가도 의미가 있어요? 어차피 좋은 말 못들을 텐데."

 

  제시카가 툴툴거렸다.

 

  "너는 양심이 있냐? 네 손버릇으로 벌어진 사단인데 그런 말이 나와?"

 

  제시카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벌써 다섯 시간 동안 이유도 모르고 토라진 제시카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로렌스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시도해봤다. 사과를 받아주는 척 떠보기도 하고, 기분이 풀린 듯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대했다. 아무래도 로렌스에게 화가 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달리 짐작 가는 일도 없었다.

 

  "내 잘못 맞아. 너를 다치게 했으니까."

 

  "그거 말고, 도둑질을 한 게 잘못된 거지."

 

  "개는 그런 짓 당해도 싸."

 

  로렌스가 미쳐버린 듯 탄식하며 튀어 올랐다. 보다 못한 모리스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야, 그만 좀 하면 안 되냐? 너 때문에 나도 울적해지잖아. 내 잘못도 아닌데 여기저기 사과하러 다녀야 하는 내 기분을 네가 알아?"

 

  "본인 잘못도 어느 정도 있었잖아요. 저번 달에 왜 관문 근처에서 상자 나르고 있었어요?"

 

  "입 다물지 못해!"

 

  모리스가 제시카의 입을 틀어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막을 아는 로렌스는 옆에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팀 헤이즈에서 생산 구역의 생산품을 개인이 직접 매입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국가가 유통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인데, 조각이 취미인 모리스는 종종 옆 구역으로 넘어가 목재를 공수해오곤 했다. 그러다 마침 근처에서 화물을 옮기는 일을 하던 제시카가 인부인 척 목재 상자를 내리는 모리스를 본 것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낮말은 새가 듣고 뭐시기라던가."

 

  제시카가 능글맞게 말했다. 모리스 덕분에 제시카는 조금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로렌스는 평소에도 모리스를 막 대하던 제시카의 태도를 떠올렸다. 이쯤 되면 제시카는 심심풀이 샌드백용으로 모리스를 갈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모리스의 반응이 항상 격하기도 하니까.

 

  "목재 하니까 생각났는데, 아까 불타는 나무에 대해서 회장님이 이야기했잖아."

 

  "너는 목재인 걸 어떻게 아냐?"

 

  그래도 계속하면 모리스가 불쌍하니까, 로렌스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중간에 말실수를 한 기분이었지만, 거기엔 관심도 안 갈 정도로 급속도로 제시카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간 로렌스는 제시카의 기분이 왜 나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아, 잘 들었지. 그게 왜?"

 

  "미안, 그럴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괜찮아. 딴 사람도 아니고 너인데 내가 화내겠니."

 

  제시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참 동안 군중에 섞인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시계탑 광장을 넘어서자 행복의 집으로 향하는 샛길이 나왔다. 세 사람은 샛길로 내려가지 않고, 바로 옆의 큰길로 들어섰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실 때."

 

  문득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그날의 일이 머릿속에 맴도는 듯 몇 번이고 말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얼굴이랑 가슴을 제외하면 다 검게 썩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사람이, 잠깐 정신이 돌아왔는지 나한테 그러더라고. 저 벽은 절대 넘지 말라고. 죽으면 거기서 다 끝인 거라고. 온통 초록색 안개로 뒤덮여 방독면을 착용했는데도 숨을 못 쉬었대. 그다음부터는 다시 불타는 나무가 어쩌고 거리면서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더라."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는데."

 

  모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벽을 타고 넘어가려 했던 범죄자의 딸이니만큼, 한번 그녀를 취재했던 내용이 구역 신문에 실렸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제시카는 다른 탈주자의 가족들과 같은 말만 반복했을 뿐 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었다.

 

  "대체 바깥세상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나야 모르지. 우리 아버지도 몰랐을걸? 그랬다면 맨손으로 돌벽을 오르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의외인데. 너는 회장님의 말을 믿고 있었구나."

 

  "아니, 절대."

 

  제시카가 단호하게 말을 잘라버렸다.

 

  "사람의 손으로 그런 말도 안 되게 편리한 광물을 만든다는 궤변을 지껄이는 사람이야. 틀림없이 어딘가의 신님이 베푼 은혜를 자기 능력인 것마냥 포장해서 사업을 벌였겠지."

 

  "너야말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회장님이 우리를 살려줬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럼 회장 이야기만 나오면 무릎 꿇고 기어 다녀야 하니."

 

  제시카가 투덜거렸다. 그녀가 발을 옮길 때마다 가슴에서 거북이 등껍질 모양 팬던트가 통통 튀었다.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 때문에 기분이 영 별로라서 말이야. 우리의 모리스 선생님이 저녁이라도 사 주면 좀 풀릴 것 같기도 한데?"

 

  "거기서 왜 내 이름이 나오냐."

 

  "돈 좀 아꼈잖아요. 제자들 저녁 사 줄 정도는 남았을 거 아니에요."

 

  "내 이름이 나올만 했구나, 그래."

 

  모리스가 손목에 철구가 채워진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시카가 고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도 애매했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기도 하고,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게 정신 건강상 좋을 것 같았다.

 

  "그래, 먹자. 대신 제대로 사과드려야 한다?"

 

  "그야 제대로 해야죠. 근데 밥만 먹어요?"

 

  "까불지 마라."

 

  술을 마시네 안 마시네로 제시카와 모리스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로렌스는 방금 했던 대화를 속으로 곱씹어보았다.

 

  바깥세상의 위험성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들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 몸이 썩어들어갈 정도이니 외곽 구역의 어디를 가도 그만큼 오염된 곳은 없을 것이다. 구역 신문에 실린 전문의의 의견에서는 바깥세상의 오염된 안개에 포함된 독성 물질이 체내 조직을 괴사시킨 결과물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강한 독성 안개가 왜 외벽을 몇 곂 세웠다고 완벽하게 차단되는 걸까?

 

  제시카의 아버지는 방독면으로도 독성 물질을 차단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외벽을 넘어간 사람들은 모두 검게 썩은 최초의 형태를 유지한 채 그대로 죽어갔다. 독성 물질이라면 전신으로 뻗어 나가야 할 텐데, 왜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을까.

 

  그들은 불타는 나무를 봤다고 했다. 혹시 썩은 게 아니라 그을린 자국이라면? 우리의 기술력으로도 설명을 못 하는 존재가 진짜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님이라."

 

  로렌스가 짧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

 

  "내 말 못 믿어, 로렌스? 여기 내 친구가 장사하는 곳인데, 기가 막히게 맛있다니까."

 

  "한두 번 속아봤어야지."

 

  "넌 먹지 마, 이 자식아!"

 

  모리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행복의 집 근처 상가에 자리 잡은 허름한 주점 앞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는데, 오전의 일을 사과하려고 간식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점주가 대걸레 빤 물을 양동이째로 던진 결과물이었다. 격분한 제시카와 점주를 말리는 통에 해가 저물어 대충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시카 혼자만 손에 긁힌 자국이 남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넌 제대로 사과하겠다고 말한 지가 언제인데 점주 멱살을 잡아? 내가 이러니까 애들이랑 어디 안 다니는 거야. 돈만 아니었어도 진짜..."

 

  "먼저 싸움 걸었잖아요!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그 자식 머리통을 깨부쉈을 거예요!"

 

  모리스와 제시카가 서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써댔다. 모리스의 입장에선 괜히 도움을 주러 갔다가 물만 뒤집어쓰고 온 꼴이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족제비 같은 제자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때리고 싶은 사람은 점주보단 제시카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아? 나이도 어린놈이 걸레 빤 물을... 아휴, 냄새!"

 

  "우리 일단 들어갈까요? 이럴 땐 빨리 해결하고 집에서 쉬는 게 최고예요."

 

  로렌스가 상황을 중재했다. 코를 파고드는 쉰내가 기분 나빴지만, 문 앞에서 실랑이해 봤자 진전되는 것은 없었다. 앞장서서 문을 여는 로렌스 뒤로 제시카와 모리스가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로렌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규칙 있게 배열해 놓은 테이블 옆에 꽃을 장식하고, 몇 명의 손님이 앉아 맥주와 대화를 즐기고 있는 전형적인 호프집이었지만, 특이하게도 커다란 바가 후방에 자리 잡아 가게 두 개를 합친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게다가 가구란 가구는 전부 붉은색 계통이라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거나 시켜서 먹어라. 너는 오므라이스나 처먹던지. 나는 술이나 마시련다."

 

  "짠돌이네."

 

  한마디 툭 던진 제시카의 말을 무시하고 모리스는 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오자, 제시카가 메뉴판을 덥석 받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술집인 이상 식사 메뉴가 별로 없었는데, 제시카는 그 중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기 요리를 시켰고, 반대로 로렌스가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그냥 먹고 싶은 거 먹지."

 

  "난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었어."

 

  더 복잡한 일은 사양이었다. 이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밥 먹으러 와서까지 둘의 싸우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대충 양보했다고 하면 모리스도 이해해 줄 것이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제시카는 미리 나온 견과류 접시를 삼 분도 안 되어서 부스러기까지 싹 비워버렸다. 그러고 깨끗한 접시를 두드리며 음식이 나오기 직전까지 주방 쪽을 기웃거렸다.

 

  "냄새는 좋네."

 

  그 말대로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서 흘러나와 침샘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추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제시카에게 핀잔을 줬겠지만, 모리스 일행을 제외하면 아무도 손님이 없어 굳이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너야 고기 좋아하니까. 그래도 가끔은 채소도 먹어봐. 입안이 상쾌해진다니까.“

 

  "방금 채소 먹었잖아."

 

  제시가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이게 채소라는 소리는 처음 듣네.”

 

  "야, 이파리만 채소라고 부르냐? 고기 아닌 먹을 것은 죄다 채소야."

 

  “굳이 따지자면 열매라고 불러야지. 그리고 이파리만 채소라고 부르는 거 맞아.”

 

  “어쨌든 땅에서 나온 거 아니야. 원래 먹거리는 채소랑 고기로 나누어졌고, 열매는 채소에 속해 있을 뿐이야. 쉽게 말하면, 채소는 고기의 먹이고 고기는 내 먹이라는 거지. 간단하잖아?”

 

  “어떻게 그렇게 되냐.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정도로 생물군계는 간단하지 않아.”

 

  “생물군계가 뭔데. 일일이 어렵게 갈 필요 없이 이러면 편하다니까. 채소니 열매니 조상님들 중 누군가가 멋대로 이름을 붙여 놓은 거잖아. 사과가 태어날 때부터 사과였냐? 본인은 채소라고 생각하고 태어났을 수도 있잖아. 다시 말해 채소나 고기는 하나의 종족과 같은 개념인 거지.”

 

  “왜 날이 갈수록 헛소리만 느는지 모르겠네. 그럼 우리는 사람이라고 교육받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지.”

 

  제시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방금 나온 따끈한 스프를 그릇째로 들어 마시는데, 마치 재판에서 이긴 악덕 검사의 느낌으로 온갖 잡폼을 잡으며 약을 올려서, 로렌스는 순간 본인 몫의 스프를 제시카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네 성적을 봐봐. 네가 괴물이지 사람이냐.”

 

  “그 얘기 하지 말라니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로렌스가 중얼거렸다. 이윽고 점원이 나머지 음식을 가져와서 제시카가 입을 다물었고, 로렌스는 드디어 이 화제의 맥이 끊긴 것을 감사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로렌스의 것은 오므라이스 위에 카레를 얹은 음식이었고, 제시카의 것은 감자 샐러드와 익힌 과일을 곁들인 돼지 통다리 구이였다. 제시카의 팔뚝만큼이나 커다랬는데, 그녀는 정말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뼈만 남은 다리를 내던지고 배를 두드렸다. 어찌나 빠른지 로렌스는 오므라이스를 절반도 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나 화장실 좀.”

 

  “먹은 게 그렇게 금방 나와?”

 

  “여자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렇게 말하며 제시카는 대놓고 손가락으로 이를 쑤셨다. 배가 찼더니 물에 맞아 짜증 났던 기분이 다소 가라앉았다. 여전히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어차피 곧 집에 들어가서 샤워할 텐데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화장실의 위치를 묻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제시카가 손을 뻗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아, 손님이 오긴 오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길을 비키니,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착 달라붙는 잠수복에 호스가 달린 방독면을 쓰고 커다란 산소통 같은 통을 멘 남자는 백칠십 센티미터가 좀 넘는 제시카가 한참 올려다볼 정도의 장신이었다. 문을 통과하기 위해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심해의 잠수부 같은 배기음이 제시카의 귀를 간지럽혔다.

 

  스읍- 후우-

 

  남자의 동작은 정말 느렸고, 제시카는 딱 하품 한 번을 할 정도만 기다렸다가 남자를 슬쩍 밀치고 빠져나갔다.

 

  스읍- 스읍-

 

  남자는 제시카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무언가의 냄새를 맡은 듯 들이쉰 숨을 내뱉지 않고 계속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 동작이 굉장히 우둔하고 투박하여 마치 상처 난 먹잇감을 쫓는 맹수를 연상케 했다. 이윽고 남자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짧은 검은색 머리의 남자아이. 피부가 하얗고 말라 여자아이라고 해도 믿을 왜소한 아이.

 

  남자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몸에 걸친 기묘한 철 뭉치가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로렌스는 잔뜩 남은 오므라이스를 비우기 바쁠 뿐 눈치를 챈 기색은 없었다.

 

  후우- 스읍-

 

  방독면의 배기판에서 옅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판자로 만든 바닥이 버티지 못하고 크게 휘며 비명을 질러댔다. 여전히 시선은 로렌스를 향해 있었다.

 

  문득, 로렌스는 자신의 뒤에 누군가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툭 끊어졌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오므라이스를 뒤적이며 말했다.

 

  “금방 갔다 왔네? 십 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절그럭거리는 마찰음과 습기 섞인 온기가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아 상당히 불쾌했다. 로렌스는 들었던 숟가락을 도로 접시 위에 올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그런 장난 치지 말라 했지...”

 

  로렌스는 제시카의 턱을 움켜쥘 생각으로 손을 휘저으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로렌스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되레 손을 휘두른 관성에 로렌스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깜짝 놀란 로렌스는 의자를 붙잡고 겨우 넘어지지 않는 데 성공했다.

 

  제시카를 바라보려고 고개를 위로 쳐들었는데 눈을 감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자리 일부를 제외하면 온통 검은색이라 바로 앞에 누가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로렌스는 이 그림자가 어떤 것과 닮았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머리를 한 번에 움켜쥘 수 있을 만큼 커다랗고 강력했다.

 

  후우-

 

  숨소리와 함께 로렌스의 세계가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로렌스는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무언가를 단단하게 붙잡는 둔탁한 소리,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 그리고 눈꺼풀 안쪽의 칠흑 같은 어둠까지. 로렌스는 남자의 다음 행동을 숨죽인 채 기다렸다. 그렇지만 한참이 지나도 로렌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였다. 반드시 머리를 잡혀 내동댕이쳐진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머리를 붙잡힌 촉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로렌스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로렌스의 예상대로 남자는 확실히 로렌스를 붙잡으려 한 듯 손바닥을 펼쳐 금방이라도 움켜쥘 듯 눈앞에 가져다 댔다. 옆에는 죽일 듯이 남자를 노려보는 제시카가 그의 손목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어디다 손을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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