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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4화. 회장님께서 가라사대 - 2
작성일 : 19-11-10 19:08     조회 : 169     추천 : 6     분량 : 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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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몸보다 앞서나가 급하게 몸을 틀려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 멱살을 잡았던 상황이라 하마터면 휠러 회장도 같이 넘어질 뻔했다. 모리스는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눈을 끔뻑이며 휠러 회장을 올려다보았다.

 

  “회장님이 왜 여기에...”

 

  “오늘은 검진 날이니까요. 현장 좀 둘러보러 왔습니다.”

 

  휠러 회장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미소를 띤 얼굴로 아로네프를 돌아봤다.

 

  “이쪽은 누구실까요?”

 

  “아, 예. 아로네프 문스톤이라고 합니다! 모리스 선생을 보좌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로네프는 긴장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휠러 회장은 손을 뻗어 모리스를 일으켜 세우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특이하네요. 가족이 교사인 것도 모자라 둘 다 같은 학교에 근무한다니. 자긍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로네프와 모리스가 입을 모아 외쳤다. 둘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조금 전까지 살벌했던 둘 사이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서로를 전우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마주 봤다. 휠러 회장은 흡족하게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구역질 난다는 시늉을 하는 아로네프와 주먹을 말아쥔 채 부들부들 떠는 모리스의 모습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 회장과 같이 검사실에서 나온 제시카는 로렌스 앞에서 스쿼트를 하듯 무릎을 반쯤 접은 아이들에게 붙들려 있었다. 무작정 달려들어 안아대는 통에 로렌스가 아이들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제시카의 손짓 하나에 몸이 통째로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괴한 제시카의 자세가 더해지자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동생아, 진짜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내가 진짜 잘못했으니 무릎 한 번만 꿇어보자. 얼마나 아팠을지 난 상상도 안 간다. 이참에 나도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그럼 용서해줄래?”

 

  “오버 좀 하지 마, 제시! 누가 보면 초상난 줄 알겠어. 그만하고 일어나. 오늘은 웬일로 주사 맞고 안 우나 싶었더니 이게 뭐야!”

 

  “주사가 중요하냐 지금? 즙은 안쪽에서 다 짜고 나왔어. 그럼 이제 사과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방식이 잘못됐다고!”

 

  “누나 아까 주사 안 맞으려고 도망쳤...”

 

  제시카는 붙들린 자세 그대로 팔 하나를 빼서 아이의 입을 막았다. 나머지 팔 한쪽이 잡혀있다 해도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그냥 넘어지는 게 편할 텐데, 왜인지 뒤꿈치로 자세를 유지하는 괴력을 보여줬다.

 

  “내... 사과를... 받아줘!”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소리치는 제시카의 모습은 영락없는 괴인이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로렌스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힐끗 제시카의 옆을 보니 중력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로렌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놓아버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죽을상이었던 아이는 그제야 편안하게 팔을 놓았다. 덕분에 이번에는 제시카가 느끼는 중력이 배가 되어버렸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악착스럽게 자세를 고집하던 제시카는 끝내 뒤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얘들아? 그만하고 회장님에게 인사드려야지.”

 

  동시에 세상 부드러운 모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운 채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제시카와 로렌스를 두고 한 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몰려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우렁차게 인사하는 꼴이 영락없이 병아리들이었다. 노바는 웃으며 모자챙을 손으로 잡고 살짝 들어 올려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식사는 맛있게 먹었나요?”

 

  “아니요!”

 

  "...아니요?"

 

  휠러 회장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곧 뜻을 깨닫고 주머니를 뒤져 고급스러운 문양이 박힌 회중시계를 꺼냈다. 점심 먹을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난 지 오래였다. 자연스럽게 회장의 시선이 모리스를 향하자 모리스가 다급하게 설명했다.

 

  "다친 아이가 있어 시간이 조금 지체됐습니다."

 

  "다친 아이라."

 

  노바가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두 번 내리쳤다.

 

  "일단 상태를 좀 볼까요? 설명은 그 이후에 듣도록 하죠."

 

  “아, 저기 나와 있습니다. 로렌스?”

 

  호명하기도 전에 로렌스는 이미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소 언짢은 기색을 보이던 휠러 회장은 로렌스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모리스는 로렌스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갑자기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회장님이 알고 계시듯, 전에 회장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 학교로 들어오게 된 로렌스 워커입니다. 이번에 사고로 인해 약간의 부상을 입었는데, 병원 관계자분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나았답니다. 자, 로렌스. 회장님에게 인사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떨리는 모리스의 손을 의식하며 로렌스는 버벅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회장도 다시 한번 모자를 내려 인사를 받아주었다.

 

  “몸은 좀 괜찮니? 팔을 좀 다친 것 같은데.”

 

  “...예? 아 예. 지금은 다 나았어요.”

 

  다친 부위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회장은 바로 어디인지 특정해서 말했다. 로렌스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옷을 걷어 올린 채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옷을 다시 내리려는데, 회장이 로렌스의 손을 막고 붕대 감은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코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손끝을 비벼 점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이 약을 쓸 정도면 웬만큼 커다란 사고가 아니었을 텐데. 그래놓고 약간의 부상이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모리스는 할 말이 없어져 대답하지 못했다. 회장은 그를 잠시 째려보다가 다시 로렌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고통은 없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처럼 살짝 몽롱한 감각이 있니?”

 

  “그런 건 없는데... 데인 것처럼 뜨거운 느낌은 있어요.”

 

  “미안하구나. 아이한테 쓸 만한 약이 아니거든.”

 

  습관인 듯 휠러 회장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지팡이를 내려놓고 직접 로렌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약이 아직 실험 단계라 임상시험은 미루고 있었는데, 네 덕분에 한 단계를 건너뛰어도 되겠구나. 담당의가 너를 실험체로 삼았다는 말은 아니란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했다는 의미겠지. 그러니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부탁해도 될까?"

 

  "회장님이 말씀하셨듯, 이건 사랑스러운 하나의 과정일 뿐이에요. 오히려 저는 의사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있는 걸요."

 

  “내 말을 기억하는구나! 그래, 과정은 결과만큼 사랑스러운 것이란다. 이거, 최고의 인재에게 다시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휠러 회장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비넥타이의 형태까지 잡아주고 나서 회장은 로렌스의 등을 두드렸다. 로렌스는 얼굴이 화끈거려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이름 앞에 '최고'라던가 '역대급'이라는 수식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붙이는 걸까?

 

  “아, 모리스 선생님과 아로네프 선생님. 아이들이 많이 배가 고플 듯한데, 제 짐에 간식 상자가 있거든요.”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칼같이 대답하고 잡아끄는 모리스의 손에 아로네프는 영문도 모르고 달려나갔다.

 

  “일 층 오른쪽 첫 번째 방이에요!”

 

  휠러 회장이 그들의 뒤에다 대고 크게 외쳤다. 장난기 어린 눈동자가 다시 로렌스를 향했다.

 

  "선생님들이 참 재미있는 분들이구나."

 

  “그런가요?”

 

  로렌스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그가 보기에 모리스는 생계에 얽매였을 뿐이지 결코 우스운 사람은 아니었다. 로렌스의 생각을 읽었는지 회장은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아니지. 성실하다는 표현이 맞겠구나. 교사는 조금 어설퍼도 결국은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부모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입에 발린 말은 듣기 싫어도, 내가 그것까지 말릴 순 없지 않니?”

 

  둘이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는지 로렌스는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회장의 태도를 봤을 때 아무래도 모리스가 나쁜 어른으로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 살벌했던 언동과 대비되는 평가에 로렌스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선생님들이 올 때까지 내 일을 좀 해볼까?”

 

  회장은 지팡이를 들고 접수대 쪽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항상 그래왔다는 듯이 각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키 큰 아이는 뒤쪽으로, 작은 아이는 앞쪽에 앉아 뒷사람이 가려지지 않게끔 자리를 조정했다. 전에 회장이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 지시했던 배열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교육 한번 잘했네.”

 

  회장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탁- 탁-

 

  연설 시작을 알리듯, 지팡이를 내리치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집중, 회장님의 지루한 훈화 말씀이 삼십 분쯤 이어질 예정입니다. 졸 사람은 미리 누워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초코바거든요.”

 

  회장이 유쾌하게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추운 날씨죠? 우리는 언제쯤 더위를 느껴볼 수 있을까요. 장담하는데, 안 느끼는 편이 나을 겁니다.”

 

  농담으로 말을 시작하며 회장은 아이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제시카는 이미 뒷자리로 옮겨 진짜 자기 무릎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 외의 아이들은 전부 회장에게 집중하여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었다.

 

  "우리의 조국 이름은 ‘스팀 헤이즈’입니다. 대충 직역하면 ‘증기 안개’ 정도가 되겠네요.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선물 받은 회중시계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 회중시계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상단의 센서를 통해 안개의 농도를 분석하여 보여주죠."

 

  “우리 스팀 헤이즈는 항상 안개로 뒤덮여 있습니다. 끊임없는 공정과 연구로 생겨 다소 건강에는 좋지 못한 안개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방독면을 달고 살지 않는 이유는 도시의 정화시설이 아주 잘 되어있기 때문이죠. 참고로, 그거 제가 만들었습니다. 칭찬해 줄 사람?”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취향에 맞았는지 유독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회장은 곧바로 그 아이를 지목하며 질문을 던졌다.

 

  “자, 그러면 우리가 왜 구역을 따로 분리할 만큼 공장을 많이 세운 걸까요? 안개가 그렇게 많이 생긴다면 줄여도 되지 않나요?”

 

  아이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내놓은 아이의 대답은 지극히 단순했다.

 

  “어... 돈 벌려고요?”

 

  "돈 중요하죠. 그래도 회장 정도면 먹고 살기 아주 편하답니다."

 

  회장은 바로 옆에 앉은 카일을 지목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 카메라맨이 대답해볼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죠?"

 

  카일은 대놓고 사진기를 꺼내 회장을 찍고 있었다. 자신이 지목당하자 카일은 슬며시 카메라를 집어넣고 노트와 펜을 꺼냈다.

 

  “구역을 분리한 이유는 매연과 폐수로 생활 구역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과거 총장이 발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주민들은 그런 이유라면 왜 생활 구역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았냐고 항의했는데요. 총장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 대표로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랑과 평화, 그리고 치즈 케이크죠. 학생은 뭐라고 생각하니?"

 

  "네?!"

 

  라일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뛰었다. 요란한 소리 때문에 회장의 말에 관심이 없던 몇몇 학생들까지 라일라를 돌아봤다. 그녀는 견디기 힘들다는 듯 슬금슬금 움츠러들다 아예 얼굴을 무릎에 박아버렸다.

 

  "오우,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노바가 장난스럽게 푹 한숨을 쉬었다. 모두의 관심이 지팡이 튕기는 소리에 다시 회장에게로 옮겨갔다.

 

  "우리는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수많은 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이 아직 풍부하다는 의미겠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남은 자원이 한정적이라면 왜 아끼지 않는 거죠?” 라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을 혼자 독차지할 정도로 욕심쟁이가 아닙니다. 세랄과 영석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있죠? 교육 과정에서 필수로 배워야 할 다섯 가지 과목 중에 두 가지가 이 광물들의 사용법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둘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사용법은 전혀 다르죠."

 

  "우리나라가 왜 일 년 내내 서늘할까요? 바로 이 두 광물의 성질에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둘을 합해 ‘이계의 광물’이라고 부르는 이것들은 때론 겨울의 북풍같이 차갑고, 때론 용암처럼 뜨거우며 유연하고 동시에 단단하기도 하죠.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는 이것들 덕분에 우리는 적어도 소모품 이외의 것들에 자원적인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냉각제면서 동시에 건축자재이기도 하니까.”

 

  “난 저게 다 거짓말일 줄 알았다니까.”

 

  “놀랍게도 거짓말이 아니었죠?”

 

  로렌스와 어느새 자리에 앉은 아로네프의 대화를 듣고 회장이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우리는 향후 오십 년은 버틸 만한 이계의 광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광물이면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쪽 방위대 분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가야 하는 위험한 광산인 만큼 한 번에 최대한 많이 캐 오는 게 좋겠죠? 고마워요, 선생님."

 

  모리스가 건네준 초코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노바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공연하는 탭 댄서처럼 양손으로 잡았다. 그가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귀에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 아는 내용 되새김질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를 밝혀볼까요?"

 

  말하면서 휠러 회장은 손잡이 부분에 달린 버튼을 누르며 지팡이에 압력을 가했다. 단숨에 지팡이가 펜 하나 정도 길이로 줄어들었고, 회장은 그걸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저번에 모리스 선생님에게 편지가 와서 말이죠. “회장님이 찾는 인재가 바로 우리 학교에 있습니다!”라고요. 그래서 간단히 여러분들이 교육받는 모습을 살펴볼 겸, 제가 하고 싶은 말도 할 겸해서 온 거랍니다.”

 

  “...?”

 

  로렌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병원에서 만났으면서 교육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그렇다면 후자 쪽이 오늘 회장이 온 진짜 목적이라는 말이 된다.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호기심이 치민 로렌스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회장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회장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살짝 불편해 보였다.

 

  “최근에 봉사자 중 한 명이 장벽을 몰래 통과하려 했습니다.”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내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복도나 접수대에서 일을 보던 간호사들도 놀랐는지 손을 놓고 회장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회장은 그들에게 계속 일을 보라는 듯 손짓하고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는 외곽 구역 출신들이 많으니 쓰레기장에서 유용한 도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사람은 장벽 보수 중에 일부러 홈을 만들어 아예 타고 넘으려고 했더군요. 이게 얼마나 덧없고 멍청한 짓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과거 탈주자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여태까지 온화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회장은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탈주자를 매도했다. 하얀 서리가 내릴 듯 가라앉은 눈빛에 압도당한 학생들은 숨죽이며 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까요? 그는 융통성이라곤 없는 스팀 헤이즈의 운영 방식에 지쳐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으려고 했습니다. 골방에 갇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의 머리 속에 없었겠죠. 또한, 우리가 본인의 CMK 정신 감정 결과따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밖에 나가면 반드시 자유가 기다릴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요!"

 

  회장은 빠르면서 정확하게 발음을 구사하며 차가운 분노의 말을 차근차근 씹어 뱉었다.

 

  "밖으로 나가면 단지 죽음뿐입니다! 여러분은 불타는 나무에 관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바깥세상에는 나무 괴물이 있어 마주치기만 해도 불을 뿜어 검게 태워 죽인다고요. 그 사람은 나무 괴물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을 바보 취급했을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나무 괴물은 근거 없는 헛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진실입니다!"

 

  회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감정을 절제할 수가 없는 듯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부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개죽음을 당하길 원치 않습니다. 이 중에서 그 사람과 같은 행보를 걷고 싶다 하는 학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회사의 대표로써서. 아니, 이 도시의 지도자로서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노바 시리우스 휠러가 고개를 숙인다. 회장의 신분을 가진 이가 평범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경험을 한 학생들은 속에서 들끓는 서로 다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함부로 말을 꺼내지도, 뭔가 행동에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반대로 확실히 이해한 학생들도 존재했다. 그들이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의 감정에 완벽히 일치했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회장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열정적인, 또는 냉소적인 눈빛들은 한 톨의 흔들림마저 없었다.

 

  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본래의 미소를 되찾은 눈빛에 더 이상의 차가움은 없었다.

 

  "식사하러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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