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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1화. 말괄량이의 약점 - 1
작성일 : 19-11-10 19:03     조회 : 220     추천 : 8     분량 : 7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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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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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나 나나, 팔자 참 기구하다. 그렇지 동생아?”

 

  “닥쳐, 제시. 이렇게 된 게 대체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건을 사려면 돈으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 정도는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잖아.”

 

  로렌스 워커는 타는 듯한 속을 애써 잠재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름대로 표출한 분노에도 제시카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 킬킬거렸다.

 

  난잡하게 어질러진 가게 안쪽에 몇 안 되는 손님이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을 쳐다봤다. 케이크 따위를 파는 간식 가게 중앙에 웬 키 큰 여자랑 남자아이가 머리를 박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만 했다.

 

  “코흘리개들은 세상 살 줄을 모르지. 애초에 우리의 조상님은 바다에서 태어나셨다고. 먼저 죽이지 않으면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우리는 그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이야!”

 

  “약육강식 좋아하시네. 케이크 사 먹을 돈조차 없는 우리가 약자지. 그딴 논리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면 기필코 복수할 테다.”

 

  엄밀히 따지자면, 케이크 살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시카는 학교생활과 더불어 관문에서 일하고 있으니 오히려 지갑이 빵빵했다. 그런데 왜 간식 가게에서 머리를 박고 있느냐면 그 이유는 그녀의 악질적인 손버릇에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제시카는 한 번도 정가를 내고 물건을 산 적이 없다. 사탕 한 묶음을 사면 저만 아는 사은품으로 쿠키나 도넛을 가방에 가득 챙겨 넣고 나오는 식이다. 주로 학교 앞 간식 가게에서 그 수법을 써먹었는데, 자신감이 붙어 가게를 옮겨 털려고 하다가 이 꼴이 난 것이다.

 

  즉, 로렌스는 아무 잘못 없었다. 그냥 간식 쏜다길래 따라왔을 뿐이다. 게다가 반성할 기미도 없이 저런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열불이 폭발해 주먹을 날려도 합법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야! 거기 얼간이 두 명, 뭘 잘했다고 구시렁거려? 궁둥이 점점 내려가는 거 보인다!”

 

  점주의 입에서 호통이 터질 때마다 번개처럼 솟은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로렌스는 사정도 모르고 소리만 질러대는 점주의 수염을 몽땅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저기~ 저희 조금만 더 있으면 지각이라 이따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어차피 이따 이야기하나 지금 이야기하나 한 푼도 없는 거지라서 바뀌는 게 없어요.”

 

  “뭐라고?! 이 찢어 죽일 놈이!”

 

  점주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달아올랐다. 로렌스는 바로 옆에서 “아, 이게 아닌가?”하고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저씨! 아저씨!”

 

  다급해진 로렌스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나무판자를 덧댄 바닥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뽑혀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저희 기억 안 나세요? 6번 구역에 있는 행복의 집에 몇 번 오셨잖아요. 거기가 우리 집이거든요.”

 

  스팀 헤이즈는 총 열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생활 구역은 여섯 군데이고 나머지는 생산 구역과 외곽 구역으로 구분 짓는다.

 

  로렌스와 제시는 외곽 구역 하수 처리장 출신이다. 친남매는 아니지만 둘 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탓에 그들은 서로 가족 이상으로 의지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평생 오물 냄새나 맡으며 살아갈 것 같던 어느 날, 관리 소홀로 주변을 지나가던 가스 파이프가 폭발했고, 둘은 영문도 모르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까지 이동했다. 현재 스팀 헤이즈를 대표하는 지도자인 휠러 회장은 피해자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6구역 행복의 집에 모두 쑤셔 넣었는데, 몇 개월 뒤에 뜬금없이 전원 생활 구역 입주권을 발행해서 얼떨결에 하수구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나중에 로렌스가 들은 바로는 피해자 중에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병원이 가장 가까운 고아원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휠러 회장은 6구역 행복의 집에 외곽 구역 주민들이 살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공표했고, 사정을 듣고 행복의 집에 상당히 많은 후원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가게의 점주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지랄, 내가 그 고아원을 몇 년이나 들락거렸는데 너 같은 놈 본 적 없다. 옆에 족제비같이 생긴 년이라면 몰라도.”

 

  당연한 말이었다. 로렌스는 행복의 집 선생님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했으나, 제시카는 다른 구역에서도 알 만큼 유명한 문제아다. 도둑질은 물론 도박이나 뒷골목에서 암표를 판다는 소문도 돌았다.

 

  안타깝게도 로렌스는 그게 전부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제시카를 감싸 줘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샘솟았다.

 

  “기억이 안 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제가 워낙 조용해서요. 그래도 같이 사는 게 아니면 누가 이 녀석이랑 다니겠어요?”

 

  로렌스는 자연스럽게 심한 말을 하며 박은 머리를 바닥에 기대어 점주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저는 점주님을 분명히 봤다니까요. 그때 엄청나게 큰 꽃다발이랑 분홍색 상자를 들고 오셔서 똑똑히 기억해요. 아마 선생님 중 누가 생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기적으로 후원해 주는 것도 모자라서 생일까지 챙겨주시는 분은 처음 봤다니까요.”

 

  “그만, 그만! 네가 행복의 집에 산다고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니까 그만해!”

 

  점주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다만 아까와 달리 잘 익은 복숭아의 색깔이었다.

 

  혼란을 틈타 제시카가 허리를 살짝 틀어 출입구 쪽을 살폈다. 출근 시간대가 이미 지나서 거리를 걷는 사람도 없고, 그들을 구경하던 무리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들의 담임인 모리스는 시간에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가령 열 시부터 오전 수업에 들어간다면, 종이 치기 일 분 전부터 교실 앞에 서서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다.

 

  항상 정해진 패턴이 있어, 제시카는 지금쯤 모리스가 교무실을 나왔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리해냈다.

 

  그리고 점주는 그들이 학생들임을 알고 있었다. 이 근방에 횃불을 든 팔이 그려진 로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하얀 셔츠에 멜빵을 찬 반바지를 입고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물론 제시는 선생님 앞에서 점주에게 사과 따위 할 생각이 없었다. 이왕 혼날 거 조금이라도 간식을 더 챙겨갈 생각이었다. 간식 가게 따위는 광장에 가면 널리고 널렸다.

 

  몰래 몸을 일으켜 살금살금 진열대로 가는 제시를 눈치채지 못하고, 로렌스는 점주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폭스 선생님이랑 자리 정도는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먼저 가서 말해 둘 테니까 해가 지면 고아원 앞으로 오세요. 평생 잊지 못할 밤이 되도록 해드릴게요.”

 

  “오... 올 한 해 중에 가장 떨리는데. 과연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사랑과 결단력만 있다면 안 될 것 없답니다.”

 

  로렌스의 가는 엄지가 척 올라갔다. 어느새 로렌스는 머리 박아 자세를 풀고 편하게 앉아있었다.

 

  포동포동한 소시지 같은 손가락을 서로 마주 대어 꼼지락대는 꼴이 첫사랑 앞에 선 소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점주는 생각했다.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해 본 적이 있던가.

 

  처음에는 그냥 예쁜 고아원 선생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가여운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점주나 폭스 선생이나 같았고, 점주는 아이들이 먹을 간식부터 시작해서 양말, 부드러운 실크 잠옷을 선물했고 각종 가구까지 후원했다.

 

  그때마다 폭스 선생은 웃으며 점주를 맞아주었고, 눈치챘을 땐 이미 그의 눈은 아이들보다 폭스 선생을 좇고 있었다.

 

  이미 이 아이들은 악랄하고 어린 좀도둑들이 아니었다. 점주의 눈에는 폭스의 사랑을 가져다줄 두 명의 천사로 보였다.

 

  “정말 오늘 너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눈사람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점주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로렌스는 그의 미소를 보고 안심하여 따라 웃었다.

 

  그러나 곧 로렌스는 웃을 수 없게 되었는데, 점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누구에게 따귀를 맞은 것처럼 고개를 획 돌려 옆을 살폈다.

 

  ‘과일 한 바구니’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과일 조각을 설탕에 절여 봉지에 담은 것이다. 점주의 가게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력 판매 상품이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달고 새콤하니까. 들고 먹기 편하니까.

 

  제시카도 그것을 참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뭐가 빠지게 아부를 떨어대던 친구를 두고 혼자 ‘과일 한 바구니’ 진열대를 싹쓸이할 정도로. 부릅떠진 두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점주를 무시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정도로.

 

  잡히면 죽는다. 그게 로렌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

 

  “야! 제시이이이!!”

 

  눈앞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제시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앞으로 멘 가방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한층 더 탐욕스러워 보였다. 심지어 입에 과일 사탕을 잔뜩 쑤셔 넣어 햄스터처럼 볼이 부풀어 있었다.

 

  “야, 다 챙겼어! 튀어, 튀어!”

 

  아기가 옹알이하는 듯이 말을 마치자마자 제시는 입안에 든 사탕을 단숨에 삼켜버리고 달려오는 로렌스를 덥석 안아 올렸다.

 

  “저... 저!”

 

  점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시는 이미 로렌스를 등에 옮겨 업고 출입문을 발로 차고 있었다.

 

  로렌스는 순간 타조의 등에 탄 줄 알았다. 초여름 날씨 따위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강렬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따갑게 붙어대는 햇살을 날려버렸다.

 

  비를 피하려면 비와 비 사이의 틈으로 뛰면 된다고 했던가. 그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제시는 거리의 사람들과 구조물들을 날쌔게 피하며 멀리 멀리 달려갔다.

 

  “동생아~ 잘 붙어있냐?”

 

  “뭐 하는 거야! 기껏 사람이 판을 만들어 놨더니... 근신이라도 받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신이 난 제시와 다르게 로렌스는 눈을 부라리며 제시의 어깨를 마구 내리치고 있었다. 한껏 힘을 준 감정 표출이었지만 제시는 그저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왜~ 어차피 혼날 거 조금이라도 더 챙겨가야 잠자리가 편안하지. 머리 끓이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라고 동생아.”

 

  “아니, 냉정하고 자시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려던 로렌스는 한 가지 생각에 걸려 말을 멈추었다.

 

  “폭스 선생님 때문에?”

 

  “일러바칠 리가 없지. 우리가 가게를 통째로 불태우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없을걸? 돈 만지는 멍청이들은 이런 쪽에서 머리가 잘 굴러가거든. 폭스 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너라면 그런 생각할 줄 알았다.”

 

  “진짜 똑똑하지?”

 

  제시가 튀어나온 파이프를 밟아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며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신체 능력이었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계탑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이러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맞은편 건물 옥상으로 뛰려던 제시가 느닷없이 급제동을 걸었다. 마찰열로 불이 일어나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 먼 거리를 쭉 미끄러져 건물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또, 또 그런다. 너 그거 신경과민이라니까?”

 

  제시가 고개를 획 돌려 면박을 놓았다.

 

  “너는 신경 안 쓸지 몰라도 나는 절대 싫어. 하수구 냄새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누가 뭐라니. 살라면 계속 살아, 방값은 네가 내고.”

 

  “지금 농담 아니야!”

 

  만사태평한 제시 때문에 로렌스는 울컥 화를 내고 말았다. 불과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외곽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에 시달려 온 그들이었다. 지금의 신뢰를 쌓을 때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제시카라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로렌스는 지금의 생활을 잃고 싶지 않았다. 제시카가 이럴수록 겨우 친해진 반 친구들과 고아원 선생님들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음... 이런 말 하기 뭐한데, 동생아. 너... 진짜 목청 크구나.”

 

  제시의 목이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너무 가까이에서 큰 소리를 들은 탓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아직 스물도 안 넘었는데 대체 몇 번이나 전과를 남길 셈이야? 게다가 매번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잖아.”

 

  정말로 외치고 싶었던 말은 가슴 속에 삼킨 채, 로렌스가 비교적 차분하게 말했다.

 

  “전과라고 하니까 말이 좀 그렇다, 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지. 일단 우리 학교에 먼저...”

 

  “너 정말 이기적인 거 알고 있어?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잖아. 나이가 열여섯이면 사리 분별 가능한 나이 이미 지났지. 그런데 너는 왜 그 모양이야?”

 

  “아니, 나 일단 너보다 여섯 살 연상이거든? 학교에 도착하면 더 진득하게 이야기할 수...”

 

  “여섯 살 더 먹었으면 나잇값을 하란 말이야. 언제까지 내가 네 뒤를 닦아줘야 하냐고. 이번만 문제가 아니야. 당장 어제만 해도...”

 

  제시는 직감적으로 로렌스가 설교를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다른 사람에겐 소심한 그지만 유독 제시카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수구에서 썩은 물좀 먹었다고 사람의 본질이 변하진 않는다. 따듯한 스프던 구정물이던 소화만 시킬 수 있으면 배 채웠으니 끝 아닌가? 거짓으로 동조하거나 부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라?’

 

  제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야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렸기 때문이다. 너무 먼 탓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 같은 옷을 입은 데다 맨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모리스와 똑같은 검은색 천 옷을 입고 있었다.

 

  “동생아, 오늘 오전 수업이 뭐였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내 말 안 듣고 있었지. 너는 대체...”

 

  “아니, 저길 봐봐. 선생님이랑 애들이잖아.”

 

  제시카가 아무리 손가락을 뻗어 허공을 찔러대도 로렌스의 눈에는 수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여있다는 정도로만 보였다.

 

  “어디?”

 

  “아, 넌 안 보이겠구나. 시계탑 근처에 선생님이 애들 데리고 어디 가고 있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로렌스가 주머니에서 작은 원판같이 생긴 것을 꺼내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원판에 뚫린 작은 구멍들에서 숫자가 빠르게 지나가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H : 1 / P : 2 / Y : 1066 / M : 08 / D : 14]

 

  “야외 수업을 할 법한 날씨이긴 한데.”

 

  “야외 수업? 아론이 당분간 절대 야외 수업 없다고 했잖아.”

 

  “아론이 아니라 아로네프 선생님! ...아닐걸? 이번 주에 밖으로 한번 나간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었대.”

 

  구역별로 확실하게 나눠진 만큼 보통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친분이 상당하다. 모리스는 그 정도가 심해서 야외 수업을 빌미로 학생들과 자주 소풍을 나가곤 했다.

 

  반대로 부담임인 아로네프는 야외 수업을 극도로 싫어한다. 야외 수업을 한다는 말만 들으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당장에라도 모리스를 물어 죽이려 든다. 평소에 다혈질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둘이라 행여나 싸움이 날라 학생들조차 야외 수업을 꺼렸다.

 

  “글쎄. 야외 수업이라고 확신하긴 힘들지.”

 

  “밖에 나오는 게 그거 말고 더 있냐.”

 

  “아니 있잖아, 그...”

 

  로렌스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아버렸다. 다음 말은 제시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야외 수업을 제외한다면 정기 검진이겠지.’

 

  “응? 뭔데.”

 

  듣던 말이 도중에 끊기니 제시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야외 수업이겠지.”

 

  “그렇지? 그것보다 나 해도 돼?”

 

  “뭐를?”

 

  미련 없이 털어버리는 제시카 덕분에 로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시카의 시선은 바로 아래의 건물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만 올라왔으면서 무슨 허락을 구해.”

 

  건물을 건너가도 되겠냐는 줄 알고 시원하게 허락하자, 제시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진짜? 진짜로 해도 되는 거지?”

 

  “어...?”

 

  예상보다 반응이 격했다. 마치 사달라고 조르던 장난감을 퇴근한 아버지가 손에 들고 온 그 느낌이랄까. 로렌스는 한 번 더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건너가기에 적합한 건물 옥상에는 별로 특이한 점이 없었다.

 

  “진짜지? 다이빙해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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