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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교환 학생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19.11.4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비밀리에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온 교환학생을 받는다.
교환학생이래 봤자, 100년 후 미래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동문들이지만.
2018년 서울의 생활사를 연구하러 온 2118년의 남자, 현호.
그런 그의 시크릿 멘토로 간택된 국사학과 수석, 다희.
두 사람의 유쾌한 룸메이트 생활이 궁금하다면
학기 '등록'을 서두를 것!

-내 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교환 학생.

 
녹두 대전 (2)
작성일 : 19-11-10 18:17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7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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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위에 올려둔 음료 안의 얼음이 다 녹았다. 연두색 청포도 에이드, 다희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였다. 온도 차 때문에 플라스틱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어느새 밑에 흥건히 고였다.

 “금방 온다고 했는데…….”

 유송은 건물 출입구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홱홱 돌렸다. 수십 명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중 다희는 없었다.

 “유송아, 혼자 여기서 뭐 해? 누구 기다려?”

 “아, 친구요. 같이 점심 먹기로 했는데 안 오네? 선배가 혼내 줄래요?”

 “그럴까? 누가 우리 유송이를 기다리게 했어?”

 국문학과 선배가 유송의 농담을 재치 있게 받았다. 말투와 표정에서 유송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아쉽다… 오랜만에 본 김에 누나가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오늘만 날인가, 다음에 먹으면 되지?”

 막연히 다음을 기약하며 유송의 선배가 신양 건물을 나섰다. 다시 혼자가 된 유송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로 어디냐고 물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답이 없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신호음을 들으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유송이 멈칫했다.

 -말해, 임유송.

 “…현호 형?” 다희의 전화를 받은 건 현호였다. 순간 짜증이 훅 치밀어 올랐다. “왜 형이 이 전활 받아요? 다희는요?”

 -진료 받으러 들어갔어.

 “진료? 어디 아파요? 혹시 저번에 다친 손?”

 그러나 다희가 아프다는 말에 순간 일었던 분노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감기래.

 “아, 감기…….” 걱정이 되는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감기란 소리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면역력이 약한 편인지 다희는 환절기가 되면 곧잘 감기에 걸렸다.

 ‘이거 나 먹으라고 사온 거야? 임유송, 진짜… 너밖에 없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다희에게 갖다 주면 어찌나 감동을 하던지, 마음이 뿌듯해 아픈 다희를 앞에 두고 환하게 웃어버렸다. 그랬는데. 그 역할을 이젠 현호가 대신 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송은 질투가 났다. 갑자기 나타나, 원래부터 제자리였던 양 다희의 곁을 지키는 현호가 미웠다.

 “나오면 내가 전화했단 말 하지 마요.”

 -왜?

 미안해할 테니까. 지금까지 연락을 안 한 걸 보면 저와의 약속 자체를 잊고 있을 게 뻔했다. 아파서겠지, 하고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서운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다희가 마음 편히 쉬어서 얼른 건강을 회복하기 바라는 마음이 먼저다. 괜히 제 이름을 꺼내 그녀에게 죄책감을 심어 줄 필요는 없었다. 몇십 분 기다린 게 뭐 대수라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마요! 뭔 질문이 그렇게 많아.” 유송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여간 기분 나쁜 형이야.

 

 “…뭐야.” 무례하게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현호는 미간을 구겼다. 이렇게 나오면 원하는 대로 해주기가 싫어지는데.

 다희와 함께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은 현호는 진료실에 들어간 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원 수준의 작은 병원엔 환자가 다희뿐이었다. 그 덕에 접수와 동시에 진료실로 들어가란 안내를 받았다.

 데스크를 지키는 두 명의 간호조무사가 소파에 앉아 있는 현호를 힐끔거렸다. 온종일 한 평 남짓의 데스크에 처박혀, 골골대며 걸어오는 환자들만 받다가 신체 건장한 현호를 보니 마음이 설렜다. 수혈해 주고 싶게 하얗고 투명한 피부와 천장을 뚫을 것 같은 키, 오똑한 콧날과 날카로운 눈매. 웬만한 배우보다 더 입체감 있는 얼굴에선 후광까지 비췄다.

 “같이 온 여자랑 무슨 사이일까요? 남친?”

 “으, 아니었음 좋겠다. 남자가 너무 아깝잖아.”

 후배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책상 위의 손거울로 모습을 비춰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곧 있음 다희가 나와 진찰료를 계산할 테고 그때 현호도 같이 데스크 앞으로 올 확률이 높았다. 립스틱도 더 붉게 바르고, 머리카락도 정돈했다. 오늘 처음 만난 그와 딱히 뭔 일이 일어날 거란 환상은 꾸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그런 판타지를 품을 나인 지났다. 그저 잘 가란 인사를 건네며 웃을 때 그의 눈에 못나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다였다.

 “뭐래?”

 “감기. 약 먹고 쉬면 낫는대.” 다희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호흡기 치료 받으러 가실게요.” 현호에게 다가가 보고하는 다희를 간호조무사 중 하나가 잡아 치료실로 데려갔다. 치료실이라고 해 봤자, 대기석 바로 옆이었지만. 현호는 벌떡 일어나 다희의 옆으로 갔다. 간호조무사의 설명에 따라 다희가 투명 호스에 연결된 종이컵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목의 붓기를 가라앉히고 호흡기 전반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네뷸라이저(nebulizer)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기계의 시작 버튼을 누르자, 타이머가 작동되면서 흰 수증기가 호스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떼시면 안 돼요. 3분 지나면 알아서 꺼지니까 쓴 종이컵 여기에 버리고 나오세요.” 간호조무사는 그렇게 치료실에 두 사람만 남겨두고 데스크로 돌아갔다.

 현호는 다희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가슴이 들썩이도록 크게 숨을 쉬며 수증기를 흡입하는 다희를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덕분에 병원 구경 실컷 하네. 뭐가 이렇게 맨날 아파.”

 다희가 팔꿈치로 현호를 쿡 찔렀다. 누군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 라고 막힌 입 대신 눈빛으로 말했다.

 “어때, 좀 괜찮아지는 거 같아?”

 뭘 했다고, 다희는 힘없이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현호의 눈엔 이게 대단한 치료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약 먹어야 된대?”

 다희가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밥은 먹었어?” 다정히 물어오는 현호를 보며 이번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만든 국, 맛있었어.”

 현호의 칭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종이컵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부끄러움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열을 낮춰주진 못할 망정 몇 마디 말로 열을 올리다니, 참 몸에 해로운 남자다. 얼른 가서 점심 먹고 약을… 점심?

 “……유송이!” 다희는 입에 대고 있던 종이컵을 떼고 유송의 이름을 외쳤다. 그와 만나기로 했던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쩜 좋지. “나 전화기 좀…….”

 현호가 스윽, 하고 손을 뻗어 다희의 입을 종이컵으로 다시 막았다. “떼지 말랬잖아.”

 당황한 다희가 현호의 손을 저지하려 들자, 그는 종이컵에 더 힘을 주었다. 뒤로 빠지지 못하게 다희의 목덜미도 다른 한 손으로 살며시 잡는다. “걱정 마. 아까 전화 왔었어.”

 ‘정말?’이라고 묻는 다희의 말소리가 뭉개져 종이컵 밖으로 흘러 나왔다.

 “빨리 낫기나 하래. 자긴 괜찮다고.”

 유송이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유송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으나, 전화한 걸 다희에게 말하지 말란 부탁에서 현호는 유송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말에 다희가 현호를 잡고 있던 손을 아래로 스르르 내렸다. 그럼에도 다희를 붙든 현호의 두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곁에 바짝 붙은 현호의 왼쪽 가슴이 다희의 등과 맞닿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고동이 조금씩 빨라진다. 1초 미만의 시간이 남았다. 타이머의 파란 글씨가 59, 58, 하며 이젠 분이 아닌 초 단위로 남은 시간을 세어갔다. 다희는 고개를 슬쩍 들어 현호를 훔쳐봤다. 현호의 검은 눈동자는 줄곧 다희의 옆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다희는 두 손을 오므려 옷자락을 꼭 쥐었다. 떨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뿌연 수증기가 입가와 종이컵 사이의 작은 틈으로 뿜어져 나왔다.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묘한 분위기를 형성시키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해방감에 취한 수증기가 다희의 뺨에 앉아 그 주위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건 현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다희와 가까이 있었다.

 “…떼고 싶다.” 현호가 간지러운 목소리로 귓가에 말을 흘려 넣었다. 소리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심장까지 한달음에 내려가 두방망이질을 쳤다. 다희는 상기된 얼굴로 현호를 바라봤다. 그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삐-. 그때 단발의 알림음과 함께 네뷸라이저가 작동을 멈췄다. 시야를 가리던 수증기가 사라지자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희는 현호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계속 있다간 심장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지, 진료비 내러 가야 돼!”

 현호는 황급히 치료실 밖으로 나가는 다희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그는 다희가 사용한 종이컵을 버린 뒤, 치료실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진료비를 계산하고 처방전을 받아간 다희와 함께 현호도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가볍게 목례를 하는 현호와 그리도 기다리던 눈맞춤을 했다.

 “아쉽다아~ 치료 시간 한 20분으로 눌러 놓고 나올 걸 그랬나?”

 “누구 좋으라고.”

 “네?”

 선배인 여자가 텅 빈 치료실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넌 아까 그 남자랑 저 안에 단둘이 있음 어떨 것 같아?”

 아아, 하며 후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길 로맨틱하게 만들어버리네… 대단들 해.”

 

 오후 다섯 시, 인문대 신양 1층. 수빈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눈앞의 목표물이 방심한 사이에 일을 끝마쳐야 했다. 몇 걸음 남지 않자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는, “와앙……!” 하고, 맹수의 포효를 따라 내며 어깨를 콱 잡았다.

 “깜짝 놀랐잖아! 죽을래, 안수빈?” 수빈이 친 장난의 희생양은 다름 아닌 유송이었다. 그는 잡고 있던 핸드폰까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낄낄낄, 웃으며 수빈이 유송의 옆에 앉았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어깨 축 늘어뜨리고 있으래? 왜, 무슨 일 있어?”

 “이런 것도 친구라고…….”

 혀를 끌끌 차는 유송이었다. 수빈은 영문 모르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런 게 어떤 건데.”

 “다희 많이 아프대! 감기!”

 “이다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친구의 불행한 소식을 미적지근하게 받는다. “감기가 뭐 대수라고. 죽 먹고, 약 먹고, 땀 푹 내서 잘 자고! 그깟 거 하루면 낫는다!”

 “다희가 너야?”

 “하, 사람 차별하냐? 너 은근 나보다 다흴 더 챙기더라?”

 “넌 남친 있잖아, 거기 가서 챙겨달라고 해.”

 “남친이 있어도, 내 임은 너인 걸~ 섭섭하게 왜 이러실까앙?”

 “징그러워, 저리 가.”

 치, 하며 수빈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안 받아주네.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유송이 뭐에 정신이 팔렸나, 수빈은 궁금했다. 슬쩍 화면을 보니, 다양한 종류의 죽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희 갖다 주려고?”

 “응… 걔가 무슨 죽을 잘 먹었더라? 녹두죽이었나? 맞아, 그랬던 거 같다.”

 제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유송을 보며 수빈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유송, 너 혹시?

 

 “일어났어?”

 얼굴 위로 퍼진 찬 기운에 잠에서 깬 다희가 눈을 떠 처음 본 이는 현호였다. 그는 약을 먹고 잠든 다희의 곁에서 몇 시간째 살뜰히 간호 중이었다.

 “이게 뭐야?” 몸을 일으킨 다희가 얼굴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냈다. 마스크 팩이었다.

 “열이 잘 안 내려서.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이게 열 내리는 데 좋다고.”

 ‘왜, 마스크 한 거 처음 봐?’

 ‘어, 처음 봐.’

 다희의 열이 잘 내리지 않아 속상하던 차에, 저녁에 세안을 마친 다희가 소파에 앉아 마스크 팩을 얼굴 위에 올리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미백에 주름 개선, 수분 공급까지! 홈 케어로 이만한 게 없다니까?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쓰면 열기도 낮춰줘. 아주 만능이야, 만능!’

 다희가 아무리 입에 닳도록 칭찬을 해도 현호의 눈엔 원시적인 미용 방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줄기세포 연구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미래에선 주사 한 번에 70대 노인도 갓난아이처럼 매끈하고 탱탱한 피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좋네, 보기 흉하고.’

 ‘야이씨!’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다희가 핏, 하고 작게 웃었다. 서툰 간호에서 진심이 느껴져 더 웃음이 났는지도 모른다.

 “……고마워.”

 주위가 어두웠다. 몇 시간이나 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몇 시야?”

 “여섯 시 다 돼 가.”

 점심을 먹은 게 한 시쯤이었으니까 거의 다섯 시간을 잔 셈이다. 다희는 다리를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시도했다.

 “왜, 뭐 필요해? 내가 갖다 줄게.”

 “다 나았어. 이제 멀쩡해.”

 그 말에 현호가 다희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첨단 기기를 장착한 그의 오른손이 체온을 재니, 왠지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정확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열이 이렇게 높은데 무슨. 얼른 다시 누워.”

 억지로 다시 침대에 눕히려고 하자, 다희가 가냘픈 팔을 들어올리며 저항했다. “그만 일어나야 돼. 그래야 저녁도 먹고, 약도 먹고 하지.”

 “그 약, 못 미더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겨우 한 알에 감기가 말끔히 나으리라 기대하면 곤란했다. 그러나 다희가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자, 현호는 약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낡은 건물에서 파리를 날리고 있던 낮의 그 병원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 가서 신비의 묘약이라는 거, 그것 좀 챙겨 오든가.” 장난칠 기운은 있는 모양이다. 깨어나 농담을 하는 다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희가 콜록콜록하고 밭은기침을 하자 현호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졌다.

 “저녁 뭐 사다 줄까.” 엉터리 약이라도 먹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부엌 냉장고엔 생수와 과일뿐이었다. 아침에 다희가 만들었던 북엇국은 점심에 모두 소진해, 그 냄비 설거지까지 마쳐 놓은 상태였다. 요리엔 재주가 없으니, 나가서 뭐든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음… 죽?” “죽?”

 “나가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봄죽’이란 죽집 있어. 거기 가서 녹두죽 한 그릇만 사다 줘.”

 “알았어.” 바로 나갈 기세로 현호가 방문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꼭 한 그릇만 사와야 해! 그거 양이 많아서 둘이 먹어도 충분하니까.” 다희의 당부에 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문턱을 넘어 거실로 나갔다. 끼익. 그러나 곧 다시 들어왔다. 침대에 다시 누우려던 다희가 어정쩡한 자세로 현호를 맞았다.

 “혹시 놀랄까 해서 미리 말해두는데.”

 “……?”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현호가 입가를 실룩이며 말했다.

 “내가 벗겼어, 네 옷.”

 갔다 올게, 하고 현호가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다희는 멍한 얼굴로 현호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었다. 뭘 벗겼다고?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보라색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다희는 이불을 확 걷었다.

 “……!”

 티셔츠와 한 세트인 반바지 차림이었다. 상하의 모두, 자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타원형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기어이 갈라진 목소리로 다희는 현호의 이름을 외쳤다.

  “김현호오……!!”

 띵동. 그때 거실 인터폰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다희는 아랫입술을 꾹 물고 거실로 나갔다. 현호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달리 집으로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씩씩거리며 현관까지 걸어간 다희가 문을 벌컥 열었다.

 “내 옷 누가 벗기라고……! 유송아.”

 초인종을 누른 주인공은 굳은 얼굴의 유송이었다.

 “이다희, 너 여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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