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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24 - 공성전 (5)
작성일 : 19-11-10 01:54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16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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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피가 어둠을 타고 올라간다. 어둠은 피를 부여잡고 끌어 올린다. 하지만 중력은 피의 이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피는 다시 어둠에서 떨어져 나와 그대로 추락한다.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려던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듯 말이다. 피는 떨어져 자신의 주인에게로 내려앉는다. 주인은 비틀거린다. 주인은 혼란스럽다. 무슨 일이 일어 난건가.

 

  경묵이 비틀거린다. 피의 주인은 경묵이었다. 그는 오른쪽 어깨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상했다. 분명 권총을 쐈는데 어째서 맞은 것은 본인인가? 혼란스러워하는 그 틈을 타 치수가 있는 힘껏 고개를 젖혀 뒤통수로 그의 머리에 박치기를 먹인다.

 

  그 충격으로 치수를 놓친 경묵. 그는 권총을 들고 치수를 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찰나, 경묵이 총을 맞고 비틀거린 그 작음 틈. 이 틈을 대범은 놓치지 않았고 치수가 박치기를 하는 순간 그는 경묵에게 이미 달려들고 있었다. 대범이 자세를 낮추며 권총을 든 손을 먼저 잡고 그의 몸뚱이를 밀어 넘어뜨린다.

 

  경묵은 휘청거리더니 뒤로 쓰러진다. 경묵이 저항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한다. 총성이 울렸지만 권총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기에 다친 사람은 없다. 경묵이 손목을 움직여 총구를 대범으로 향하게 하려 했지만 대범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힘에 저항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경묵이 왼손으로 대범을 구타한다. 하지만 치수가 다친 다리를 이끌고 몸을 던져 그의 왼손을 짓눌러 봉쇄한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어느새 왔는지 설전이 권총을 들고 있는 경묵의 손을 발로 차버린다. 갑작스런 발길질에 권총은 경묵의 손을 떠나고 만다.

 

  어떻게 된 상황인가. 시간을 약간 되돌려 설전이 마트 안으로 진입하던 시간이다. 설전은 일단 마트내부를 둘러보기 보단 옥상으로 올라가 어머니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가 2층 계단을 올라 3층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난데없는 총성. 왠지 불길한 소리였다. 한 발 밖에 쏘지 않은 그 총성이 설전을 3층으로 가는 걸 붙잡고 있었다. 설전은 총성이 난 위치를 유추하며 발걸음을 바꾼다. 그의 걸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뜀박질로 변할 때 다시금 총성이 울린다. 그것도 이번엔 연달아서. 들려오는 비명은 설전이 잘 알던 목소리였다. 설전의 호흡과 다리가 빨라진다.

 

  그가 2층 매장을 가로질러 2층 물류 창고로 들어가 소리가 난 위치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그 남자를 향해 또 다른 남자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설전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쓰러진 것이 아버지, 아버지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있는 놈이 적이라는 걸 눈치 챘다.

 

  그야말로 신속. 다급했지만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소총을 견착하고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고작 2초였다.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다. 하지만 그 반응속도 덕분에 경묵의 어깨에 총상을 입힐 수 있었고 그 충격의 반동으로 경묵의 권총은 대범의 머리를 벗어나 엉뚱한 곳을 향한다. 경묵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총알은 대범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 틈을 타 치수가 박치기를 하고 대범이 그를 넘어뜨린다. 설전은 얽혀있는 사람들 무리로 뛰어가 경묵이 들고 있던 권총을 확인하고 발로 차버린다. 무기를 잃고 부상을 당한 경묵. 승기는 설전 일행 쪽으로 기울었다.

 

  허나, 대범과 치수는 부상을 당한 몸. 특히 치수의 경우 몸에 구멍이 여러 개 나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런 몸으로 경묵을 제대로 붙잡는 건 무리였다. 경묵의 팔꿈치에 명치를 맞은 치수가 옆으로 굴러갔고 한 팔이 자유로워진 경묵은 주먹으로 대범의 얼굴을 강타한다. 대범이 충격으로 나자빠지자 이번엔 설전이 소총을 들고 경묵을 향해 소리친다.

 

  “움직이지 마, 새꺄!”

 

  보통 사람이라면 그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추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총을 들이미는데 함부로 움직일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경묵은 달랐다. 그는 자기에게 들이대는 소총의 범위 밖으로 몸을 피하더니 빠른 속도로 설전의 품까지 다가왔다. 그는 손으로 소총을 밀치며 주먹으로 설전의 얼굴을 노린다.

 

  얼굴을 돌리며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다 피하지 못해 주먹이 얼굴을 살짝 빗맞는다. 설전은 그런 와중에 소총을 돌려 개머리판으로 경묵의 얼굴을 노린다. 그러나 경묵은 이미 그 움직임을 알고 있었는지 오른팔을 들어 개머리판을 옆으로 쳐낸 다음 그대로 왼쪽 주먹으로 설전의 얼굴을 노린다.

 

  이번엔 설전도 피할 수 없어 그대로 주먹을 얻어맞는다.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검지로 방아쇠를 당기지만 ‘탁’ 소리와 함께 당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설전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경묵이 설전이 주먹을 맞고 비틀 대는 사이 소총에 손을 뻗어 조정간을 안전으로 바꾸었으니까.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깨에 총상을 입고 총을 든 상대와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묵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가르쳐 주고 있었다.

 

  설전이 당황하는 동안 소총을 잡은 경묵은 그대로 밀어 소총을 설전의 얼굴에 부딪치게 한다. 다시 한 번 얼굴에 충격을 받은 설전이었지만 소총을 놓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설전은 이를 갈더니 발을 들어 경묵의 복부를 밀어 찬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묵이 뒤로 밀려난다. 설전은 빠르게 조정간을 단발로 맞추고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엔 멈추는 것 없이 방아쇠가 부드럽게 당겨진다. 총알이 경묵의 허벅지를 스쳐지나간다. 설전은 멈추지 않고 후속타를 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공허한 쇳소리만 들릴 뿐 총알은 나가지 않는다. 설전은 다시 당황한다. 그는 설마 라는 심정으로 탄창 자리를 손으로 만진다. 역시였다. 탄창이 빠져있다. 아까 경묵이 설전을 향해 소총을 밀 때 탄창을 빼버린 것이다. 이런 어두운 와중에 탄창을 찾아 다시 결합할 시간은 없다. 설전은 경묵을 향해 소총의 개머리판을 날린다.

 

  경묵은 팔을 들어 소매로 눈을 가린다. 그는 무엇인가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뒤를 돌아 도주한다. 뭐지? 설전이 의아해 한다. 설마 수류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건 대범도 마찬가지였다. 한울에게 들은 폭탄광이라는 말이 스쳐지나가자 대범이 모두 엎드리라고 외친다.

 

  탄이 터지더니 폭발음과 함께 번쩍 거리며 눈을 멀게 하는 빛이 솟아오른다. 설전이 어떻게 된 일인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짙은 어둠에 적응된 설전의 눈이 빛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눈을 질끈 감으며 욕설을 내뱉는 설전. 그는 직감으로 경묵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녀석이 터트린 건 섬광탄이었다.

 

  눈을 감은 설전은 대범을 부른다. 대범이 대답하자 그는 괜찮냐고 물어본다. 대범은 전혀 괜찮지 않다며 오히려 설전을 향해 언제 온 거냐 물어본다.

 

  “아까 전에요. 느낌이 쎄 해서 와봤더니. 아니나다를까 밖에 이상한 놈들이 있더라고요. 그 놈들을 처리하고 옥상의 어머니랑 어찌 된 일인지 이야기 좀 하려고 했더니… 총성이 들려서 와봤죠.”

 

  “잘했다. 근데 나보단 치수가 지금 문제인 것 같아. 아무래도 심하게 당한 모양이야.”

 

  “치수가요? 치수도 여기 있어요?”

 

  눈을 끔뻑이며 설전이 대답한다. 섬광탄의 빛은 사라졌지만 눈에 남은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했다. 설전은 치수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치수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은 설전이 다시 한 번 치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범도 당황하여 치수의 이름을 부른다. 그는 다친 다리를 끌고 기어가더니 치수의 상태를 살핀다. 피를 꽤 많이 흘려 위험하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어 옅은 신음이 떨리는 숨과 함께 내뱉어 지고 있었다. 하지만 숨이 붙어있을 뿐 아까 말했듯 피를 꽤 많이 흘려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말 생사를 오락가락할 수 있다.

 

  “제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모양이야! 설전아 움직일 수 있겠냐?”

 

  “네? 아, 네네! 이제 눈이 좀 괜찮아졌어요. 치수, 많이 심각한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일단 치수를 데리고 마트 아래로 내려가서 약국으로 가라. 거기서 최대한 지혈을 하고 체온을 높일 수 있도록 해.”

 

  “아버지는요? 치수를 제가 들고 간다고 쳐도 아버지는 어찌하시려고요? 설마 여기 계시려고요? 아까 그 놈이 도망쳐서 위험한데…”

 

  “난 상관 마. 꼴이 이렇지만 그래도 쉽사리 죽을 삐꾸는 아니야.”

 

  대범은 자신이 놔둔 소총을 들어 보이더니 말한다. 삐꾸가 뭐지? 설전은 그게 뭔가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걸 계속 머리에 붙잡아 둘 여유는 없었다. 그는 재빨리 치수를 부축하였고 대범은 소총을 들고 경계를 취한다.

 

  하지만 설전은 고뇌에 빠진다. 이대로 아버지를 놔두고 내려가야만 하는가. 경묵은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언제 그가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대범은 지금 다쳐있는 상황. 총을 들고 있다고 해도 경묵의 실력은 경험해 본 설전은 대범의 걱정에 불안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차라리 경묵을 쫓아서 미리 손을 써두는 게 낫지 않을까?

 

  갈등하는 설전. 그러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에겐 아버지도 중요하다. 허나, 그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목숨을 살리는 일이다. 치수를 부축하면서 그는 다급히 자리를 떠난다. 설전이 무리하지 말고 어디 숨어있으란 말을 남기고 대범은 알았다며 대답한다.

 

  설전이 자리를 뜨고 난 다음 대범은 바지를 벗는다. 그는 바지를 총상을 입은 허벅지에 댄 다음 꽉 묶어 지혈한다. 그런 다음 소총을 들어 경묵이 도망쳤으리라 여겨지는 곳을 향해 총구를 돌린다. 그러나 손이 떨리고 눈이 가물가물하다. 침침해지는 눈을 억지로 뜨려던 대범은 결국 소총을 내려놓고 만다.

 

 

 

  경묵은 비틀거리며 2층 사무실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온다. 아슬아슬했다. 설마 이 정도로 밀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 왔는데 거기서 방해를 받을 줄이야. 너무 여유를 부린 자신의 불찰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는 코트 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린다. 섬광탄과 연막탄은 각각 하나 씩 남았다. 혹시나 쓰지 않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쓰게 될 줄이야. 수류탄을 쓰고 싶었지만 적의 위치가 너무 근거리였다. 수류탄을 썼다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했겠지. 경묵은 적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개활지가 아닌 이런 건물 안에서 수류탄을 함부로 터트리다간 자신까지 휘말릴 수 있다. 적과의 싸움을 즐기려다 외통수에 걸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경묵의 가슴에선 만족감이 차오른다. 그는 아까 자신과 싸웠던 남자를 떠올린다.

 

  날렵하고 거침없는 공격. 뛰어난 반응속도. 단호한 결단력. 재빠른 상황파악 능력. 이 모든 건 재능에서 비롯된 게 아닌 거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깊은 맛이었다. 그 깊은 맛은 지금 경묵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아직 자신을 흥분시키게 할 생명이 남아 있구나. 경묵은 몸에 오싹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전장이 좋지 않다.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한울이나 아까 쓰러진 부하를 보건데 분명 나머지 녀석들도 좋지 않게 끝나 있을 예감이 들었다. 불리할수록 싸움의 맛이 좋지만 그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있을 경우 한정이다.

 

  패배하는 싸움, 승리가 없는 싸움에서의 맛은 쓸모없다. 필요한 건 싸움 뒤에 오는 승리. 싸움의 맛이 아무리 좋아도 패배한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더 나은 싸움의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일단 적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으로 그는 만족하기로 한다. 다음에 만날 때는 확실히 제압한다. 그때는 절대 패배하지 않게 확실히 준비해서 온다.

 

  그렇게 결심한 경묵은 일단 탈출하기로 결심 한다. 보다 확실하고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해 인질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는 치수가 지키고 있던 방을 기억해낸다. 그 안에서 분명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만약 인질을, 그것도 여성을 이용한다면 일이 쉽게 풀리리라 여겼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 쪽의 인질에 감정이 더 약해지기 때문도 있지만 주혁에게 실패의 책임을 지기 전에 여자를 바쳐 그걸 무마하기 위함도 있었다. 일석이조. 그러기 위해선 여자 인질이 필요했다.

 

  그가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허벅지를 스친 총상은 가벼워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역시 걸리적거린다. 어깨도 마찬가지였다. 총상을 입고도 설전과 호각으로 맞섰지만 역시 그 데미지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설전과의 싸움으로 무리했던 어깨의 통증이 뒤늦게 배로 돌아와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섬광탄을 터트리고 놈들이 쫓아올까 부리나케 뛰었던 것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비틀거리던 경묵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경묵은 그 남자를 본다. 낯선 남자. 아무래도 이곳 마트 내부의 인원처럼 보인다. 건장한 체격이 심상치 않다. 숱한 사지를 넘나들던 경묵의 감이 말한다. 지금 저 녀석은 위험하다. 어떠한 무기를 가지지 않고 있음에도 경묵의 감은 앞의 상대를 보고 경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경묵은 자신의 상태를 돌아본다. 저런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놈에게 지금 상태로 정공법은 무리다. 그렇다면? 그는 재빨리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주먹이 경묵에게로 날아간다. 경묵은 코트 안에 넣은 손의 팔꿈치를 이용해 주먹을 막는다. 그와 함께 반대편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노린다.

 

  하지만 남자는 그 반응을 예상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발로 비어있는 옆구리를 찬다. 일반사람이 차는 발차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다. 저 자세에서 이런 묵직하고 날카로운 발차기를 날릴 수 있는 실력이라니. 경묵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몸이 흐트러지진 않는다. 그는 재빨리 품에서 섬광탄을 꺼낸 다음 내지른 주먹을 거둬 핀을 뽑는다. 경묵은 섬광탄을 바닥에 던지고 뒤로 물러선다. 상체를 숙이고 얼굴을 팔로 감싸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여기서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경묵이 던진 정체불명의 물체를 경계하며 뒤로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알지도 못한 것을 괜히 건드려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까. 생사가 걸려있다면 당연히 더욱 조심스레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의 남자는 달랐다. 그는 날렵하게 그걸 손으로 캐치해내더니 바로 자기 등 뒤로 던져 버린다. 섬광탄이 남자의 등 너머 멀리 날아가다 빛을 토해낸다. 오히려 빛을 등지고 싸우게 된 남자. 빛을 피하느라 바쁜 경묵의 복부를 향해 어퍼컷을 날린다.

 

  갑자기 대지에서 돌덩이가 솟아올라 배를 강타한 느낌이다. 예상치 못한 습격이었지만 경묵은 어퍼를 하느라 훤히 비어있는 남자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날카로운 주먹이 남자의 턱에 적중한다. 머리가 흔들린 남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진다.

 

  섬광탄의 빛이 사라지자 경묵은 앞의 남자를 향해 발을 내리 찍는다. 남자는 옆으로 굴러 간신히 무릎을 대고 일어나려 하지만 머리에 울리는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경묵도 어깨의 총상, 허벅지의 부상, 복부의 충격 때문에 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남자보다 훨씬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경묵이 무릎을 아직 다 일어서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있는 남자를 향해 옆차기를 한다. 경묵의 발이 남자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간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옆차기를 방어한다. 날카롭다. 막아낸 팔이 방어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데미지가 쌓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충격 덕에 머리가 말끔해지는 기분이다. 남자는 일어서면서 그와 동시에 다리를 들어 하이킥을 날린다. 어둠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매섭다. 놀랍게도 경묵은 눈으로 봐도 보이지 않을 날카로운 하이킥을 어둠 속에서 막아낸다. 그는 팔이 저릿함을 느낀다. 각자 한발 씩 물러서는 경묵과 남자,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셈이었다.

 

  경묵은 역시 위험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섬광탄을 받아내어 뒤로 던질 줄이야. 보건데 위급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놈이다. 거기다 격투 실력도 수준급. 이곳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있었다니. 이래서는 계획에 지장이 생긴다. 그렇게 한참 머리를 굴리는 경묵. 하지만 그건 앞의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름 격투기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그런 자신과 호각, 아니 그 이상을 경묵이 보여주자 남자는 당황한다. 설마 밖에 이런 놈들이 바글바글했다는 말인가? 남자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박재연. 아까전만 해도 치수가 지키고 있던 방의 일원이었다.

 

  그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가 경묵이 문을 향해 권총을 쐈던 때로 간다. 경묵이 발사한 총알은 다행히도 아무도 맞지 않았다. 다만 수진과 지애가 기겁을 했고 정태훈이 보고 욕설을 해댄 것만 빼면 말이다. 그 후 문 밖에서는 총성이 울렸고 그 후 치수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점점 멀어져 간다.

 

  문 안에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어찌 행동해야 되는가. 불이 난 건물에 비상구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된 느낌이었다. 특히 수진은 무서웠다. 치수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상황은 치수가 총에 맞고 끌려가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문을 열어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지애도, 태훈도 마찬가지였다. 문을 열고 싶지만 위험하다. 아니, 무섭다. 밖에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공포에 눈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기에 그들은 치수가 위험에 빠진 줄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세 사람을 빼곤 말이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겠어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놀랍게도 영우였다. 어린 꼬마의 당돌한 제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본다. 미친 거 아닌가? 지금 밖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그 영우의 말을 곁에 있던 보람이 거든다.

 

  “나도 영우 생각과 같아. 위험하겠지만 지금은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보람 언니!”

 

  지애가 기겁을 하지만 보람은 오히려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우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밖의 적은 치수를 제압하고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총을 쐈어. 놈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거지. 거기다 비명까지 질렀으니 빼도 박도 못할 테고. 그럼에도 놈은 여기로 쳐들어오지 않았어. 마치 그럴 우선 가치가 없다는 듯. 아마 여기에 전투를 할 수 없는 인원들이 모여 있다는걸 눈치 챈 거겠지. 즉, 전력감이 아닌 우리를 놈은 얼마든지 찾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래서 놈이 우리의 위치를 못 찾도록 이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시간을 벌 수 있겠죠. 치수형에겐 미안하지만…”

 

  수진은 영우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치수가 위험에 빠졌을 때 자기는 문조차 여는 것이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었으니. 지애도 생각해보니 영우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동의했다. 무섭다고 여기에 계속 웅크리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들켜버린 은신처는 더 이상 보호구역이 아니다. 한시 바삐 떠야된다.

 

  그러나 태훈만은 그 의견에 반대표를 던졌다.

 

  “어린놈의 새끼가 무슨! 지금 밖이 어떤 줄 알아!? 그 잘난 체 하던 새끼도 꼼짝 못하더니 끌려갔잖아! 그런 상황에서 뭐? 이동? 이동하다가 잡히면? 그러다 죽으면? 개죽음이잖아! 생각을 좀 하고 말해, 생각을!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뭐, 조용히 붙잡히기라도 하지, 이동하다 걸리면 괘씸죄 추가야, 이놈새끼야!”

 

  영우를 향해 거친 언어를 쏟아 붓는 태훈. 그럼에도 모자랐는지 그는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한다.

 

  “그러게 내가 진즉에 응? 저 쪽에 붙자고 말을 했을 때 들었어야지! 괜히 말 안 들었다가 저 지경이 된 거 아니야! 저 지경이! 허이구! 내 팔자야. X같은 새끼들 만나서 그냥 내 인생이 아주 X같이 되었구나.”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양반이다. 보람은 다시금 이런 남자의 행태에 할 말을 잃는다. 따귀를 올릴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해 그저 경멸의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영우도 이렇게 채신머리없는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어서 빨리 설전형, 두호형, 영혜누나가 보고 싶었다. 태훈이 징징거리는 와중에 재연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나가도록 하죠. 적어도 그게 좋아 보입니다.”

 

  “뭐? 새꺄! 방금 내가 한 말…”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습니다. 그럼 아저씨는 여기 그냥 계시면 됩니다. 이동할 사람만 이동하면 끝 아닌가요?”

 

  재연의 말에 태훈은 할 말을 잃는다. 보람은 재연의 말을 듣더니 이번엔 태훈을 두둔했다.

 

  “하지만 저 아저씨의 말도 일리가 있어. 이동 중에 붙잡히게 되면 굉장히 위험해.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 것만 못하지.”

 

  “제가 앞장서겠어요. 설전 형이랑 영혜누나가 잘 가르쳐주고 저도 나름대로 이곳, 저곳 돌아다닌 덕분에 마트 내부에 관해선 훤히 알고 있어요.”

 

  영우가 자신 있게 나선다. 그러자 수진과 지애가 만류한다. 가뜩이나 어린 아이가 싸움터의 전방에 서겠다고 한다면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허나, 영우는 단호했다.

 

  “체구가 작은 제가 앞장 서는 것이 적에게 들키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거기다 사격도 쉽지 않을 거고요. 여러모로 제가 앞장 서는 것이 유리해요.”

 

  “하지만, 너무 위험해…”

 

  수진이 역시나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영우의 결심은 변함이 없다.

 

  “어차피 위험한 건 매 한가지잖아요. 그렇다면 좀 더 살 가능성이 있는 것을 택하겠어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후방을 맡죠.”

 

  재연이 영우가 말을 마치자 손을 들고 말한다. 그는 영우의 말이 지금으로썬 최선의 선택임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했다. 멍청하게 이곳에 있어봤자 적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우리가 여기를 떠나 이동하게 되면 적어도 우리를 찾기 위해 놈이 헛걸음을 하게 되는 것이니 빅엿을 멋지게 날려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태훈은 그 의견에 반하고 있었다.

 

  “이…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하려고 그래? 네가 뭔 능력이 있다고! 응?”

 

  “걱정 마요, 아저씨. 우리들의 위험에 아저씨를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은 없어요. 아저씨도 아저씨 나름 살 궁리를 하셔야죠. 여기 안전하게 아저씨를 남겨두고 갈 테니 아저씨는 알아서 잘 처신하시면 됩니다. 잘 하실 수 있으시죠?”

 

  말문이 막힌 태훈. 그러거나 말거나 영우는 한시 바삐 이동하는 게 좋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람도 수진과 지애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난다. 보람은 영우를 바라본다. 분명 두호, 정제와 함께 있을 때엔 똑 부러지긴 했지만 어리광이 많고 애정이 부족했던 아이. 하지만 여기에 오고 나서 그는 점점 변하고 있었다. 보람은 엷게 미소를 짓는다.

 

  영우가 문을 열고 밖을 살핀다. 문 앞에는 시체 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아니면 사라진 치수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할까. 오묘한 감정 두 개를 가슴 속에 넣으며 영우는 시체에게 다가가 소총을 빼낸다.

 

  수진과 지애가 보람을 부축하면서 나오고 보람은 방긋이를 안고 주변을 살핀다. 그 다음을 재연이 따라 나오면서 문을 닫는다. 문을 닫기 전 재연은 태훈에게 얌전히 잘 있으라는 말을 남긴다. 사람들은 제각각 문 앞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살짝 기겁을 하지만 이내 먼저 앞서간 영우를 따라가느라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영우는 제일 먼저 앞장서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한다. 일행은 계단 입구에 조심스레 옹기종기 모인다. 영우가 소총을 재연에게 넘겨준다. 자신보다 재연이 더 잘 쓰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일행들에게 자신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손짓을 할 테니 그에 맞춰서 이동하라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영우의 말에 끄덕거리고 있던 찰나, 등 뒤에서 누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태훈이었다. 숨소리만 거친 것이 아니라 발소리도 복도를 울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 보단 미간을 찌푸렸다. 보람이는 냉랭한 목소리로 잘 쫓아 오셨네요 라고 말했다. 태훈은 숨을 고르더니 역시 혼자 있는 건 위험하다며 같이 가는 게 좋겠다고 대답한다.

 

  “허억… 허억… 역시… 남자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후우… 안심이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순간 멀리서 총성이 울린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모두 놀라 입을 가리고 헉- 하는 소리를 내었다. 영우는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한다. 더불어서 만약 저기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다면 도망칠 기회는 지금 뿐.

 

  영우가 손짓을 하면서 3층 계단을 오른다. 수진과 보람, 지애가 뒤를 따르고 그 다음 태훈이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재연은 그들을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 태훈이 뭐하냐고 빨리 오라고 재촉하자 재연은 들고 있던 소총을 태훈에게 넘긴다. 얼떨결에 소총을 받은 태훈이 뭐하는 거냐고 묻자 재연은 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다.

 

  “아저씨, 저 대신 후방을 부탁할게요. 전 치수 형을 데리고 오겠어요.”

 

  “뭐? 야 너 무슨…!”

 

  “치수 형이 우리를 지키려다가 그렇게 되었는데, 솔직히 아무것도 못한 저에 대해 화가 나요. 아저씨가 오지 않았다면 올라갔겠지만, 아저씨가 왔으니 부탁드릴게요. 총을 들고 가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기는 저 일행에게 있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재연은 재훈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총성이 난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당돌한 녀석이다. 재훈은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며 3층으로 올라간다. 일행을 뒤로한 채 재연은 총성이 난 곳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간다.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일지도. 하지만 모두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지금 자기 혼자 보호받고 있을 순 없다고 느낀 재연이었다.

 

  그가 조심스레 걸어가는 동안에도 총성은 여러 번 울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지만 함부로 뛰어갈 순 없다. 무기가 없는 그에게 저돌적인 행동은 마이너스다. 상황을 파악하며 주의 깊게 접근해야만 한다.

 

  그런 그의 앞에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 빠르진 않았지만 소리를 보건데 다급해 보인다. 재연은 긴장하면서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머지않아 재연의 눈앞에 낯선 남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척 봐도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낯선 인물. 일단 함부로 나서지 말고 조용히 기다린다. 하지만 상대방은 생각이 다른 듯 보였다. 품안에 손을 넣는 남자. 재연은 선수를 뺏겼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지금, 재연과 경묵은 서로의 데미지를 회복하며 조심스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둘 다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결국 결판을 내려면 일격으로 끝내야 하는 상황.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그건 패배와 더불어 목숨까지 위험해 질 수 있다.

 

  숨 막히는 침묵이 둘 사이의 시간을 잡아 묶는다. 시간이 잡혀버려서인지 그 공간에만 시간이 일그러져 느리게 흐른다. 경묵은 숨을 고른다, 격통을 컨트롤하기 위해. 재연도 숨을 고른다, 공격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순간 재연의 숨이 흐트러진다. 아주 작은, 혹시나 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파고 든 틈새였다. 그 틈새를 경묵이 날쌘 주먹을 지르며 파고든다. 재연도 발을 들어올린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경묵의 주먹은 재연의 발이 올라오기도 전에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발이 올라오기 직전 주먹이 먼저 재연의 얼굴에 도착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욱신거리는 통증. 그건 이미 한계를 넘어 움직인 경묵에게 보내는 정지 신호였다.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디딘 다리는 총상을 입은 허벅지로 인해 말을 듣지 않았고 내지른 주먹은 어깨의 상처가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경묵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재연의 얼굴을 스친다. 아니, 정확히는 발을 내리고 자세를 낮춘 재연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간다. 재연의 주먹이 경묵의 복부를 강타한다. 강력한 일격. 하지만 경묵은 뒤로 물러날 뿐 쓰러지진 않는다. 경묵이 배를 감싸며 물러선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재연은 일격에 상대를 쓰러뜨릴 생각이 없었다. 그가 노린 것은 이격. 첫 번째 일격은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함, 그가 노린 진짜 공격은 이 내리찍기였다. 머리 보다 위로 올라간 재연의 발이 그대로 경묵의 뒤통수를 강타한다.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며 쓰러진 경묵. 그는 그 후 움직이지 못한다.

 

  재연이 뒷걸음질 치더니 주저앉으며 한숨을 쉰다. 강력한 적이었다. 이런 놈들과 싸웠단 말인가, 치수형은? 치수형이 손도 못 썼던 게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재연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다. 꽤 오랫동안 쉬었지만 아직 녹슬지는 않았구나. 재연은 그 사실이 왠지 안심이 되었다.

 

  재연과 싸웠던 경묵도, 그리고 같이 지낸 설전네 일행도 알지 못했던 사실. 재연은 격투 그랑프리 한국 청소년리그 준 우승자였다.

 

 

 

  설전은 치수의 상태를 살핀다. 피를 많이 흘린 상태로 격하게 움직여 체온이 굉장히 낮아져 있었다. 과다출혈 및 저체온으로 상태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현재 담요 및 온수매트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은 막고 있지만 문제는 출혈 쪽이었다. 상처를 식염수로 씻어내고 소독한 후 지혈제와 붕대로 출혈을 얼추 막았다.

 

  그러나 피를 얼마나 쏟아내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수술이나 수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과다출혈로 인한 상태 악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부디 단순히 기절만으로 끝나기를 비는 수밖에.

 

  설전은 불안하다. 상처에 얼음찜질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괜히 몸을 덥힌다고 담요와 온수 매트를 했는데 더 위험한 것은 아닌가? 이런 심한 총상을 처음 겪기 때문에 그는 난감했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생명이 꺼지게 될까봐 불안했다. 그는 계속 오늘 아침 순찰을 제대로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만약 순찰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사단이 나진 않았을 텐데.

 

  그가 머리를 싸매며 치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 갑자기 거대한 폭발음이 들린다. 뭐지? 설전이 소총을 집는다. 그는 폭발음이 난 쪽을 본다. 마트의 정문 입구다. 순간 설전의 머리에 두호와 영혜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치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설전은 입구를 향해 달려간다.

 

  입구에 다다르자 영혜가 보인다. 그녀는 입구 안쪽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 주저앉은 채 떨고 있었다. 설전이 영혜에게로 다가가 괜찮냐고 묻자 영혜는 설전을 끌어안는다. 설전이 무슨 일이냐며 재차 묻지만 영혜는 고개를 젓는다.

 

  “시발, 설전아. 일로 와봐.”

 

  “유두! 괜찮냐! 무슨 일이야?”

 

  “영혜는 거기 놔둬. 보면 안 되니까.”

 

  두호의 욕설이 입구 밖에서 들려온다. 설전은 영혜에게 잠시만 여기 있으라고 말한 다음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는 두호에게 무슨 일이냐고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두호가 고개를 젓는다.

 

  “한 놈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다 죽어가기에 내가 지혈제를 가져 온다고 했거든. 그런데….”

 

  두호는 점점 패닉에 빠지는 남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마트 안으로 들어가 약을 가져오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의 상태는 두호의 생각보다 꽤 심각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쳐대며 발버둥을 치던 남자. 두호는 바삐 움직여야겠다면서 남자의 곁을 떠난다.

 

  그런데 그때 남자는 이렇게 죽는 건 아깝다고 울분을 토한다. 죽는다면 다 같이 가겠다며. 그는 품에서 수류탄을 꺼낸다. 영혜가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고 두호는 그만 두라며 총을 겨눈다. 그러나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광기 어린 미소를 보이며 핀을 뺀 수류탄을 가슴에 품는다. 그는 안전손잡이에서 손가락을 놓는다.

 

  두호가 영혜를 잡아끈다. 그는 뛰다 못해 옆으로 떨어지듯 영혜를 밀친다. 얼마나 강하게 밀쳤는지 영혜와 두호는 서로 엉키며 무려 3m 이상 마트 안으로 미끄러진다. 그 와중에 두호는 영혜를 안고 수류탄의 범위 밖으로 몸을 돌린다. 사람들은 두호와 영혜를 보고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늦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뒤에 들리는 폭음. 그 후 소리는 잠잠해진다. 무서울 정도로 아주 조용하게. 영혜는 무서워서 떨고 있었고 두호는 영혜를 앉히고 괜찮냐고 묻는다. 영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몸을 떨며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두호는 나가서 상황을 지켜 볼테니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두호. 그가 본 것은 폭발 이후 남겨진 수라장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것이 그 단편이겠지. 거기 남아있는 건 사람이었던 것들의 잔해들. 피와 먼지로 뒤범벅이 된 고깃덩어리들의 향연이었다.

 

  설전은 주저앉는다. 머리를 싸매고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뇌한다. 안에서 영혜가 설전과 두호에게 괜찮으냐고 묻지만 설전은 거칠게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설전은 아차 싶었다. 현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제길. 설전이 못난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실망한다.

 

  설전은 몰랐겠지만 이 폭발로 인해 마트 내부의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러나 이 전쟁의 승리로 설전 일행은 얻은 것이라곤 별거 없었다. 비루한 목숨과 거대한 성 하나 뿐.

 

  현실에 강림한 지옥의 단편만이 이 전쟁의 결말을 말해줄 뿐이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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