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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23 - 공성전 (4)
작성일 : 19-11-10 01:53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1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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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폭발의 파편들이 설전의 등 위로 지나간다. 몇 개는 설전의 발, 종아리, 허벅지, 등, 허리를 스쳐지나간다. 다행스럽게도 재빨리 반응한 덕에 폭발에 휘말리는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몸을 엎드리면서 파편이 닿는 면적을 최소화했기에 세 사람의 몸에 파편이 박히는 일도 없었다.

 

  설전이 조심스레 일어난다. 어떻게 되었는지 뒤를 돌아본다. 그때 팔을 다친 남자 하나가 어설프게 총을 들고 이쪽으로 온다. 설전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는다. 그는 들고 있던 소총을 들려 했지만 늦었다. 이미 남자 쪽에서 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적을 향하는 아군의 총성은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자신을 향하는 적의 총성은 이리도 불안하고 무서운 걸까. 저 총성이 죽음을 향해 출발하는 뱃고동일지도 모르니까. 설전이 볼품없이 엉덩이를 끌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신에게 날아든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남자는 팔을 다쳐서 그런지 총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조준점도 상당히 엇나가 있었다. 그래서 조준으로 사격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연발로 총알을 쏴대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러다간 언젠간 맞는다. 설전이 소총을 들어 반결을 하려는 찰나였다.

 

  설전의 등 뒤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와 함께 총을 쏘던 남자의 허벅지에서 피안개가 피어오른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쓰러지려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어지는 총성에 나머지 온전한 어깨조차 부상을 입는다. 남자가 바닥에 넘어지더니 머리를 부딪쳐 기절한 듯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전을 뒤를 돌아본다. 어느새 영혜가 일어나서 총을 견착한 채 앞을 보고 있다. 영혜의 총구에선 하얀 연기가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설전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소총을 들고 앞으로 향한다.

 

  괜찮은 듯 보였지만 영혜는 사실 손이 떨렸다. 그것은 소총의 반동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쏘았다. 그 사실이 영혜의 손을 떨리게 만들었다. 각오를 굳혔고 총을 쏘기로 결심했을 때 이런 상황이 오리란 것도 납득했지만 정작 자신의 공격 때문에 쓰러진 사람을 보니 왠지 마음이, 몸이 이상했다.

 

  괴물들을 쏠 때랑은 틀리다. 예전엔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것들은 괴물이었다.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보였기에 거침없이 총을 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적은 다르다. 하는 짓거리가 괴물 같은 놈들이긴 해도 인간이다.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인간. 그런 인간을 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만약... 정말 만약, 사람을 죽이는 순간이 온다면?

 

  영혜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젓는다. 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내 혼란스러운 감정보다 마트의 사람들, 영우가 더 중요하다. 영혜가 영우를 떠올리자 떨림이 점차 멎어간다. 숨소리도 조금씩 돌아온다. 그제야 그녀는 설전과 두호가 이미 모퉁이에서 적을 사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전과 두호는 모퉁이에서 적의 총알을 피하며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이미 어깨를 다친 한 남자의 허벅지, 다리, 팔을 공격해 무력화 시켰으며 다리를 다친 남자들 중 한명도 어깨를 쏴서 소총을 못 들게 만들었다.

 

  남아있는 인원은 2명. 그러나 이미 아군이 당했기 때문에 적의 저항은 완강했다. 쉴 새 없이 총알을 퍼붓고 있는 적들. 설전과 두호는 쉽게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총알이 떨어지길 기다려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설전 일행을 조급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었다.

 

  “그냥 소총을 들이밀고 쏴버릴까?”

 

  “한 놈은 맞겠지? 뭐 그런 거냐?”

 

  두호의 의견에 설전이 맞받아친다. 두호는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보라고 윽박지른다. 설전은 자신의 가슴에 위치한 수류탄을 만지더니 중얼거린다.

 

  “수류탄을 깔까?”

 

  “X발. 결국 살생을 해야 하나.”

 

  “나도 시체 보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을 수는 없잖아.”

 

  “하... 집 앞에 시체가 있는 것만큼 찝찝한 것도 없는데.”

 

  “그럼 마트 주변의 해골들은 뭐 모조품이냐. 시체가지고 꺅꺅 거리지마.”

 

  “지금 그런 논쟁할 상황 아니잖아! 멍청한 다이새끼야!”

 

  두 사람이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전전긍긍하는 동안 갑자기 적들 측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모퉁이를 향해 쏟아지던 총알세례가 멈춘다. 설전은 무슨 일인가 싶어 모퉁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다. 남자 하나가 팔을 만지며 쓰러져 있고 다른 남자 하나는 옥상을 향해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으나 기회다. 설전은 바로 마지막 남은 남자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남자의 어깨에서 피보라가 일더니 소총을 놓친다. 그걸 놓치지 않고 설전은 연달아 방아쇠를 당겨 상대의 손, 팔등을 공격해서 더 이상 소총을 집을 수 없게 만들었다.

 

  두호가 앞으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놈들의 몸에서 소총을 떼어놓는다. 설전도 두호 뒤를 따라가면서 옥상 위를 바라본다. 위에는 권란이 담배를 물고 소총을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전은 미소를 띄며 중얼거린다.

 

  “담배 좀 끊으시라니까.”

 

  권란은 설전이 무사한 걸 확인한 뒤 다시 옥상 안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그녀는 난데없는 아래의 폭음과 이어지는 총성에 아래를 정찰하러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설전과 두호, 영혜가 적과 대치중에 있었다. 그녀가 소총을 들어 아래를 저격한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할 일을 마친 권란은 다시 옥상 입구를 향해 소총을 들고 경계태세를 취한다.

 

  어머니가 무사한 것을 알고 설전은 내심 안도한다. 옥상은 아직 점거되지 않았고 어머니는 무사하시다. 아직 마트는 완전히 점령당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설전이 입구 쪽으로 가자 영혜와 두호는 수거한 소총들의 탄창을 다 빼버리고 소총은 도로로 던져버렸다.

 

  세 사람은 정문 입구 쪽으로 모인다. 입구는 어떤 폭발에 의해 훤히 뚫려 있었으며 곳곳에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마트 안쪽에 지게차는 반파되어 나뒹굴고 있는 형국. 어떻게 놈들이 여길 공격해 들어왔는지 잘 알 수 있는 배경이었다.

 

  설전은 뒤를 돌아본다. 쓰러진 남자들의 상태를 보건데 전부 다리와 팔을 다쳤기에 소총을 주우러 가거나 제대로 쏘진 못할 듯 보였다. 그래도 불안한건 매한가지. 설전은 불안의 싹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두호에게 어깨를 두드리더니 여기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뭐? 나보고 여길 맡아달라고? 넌?”

 

  “난 안으로 들어가야지. 그리고 쓰러져있다고는 해도 저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또 이놈들 말고 일행이 밖에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고. 감시하는 사람이 필요해.”

 

  “괜찮겠냐?”

 

  “안 괜찮지, 당연히. 하지만 너보다 내가 더 마트 내부에 대해 잘 알고 움직이기 편할 거야. 만약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내 쪽이 더 조치하기 쉽겠지. 게다가 어둠 속에서 몰려다니는 것보다 따로 다니는 게 더 나을지 모르고. 되도록 최소인원으로 마트 안을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아.”

 

  “하긴 그렇겠군. 그래도 고작 너 혼자 간다니 그래도 불안한데.”

 

  “불안할 거 없어. 이런 일 익숙하니까.”

 

  설전이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그러더니 그는 이번엔 영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영혜는 설마 하고 설전을 쳐다본다. 하지만 역시 설전의 입에선 영혜가 예상한 말이 튀어나온다.

 

  “영혜도 여기 남아. 남아서 두호랑 같이 여기를 지키고 있어.”

 

  “왜요! 저도 따라 가겠어요. 오빠 혼자 가겠다니 너무 위험하잖아요.”

 

  방금 설전과 두호의 대화 중 혼자 가니 뭐니 하는 소리는 역시 설전 혼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였다. 영혜는 그건 너무 위험하다며 설전의 의견을 만류한다. 하지만 설전은 단호하다. 그는 영혜와 같이 가지 않겠다며 단칼에 같이 가겠다던 그녀의 제의를 거절했다.

 

  “예비 병력이 있을지 모르잖아. 한 명이 경계를 서는 것보다 두 명이 서는 것이 훨씬 유리해. 게다가 영혜도 아직 어두운 마트 내부에 완전히 익숙해진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냥 좀도둑놈들 혼내주러 가는 건데, 뭐.”

 

  그러나 영혜의 걱정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설전을 혼자 보내는 것, 그리고 영우의 무사한 모습을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그 두 가지 걱정을 전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하지만 설전은 그저 괜찮다는 말로 그녀를 여기 놔두려고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설전의 입장에선 이게 최선이었다. 그는 더 이상 영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트 내부는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있을 지도. 가뜩이나 사람을 처음으로 쏜 영혜인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영혜의 무언가가 붕괴될지 모른다.

 

  사실 그는 두호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러는 편이 안전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영혜를 여기 혼자 놔두고 가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역시 입구를 경계하는 쪽의 최소 인원은 2명이 있는 것이 맞다. 여차하면 한 사람이 죽는다 해도 또 다른 사람이 마트 내부로 들어와 위험을 알릴 수 있으니까.

 

  결국 두 사람을 여기 놔두는 게 최선이다. 설전은 마트 내부에 사람들이 생존해 있고 저항하고 있다는 일말의 희망에 자신을 걸기로 한다. 설전이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영혜가 붙잡는다. 영혜는 설전의 상체를 당겨 입을 맞춘다.

 

  당황하는 설전. 뺨이 붉어진 설전이 당황해하고 두호는 짐짓 못본 척 딴청을 부린다. 영혜는 입술을 떼더니 단호하게 그에게 말한다.

 

  “살아서 영우를 데리고 와요. 이건 그 심부름 값이에요.”

 

  “자기 동생 때문에 그런 거였어? 하하하... 이기적인 아가씨네.”

 

  설전은 영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그리고 그는 소총을 들고 마트 안으로 들어간다. 영혜는 다시금 처음 여기 왔을 때를 떠올린다. 설전이 마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대형 마트 괴물의 입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치수는 문 밖에 나와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의 문은 닫고 자신은 복도에서 적을 경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어봤자 저 사람들은 휘말릴 뿐이다. 되도록 멀리, 그렇지만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왠지 더 이상 저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있는 밖과 안은 완전히 단절된 세상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있으면 안이 위험해진다. 총을 들고 사람을 쏴 죽인, 바깥의 존재인 자신은 안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뒤를 돌아 자신들을 노리던 적의 시체를 본다.

 

  아직도 눈을 뜬 채 그는 천장을 보고 있다. 왠지 그 모습이 섬뜩해서 치수는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이것이 밖의 세상. 총을 든 치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목구멍으로 마른 침을 삼킨다. 침 삼키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 그는 매우 거슬렸다.

 

  뒤가 자꾸 서늘하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으려 애쓴다. 한 번 봤으니 됐다. 괜히 계속 봐봤자 머리만 복잡해지고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다. 치수는 되도록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19세의 소년이, 그것도 총을 들고 사람을 쏴 살인자가 된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평온해질 리 없었다.

 

  그의 어깨에 차가운 손이 올라온다. 서늘하고 차가운, 그리고 끈적한 손과 더불어 얼굴 옆으로 얼어붙을 듯 냉랭한 입김이 그의 뺨을 간질인다. 더럽고 불결한 입김이 그의 뺨에 닿을 때마다 어떤 소리가 귀를 울린다. 아주 낮고, 조용하고, 억울하고, 증오에, 가득, 차있는.

 

  ‘나를 죽이고, 안심했어?’

 

  치수가 뒤를 돈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확인한다. 총을 들고 있던 손도 떨려서 총구는 심하게 흔들거렸다. 그러나 돌아본 그곳에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손도, 자신을 향해 입김을 내뿜던 그 무언가도 없다. 시선이 닿은 그 위치에는 오로지 쓰러져 있는,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 있는 이름 모를 시체의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치수는 숨을 고르려고 했지만 거칠어진 숨은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오싹한 어깨의 감촉, 서늘한 뺨의 감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연신 젓더니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죽은 남자에게 간다. 허공을 응시하는 눈, 그 눈을 향해 치수는 손을 뻗는다.

 

  저 눈이 갑자기 움직여서 나를 보면 어떡하지?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치수의 등줄기를 자극한다. 등줄기에 스며든 공포는 몸에 퍼져 그의 손을 떨게 만든다. 그가 시체의 눈에 손을 가져다 대기 직전, 시체가 갑자기 눈을 움직여 치수를 노려보더니 입을 연다.

 

  ‘죽여 놓고 이제 와서 뭐하는 거야. 이런다고 죽은 게 살아나? 넌 날 죽였어. 죽이고 싶어서. 그래서.’

 

  치수가 손을 뗀다. 다행히 비명을 지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시선을 시체의 얼굴로 옮겼다. 눈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 허공을 보고 있었으며 입은 벌려져 있지만 움직인 흔적은 없다. 이마의 피도 이제 더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눈을 비빈다. 눈을 세차게 비빈 다음 다시 본다. 역시 시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치수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심장이 빠르게 뛰다 못해 너무 뛰어 심장이 과부하로 멈춰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가슴은 이렇게 뛰는데 덥기는커녕 서늘하다. 치수의 귀에 자꾸 아까 들렸던 환청이 메아리친다.

 

  다시 손을 내민다. 아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시체에 손을 대자 알 수 없는 묘한 촉감이 그의 피부에 닿는다. 치수는 천천히 그의 눈을 감긴다. 조심스레 손을 떼자 쓰러진 시체는 그제야 비로소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치수는 숨을 크게 내쉰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왜일까. 자꾸 가슴 언저리, 그 어딘가에서 검고 서늘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타박, 타박.

 

  난데없는 소리에 치수는 뒤를 돈다. 소리가 난 쪽, 반대편 복도를 향해 총구를 돌린다. 어두운 복도의 끝에는 아무도 없다. 치수는 다시금 그 환청과 환각이 떠오른다. 미쳐가고 있는 것인가. 치수의 몸이 점점 떨려온다. 그의 가슴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던 어떤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등 뒤의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치수에게 다시금 뭔가 이야기를 꺼낸다.

 

  ‘또 쏘고 싶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등 뒤의 어둠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어떤 무언가에 의해. 치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앞으로 당긴다. 사실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그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시체만 있을 뿐. 그럼에도 치수는 고개를 빳빳이 세워 앞을 향해 힘을 주었다.

 

  타박, 타박

 

  또 다시 환각인가. 치수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치수는 자신이 점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방금 전만 해도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할 일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어둠이 점점 자신을 좀 먹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치수는 그 때 그 사격이, 자신의 정신을 좀 먹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땡그랑.

 

  복도를 울리는 청명한,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 그 소리는 복도에 메아리치면서 치수의 정신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떨어지는 어떤 물체. 그건 명백히 누가 복도를 향해 던진 물건이었다. 뭐지? 저게? 치수는 저것도 환각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데구르르 자신을 향해 굴러오고 있었으니까.

 

  순간 그 물체가 폭음 소리를 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치수의 머리에서 그 물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다. 폭발, 폭탄, 수류탄. 치수의 머리에서 단어가 떠오르자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 엎드린다. 그건 본능적인, 무의식이 이뤄낸 행동이었다. 치수는 머리를 숙이고 파편들이 날아갈 때 까지 기다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일어나서 자세를 낮춘 다음 소총을 들고 수류탄이 폭발한 곳을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폭발의 흔적 따윈 없었다. 오로지 보이는 건 짙은 어둠에서조차 느껴지는 하얀 연기. 치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수류탄이 아니었다. 수류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연막탄이었다. 치수는 위험을 느껴 검지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탕-

 

  연기를 뚫고 총알 하나가 치수의 왼쪽 어깨를 꿰뚫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충격, 고통에도 불구하고 소총을 놓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과 함께 치수의 총알이 반대쪽으로 연기를 뚫고 사라진다. 치수는 타오르는 격통 때문에 잠시 소총을 내린다.

 

  그리고 마치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여러 발의 총알이 치수의 몸을 꿰뚫는다. 왼팔, 허벅지 옆을 뚫고 그의 옆구리를 스쳐지나간다. 결국 치수는 이번을 견디지 못하고 소총을 놓친 채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가 낮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한다.

 

  그러자 연기를 뚫고 그 총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채경묵은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더니 치수에게로 다가간다. 치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소총을 집었지만 경묵의 발에 짓이겨진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치수. 경묵은 한껏 그 고통을 느끼게 해준 다음 치수의 손을 발로 차버리더니 바닥의 소총을 뒤꿈치로 차서 자기 뒤로, 치수와는 멀리 떨어뜨려 버린다.

 

  치수는 그런 경묵에게 저항하기 위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경묵은 능숙하게 치수의 주먹을 부여잡는다. 예상치 못한 방어에 치수가 당황하는 사이 경묵의 주먹이 오히려 그의 얼굴을 강타한다. 치수의 입안에서 쓰라린 감각과 함께 철분 맛이 느껴진다.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2중으로 충격을 받은 치수. 덕분에 머리가 울린다. 하지만 경묵은 그런 치수를 배려해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치수의 멱살을 잡고 상체를 들어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갈긴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치수의 입에서 선혈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몇 번의 타격이 계속된 다음 경묵은 품속에서 리볼버계열 권총 하나를 꺼내 그의 머리에 들이댄다. 치수는 하도 맞아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머리에 닿은 물체가 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위험한 사람이다. 저항해야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온 몸의 고통이 그를 마비시켜 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좀 길들여졌겠지?”

 

  그렇게 사람을 때리고도 지치지 않았는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깔끔한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권총의 총구로 치수를 여러 번 찌르며 말을 이어간다.

 

  “옥상에서 우리를 저격하던 녀석의 동료치곤 동작과 작전이 허술해. 초짜인가?”

 

  그는 권총으로 치수의 뺨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치 신기한 물체를 만져보는 그런 행동이었다.

 

  “뭐, 덕분에 난 수월하게 한 놈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지. 참 운이 좋았어. 근데 궁금한 게 너는 왜 이런 후미진 곳에 어설프게 숨어 있었을까.”

 

  경묵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치수 너머로 자신의 부하 하나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망한 부하,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한 치수의 존재. 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뭔가 어색하고 어설픈 행동거지. 주변 배경.

 

  그는 싱긋 미소 짓는다.

 

  “전투인원이 부족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그나마 총질을 할 수 있을 법한 놈에게 총을 쥐어주고 비전투인원을 지키라고 했겠지. 여기 이 복도 어딘가의 방에서 말이야.”

 

  경묵의 말에 치수가 당황한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입으로 헉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자 경묵은 그러면 안 된다며 혀를 찼다. 그는 총구로 그의 뺨을 짓누르듯 누르며 말한다.

 

  “안 돼. 핵심을 찔렸다고 해도 너무 정직한 반응이잖아. 그러면 적의 말을 긍정해버리는 꼴이라고. 너의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반응 때문에 너의 동료들이 다 죽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야.”

 

  고개를 저으며 치수를 비웃는 채경묵. 치수는 그런 그의 행동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입이 얼얼하고 쓰렸지만 말은 할 수 있었다.

 

  “채...경묵...”

 

  “오... 나를 알고 있어? 대박인데. 어찌 아는 거야? 나를 안다고 하면, 음. 먹이였다는 거겠지?”

 

  치수는 경묵을 알고 있었다. 주혁 밑에 존재하는 중요 간부 중 한명. 냉정하고 폭력적이며 한 번 화가 나면 확실히 휘몰아치는 불꽃이 되는 남자. 얼음과 불이 공존하는 느낌의 남자였다. 성격도 괴팍하여 먹잇감이 된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고 그건 치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X같은...새...끼...”

 

  “아, 많이 들어. 나를 묘사하는 말 치곤 너무 저급한 단어지.”

 

  경묵이 한 번 가볍게 웃더니 권총으로 치수의 다리를 쏜다. 총성과 함께 치수의 비명이 어두운 복도를 가득 메운다. 그 모습을 태연하게 보면서 경묵은 혀를 차더니 권총으로 다시 치수의 머리를 조준한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치수에게 말한다.

 

  “자, 다시 한 번 말해볼까?”

 

  “크...으윽... 으윽...”

 

  “제대로 말하지도 못 할 거면서 왜 그리 사람들은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걸까. 주둥이는 말이야, 음식을 쳐먹기 위해서만 쓰여야 돼. 살기 위해서 쳐먹으라고 뚫어놓은 주둥이에 뭔가를 들이 넣지는 못할망정 헛소리를 내뱉으면 쓰겠나.”

 

  총구로 치수의 머리를 여러 번 때리는 경묵. 그러면서도 그는 시체와 그 앞의 문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는 이미 문에 난 구멍과 쓰러진 부하의 상관관계를 이해했다. 바로 저기구나.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치수의 불찰을 나무랐다.

 

  “너무 훤히 보이잖아. 시체라도 좀 어디 치워놓던지. 아니면 은신처를 옮기던지. 저희들 여기 숨어 있어요, 하고 가르쳐 주고 있으면 어떡해. 그 두 개를 못 할 거면 본인이라도 어디 잘 숨어서 경계를 잘 하던가. 잘 봐. 네가 한 짓이 어떤 짓이냐면 이런 짓이야.”

 

  그는 권총을 들어 문쪽을 향해 쏘았다. 총알은 문을 뚫고 나가더니 곧 문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비명에 치수는 반응하여 고통스러움에도 몸을 격하게 움직이며 그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경묵은 태연하게 다시 총구를 치수의 머리로 옮긴다.

 

  “봤지? 이런 거야. 너의 그 되도 안한 객기가 이런 사태를 만드는 거지.”

 

  이를 내보이며 웃는 경묵. 그는 멱살을 잡고 치수를 일으켜 세운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몸에 어떤 힘이 저렇게 나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저런 놈들 필요 없어. 어차피 싸우지도 못할 놈들을 먼저 처리해봤자 쓸모가 없거든. 지금은 위험한 놈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우선이야. 옥상에 있던 년이나 아직 마트 안에 남아있을 너와 달리 전투의 프로 같은 놈들 말이야.”

 

  경묵은 치수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마저 말을 잇는다.

 

  “그리고 너는 그 놈들을 잡는데 훌륭한 장기 말이 될 것이고.”

 

 

 

  대범은 2층 물류 창고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대범이 쏜 경묵의 부하가 부축을 받으며 대범과 함께 힘든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그의 다리와 손, 팔 등 총상을 입은 곳은 어느새 붕대가 감아져 있었다. 대범이 이 남자가 과다출혈로 죽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해놓은 것이다.

 

  그는 2층 물류창고 쪽으로 올라간 다음 거기서 사무실 복도로 갈 계획이다. 남자를 2층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놔둘 생각이었다. 남자를 놔둘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인원들을 통해 이 남자를 감시할 목적도 있었다. 그렇게 상황이 지나 남자의 긴장이 풀어질 때 적의 정보를 알아낼 요량이었다. 위험이 되는 자들에 대한 정보는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대범은 걸음을 옮기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남자에게 이름이 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은한울이라 소개한 뒤 나이는 34세로 사태이전엔 갓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괴물이 되어 아이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도망을 쳤다가 피난소를 향했고 그 이후는 말하기 힘들다 대답했다.

 

  아마도 말하기 힘들다는 그 대답 안에 놈들의 정보가 있을 것이다. 지금 억지로 닦달한다고 해서 얻어 낼 수는 없어 보인다. 대범은 화제를 돌려 여기로 쳐들어 온 인물들에 대해서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최대한 목에서 힘을 뺀 부드러운 억양을 유지한다. 상대의 긴장감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노력이었다.

 

  한울은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연다. 아무래도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으리라 본 거다. 하지만 인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신들의 리더인 채경묵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리더에 대한 정보라. 나쁘지 않다. 대범은 채경묵에 대해서 뭐가 있는지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한울의 말은 이렇다. 마치 불과 얼음을 같이 섞어 놓은 듯한 괴팍한 인물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다가도 한 번 화가 나서 수틀리면 불꽃처럼 휘몰아치며 주변을 고생하게 만든다는 것. 잔혹하고 폭력적인 인물이지만 그 냉정한 판단과 사람을 홀리는 독사 같은 새치 혀로 주혁의 마음에 들어 중요 간부가 되었다고 한다.

 

  “독사 같은 새치 혀?”

 

  “네... 말하는 논리가 궤변에 가깝지만 어째선지 사람들이 납득하게 되는... 그런 언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주혁이라는 인물의 세뇌담당인 것 같군.”

 

  “세뇌라... 조금 틀리죠.”

 

  “틀리다니?”

 

  “대장에게 세뇌는 필요 없습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명령이고, 협박이니까요.”

 

  말을 하면서도 한울은 몸을 떤다. 아마도 그의 공포는 주혁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의 머리에서 주혁을 벗겨내는 작업은 굉장히 오래 걸릴 듯 보인다.

 

  “아무튼 채경묵은 위험합니다. 폭탄광이라 수류탄, 다이너마이트, 시한폭탄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낼 줄 알아요. 그 밖에도 섬광탄, 연막탄 등도 손수 제작 가능할 정도로 솜씨가 좋고 그걸 실전에서 써먹을 줄 아는 머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부하들을 자신의 임무에 필요한 장기 말로 밖에 보고 있지 않아요. 폭발에 휘말려 죽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도 안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임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관심에만 집중하는 놈입니다.”

 

  그는 침이 마르는지 잠시 입을 쩝쩝대더니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밖에도 식탐이 엄청납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비해 아주 먹을 걸 엄청 밝혀요. 먹는 것에 대해서 아주 신들린 강의까지 할 정도라니까요. 이 지구상의 생명체는 반드시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기에 먹는 것은 생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뭐 이런 소리를 늘어놓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먹이... 아니 붙잡은 사람들에게 사료를 제공하려 할 때도 그가 담당하면 통조림이나 건조음식 같은 것들을 후하게 배포합니다. 그거 하나 만큼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겠지만 그 모든 걸 싸먹을 정도로 성격이 지랄 맞아서 아무런 효과가 없지요.”

 

  예컨대, 평범한 놈이 아닌 단단히 미친놈이다. 그 말이군. 무엇보다 폭탄광이라는 말이 대범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필이면 쓰는 무기도 굉장히 미친 것이다. 여기서 그런 무기를 쓰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단순히 그와 전투를 했을 뿐인데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2층 물류창고에 다다른 대범과 한울. 그 둘이 모퉁이를 돌자 어떤 두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체격. 대범은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가 한울이 말했던 경묵임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그의 품 안에 있는 남자와 그 상태였다.

 

  얼핏 어두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잘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대범은 그 사람이 곧 치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음을 하며 그에게 붙들려 있는 치수. 아마 경묵에게 당해서 끌려온 거겠지. 그렇다면 치수가 지키던 사람들은? 대범의 불안함이 급증한다.

 

  “치수야!”

 

  “아저... 씨...”

 

  대범이 반응하기도 전에 경묵이 권총을 들고 치수의 머리를 겨눈다.

 

  “어이쿠, 멈춰. 어두워서 잘 보일지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 요 녀석 대가리에 총을 빵야빵야 쏘려고 하거든? 지금은 그냥 들이대고만 있는 상태지만 내 검지가 미끄러져서 쏠지도 모르겠단 말이지.”

 

  경묵의 말을 이해한 대범은 그 자리에 꼿꼿이 가만히 선다. 경묵의 목소리를 들은 한울이 경묵의 이름을 부른다. 경묵은 목소리를 듣더니 놀라면서 그의 이름을 부른다.

 

  “한울이냐? 뭐야, 너. 붙잡힌 거야?”

 

  “어휴, 칠칠치 못하게. 그래서 어떻게 됐어? 몸이 벌집이 되었나?”

 

  “벌집까지는 아니고... 좀...”

 

  “그래, 별 다른 말은 안했겠지?”

 

  잠시 침묵을 하던 한울이 대답한다.

 

  “네...!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됐어. 어이, 앞의 나이 좀 드신 양반. 한울을 잡을 정도면 보아하니 실력이 좋아 보이는데 이거 보이지? 아, 안보이나? 아무튼 권총이 지금 당신 동료를 향하고 있거든. 아까 내 얘기 들었지? 자, 어떻게 해야 할까?”

 

  대범은 한울을 바라본다. 그는 혀를 차더니 이내 한울을 바닥으로 내던진다. 한울은 쓰러지면서 낮게 신음을 내더니 이내 경묵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살려준 건 난데 감사는 저쪽이 받는군. 왠지 모를 억울함이 대범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아주 좋은 판단이야. 풀어주는 게 답이지. 자, 한울. 이리로 와.”

 

  한울이 연신 감사하다면서 경묵에게로 기어간다. 경묵은 자신에게로 기어오는 한울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총알은 한울의 머리를 꿰뚫었고 그의 뇌수가 튀어나와 그것이 대범의 옷에 묻는다. 대범이 욕설을 내뱉으며 소총을 들고 쏘려고 하자 대범의 행동을 눈치 챈 경묵이 치수를 뒤에서 끌어안고 권총을 그의 머리에 들이댄다.

 

  “어허, 화가 나셔도 안 보여? 쏘면 얘도 위험해질 텐데.”

 

  “왜! 왜 죽였어! 살려고 너에게 기어간 것뿐인데! 왜!”

 

  “쓸모가 없잖아. 저 녀석의 역할은 이제 인질 빼곤 아무의미가 없어. 내가 지금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당신이 저 녀석을 인질로 삼으면 짜증나잖아. 그냥 당신 째로 저 녀석과 함께 쏴버릴까 했지만 왠지 당신 감이 좋아보여서. 내가 쏘는 순간을 눈치 챈 당신은 내 공격을 피하고 그 틈을 노려 나를 향해 총을 쐈겠지. 방금도 내가 말을 조금만 늦게 했어도 당신의 총, 내 머리를 관통했을 거야, 그렇지?”

 

  “근데 왜 한울을 쐈냐고!”

 

  “새끼, 암 말도 안 했다더만 저 짝이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거 보니 주둥이 열심히 턴 모양이네. 죽어도 쌌지. 왜 죽였냐고? 말했잖아. 쓸모없어서. 쓸모없어진 놈이 살려고 기어오잖아. 나에게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 기어오는데 그걸 냅둬?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정신 나간 건 네놈 새끼들이지...!”

 

  “허어. 어느새 그리 정이 드셨나. 거 대화 한 번 찐하게 하셨나보오. 몇 분 전만해도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었을 텐데.”

 

  대범이 소총을 만지지만 쉽사리 들지 못한다. 신음을 내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치수의 목소리가 그 이유를 대변한다. 경묵은 대범에게 소총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대범은 고민 없이 소총을 내려놓는다. 치수가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쏴버리라고 말하자 경묵은 알았다면서 대범의 허벅지를 향해 권총을 쏜다.

 

  대범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는다. 그는 허벅지에 난 상처 부위를 감싼다. 치수가 욕설을 내뱉으며 몸부림을 치자 경묵은 이번엔 치수의 다리에 총을 쏜다. 치수의 허벅지를 총알이 관통한다. 치수가 비명을 지르자 대범이 다시 총을 들려고 한다.

 

  그러나 늦었다. 어느새 치수를 끌고 온 경묵이 권총을 대범의 머리에 조준하고 있었다. 치수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경묵의 행동을 막으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그의 방아쇠는 당겨지고 있었으니까. 대범은 이미 소총을 들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순순히 그러나 차오르는 분노와 함께 경묵을 바라본다.

 

  “잡았다.”

 

  경묵이 미소 짓는다. 총성이 메아리치고 붉은 물결이 아름답게 공중에서 춤을 추지만 어둠은 그 모든 것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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