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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18화
작성일 : 19-11-10 00:38     조회 : 232     추천 : 2     분량 : 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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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누가 들어왔었다고요?”

 한성근 과장은 다리를 꼬고 앉아 서류철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보안과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0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습니다. 머리칼은 갈색에 가까웠고 체격은 다부졌지만 근육질은 아니었고요.”

 “그 외에 알아낸 건 없고요?”

 “병원 내부 근무자가 아니어서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아내기 어렵지만 김규희 간호사 출입증으로 자료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규희 간호사는 일주일 째 출근하지 않고 있고요.”

 보안과장이 CCTV영상 사진과 김규희 간호사의 인적사항이 담긴 파일을 건넸다. 한 과장은 신경질적으로 파일을 낚아채 윤오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자신의 실험실에서 자료 정리를 했던 기록이 담긴 인적사항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무단 결근입니까?”

 “네. 행방이 묘연하답니다.”

 한 과장은 알았다는 듯 보안과장에게 그만 나가보라 고갯짓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보안과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한 과장이 안 나가고 뭐하냐는 눈짓을 보내자 보안과장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정단야 선생이 자료실로 왔습니다. 그 남자 자기가 보냈다며 데려가더군요.”

 “…정단야 선생이요?”

 한 과장은 기억 저편에 박혀 있던 정단야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정단야라. 심장외과였지, 아마? 그런데 일개 전문의가 자료실엔 왜? 그 사람이, 아니, 그게 왜? 한 과장은 어딘가가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보안과장님은 일단 나가 보시고요. 자료실 출입은 지금보다 더 엄격히 통제합니다. 내말은, 그러니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방아쇠를 당겨 버리라는 겁니다. 아시겠죠?”

 보안과장은 한 과장에게 꾸벅 목례한 뒤 방을 나갔다.

 

 한 과장은 CCTV 사진 속 남자를 유심히 봤다. 아무리 봐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길래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을까. 정단야는 이 놈과 무슨 관계길래 이 일에 개입한 걸까.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 보는 한 과장의 머리 속이 복잡했다. 자료실에 숨어든 쥐새끼는 많았다. 그동안 어째저째 잘 처리해왔다. 하지만 정단야는 아니었다. 한 과장은 새롭게 등판한 이 창백하고 빠져들었다간 사라져 버릴 만큼 검은 눈동자를 지닌 여자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머리가 지끈거릴 즈음에 다다랐을 때, 한 과장은 파일을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 놓으며 결론지었다. 더 생각해서 무얼 하리. 거슬리는 게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버리면 되잖아. 몇 달 전에도 깔끔하게 처리했잖아.

 한 과장은 보안과장에게 콜을 넣으려 전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던 도중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며칠이 걸릴 지언정 남자의 뒷조사를 해 보안과장이 목숨을 끊어 놓도록 하면 일이 쉬웠다. 너무 쉬웠다. 한 과장에게 좋은 수가 떠올랐다. 이왕이면 실험에 도움되는 방식으로 놈을 엮어 들이자.

 한 과장은 수화기를 다시금 들어 이사장실 비서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 이사장님 계신가요? 한성근 과장인데 만날 약속 좀 잡았으면 좋겠어서. 혹여나, 물론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바쁘시다고 거절하심 이렇게만 전해주세요. 가족은 평안하시냐고.”

 

 *

 윤오는 며칠 전 사들인 화이트 보드를 방 벽에 붙여 세웠다. 이쯤에서 정리가 필요했다.

 

 <사건 개요>

 1. 피해자들은 생동성 알바를 매개로 이한병원에 입원했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시신은 핏기가 모두 가신 모습이었다. 피해자들은 대개 신체 건강한 20대 성인이었으며 지병이 없었기에 급작스럽게 사망할 이유는 없었다.

 2. 사람 한 명의 몸엔 4.5~5.5L의 피가 흐른다. 한번에 생동성 실험군이 30명으로 설정됐으니 병원에서 처리해야 할 혈액의 양은 150L가 넘는다.

 3. 병원에서 흔적도 없이 이 많은 양의 피를 처리하긴 어렵다. 만약 처리했다면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4. 생동성 실험의 총책임자는 백신 개발 TF팀 한성근 과장이다.

 5. 병원엔 단야 씨 외 한 명의 뱀파이어가 더 있다. 이사장.

 

 윤오는 자연스레 이 사건의 정점에 이사장을 두고 있었다. 이제 궁금한 것은 하나였다. 이사장은 단순 병원의 책임자로 이 일에 연루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어느 경우든 이사장은 선민의 죽음에 개입한 이다. 그리고 규희 씨를 스스로 죽게 만든 이고. 어째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일에 끼어들었을까 윤오는 생각했다. 대개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부류의 인물이 동일한 일에 개입하는 건 모종의 거래를 바탕으로 했다. 적어도 윤오가 취재를 하며 겪어온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이사장 역시 거래를 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거래에서 이사장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한 과장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윤오는 그간 알아낸 사실들이 나열된 보드를 뚫어져라 보며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윤오는 내려놓았던 마커를 집어 들고 이 모든 일을 관통하는 한 가지를 보드에 적었다. 피. 피다. 피해자들에게선 피가 사라졌고 TF팀이 개발하는 백신의 부작용은 과다출혈이다. 실험이 조금이라도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피가 구멍이란 구멍에서 새어 나온다.

 윤오는 가설을 완성했다. 이사장은 백신 개발에 개입해 과다출혈로 인한 부작용 사망자의 피로 배를 채우고 한 과장은 불법적인 백신 실험을 허가 받아왔다.

 이제 남은 건 눈으로 가설을 확인하는 것뿐.

 

 *

 “이사장실은 언제 들어와도 춥네요, 참.”

 한 과장이 너스레를 떨며 이사장이 손짓하는 자리로 가 앉았다. 곧 비서가 차를 내왔고 이사장은 아무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한과장이 이사장을 따라 찻잔을 들어올렸을 때, 이사장이 진하게 우러난 찻물을 내려보던 눈을 치켜 떠 한과장을 곧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비서한테 내 가족을 들먹이셨다면서요?”

 “아유, 들먹이긴요. 그냥 안부 인사 차 여쭤본 거죠. 말 나온 김에 가족들은 평안하세요? 정단야 선생이랑 그 누구였더라, 가끔 병원 들락날락하는 성 선. 그 둘 말입니다.”

 “한 과장이 이렇게 들먹이지 않고 관심만 꺼준다면 평안하겠죠. 그 애들도.”

 이사장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으나 한 과장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입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보통의 인간들은 이사장의 한기에 제 발 저려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 인간. 한 과장은 그러질 않았다. 늘 웃는 얼굴로 이사장의 속을 긁어댔다.

 “부모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라더니 그 말이 맞나 봐요. 서른은 훌쩍 넘었을 둘을 아직도 애들이라 부르시는 걸 보면. 아참참, 서른이 뭐야. 그 둘도 백 살, 이백 살은 넘었으려나요?”

 그리고 지금. 이사장은 정말로 한 과장이 성가셨다. 애써 맞춰주며 웃고 있던 이사장의 광대가 씰룩 떨렸다. 쥐고 있던 찻잔 속 찻물에 일렁거림이 생겼다.

 “용건이 뭐죠?”

 “그때 그 기자 일 있고 말입니다. 백신 실험을 못했잖아요. 아무리 일 처리를 잘했다고 하지만 우리 이한병원이 이목을 끌어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요. 높으신 분이 자꾸 자꾸 압박하는데도 내가 잘 막으면서 실험 중지를 했단 말입니다.”

 한 과장이 거들먹거렸다. 늘 이런 식이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다 거짓이다. 국내 최고의 항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한성근은 늘 이런 식으로 이사장 앞에서 폼을 쟀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금방 으스러질 작은 몸을 하고.

 “그런데요?”

 “근데 재개를 해야겠더라고요. 백신 개발이 너무 늦어지기도 했고. 우리가 사명감을 저버리는 새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의사로서 이걸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픕디다. 이사장님도 그러시죠?”

 한 과장이 으레 그렇듯 잘 단련된 웃음을 지으며 이사장에 말했다.

 “되도 않는 그 사명감 타령은 조금 역겹네요. 원하시는 대로 실험 재개하십시오. 대상자는 구하셨고요?”

 “예. 며칠 전에 말입니다. 9층 출입금지 자료실에 웬 놈이 숨어들었습니다. 저희 보안과장이 잘 막아서서 아무 문제는 없었지만 왠지 뒤를 캐고 다니는 게 영 꺼림칙해서요. 다른 사람 출입증까지 훔쳐서 들어온 걸 보면 분명 저희 쪽에 백해무익한 놈일 겁니다. 그 놈을 낚아볼까 하는데. 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단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릴 잡으려면 쉽게 우리 쪽으로 들어오겠지요.”

 “그렇게 하세요. 언제 들어도 참. 한 과장님은 술수에 능하십니다.”

 한 과장이 이번엔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이사장은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화는 여기서 끝이라는 의미로. 이제 더는 그 듣기 싫은 웃음은 참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사장이 내려놓은 찻잔을 한 과장이 물끄러미 봤다. 그리곤 이번에는 소리 죽여 웃었다. 흐흐흐흐.

 “과찬이십니다, 정말…. 아, 제가 깜빡하고 말씀드리질 않았네요. 9층 출입금지 자료실에 숨어든 놈을 살린 게 정단야 선생인 거 아십니까? 물론 아실 거라 확신하고 여쭙는 겁니다만, 저는 너무 궁금했거든요. 어떻게 딱 그 타이밍에 정단야 선생이 찾아왔을까. 백신 개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 아, 사람이 아니지, 백신 개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뱀파이어가.”

 이사장은 이를 악 물었다. 얼굴 근육이 그 힘을 따라 떨려왔다. 심사가 뒤틀렸다. 저 놈이 단야를 입에 올렸다. 단야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감히 내 앞에서 나불거렸다. 이사장은 화를 삭이고 또 삭였다. 단어 하나 하나에 힘을 주어 한 과장에게 전했다.

 “경고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그 오랜 세월 존재하며 본 술수에 능한 모든 치들의 말로는 그리 곱지 못했습니다.”

 “하하하하. 그럼 제가 예외가 되어볼까요? 아무튼, 말씀드릴 내용은 다 전한 것 같으니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한 과장이 몸을 일으켰다. 구겨졌던 옷 매무새를 정돈하고 가운의 단추를 잠갔다. 이사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이사장실 문으로 향했다. 이사장의 말이 그 등을 잡아 세웠다.

 “그 외부인에 대한 실험 허가 못합니다.”

 “어째서죠? 지금껏 잘 누려왔으면서 이제 와서 내빼시기라도? 아, 정단야 선생이 걸려 있어 그런 겁니까? 동족은 소중하다 뭐 이런 건가요?”

 “내가 피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당신의 그 잘난 백신 실험이 들통날 위험이 커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죠?”

 “이사장님께서도 알고 계시죠? 실험 허가 안하시면 그 잘난 동족들의 존재가 들통날 위험이 커진다는 것쯤은? 높으신 분들도 다 압니다. 당신네들의 존재에 대해.”

 이번엔 인사도 없이 한 과장은 등을 돌렸다. 그렇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리 오만하게 나오겠지. 이사장은 일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흘렀는지 사념에 잠겼다.

 

 *

 산속에 터를 잡은 후로부터 이사장은 주기적으로 밖에 나가 피를 구했다. 집에는 아직도 원망을 푼은 채 언제고 화를 뿜어낼 수 있는 단야와 그런 단야를 의기소침한 눈으로 바라보는 선이 있었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이사장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없이 어린 것들을 그래도 책임져야 한다는 아주 작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000년을 묵었으니 겨우 몇 해를 이 몸으로 산 너희에게 덕을 베푸는 건 조금 더 오래 산 부모가 이제 갓 태어난 자식을 품 듯 당연한 순리라 생각했다.

 이사장이 피를 구해올 때면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훽 돌리던 단야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즈음부터는 배고픔을 느꼈는지 체념한 투로 피를 받아 마셨고 선은, 이 어리석은 연정을 품은 순애보는 단야가 피를 마시면 그제서야 고대로 따라 마시며 봐봐라, 나도 너도 똑같아. 그러니 똑 같은 우리 둘이 함께 살아간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단야야. 할 뿐이었다.

 이사장은 그럴 때마다 곰방대를 태우며 둘을 지켜봤다. 그래. 이 긴 고독을 살아가는 데에 미우나 고우나 짝이 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너희 둘처럼 짝을 짓고 어쩌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올렸을 수도 있을 터인데. 이사장은 생각이 아주 오래전의 일에 다다를 때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안 그래도 흩어진 기억을 더욱 흩어지게 만들곤 했다. 이제와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죽었고 내 곁에 남은 건 단야와 선이니 이들이라도 지켜내자 이사장은 남몰래 마음을 먹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시기에 이 작은 무리는 살아남기가 수월했다. 피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역병이 돌았을 때가 그랬고 민란이 터졌을 때가 그랬고, 전쟁이 났을 때가 그랬다. 민호의 일이 있고 났을 즈음부터는 이 땅에 평화라 부르기는 모호하고 고요라 부르기는 어색한 잠정적 안정이 찾아와 피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라는 무탈했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한동안은 비밀스럽게, 모두 물밑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피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그때, 이사장의 눈에 든 것이 병원이었다.

 이사장은 단야가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떠난 때를 기점으로 이 땅에 머물며 의학을 배우고 인간들과 연을 맺었다. 병원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재산을 모으고 결국 이한병원의 이사장 자리를 꿰찼다. 혈액 팩을 쉬이 구해 허기를 채웠다. 하지만 충분치 않았다. 의심을 사지 않을 만큼만 확보해서는 타는 듯한 목마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사장은 애써 병원의 높은 자리를 꿰차고 앉았음에도 피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단야와 선이 돌아왔을 때, 안정적으로 피를 공급할 루트를 마련해 놓아야 했다.

 운명이 영영 이사장을 가지고 장난을 칠 생각은 아니었는지 방도는 의외로 쉽게 이사장의 눈앞에 나타났다. 미확인 바이러스의 등장이 그것이었다. 인간이 몸에서 피를 내뿜게 만든다는 이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한다는 한 과장의 등장. 이사장은 허기를 참지 못하고 한 과장에게 먼저 접촉했다.

 “피를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아는데, 저와 손 잡으시겠습니까?”

 한 과장은 이사장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그날이 둘의 공생 관계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한 과장과 같이 속이 시커먼 놈과 손잡은 대가는 컸다. 한 과장의 뒤엔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고 그들은 이사장을 수상히 여겨 뒤를 캤다. 이사장이 인간이 아니란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들통이 났다. 천 년 가까이 숨겨왔던 비밀이 눈 먼 허기 덕에 까발려 져 이사장의 목을 죄어왔다. 단야와 선까지도.

 

 “저 피 알아서 구해요. 이제 손 안 벌려요. 혼자 잘 사세요.”

 단야가 찾아와 이렇게말한 날, 이사장은 작게 ‘그래’ 답하며 내심 마음을 놨다. 단야와 선 몫의 피를 구할 필요가 없다면 둘을 위험에 노출하면서까지 한 과장과 거래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대로 다시 조용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이제 피 처리 안합니다.”

 대모는 전화를 걸어 한 과장에게 통보했다. 한 과장은 어쩐 일인지 ‘그러세요?’하고 말았다. 쉽게 물러나는 한 과장의 태도가 이상하단 것쯤은 알았지만 이사장은 일이 망가지는 모습은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봤자 걱정이 될 것이 뻔했고 걱정은 자기도 모르게 크기를 키워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된 선택을 가린다는 것이 이사장이 오랜 세월 존재하며 깨달은 바였다.

 

 얼마 안 가 한 과장이 이사장실을 찾았다. 옆에 누군가를 대동한 채로. 누군가는 자신을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이라 소개했다. 조진관 비서실장.

 “차나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웃기는 소리. 이사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원하는 것이요? 없습니다. 다만, 현 대통령님의 임기 내에 백신 개발이 착오 없이 진행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을 뿐이지요. 이한병원은 우리들의 무대가 돼야 하고요. 딱 그거면 됩니다.”

 이사장은 비서실장을 노려봤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냐 묻는 눈빛에 비서실장이 답했다.

 “당신들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울까 하는데.”

 허튼소리일 리 없었다.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힘을 가진 이가 없애겠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겠다 나설 이들이 수 백일 테. 이사장은 속이 쓰렸다.

 단야와 선까지 노출된 상황에서 이사장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이들의 실험에 동조하는 것. 그런데 이제 고분고분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단야가 곁에 둔 인간이 공생 관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사장은 새롭게 주어진 선택지에 어떤 답을 내야할 지 쉬이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

 이사장실 문이 닫혔다. 한 과장은 이사장실의 한기에 몸을 부르르 한 번 떤 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0번을 꾸욱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얼마 안가 상대편에 연결이 된 듯 짧은 안부인사가 오갔다. 한 과장은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외부인 실험에 대한 이사장 허가를 내지 않겠다고 나서네요. 그 방법은 확실한 겁니까? 전에 말씀하셨던 불로불사의 뱀파이어를 세상에서 지울 수 있다는 그 방법이요.”

 한 과장은 아, 그렇습니까, 잘됐네요 등의 추임새를 넣다가 전화를 끊었다. 복도를 빠져나가는 한과장의 입꼬리에 뜻 모를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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