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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10화
작성일 : 19-11-10 00:24     조회 : 248     추천 : 2     분량 : 7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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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뱀파이어란 무엇인가. 윤오는 문득 궁금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도 실재할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내 곁에서 숨을 쉬고 시간을 보내고, 때론 내게 지나치게 안락한. 비인간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존재, 뱀파이어에 대해.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야에 대해.

 

 “저기…. 뱀파이어요. 뱀, 파, 이, 어…! 관련된 책은 어디 있어요?”

 그래서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나른한 오후 시간을 때우는 사서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서는 자신의 안빈낙도를 방해하는 윤오에게 눈을 치켜 올리고 말했다.

 “트와일라잇이요? 아님 뭐 세계의 무서운 이야기 50선?”

 “아니요. 그런 거 말구요. 뱀파이어에 대해 학구적으로 접근한 책이었음 하는데….”

 도서관에 배치된 보안 직원의 힘이 그렇게 센 줄을 윤오는 그날 처음 알았다.

 

 도서관에서 쫓겨났다고 뱀파이어에 대해 알아가는 걸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 지금은 21세기야. 디지털 시대라구. 윤오는 구글을 켰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공들인 끝에 자기가 뱀파이어라는 이들이 모인 카페를 찾아냈고 윤오는 얼른 가입을 했으며 그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다. 그리고 윤오가 마주한 건, 알록달록한 가발에 할로윈 코스튬 코너에서나 팔 법한 플라스틱 송곳니를 착용한, 초딩 다섯 명이었다.

 “어쩌긴 뭘 어째요. 애들 그냥 햄버거나 사주고 왔죠…. 제발, 놀리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씀 마시고….”

 윤오가 신발코로 땅을 툭툭 치며 말했다. 단야는 시무룩한 얼굴로 터덜터덜 귀가한 윤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을 뿐이었다. 일전에 꿈에서까지 울먹였던 그 일 때문인가 마음이 쓰여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물어보면 되지 뭘 그런 짓을 해. 앞에 진짜 뱀파이어 두고 뭔 고생이래. 하…. 너 진짜 웃기다.”

 

 “그때가 정조 때였나 순조 때였나. 눈 뜨니까 내 앞에 뱀파이어가 둘 있었어. 이사장이랑 선이. 선이는 어렸을 때부터 한동네서 같이 자란 내 동무였고, 이사장은 뭐…. 아무튼 갈 곳을 잃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았지. 달에 한 번 가는 그 시골집에. 그리고…. 중간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고, 의사가 됐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존재하고 있네.”

 단야는 그 긴 시간을 이런 저런 일들이란 단어에 함축해 전했다. 윤오는 그 이런 저런 일들이 궁금했으나 쉬이 물을 수 없었다. 단야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했고 윤오는 그게 딱했다. 나였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날을 하나같이 다 터놓을 텐데, 이야기하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텐데, 속으로 말을 삼켰다.

 “왜 의사가 됐어요?”

 “… 뭐, 나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너무 쉽게 죽더라, 인간들은. 궁금했어. 왜 이렇게 쉽게 상처입고 쉽게 낫지 않고 결국에는 죽어 버리지? 이런 게.”

 누가 그렇게 쉽게 죽었길래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는지. 윤오는 아래로 내리깐 단야의 눈가를 보며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어. 그러다 보니까 재미있더라구. 의학 공부가. 그래서 유학을 갔고, 의사가 됐지. 꽤 괜찮은 직업이야. 벌이도 좋고. 인간들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잠 줄여가며 책 보느라 너무너무 피곤하다고 하는데 나한텐 널린 게 시간이니까. 잠도 안자고. 좋았지.”

 “뱀파이어면요, 삶에서 재미있는 일이 80, 그냥 그런 일이 20쯤일 것 같았어요. 힘도 왕 세고, 늙지도 않고, 찐하고 치명적인 사랑도 한번 하고.”

 “영화가 잘못했지. 그냥 똑같애. 인간이랑. 아, 능력이 좀 있긴 하다. 니 말마따나 힘이 왕 쎄거나, 염력을 쓸 수 있거나. 근데 랜덤이야.”

 “단야 씨도 능력이 있어요?”

 “나는 치유능력이 좀 있지. 너한테 힐 넣어준 거 있잖아.”

 “와! 제일 좋은 거 아니에요?”

 “좋은데…. 좋은데, 구려. 정작 필요할 땐 도움이 안돼.”

 단야는 어깨를 으쓱하며 윤오에게 또 무엇이 궁금한지 물었다. 윤오는 앞서 묻지 못한 물음표들에 답을 얻고 싶었지만 그래도 될까 걱정했다. 그랬다간 다시금 단야의 옛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될 까봐, 그 때문에 단야가 자신을 슬플 까봐. 그래서 일부러 아주아주 먼 이야기를 골랐다.

 “뱀파이어 되기 전엔 뭐 했어요?”

 “그때 해봤자 조선시댄데 계집애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 평범했지.”

 “아하, 평민이셨,”

 “평범한 양가 규수였지. 집이 99칸짜리였나,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네.”

 그게 어떻게 평범한 거죠…. 평범 뜻을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요. 그 정도면 조선시대 금수저였던 거 같은데…. 아니, 금수저는 어림도 없지. 플래티넘 수저다, 플래티넘 수저.

 “옛일 얘기해서 뭐하니. 지금까지 이어온 것도 아니고. 집에선 버려졌고, 가족 비스무리한 거라곤 선이가 단데.”

 “저…. 어렸을 적 동무셨다니 이렇게 묻는 게 바보 같은 일인 줄 알지만 이번에도 확신이 없어 여쭤보는 건데, 선 씨도 플래티넘 수저셨나요?”

 “야, 걔네 집은 100칸이 넘었어. 장가도 갔는데? 그 집안이 중전마마네 라인이라 그랬나…?”

 윤오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어 가지런히 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제가 글쎄, 이렇게나 대단한 분들 사이에 빌붙어 살고 있었네요.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는 금세 기울어져 모습을 감췄다. 그 자리를 달이 채웠고 낮 동안 가을볕에 달궈진 세상을 식히려는 듯, 밤비가 내렸다. 윤오는 얼른 창가로 다가서 비가 들지 않도록 창문을 닫고 단야를 향해 말했다.

 “비 오네요! 좋다, 그쵸.?”

 “하나도 안 좋아.”

 단야는 윤오의 말에 창을 힐끗 보곤 답했다. 이제 윤오는 단야의 부정문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전엔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아니 그냥 내가 거슬리는 걸까 안절부절했는데. 이젠 단야의 마음이 차지 않다는 걸 느껴서인지, 단야의 말은 사실 그대로를 말할 뿐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어렵지 않았다.

 “왜요?”

 “늙어서 뼈가 시려. 온몸이 욱씬거려.”

 “허엌, 단야 씨, 겉모습이 너무 어려서 몰랐어요…. 저희 할머니나 하시던 말씀을 그렇게 진실된 얼굴로 하니까 체감이 되네요. 단야 씨 나이가. 아니, 연세가.”

 “내가 너무 편하지? 너무 자비롭고?”

 그래도 이렇게 나올 땐 무서웠다. 정말로 질문하는 척 말하며 씨익 웃을 땐 꼭 송곳니를 드러내 보였다. 일부러라도 신경 써서 감추던 걸 윤오에게만 꼭.

 “아닙니다, 장난이에요. 아시잖아요. 제가 좀 주물러 드릴까요? 물론 아니, 됐어라고 하시겠,”

 “그래.”

 “예?”

 “주물러 준다며. 해 봐.”

 단야가 소파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윤오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눈만 몇 번 꿈뻑댔다. 어라, 진짜로? 윤오는 들고 있던 머그를 아일랜드에 내려놨다. 단야 쪽으로 다가갔다. 윤오가 가까이 오자 단야가 등을 내주었다. 윤오는 단야의 어깨에 두 손을 살포시 올려 안마를 시작했다. 조물조물. 어깨에서 팔로, 팔에서 팔목으로, 그리고 손으로. 몸이 진짜 차구나. 근데 이렇게 막 만져도 되는 건가? 우리가 무슨 사이라구. 늘상 누군가에게 해주던 안마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떨리는지. 윤오는 머리 속을 가득 채운 잡생각에, 가슴을 따라 떨려오는 손에,

 “혹시 이거 진동 안마니?”

 “네? 네?!”

 “손을 왜 이렇게 떨어.”

 “몸이, 몸이 차서요, 저까지 추워져요.”

 “난 너무 뜨거운데, 니 손 닿는 부분 부분, 전부 다.”

 얼굴에 열감이 느껴졌다. 윤오는 단야가 등을 돌리고 있는 게 백번 천번 다행이라 생각했다. 제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단야 씨, 그 말 좀 너무 야한 거 아닌가요. 윤오의 귓가에 난 너무 뜨거운데, 난 너무 뜨거운데 하는 단야의 목소리가 계속해 울렸다. 윤오는 그럼에도 안마를 이어갔다. 반대쪽 팔로 손을 옮겼다.

 “뜨겁다고.”

 단야가 말하며 몸을 떼어냈고 윤오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어, 어, 죄송해요.”

 단야가 뒤를 돌았다. 윤오의 새빨간 귀가 눈에 들었다. 윤오는 기가 죽어 허공에 떠 있던 민망한 손을 주먹 쥐어 내린 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었다. 윤오가 고개를 들어 단야를 봤다. 서로의 눈이 맞았다. 상처받은 여린 눈을 한 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꼭 비 맞은 강아지처럼. 정말로 뜨거워서 한 말인데 그게 너무 날카로웠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단야는 윤오의 오른 뺨에 손을 가져다 올렸다. 윤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이 차지 않게 느껴졌다. 그 손에 담긴 마음이 따스해서 그런가.

 “몸이 차서, 보통 인간들 체온은 나한테 너무 뜨거워. 너 싫어서 피한 게 아니야, 사과할 필요 없어. 그거 알아? 인간 체온에 오래 닿으면 나 늙는다? 웃기지. 뱀파이어의 유일한 흠이랄까.”

 단야는 윤오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윤오는 그런 단야를 봤다. 언제나처럼 단단한 검정색 눈을 봤다가, 하얀 피부에 썩 어울리는 작은 점이 난 콧날을 봤다가, 작은 입술을 보다가.

 “얼마나 닿는 게 오래예요?”

 “글쎄, 시간은 안 재 봐서 모르겠는데?”

 윤오가 단야의 입술에 살짝 제 입술을 붙였다. 이내 떼어냈다.

 “이 정도면 오래예요?”

 “아…. 니…?”

 단야는 눈을 댕그랗게 뜬 채 윤오를 올려다봤고 단야의 ‘아니’하는 목소리에 순간 현실로 돌아온 듯 윤오는 단야보다 더 눈을 크게 떠 여기저기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아, 진짜, 진짜로 궁금해서 해본 거예요, 기분 상하셨으면 정말 죄송해요, 오늘 죄송할 일만 생기네, 제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정말,”

 단야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목소리는 떨면서도 다갈색으로 빛나는 두 눈으로는 단야의 입술을 자꾸만 보는 윤오의 솔직함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단야는 윤오의 얼굴을 당겨와 입을 맞췄다. 뭐라 재잘거리던 윤오의 말이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에 먹혀 들었다. 조용한 거실엔 초침이 가는 소리만 울렸다. 째깍째각. 가쁜 숨을 내쉬려 입을 떼는 단야의 입술을 윤오가 바투 쫓았다. 떨어지는 그 찰나가 아쉽다는 듯. 조금이라도 오래 부드러움에 취하겠다는 듯. 단야는 그런 윤오가 싫지 않았다. 사실은, 좋았다. 숨김 없이 나를 원하는 윤오의 마음이 예뻤다. 얼마쯤 지났을 때, 단야가 입술을 뗐다.

 “1분. 1분까진 괜찮네.”

 윤오는 단야가 놓아준 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온통 다홍빛으로 물든 채. 그러다 화들짝 놀라며 부산스레 몸을 움직였다.

 “어우, 더워. 비가 와도 이렇게나 덥네요. 창문 좀 열게요!”

 단야는 윤오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답했다. 그래. 오늘은 빗소리가 썩 좋게 들리네.

 

 *

 입술을 부딪쳤다. 1분이나 닿았다. 이제 나는 단야 씨의 뭐가 된 거지? 애인? 그렇다기엔 뭐랄까. 땅땅. 너 오늘부터 내꺼 해라 이런 말도 없었고. 행동도 달라지지 않았고. 윤오는 아침부터 머리를 싸맸다. 지난 밤의 급작스러운 사고 덕에.

 띵동-.

 윤오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잠시 치운 뒤 문을 열었다. 그래. 이 초인종 소리는 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잠깐만 쉬라는 신의 계시, 잠깐만 쉬라는 신의 불청객이구나. 문 앞에 선 이를 본 윤오는 생각했다. 선은 오늘도 때깔 좋은 파란 스트라이프 셔츠에 핏이 딱 돼 다리선을 돋보이게 하는 슬랙스를 걸쳐 입고 그 잘생긴 얼굴을 윤오 앞에 들이밀었다.

 “아직도 임보 중? 빨리 좋은 집에 입양 가면 좋을 텐데, 그쵸?”

 “여기, 여기가 제일 좋은 집이거든요?!”

 윤오가 지지 않고 답하자 선은 피식 웃었다. 거슬렸다. 나의 단야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저 인간이 자꾸 단야와 나란히 서려는 모양새가 아주 거슬렸다. 선은 윤오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곳은 보지도 않고 곧바로 단야에게 향했다.

 “어, 왔어?”

 “응, 나가자. 병원 데려다 줄게.”

 선의 뒤를 졸졸 밟은 윤오는 눈썹을 약간 팔자로 구겼다. 단야 씨가 부른 거였다니. 그냥 대뜸 온 게 아니고. 왜? 내가 있는데, 왜? 나도 단야 씨 병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데. 물론 차가 없으니까 버스라든지, 택시라든지 타야 하겠지만, 대체 왜! 우리 뽀뽀도 한 사인데??? 윤오의 머리 속은 쉴 틈 없이 바쁘게 생각을 이었다.

 

 금세 준비를 마친 단야는 선과 집을 나섰다. 윤오는 애꿎은 엄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선이 보란듯이 단야의 어깨를 감싸 안아 집 밖으로 단야를 이끌었다. 그리곤 윤오를 한번 봤다. 단야는 선을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선이 이끄는 대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 모습이 윤오의 뇌리에 박혔다. 뭐야? 밀어내지도 않고? 안마해주던 내 손은 밀어냈으면서?

 

 *

 단야와 선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윤오는 거실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리 준비한 하얀 A4용지를 반으로 접고 그 자욱을 따라 줄을 그었다. 왼쪽 상단에 남윤오, 세 글자를 적고, 오른쪽 상단에 성 선, 두 글자를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제가 생각하는 남윤오와 성 선의 셀링 포인트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윤오

 → 어림. 괜찮게 생김. 오히려 잘생긴 편. 직업 없음. 하지만 마음만 먹음 만들 수 있음. 집 없음. 하지만 마음만 먹음 살 수 있음. 차 없음.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음. 단야 씨를 좋아함. 단야 씨랑 뽀뽀함. 단야 씨에 대해 아는 것? 조금 많음….

 

 성 선

 → 안 어림. 200살 할아버지. 인정하기 싫지만 잘생김. 조각미남…. 직업? 없어 보임. 집? 있어 보임. 차도…. 있어 보임…. 단야 씨를 좋아함. 단야 씨랑 뽀뽀함? 안했을 것. 하지만 스킨십은 잦음…. 단야 씨에 대해 아는 것? 많음….

 

 윤오는 완성한 목록을 가까이서 노려봤다가 팔을 쭉 뻗어 멀리서도 노려봤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선 쪽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기도, 아냐, 남윤오. 무슨 소리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해야지! 봐봐, 나는 이름 세 글자고, 저쪽은 두 글자밖에 안되잖아. 내가 더 많아! … 흑, 흑….

 윤오는 눈가를 콕콕 찍은 뒤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내가 이길 수 있는 건 하나야. 단야 씨를 좋아함에서 단야 씨를 엄청나게, 세상 그 누구보다 좋아함으로 진화하는 것. 이건 이미 된 것 같기도? 단야 씨는 날 위로했고, 잠든 내 곁을 지켰고, 나에게 다정하고…. 나도 단야 씨를 위로하고 싶고, 단야 씨 곁을 지키고 싶고, 단야 씨에게 다정하고 싶으니까. 이런 리스트가 다 무슨 소용이람. 윤오는 급격히 기분이 나아졌음을 느끼며 리스트를 두 번 접고 또 두 번 접어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

 “언제까지 데리고 살 거야?”

 “글쎄, 당장 갈 데가 없다니까, 갈 데 생길 때까지?”

 “너무 오래 아니야?”

 “오래?”

 선의 부드러운 운전 실력 덕에 편히 병원으로 향하던 단야는 ‘오래’라는 단어에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 정도면 오래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던 윤오 생각에 단야는 살포시 웃었다. 오늘 하루는 또 집에서 뭘 하며 보낼는지. 내가 오길 기다리긴 할는지.

 “아니야, 오래.”

 선은 뜸을 들이다 답하는 단야 얼굴을 보고 아까 문을 열어주며 쏘아대던 윤오를 생각했다. 너에게 또 다른 이가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선은 무표정해진 얼굴 근육을 움직여 한껏 웃으며 단야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너네 집 들어가서 살까?”

 “뭐래, 좋은 집 놔두고.”

 “나도 갈 데 없어지면 되는 거지? 갈 데 생길 때까지 정단야가 임보 해주나?”

 “나 없이도 잘만 살면서 왜. 나 저기 내려줘.”

 선은 단야의 손 끝이 가리키는 곳에 천천히 차를 세웠다. 단야는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병원으로 쏙 들어갔다. 선이 병원 안으로 단야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 차를 움직였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집 내놓으려고요. 가격 상관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팔아주세요. 시세보다 적게 받아도 됩니다.”

 선은 전화를 끊었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용한 음악을 틀었으나 쉬이 마음이 풀리질 않았다. 영생을 사는 단야와 자신에게 인간 남자 하나 따위 찰나일 테였다. 그럼에도 선은 가만히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가, 이번만큼은 싫었다.

 

 선은 아주 오래 단야를 사랑해왔다. 영원이 있다면 그것보다 조금 더 오랫동안. 그렇게 오래된 마음은, 깊게 우린 차처럼 더 향긋할 줄 알았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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