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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6화
작성일 : 19-11-10 00:19     조회 : 231     추천 : 2     분량 :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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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배부르다. 아주 행복해.”

 윤오는 오늘도 늘어졌다. 그것도 식사 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지금 딱 누워줘야 했다. 지금 누워야 완벽한 포만감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간만의 사냥으로 마음껏 배를 채운 후 초원에 누워 안락함을 누리는 심바가 된 기분.

 “너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

 책 한 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단야가 소파에 눕듯이 앉은, 사실은 거의 누운 윤오를 향해 말했다.

 “에이, 거짓말 마세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거 그냥 애기들 겁줄라고 만든 말이잖아요. 저 애기 아닙니다.”

 “아니야. 진짜야. 내가 106년 전에 봤어. 옆집 살던 두부가게 주인장이었는데 아내한테 상 차리라고 윽박지르곤 돼지처럼 먹어 치운 후에 항상 바로 드러눕더라. 그러다가 하루는 진짜 소가 됐어. 짠, 하고 바로 바뀐 것도 아니고 어어어엄청 고통스러워하고 난 뒤에 뿔이 났고, 또 어어어어어어어엄청 고통스러워한 다음 날엔 발이 굳어서 발굽이 되더라.”

 단야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동요 없음이 윤오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거짓말인 데 저렇게 평온할 수가 있어?

 “그만…. 그만하세요…. 단야씨가 그렇게 말하면 괜히 현실 고증 쩔어서 진짜 같단 말이에요….”

 윤오가 장난스레 단야에게 말했고 단야는 방으로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단 한마디를 남겼더랬다.

 “진짜 같은 게 아니라 진짜야. 나 213년 살았어.”

 단야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윤오는 혼자 남겨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치를 보다가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았다. 그렇게 30초쯤 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돌기 시작했다.

 “아니야. 내가 그런 시시하고도 유치한 얘기 믿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소화가 안돼서. 진짜로 너무 많이 먹어가지고 소화시키려고 움직이는 거야. 쫄지 말자, 남윤오. 그래도 넌 니가 상 차렸고 돼지처럼 먹어 치우지도 않았…. 흑…….”

 잔뜩 울상이 된 윤오는 이제 경보 수준으로 거실을 몇 번이고 돌았다. 방에 들어간 줄 알았던 단야가 그 모습을 쳐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샐쭉 웃었다는 건 세 달쯤 후에야 밝혀진 사실이었다.

 

 *

 경보가 어느덧 뜀박질이 돼 심장이 터져나올 수준이 됐을 때, 윤오는 몸을 멈췄다. 죽지 않으려고 숨을 몰아쉬었다. 숨소리가 ‘허엌허엌’에서 ‘후우후우’로 바뀌자 윤오는 갈증을 느꼈다. 물을 찾아 냉장고로 향하려는데,

 띵동-.

 윤오는 고민했다. 목을 축일 것인가 문을 열어줄 것인가. 단야는 나와볼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오늘 예약은 없다고 했는데. 누구지. 해열씨가 왔나? 아님 선…. 님…? 전자라면 문을 열 때까지 문짝을 두들기고 ‘단야야~ 놀자~!’ 따위의 ‘딩댕동 유치원’에나 나올 법한 큰소리를 낼 게 분명했고 후자라면 문을 열지 않았다고 또 무서운 눈으로 째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윤오는 둘 다 싫었다. 결국 문을 열었다. 목은 1분 후에 축여도 돼.

 문 앞엔 짧은 커트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쌍커풀이 짙게 드리워 제법 귀여우면서도 강단 있는 인상을 한 여자는 대뜸 윤오를 향해 말했다.

 “너무 그리워서 안되겠어요.”

 “뭐야. 얹혀 살면서 이제 여자를 들여?”

 벨소리에 슬쩍 나와 본 단야가 마주보고 선 윤오와 여자를 한번씩 보고 말했다.

 “아, 아, 아닌데요…!”

 “그런 것치곤 여자분 대사가 상당히 로맨틱한데?”

 “모르는 분인데요. 진짜로, 맹세, 맹세해요! 아, 아니라구요….”

 단야의 등장에 놀란 건지, 여자를 들였냐는 핀잔에 당황한 건지. 윤오는 말을 몇 번이나 더듬었고 단야는 어깨만 으쓱한 뒤 여자를 집 안으로 들였다.

 

 *

 “너무 그리워서 안되겠어요. 남편이 여기 왔어요. 그리고 죽었구요.”

 윤오가 정성껏 우려 낸 홍차를 받아 들어 한 모금 들이켠 여자가 입을 열었다. 윤오가 단야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단야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조용히 읊조렸다. 보시라구요. 남편이라잖아요. Not me. 단야는 아직도 좀 전의 장난을 들먹이는 윤오를 유치하단 듯 한번 흘긴 후 여자에게 물었다.

 “남편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한결이요. 임한결. 저는 민유나구요.”

 “유나 씨, 임한결 씨라면 나중에 다시 예약 잡기로 하고 돌려보냈는데요. 그날 당장 작업 받아야 한다 말씀하시긴 했지만 저희 쪽에서도 사정이 있어서 돌아가시라,”

 “돌려보내지 마셨어야죠.”

 “네?”

 “그이는 그날 죽었어요. 여기가 아닌 집에서. 당신들이 쫓아낸 덕분에. 가장 선택하고 싶지 않아 했던 방법으로 죽었어요.”

 단야는 분명히 기억했다. 단야의 힘에 너무도 쉽게 밀리던 남자를. 문이 닫힌 후에도 오래도록 울부짖던 목소리를. 뒤 켠에 서 있던 윤오도 마찬가지였다. 단야와 저의 다툼이 있었던 날 찾아왔던 선한 인상의 남자. 그는 단야의 작업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의 말에 따르면,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주일 전에, 괜찮게, 그리고 확실하게 죽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말하던 그이가 얼마나 평온한 얼굴이었는지 당신들은 모르겠죠. 이곳이 마지막 끈이었어요.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데 왜 돌려보냈냐구요. 원망스럽네요, 당신들이. 작업을 거절당한 줄도 모르고 성당에서 기도나 드리고 있던 나한테도 화가 나요.”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을….”

 윤오는 단야의 얼굴을 살폈다. 사무적인 톤과 떨림 없는 눈빛으로 가렸지만 단야가 당황했음을 윤오는 한눈에 읽어냈다.

 여자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어느새 차오른 눈물이 사라질 때까지 연거푸 눈동자를 굴렸다. 윤오는 조심스레 티슈 곽을 여자 앞으로 밀었다. 여자가 그런 윤오의 손끝을 보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티슈 곽을 밀어주기만 하세요? 달래거나 울지 말라고 하진 않구.”

 “네…? 왠지 모르겠는데….”

 여자가 결국 엉엉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한결이도 그랬어요. 내가 울 것 같으면 조용히 티슈 곽만 밀어줬어요. 남자놈들은 대체 왜 그래요…. 한결이가 너무 보고싶어요.”

 

 *

 “성격은 그렇게 소심하면서 그림은 어떻게 콩테로 그려?”

 유나가 이젤 높이까지 더해 천장에 닿을 크기의 캔버스 앞에 선 한결을 품어 안으며 물었다. 한결이 허리를 감아온 유나의 손에 제 왼손을 얹으며 웃었다.

 “콩테는 아무리 지워도 자국이 남잖아. 나는 콩테 절대 못 쓰겠던데. 실수 없이 빠르게, 한번에 그어야 하는데 저녁메뉴도 한참을 고민하는 니가 어떻게 콩테를 쓰나 몰라.”

 “그림은 다르지. 그림엔 언제나 확신이 있어. 저녁메뉴엔 확신이 없으니까 고민할 뿐이지. 잘못 골라봐, 까다로운 민유나 ‘그냥 굶을래’하는 소리나 듣지.”

 유나가 힘을 줘 한결을 꽉 안았다. 한결과 유나 사이의 틈이 0에 수렴하도록. 있는 힘껏.

 “숨 못 쉬겠지? 항복해! 까다롭단 말 취소하면 풀어준다. 얼른!”

 한결이 이번엔 소리내 웃었다.

 “그냥 숨 못 쉴래. 언제 이렇게 민유나랑 가까워지겠어. 죽어도 좋아. 더 꽉 안아봐.”

 

 이 시대에 누가 순수미술 한다고 매달리니 하는 교수의 핀잔에 한결과 유나 모두 ‘제가요’하고 답한 게 시작이었다. 한껏 달아올랐던 술자리는 한결과 유나 덕분에 순식간에 식었다. 그림으로 먹고 살려면 디자인이든 일러스트든 배워 놓으라는, 아님 경영 복전이라도 하라는 꼰대질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맥이 풀린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부터 둘은 유명했다. 둘만 서로를 몰랐을 뿐. 미대 또라이가 누굴까요, 물으면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한결을 찍었고 또다른 누군가는 유나를 찍었다. 51:49의 팽팽한 싸움. 그리고 교수를 한방 먹인 이날부로 싸움은 균형을 찾았다. 50:50. 둘다 똑같이 또라이구나. 그렇게 결론이 났다.

 “나는 콩테로 스케치해요.”

 “나는 수채화. 여러 번 덧대서 그리는 걸 좋아해요. 틀려도 되는 데다 오히려 틀렸을 때 더 예쁜 색이 나와. 매력 있죠?”

 “그쪽이요?”

 “뭐, 수채화 말한 거였긴 한데. 그렇게 물으면 나도 매력 있는 게 맞으니까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네요.”

 “와. 자기 매력 있는 거 아는 것도 매력 있어.”

 “나는 민유나.”

 “난 임한결.”

 유나가 군데군데 물감색이 짙게 들어 빠지지 않은 얼룩덜룩한 손을 내밀었고 군데군데 거멍을 묻힌 손으로 한결이 맞잡았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게 지금이었다. 둘은 작업실이자 집인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벽을 터 방 하나만 남긴 넓은 공간에 둘의 그림을 가득 채웠다. 자기 그림을 볕이 가장 잘 드는 벽에 걸어야 하네 마네로 다툴 때도 있긴 했지만 그때 잠깐일 뿐, 둘은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뭘 그리길래 스케치가 이렇게 오래 걸려? 답지 않게 지운 자국도 많고.”

 유나의 놀리는 듯 장난 섞인 목소리에 한결이 뒤를 돌아봤다. 둘이 얼굴을 마주했다. 유나는 웃는 채였으나 한결은 굳은 얼굴을 한 채였다. 유나가 한결을 따라 얼굴을 굳혔다. 한결의 손이 빠른 속도로 떨리고 있었다.

 

 *

 “바로 병원에 갔어요. 손이 떨리고 자꾸만 말도 어눌해졌거든요.”

 “파킨슨 병이었나요?”

 “…어떻게 아세요?”

 “병원에서 일해요.”

 “네, 맞아요. 파킨슨 병이라더군요. 의사 말이, 치료법이 없다구. 악화되는 걸 막는 수준의 치료는 가능하지만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라 했어요. 나도 한결이도 울지 않았어요. 현실감이 없었거든요. 의사가 하는 말이 귀로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카페에서 작업하는 도중 흘러 들려오는 음악 같은 느낌.”

 

 *

 “콩테를 자꾸 떨어뜨려.”

 “주우면 되지.”

 “강약조절이 안돼. 너무 진하고 너무 연해.”

 “나는 잘 모르겠던데? 그게 오히려 새로울 수도 있어.”

 “직선을 긋기가 어려워.”

 “곡선은 어때?”

 “약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잠이 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약 바꿔달라고 하자.”

 “…이제 그림에 확신이 없어.”

 붓을 든 유나의 손이 멈칫했다 움직임을 이어갔다. 같은 자리에, 같은 색을 덧바르길 오래여서인지 종이에 곧 구멍이 생길 지경이었으나 유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을 멈추면 유나의 뒤에 의자를 놓고 앉아 차분한 척 말하던 한결까지 동요할 것 같아서. 정말로 큰 일이라고 생각해버릴 것 같아서.

 “유나야.”

 나직이 부르는 소리에 유나는 답하지 않았다.

 “유나야…. 내가 10년쯤 더 산다 한들 그건 사는 게 아닐 거야. 콩테를 쥐지도 못하는데, 그림을 그리지도 못하는데 그게 어떻게 사는 거야. 그치…?”

 이번에도 유나는 대답을 않았다. 악을 쓰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못된 말이 튀어나올까 유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뒤를 돌았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시선을 내리깐 한결에게 다가갔다. 한결이 유나를 올려다봤다. 유나는 한결을 꽉 안았다. 유나의 눈은 이미 벌개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끌어안은 한결의 작은 머리통에 눈물방울을 떨굴 것 같았다. 한결이 애써 울음을 참는 듯 어색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유나의 가슴팍을 느끼며 손끝으로 티슈 곽을 유나의 발끝에 끌어왔다. 유나는 이 소심하고도 다정한 남자를 놓아줘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알았다.

 

 한결은 며칠에 한번 외출을 했다. 유나는 집을 나서는 모습에 이게 마지막일까 염려하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모습에 안도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듯 같지 않은 몇 주가 흐른 어느 날, 한결이 간만에 웃는 모습으로 유나에게 말했다.

 “괜찮게, 확실하게 죽는 방법을 찾았어. 이제 메탄올 안 먹어도 돼. 그거 알아? 메탄올은 먹었다가 실패하면 실명한 채 평생을 사는 거래. 그건 진짜 최악이야. 파킨슨 병이 차악일 정도로.”

 

 *

 “그이를 배웅했어요. 잘 가라고, 혹시나 가능하다면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서 같이 그림 그리자고, 사랑한다고, 여러 말 해주고 싶었는데 정작 나온 건 안녕뿐이었지만.”

 단야와 윤오는 잠자코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어요.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죽게 뒀느냐고,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도요. 나도 아니까요. 나도 그림을 그리니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면 어떨까. 캄캄했어요. 눈앞이, 머릿속이. 그러니 어쩌겠어요. ‘안녕’ 해줄 수밖에.”

 여자가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자는 이미 메탄올을 잔뜩 마신 채로, 숨이 끊어진 채로 작업실 벽에 기대어 있었다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이 먼 채로 생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고. 윤오는 그날 단야와의 다툼 때문에 최악을 선택해야만 했던 남자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흐른 눈물이 턱에 고여 윤오의 청바지 위로 떨어졌다. 옅은 파랑색의 동그라미가 진파랑으로 방울졌다.

 “얘기가 길었네요. 사실 어떻게든 한결이랑 제 작업실을 지켜보려 했어요. 나는 혼자라도 살아봐야지 했어요. 그런데 안되겠어요. 저도 삶을 끝내주세요. 남편에게 못해주신 작업, 저한테 해주세요.”

 단야는 생각에 잠겼다. 감정이 또다시 일을 그르쳤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다짐했던 게 무색할 만큼, 단야는 화라는 감정에 휘둘려 남자와 여자를 상처 입혔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굳이 기사를 찾아보지 않아도 안락사를 진행할 단야의 조건은 충족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조건이 하나 있어요.”

 단야가 고민하는 새, 여자가 입을 열었다.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어요.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죠?”

 여자는 남자와의 추억이 한가득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했다. 떠난 그가 설거지를 하는 내내 물바다로 만들었던 싱크대가 있는 공간에서, 떠난 그가 무지개 색으로 줄을 맞춰 세워 놓던 머그컵이 있는 공간에서, 떠난 그가 자신을 꽉 안고 잠들던 침대가 있는 공간에서. 단야의 얼굴을 살피던 윤오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저기…. 저희의 몇 안되는 규칙 중 하나가 작업은 반드시 이 집, 작업실에서 이뤄진다는 거여서요. 부탁하신 건 조금 곤란….”

 “아니에요. 그렇게 하시죠. 정리하시고 때가 되면 연락 주세요.그때, 집으로 가겠습니다.”

 

 *

 여자가 빠른 시일 내에 연락을 주겠다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넘기고 떠났다. 윤오는 한참을 현관에 멍하니 서 있다 거실에 앉은 채인 단야 곁으로 갔다.

 “규칙 깨도 괜찮아요…?”

 “유나 씨 마음 잘 아니까, 거절하기가 어렵네.”

 지금껏 들은 목소리 중 가장 쓸쓸한 목소리여서 윤오는 더 물을 수 없었다. 어떻게 유나 씨의 마음을 잘 아느냐고.

 

 *

 정말로 여자는 이틀도 되지 않아 연락을 해왔다. 단야와 윤오는 여자가 남긴 주소로 향했다. 작업은 금세 끝이 났다. 여자는 창백하지만 평온한 얼굴로 세상을 떴다.

 “잠깐 나가 있어.”

 단야의 말에 윤오는 자리를 비켰다. 여자가 말했던 대로 서로 다른 그림체가 한 데 묘하게 어우러져 따뜻한 공기를 자아내는 집을 나와 복도에 기대섰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 때, 선이 도착했다. 단야의 부름을 받은 모양이었다.

 “단야는?”

 “안에요. 잠깐 나가 있으라 해서….”

 답을 들은 선은 윤오를 빠르게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윤오도 뒤를 따랐다.

 “단ㅇ…!”

 선이 멈춰섰다. 윤오도 간신히 선의 등에 부딪치지 않고 몸을 세웠다. 선의 시선 끝에 닿은 단야는 고요한 표정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여자의 얼굴을 보는 중이었다. 원하는 답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핏기가 가셔 창백한 여자의 얼굴에 온 신경을 집중한 듯했다. 선과 윤오의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잠시 시간을 준 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단야. 어쩐 일이야. 집 아닌 데서 작업을 다 하고…. 신중하기로 했잖아.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선아. 이 여자 얼굴 좋아 보이지 않아?”

 “…. 전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이리 와.”

 단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작고 딱딱한 나무의자가 불편할 법도 한데.

 “니가 안 오면 내가 가. 알지?”

 선이 단야 가까이로 가 단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윤오는 멀찍이 떨어져 둘을 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딘가 가슴이 찌릿한. 단야는 얼마간 선의 품에 조용히 있다 입을 열었다.

 “비켜, 성 선. 답답해 죽겠어. 얼른 시신 가지고 가. 처리 잘 하고. 끝까지 잘 보내줘.”

 

 *

 단야가 괜찮은가 연거푸 확인한 선은 여자의 시신을 챙겨 어딘가로 떠났다. 남겨진 윤오와 단야는 뒷정리를 한 후 집을 나섰다. 혹시라도 튀었을 핏방울은 없는지, 무신경하게 움직이느라 틀어진 가구 혹은 그림은 없는지 확인했다. 여자와 남자의 정이 깃든 자리가 가장 온전히 남을 수 있도록.

 단야는 피곤한지 운전석을 윤오에게 넘겼다. 윤오는 토 달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단야는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단야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윤오는 알 수 있었다. 윤오는 운전에만 집중했다. 단야가 상념에 푹 젖을 수 있도록. 그리고 속으로만 바랐다. 푹 젖은 다음 자신이 있는 뭍으로 꼭 돌아오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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