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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20장 미노의 살모사(1)
작성일 : 19-11-09 06:12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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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부터 루이스는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모포를 들고 낭인들 곁으로 다가와 잠을 청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 아침부터는 낭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잠을 잤다. 처음에는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러나 하던 낭인들도 여러 날이 지나자 달라진 루이스를 받아들였고, 루이스는 어느새 유죠와 아마쿠사미토에게도, 낭인들에게도 어엿한 동료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 온 지는 얼마나 지났지?”

 

  어느 날, 밥집에서 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말린 나물을 무친 반찬과 우메보시를 시켜 먹고 있을 때 낭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이름이 뭐라 했지?”

  “나나하라 사마노스케라고 하네.”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 한 일 년 정도?”

 

  루이스가 귓바퀴에 걸린 고리를 만지작거렸다. 그 바람에 백금으로 만든 방울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흔들렸다.

 

  “일 년이라고?”

  “응.”

  “가미카타 말을 무척 잘하기에 일본에 온 지 꽤 오래 된 줄 알았네. 일본음식을 잘 먹는 것도 그렇고.”

  “이 노인네, 세상물정 정말 어둡네. 이봐, 사마노스케. 우리 선교사들이 동양에 오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 그런데 일본에 정식으로 교구가 설치되었을 리도 없잖아.”

  “교구? 그것이 그리 중요한가?”

  “그럼 중요하지. 교구가 있어야 정식으로 사제를 파송할 수 있거든. 그러니 현재 나를 포함한 일본에 체재 중인 선교사들은 정식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이 아니야. 어떻게든 새로운 신앙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신앙의 불모지에 있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기 위해 어떠한 역경이 닥치든 이겨내겠다고 다짐하고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지.”

  “…….”

  “이런.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 어쨌든 정식으로 교구가 없는 곳에, 그것도 동양에서도 가장 낯선 일본이라는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문제로 교황청에서는 꽤나 골머리를 앓았어. 하지만 교황청에서도 언제까지 선교사들의 열망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재작년부터 마지못해 일본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허락했지. 알아?”

  “…….”

  “그런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일본에 머무를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

  “그리고 나는 재작년에 포르투갈을 출발해서 일본으로 왔어. 무려 일 년이 넘는 바닷길을 거쳐서 말이지. 그리고 일본에서 지내기 시작한 것이 일 년이고. 어이, 주인장!”

 

  말을 마친 루이스는 가게 주인을 불러 생선회 한 접시를 더 시켰다. 낭인들이 생선은 비싼 거라고 루이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으나 그는 제 오른손목에서 보석이 줄줄이 박힌 은팔찌를 풀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 여기 돈 있어. 이거면 생선회에 생선구이, 경단탕까지 시킬 수 있겠지? 주인장, 뭐해? 여기 이 돈만큼 음식을 내와. 이왕이면 비싼 걸로. 알았지?”

 

  루이스의 말에 주인이 연신 허리를 숙이며 팔찌를 집어 들었다. 세공이 훌륭한 것이 유럽이나 중원에서 가져온 것인가 생각하던 유죠는 팔찌를 품 속에 넣고 등을 돌리는 주인의 팔을 붙잡아 멈춰 세우고 루이스에게서 빼앗은 설탕덩어리 한 줌을 건네주었다.

 

  “생선회를 시키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일본에서 나지 않는 것이고, 아직 사용되지도 않는 것이니 이보다 더 진기한 것은 없을 터. 그러니 팔찌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이것을 받아두어라.”

 

  팔찌를 돌려받은 루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유죠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항의가 담겨 있었다.

 

  “소중한 것이지 않나. 괜히 호기 부리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 넣어두어라.”

 

  유죠의 말에 루이스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팔찌를 다시 손목에 찼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문득, 루이스의 손목을 보고 두 눈썹을 꿈틀거렸다. 루이스의 하얀 손목에는 찢어진 가죽을 서툰 바느질로 대충 꿰맨 것 같은 흉터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 생선회 나왔습니다.”

 

  어느새 주인이 생선회가 담긴 접시를 들고 와 탁자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생선회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며 높은 깃으로 가린 루이스의 목덜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칼을 쓰는 자에게 흉터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루이스의 손목에 있는 흉터는 자연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유죠에게서 들은 대로 저자가 정말 첩자라고 해도 손목에 있는 저 흉터가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쿠사미코토가 보기에 저 흉터는 분명,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흉터였다.

 

  “답답하지 않아? 늘 그렇게 옷깃을 높이 세우고 있는데.”

 

  아마쿠사미코토는 짐짓 무심함을 가장하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루이스가 하, 하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에는 당신들 일본인들이야말로 참 신기한데요.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는지 너무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더군요.”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번에도 자신의 질문을 교묘히 피해가는 루이스의 두 눈 사이를 노려보았다. 처음 만날 때보다 앞머리가 더 자란 루이스가 지지 않고 아마쿠사미코토의 시선을 맞받았다.

 

  “두 분 또 싸우시지 말고 회나 좀 드시지요. 생선이 아주 싱싱하고 맛있지 않습니까.”

 

  낭인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마코토가 갑자기 무덤처럼 무겁고 음산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달래려 애썼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지못해 생선회를 마저 집어먹으며 루이스를 노려보았다. 루이스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루이스 프로이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루이스를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루이스가 또 뭐냐는 듯이 짝다리를 짚고 아마쿠사미코토을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정확히 말하면 네가 무척이나 싫다.”

  “그런데요?”

  “너에게서는 신이 아닌 무언가의 힘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네가 섬기는 신의 힘이겠거니 했지만 매일 가까이서 너를 지켜보니 알 수 있었다. 그 기의 주인, 다시 말해 네가 힘을 빌리는 그 존재는 신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악마에 가까운 것이겠지. 아닌가?”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에 루이스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루이스는 한 번 조용히 웃고는 잘 다듬어진 손톱으로 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리고 네가 첩자라는 것도 내게는 그리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 첩자 아니라니까 그러네.”

  “첩자가 아니라고?“

  “그래요. 나는 첩자가 아니에요. 아니, 까놓고 말해서 첩자질로 나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뭔데요. 없잖아.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그렇군. 그러나 방금도 말했다시피 그런 것 따위는 내게 상관없는 일이다.”

  “하.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내가 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 네가 온전히 유죠의 사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에 루이스의 눈동자가 경계의 빛을 띠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루이스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작금의 시대는 혼란 그 자체이다. 가신이 주군을 배신하는 것이 당연한 그런 시대지.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불구하고 유죠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아버지의 가신들에게 그리 당하고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지.”

  “…….”

  “루이스, 인간은 말이다, 누군가를 믿으면 강해질 수 없다. 네가 유죠에게 이야기한 그 순교라는 것도 사실은 약해졌음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너무 약해져서 혼자 힘으로는 싸워 이길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으니 강한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 싸워 이기고, 죽으려는 것이지.”

  “그래서요?”

  “그러나 유죠는 지금 자신을 약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자신을 강하게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너마저 유죠의 사람이 된다면 그 아이는 더욱 약해지기 시작할 거다. 너는 다른 가신들과는 달리 너의 이익을 위해 유죠와 거래를 한 사람이 아니냐. 그러니 네가 유죠의 사람이 된다면 유죠는 더욱 약해지기 시작하겠지.”

  “…….”

  “하지만 루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유죠의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유죠와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유죠의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구나, 루이스.”

 

  아마쿠사미코토가 안으로 들어가고 루이스는 한참을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루이스가 옷깃을 풀었다. 옷깃이 풀어지고 드러난 목덜미에는 목이 반쯤은 넘게 잘려나갔던 선명한 흔적 위로 알 수 없는 문신이 새까맣게 덮여 있었다.

 

 ※

 

  얼마 후, 일행은 미노국의 수도이며, 미노국의 다이묘 사이토 도시마사의 거성(居 城)인 이나바야마 성의 성하촌(城 下 村)에 도착했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도시마사 이전까지 주로 최후의 방어선으로 쓰였을 정도로 험준한 산에는 마치 산 주위를 둘러 감싸듯 견고한 성채가 자리 잡고 있었고, 성채의 중심에는 도시마사의 취향을 반영하듯 높다란 천수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여기가 이나바야마 성…….”

 

  사츠마에서 온 낭인들은 마치 촌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입을 헤 벌리고 금으로 장식된 천수각을 올려다보았다. 성하촌은 성을 중심으로 한 이나바야마의 바로 아래에서부터 여러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구획마다 시장을 끼고 길거리와 마을들이 발달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도로가 잘 정돈되어 있고 거리의 좌판이며 가게들도 모두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고, 손님! 어서옵쇼!”

 

  일행이 그 중 가장 번화한 거리를 지날 때, 한 남자가 루이스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자기의 가게를 가리켰다.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미녀들과 미동들이 격자창 안에 자리하고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자, 자, 골라보세요. 얼굴이 하얀 년도 있고, 가슴이 큰 년도 있습지요. 교토 여자, 오사카 여자, 저 촌구석 여자까지 종류별로 다 있으니 말만 합쇼.”

 

  검은 망토를 머리부터 뒤집어써 얼굴을 가린 루이스가 씨,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더러운 것을 털어버리듯 남자의 손을 탁 쳐냈다.

 

  “더러워.”

 

  마치 남자더러 들으라는 듯 가미카타말로 중얼거린 루이스는 씩씩거리며 앞장서서 길거리를 걸었고, 미동들을 구경하며 침을 삼키던 낭인들은 같이 가자며 루이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까 그 맨 뒷줄에 앉아 있던 남자애 괜찮지 않았어?”

  “응. 예쁘고 귀엽던데.”

  “아, 돈만 있으면 그런 미동들 서넛은 사서 끼고 잠드는 건데.”

  “그런데 루이스 자네는 왜 그래? 자네는 여자나 미동에 관심이 없어?”

 

  저마다 조금 전 본 미동들을 두고 이야기를 하던 낭인들이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거든.”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여인이나 미동들을 사서 하룻밤을 즐기는 것조차 금지하는 건 아닐 게 아닌가.”

  “그것도 금지야. 우리 가톨릭은 성직자나 수도자의 순결을 중시 여기는지라.”

 

  루이스의 말에 낭인들은 그러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본의 중들도 다 저마다 미동을 끼고 색을 즐기고, 때로는 여자를 사서 색을 즐긴다며, 색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그것조차 막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혀를 차는 낭인들을 보며 루이스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은 여자나 미동을 사고파는 것도 금지하고 있어. 사람의 성(性)을 돈이나 물건을 주고 사고파는 것을 매우 혐오하거든.”

 

  낭인들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종교이기에 사람이 누리는 기본적인 즐거움조차 빼앗느냐고 혀를 내두르는 사이, 일행은 온천이 딸린 고급여관에 도착했다. 루이스는 얼굴을 가린 망토를 벗어들고 유죠를 바라보았다. 유죠의 얼굴에는 그가 일전에 유죠에게 건넨 양분이 발라져 있었다.

 

  “그래도 생채기를 가릴 정도는 되는군요.”

 

  애초에 품질이 그리 좋지는 않은 까닭에 조금만 땀이 흘러도 지워져버리고는 하였지만 그런대로 얼굴의 낙인을 가릴 수는 있었다. 유죠는 분을 한 번 더 꼼꼼하게 바르고 여관으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여관 주인은 유죠의 얼굴에 있는 낙인을 보지 못한 것인지 일행을 정중하게 안으로 맞아들이고 방을 안내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야 할 거다.”

 

  가장 큰 방 두 개를 배정받은 일행은 여종업원 네 명이 들고 온 커다란 상을 받았다. 각자의 앞에 큰 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상들이 하나씩 놓이고 밥과 미소국, 그리고 생선구이와 두부조림, 우메보시가 차려지자 일행은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를 깨끗이 비우고 종업원들이 가져다준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루이스 자네는 우리랑 같이 목욕 안 가나? 아마쿠사님은요? 저희와 같이 목욕 안 가십니까?”

 

  아마쿠사미코토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루이스는 유카타를 저쪽으로 밀어두고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카타로 갈아입다 말고 다시 원래 입고 있던 고소데를 껴입기 시작했다.

 

  “신은 인간과 함께 목욕을 하는 법이 없어서 말이다. 나는 이따 따로 목욕하도록 하지.”

 

  말을 마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욕탕으로 향하는 유죠에게 수건을 하나 더 챙겨주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있으면 아무도 유죠의 얼굴에 새겨진 낙인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이제 우리 둘 뿐이군요.”

 

  유죠와 낭인들이 복도를 나선 것을 확인한 루이스가 미닫이문을 닫고 등에 문을 기댔다. 문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쉰 루이스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가 유죠씨의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나를 싫어한다 했지요?‘

  “그렇다.”

  “그리고 늘 내가 유죠씨의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죽이겠다 생각하고 있었고요.”

  “그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제 내가 유죠씨의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거고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아마쿠사미코토는 물었다. 루이스가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마쿠사미코토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무엇을 보고 내가 유죠씨의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 거죠? 혹시 내가 유죠씨를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뭔데요?”

  “너는 지나치게 인간적이니까.”

 

  아마쿠사미코토는 말했다.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에 루이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 말을 하는 내내 루이스의 목소리는 한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내가 인간적이라고요? 내가?”

  “본래, 인간적인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평생을 걸쳐 그 사람의 곁에 남게 되지. 그렇게 어느새 그 사람 자체가 삶의 목적이, 목표가, 그리고 모든 꿈과 희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것을 동지라고 부르더구나.”

  “…….”

  “그리고 내가 본 너는 가장 인간적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본 너와 유죠, 모두 가장 인간적인 존재들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구나.”

 

  아마쿠사미코토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 사이에는 무덤보다 더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위가 잠잠해진 두 사람의 주위로 복도를 거니는 여종업원들의 발소리가 끼어들었다. 한동안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던 루이스가 높은 깃을 풀고 허리끈을 풀었다. 옷에 달린 단추를 모두 풀어헤치고 속에 입은 셔츠까지 벗은 루이스의 등에는 무수히 많은 칼자국과 채찍질 흔적 위로 여섯 개의 날개를 펼치고 날카로운 검을 든 누군가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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