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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8장 천지인(天地人)(2)
작성일 : 19-11-09 06:09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8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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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신사를 떠난 그날부터 유죠는 꼬박꼬박 아마쿠사미코토의 담배시중을 들었다. 아마쿠사미코토가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고 있으면 유죠는 담뱃대에 잘게 썬 담뱃잎을 채워 넣고 붙을 붙여주었고, 아마쿠사미코토는 연기를 입으로 한 번 빨아들인 다음 후, 하고 길게 내뱉으며 마치 꿈꾸는 듯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유죠는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는 하얀 연기를 올려다보다 아마쿠사미에게로 눈길을 돌려 그녀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담으며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남만은 어떤 곳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한낮에 숲속의 나무그늘 아래에 누워 담배를 피우는 아마쿠사미코토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죠가 불쑥 남만에 대해 물어온 것은. 아마쿠사미코토는 입에서 담뱃대를 떼고 유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누워 있는 사이에 고소데의 깃이 벌어져 있는 것이 보여 아마쿠사미코토는 아깝다는 듯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담배를 끄고 옷깃을 똑바로 정리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것이냐?”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담배는 일본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남만에서 들여온다면서요. 그리고 남만의 상인들은 일본에 담배를 팔아 큰 이윤을 남기고 있고요.”

  “그런데?”

  “신기하지 않습니까. 일본인들이나 남만인들이나 모두 같은 사람들인데 어느 한쪽은 바다를 두려워해 제 나라에서 나는 질 좋은 상품들을 다른 나리에 내다팔아 이윤을 남길 생각을 하지 못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바다를 두려워할 줄 몰라 제 나라에서 나는 질 좋은 상품들을 다른 나라에 내다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요.”

  “그래서? 궁금한 게 무엇이냐?”

  “그들은 어째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하지만 큰 배와 진보한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배와 진보한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언가라. 아마쿠사미코토는 담뱃대를 다시 입에 물었다. 유죠가 얼른, 담뱃잎을 채우고 불을 붙여주었다.

 

  “너는 남만에 대해 어디까지 알지 모르겠지만 남만은 일본에서 배로 일 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는 유럽이라는 대륙이다. 그 대륙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고, 그 중 외국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한 나라로는 포르투갈, 에스파냐, 화란(네덜란드), 영길리(영국)가 있지.”

  “…….”

  “네가 방금 말했다시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은 맞다. 그들은 일본인들과는 다른 문화와 법제도, 사상 속에서 일평생을 나고 자랐으니 일본인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 말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그들만의 그 무언가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바로 그들의 신이다. 아니, 정확히는 신을 위하는 방법 내지는 신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해야겠군.”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그들이 신을 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일본의 신관이나 무녀, 승려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그들의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은 더 먼 세상으로 나가 곳곳에 무역항을 확보해 돈을 벌어들이고 끝내는 그 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한 나라가 거대한 제국을 이루는 것이 신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방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이슬람 상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십자군전쟁을 일으켰고, 그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른 무역항을 확보하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려 새로운 교역로를 확보하고, 세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대륙을 발견해 식민지로 삼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유죠는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손에 턱을 괸 채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아마쿠사. 유럽의 성직자들과는 반대로, 일본의 신관이나 무녀, 승려들은 그저 돈이나 세고 주색잡기만 일삼으며 되도 않는 핑계로 잇키를 일으키는 데나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니 일본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하게 되어 새로운 교역로를 찾아 무역항을 세우고 이윤을 얻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말입니다.”

 

 

 ※

 

  그때의 일을 떠올린 아마쿠사미코토는 설마, 하는 눈으로 유죠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유죠는 다시 한 번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끊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다, 시, 한, 번, 묻, 겠, 다. 그, 대, 내, 가, 신, 이, 되, 어, 보, 지, 않, 겠, 는, 가?”

  “하?”

 

  처음에는 어리벙벙해하던 남자의 표정이 이제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한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남자는 정말 길거리에서 머리에 꽃을 달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이라도 본 것 마냥,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요?”

  “그래.”

  “일본의 의학에는 심의(心 醫)라고 하는 의사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한데?”

  “그 심의라는 의사들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치료한다면서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 또한 정신이 온전한 사람 같지는 않으니 그들에게 치료를 한 번 받아보십사 하고 진지하게 권하는 겁니다.”

  “이놈이!”

 

  낭인들이 남자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이놈이 감히 어디서 우리 주군을 모욕하느냐는 말에도 남자는 “그러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을 온전하다고 하느냐”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그래도!”

  “아니, 미친 걸 미쳤다고 하는 게 죄입니까? 그러면 나더러 미친 것을 두고 파쳤다고 말하기라도 하라는 것입니까?”

  “이놈, 그 입을 다물라!”

  “아, 이거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네. 당신, 미친 것 맞잖습니까!”

  “내가 미쳤다고?”

 

  유죠는 낭인들에게 멱살이며 머리채를 잡혀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보았다. 남자는 한숨을 푹푹 쉬며 눈길을 돌려버렸다.

 

  “내가 미쳤다. 거, 듣던 중 가장 재미있는 말이로구나.”

  “와, 이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게 재미있대. 하, 진짜 미친 거 맞네. 완전히 갔어, 갔어. 아, 이 가엾은 영혼을 어찌해야 하나. 오, 주여, 제발 이 어린 양을…….”

  “양?”

  “우리는 죄인을 양이라고 표현하거든요. 하핫.”

  “이놈이!”

 

  낭인들이 다시 남자를 때리고 짓밟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굴에 새겨진 히닌의 낙인을 보고도 그 앞에서 죄인을 운운하다니. 이것을 용감하다 해야 할지 아니면 생각이 없다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아마쿠사미코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돌겠군.”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까 저자와의 싸움에서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읽었다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도대체 무슨 주술을 쓴 것인지 아마쿠사미코토는 인간인 남자의 생각과 느낌을 알 수 없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남자의 주위에는 연기 같은 검은 기운이 날개 모양의 형상을 이루어 마치 결계를 치듯이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것은 또 무엇이지?”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곧 검은 기운이 커다란 뱀의 형상으로 변해 아마쿠사미코토의 발치로 기어와 발목에 이빨을 들이댔다.

 

  “어딜!”

 

  아마쿠사미코토는 손가락 끝으로 신력을 내보내 뱀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뱀은 다시 연기 같은 검은 기운으로 변해 날개 모양의 형상을 이루어 남자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신인 나조차 주위에 있는 기운을 모아 형상을 이루어 신력을 담아 쓰는 것이거늘.”

 

  더구나 신의 힘을 빌려 쓸 수밖에 없는 자에게 이렇게 기운이 형상을 이루어 항상 함께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의 두 눈 사이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손가락이 타는 듯한 통증이 일어 아마쿠사미코토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얼른, 손가락을 떼려다 정신을 집중하고 언령을 내보냈다.

 

  “이 아이를 둘러싼 사악한 기운이여, 정체를 밝히고 본모습을 드러내라.”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의 언령에도 불구하고 검은 기운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의 머리에서 조금 전 자신이 빌려준 머리끈을 풀었다. 단 한시라도 더 이런 사악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자에게 자신의 물건이 닿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뭐,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군요. 그래. 이유나 들어봅시다. 대체 나를 가신으로 삼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재미있어서다.”

  “재미있어서요?”

 

  남자가 입을 헤 벌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 바람에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흐트러져 어깨로 흘러내렸다.

 

  “저기요?”

  “응?”

  “제 나이가 몇인 줄 아십니까?”

 

  남자가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이며 혀를 찼다. 한동안 유죠를 바라보며 혀를 차던 남자가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며 품 속에서 작은 담뱃대를 꺼냈다.

 

  “됐다. 나이 먹는 게 벼슬도 아니고. 그래, 내가 여기서 나이 자랑해봤자 뭐하겠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늙으면 뒈져야 한다고.”

 

  혼잣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완벽한 가미카타 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한동안 넋이 나간 듯 남자를 바라보던 낭인들이 다시 남자의 머리채며 멱살을 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이놈이 정말!”

  “이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하아. 성질 한 번 급하시네. 말을 들어보니 사츠마 양반들 같은데 성격이 너무 급하신 거 아닙니까?”

 

  남자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남자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왼쪽 손등과 가운데손가락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남자가 슬며시 손을 뒤로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나이도 나이지만 나는 야훼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섬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런 내가 단순히 재미로 나를 가신으로 삼고 싶다는 당신의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자, 솔직히 말해보시지요. 나를 가신으로 삼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대는 남만 사람인가?”

  “아까 이야기했을 텐데요. 예, 나는 포르투갈에서 온 가톨릭 사제 루이스 프로이스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사제는 성직자에 해당하나?”

  “예, 그렇습니다. 저희 가톨릭의 성직자에는 부제, 사제, 주교, 추기경, 교황이 있지요. 그런데 그것은 왜 묻는 겁니까?”

  “남만에서는 성직자들이 신을 위해 먼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한다던데 맞나?”

 

  유죠의 말에 남자가 하, 하는 외마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남자가 유죠의 코앞에까지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이상하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열두 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무엇이 말인가?”

  “당신, 도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찌 묻는 것인가?”

  “당신은 지금 일본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예, 당신도 잘 알다시피 일본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합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척 우스운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그런 것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바다를 두려워하지요. 그래서 늘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육지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고요.”

  “한데?”

  “그런데 당신은 다른일본인들과는 다르게 바다로 나가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처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무역항을 건설해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을 통해 이윤을 얻으려는 생각이겠지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

 

  남자의 말에 낭인들이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며 유죠를 바라보았다. 일본의 서남쪽,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변방 중의 변방에 살면서도 바다를 두려워하던 그들에게 유죠의 생각은 가장 큰 충격일 것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목까지 높이 올라오는 망토 깃에 달린 갈고리단추를 풀고 옷 속에서 십자가를 꺼내놓고 있었다.

 

  “말해주세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내 이름은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라고요? 아, 혹시 당신이 히닌이 되어 오와리국 밖으로 추방당했다는, 오와리국의 다이묘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의 동생입니까?”

  “그대, 이름이 무엇이라 하였지?”

  “루이스 프로이스입니다. 루이스가 이름, 프로이스가 성이지요.”

  “그래. 루이스.”

  “왜요?”

  “세상에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가 두 명이 있겠는가, 세 명이 있겠는가? 그래, 내가 그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다.”

 

  유죠의 말에 남자의 눈에 알 수 없는 이채가 어렸다. 남자는 얼굴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지금 유죠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다 알겠다는 것 같아 아마쿠시미코토는 자산도 모르게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 자신이 판단하건대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반드시 죽여야 할 자’란 바로 눈앞의 남자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무엇이?”

 

  유죠가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목에 건 십자가를 손톱으로 탁탁 소리가 나게 튕기며 말했다.

 

  “내가 당신의 가신이 된다면 그것은 곧, 꼼짝없이 당신네들의 집안싸움에 말려들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

  “이보십시오, 유죠씨.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남의 집안싸움에 말려들게 되는 겁니다. 형제들끼리 유산 가지고 치고받고 싸우든, 부부간에 서로 바람을 피웠네 안 피웠네 하며 온 집안을 다 때려 부수며 싸우든, 부모자식 간에 서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렇게 대하냐느니, 당신 때문에 그동안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느니 하며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든 일단, 남의 집안싸움에 말려들면 그건 족히 일 년은 폐가망신 한다는 뜻이에요. 알겠습니까?”

  “…….”

  “아, 뭐, 나야 결혼을 못 하니 폐가까지는 아니고 그냥 망신이겠군요. 어쨌든 나는 일 년 내내 망신살이 뻗치기는 싫어서 말이지요.”

  “그러한가.”

 

  일순간, 유죠의 눈이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 틈을 타, 유죠는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뭐, 뭐하는 겁니까! 이거 놔요! 놔!”

  “루이스.”

  “아, 왜요!”

  “그러면 이야기를 이렇게 고치지. 나와 거래를 해보지 않겠나?”

 

  거래라는 말에 남자가 이건 또 뭐냐는 눈으로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슬금슬금 검집에서 검을 밀어 올리며 남자의 곁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나는 강한 군주가 될 것이다. 전국을 일통해 천황을 내 발 아래에 두고, 내가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할 것이다.”

  “……!”

  “그런 나의 목표에 지금의 신사와 사원 세력들은 방해만 될 뿐이다. 그저 제 뱃속에 기름칠을 하기 바빠 다이묘의 권위도 무시하며 잇키를 일으키기 바쁘지. 이 나라가 바다를 두려워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그놈들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백성들에게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보아라. 애초에 바다에 창을 넣고 휘저어 섬을 만든다니 그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더냐. 그런데 신관이라는 것들이, 무녀라는 것들이, 중이라는 것들이 그런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며 지난 세월 동안 부와 권력을 차지해왔단 말이다.”

 

  말을 하는 내내 유죠는 이를 으득, 갈았다. 남자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목표는 좋군요. 말도 매우 그럴싸하게 잘하고요. 하지만 거래라는 건 어디까지 상대가 나의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성립하는 법.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만족할만한 조건을 내놓아야 하는 법이지요. 만약 내가 당신의 가신이 된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약속해줄 수 있겠습니까?”

  “일본 전역에서 험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 들었다. 선교사들이 인육을 먹는다느니, 아이들을 잡아다 약을 만든다느니 하는 소문들 날이다. 그 소문을 잠재우는 방법이 무엇일 것 같으냐?”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죠는 지금 가톨릭에 적대적인 신사와 사원세력을 일소함과 동시에 가톨릭의 포교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남자가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한쪽 가슴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무릎 위에 두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검을 땅에 짚었다.

 

  “포르투갈에서 온 가톨릭 사제 루이스 프로이스. 한동안 당신의 가신이 되어 일하도록 하지요. 단, 당신이 내 예상과 달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 당신을 떠날 겁니다. 아시겠어요?”

  “반드시 약속하겠다. 그대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이 일본 땅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이며 그 누구도 그대들에 관해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며 그대들을 중상모략 할 수 없을 것이다.”

 

  유죠가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의 곁에서 물러나며 남자를 다시 한 번 노려보았다.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반드시 죽여야 할 자’가 유죠의 편에 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집 위를 손으로 쓸었다. 이 남자가 유죠를 위해 충을 바치기만 한다면 자신이 이 남자를 죽일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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