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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파수꾼
작가 : Enyy
작품등록일 : 2019.11.9

평소 두통에 시달리며 이상한 꿈들을 꾸던 평범한 대학생인 창현. 어느 날부터 꿈에서 꾸었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파수꾼‘이라 칭하며 국가에선 이미 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큰 교통사고를 막아낸 창현의 능력을 알아챈 ‘NSR‘과 그 반대세력인 ‘그림자’가 창현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창현은 결국 국가기관인 NSR에 들어가지만, 그림자의 알 수 없는 말들이 계속해서 창현의 마음에 남는다. 국가와 싸우는 그림자. 과연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18화
작성일 : 19-11-09 01:47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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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말에도 동식의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왜 자꾸 운동장 이야기를 하세요. 밖에 안 나가보셨어요? 지금 엄청 춥거든요. 저기요? 최용현 아저씨는 어디 계신가요?”

 

  남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의 입에서는 또박또박 한 글자씩 천천히 흘러나왔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안. 들리나?”

 

  남자의 태도를 지켜보던 창현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훈련’

 

  그들은 계속해서 파수꾼이 되기 위한 훈련이라고 했다. 파수꾼의 훈련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훈련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창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다가 이층침대에 머리를 박아 왼쪽 눈앞이 흐려질 정도였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운동장으로. 지금. 당장.”

 

  창현은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금 이것이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덩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복도를 달려 중앙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창현의 오른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며 코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강원도 산골의 바람은 서울의 공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창현은 황급히 달려 운동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검은 정장의 남자가 동식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나타났다.

 

  동식은 연신 발버둥 치며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마냥 꽥꽥거렸다.

 

 “이거 놔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최용현 아저씨 불러주세요. 전 이런 곳인 줄 몰랐다고요!”

 

  하지만 남자는 운동장 방향으로 거칠게 동식을 뿌리쳤다. 강한 힘에 동식은 비틀거리며 창현쪽으로 밀려왔다. 창현은 손을 뻗어 넘어질 것 같은 동식을 잡아주었다. 남자의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앞으로 너희의 신체를 책임질 사람이다. 건강한 숙면을 위해선 강인한 육체가 기본이다. 파수꾼에게 건강한 숙면이란 곧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남자는 동식을 보며 말했다.

 

 “넌 파수꾼이 되기로 자원했다. 우린 우리의 정체를 너에게 이야기했을 뿐이고 선택은 네가 했다. 우린 단 한 번도 너에게 강요한 적도, 강압적인 그 어떤 것도 행한 적 없다.”

 

 “그럼 돌아가겠어요. 어서 돌려보내 주세요!”

 

 “그건 불가능하다. 넌 이미 1등급 국가기밀을 알고 있다. 우리가 뭘 믿고 내보내 주지?”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약속해요!”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넌 이미 열심히 훈련에 임하겠다는 입소서에 서명했다. 그러니 닥치고 훈련에 임하도록.”

 

  남자는 창현에게로 고개를 돌린 뒤 경련이 온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지며 웃었다.

 

 “전방부대 수색대에서 근무했었다 들었다. 어느 정도 기본 체력은 되겠지.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도록.”

 

  벌써 전역한 지는 년 수로 2년이었다. 그때의 체력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남자는 동식의 멱살을 잡아채서는 앞으로 떠밀며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화도 아닌 구두를 신은 채. 창현 역시 황급히 남자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 시간. 창현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처음 뛰던 걸음의 반도 뛰지 못하고 있었다. 동식은 이미 오래전에 먹은 것을 토해내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남자는 거구의 몸을 이끌고 구두를 신은 채였지만 창현의 바로 옆에서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보폭을 맞춰주고 있었다.

 

  창현이 네발로 기기 시작했을 무렵 남자는 자리에서 멈춰서며 말했다.

 

 “형편없군. 오늘은 여기까지.”

 

  곧이어 뒤를 돌더니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창현은 그 자리에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찌르듯 쑤셔댔다. 입고 있던 윗도리와 점퍼는 이미 오래전에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청바지의 허벅지 부근까지도 젖어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에서 밀려오는 한기는 살을 찢는 듯 했다. 하지만 창현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눌어붙은 껌처럼 붙어있었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입을 벌리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 쿵쾅거렸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가슴이 튀어 오르는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입에선 의지와 상관없이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뒤통수에서 한기 때문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어느새 청바지는 얼어 바닥에 붙어버렸다. 바지를 힘겹게 뜯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번엔 다리가 말썽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우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붙들고 동식에게로 향했다.

 

  동식은 죽은 듯 바닥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실눈을 뜨고는 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갔어요?”

 

  잠깐만 누워있었는데도 죽을 것 같은 차가운 맨바닥에 대체 몇 분을 누워있었던 걸까.

 

  동식은 낡아빠진 청바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저 근육만 있는 돼지 같으니라고. 저는 저렇게 무식한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말이 안 통해. 말이.”

 

  동식은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건물로 향했다. 창현 역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건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침대 위에 새 옷이 반듯이 올려져 있었다. 하늘은 어두워져 어느새 밤이었다. 시계는 벽에 걸려있었지만 확인할 겨를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져 버렸다.

 

 *****

 

 ‘쾅!-’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상”

 

  창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 말했다.

 

 “기상”

 

  여전히 꼼짝하지 않자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기상”

 

  창현의 눈이 슬쩍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에서 돌아누웠다. 그러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기상!”

 

  창현은 옆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자리에서 벌떡 튀어 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문 앞에 서 있는 운동복 차림의 남자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나왔다.

 

  남자는 창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말했다.

 

 “씻지도 않고 그냥 잤나?”

 

  창현은 손으로 청바지의 엉덩이를 털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청결은 건강을 지키는 1순위다. 너의 건강은 이제 너의 것만이 아니다. 당장 씻고 오도록.”

 

  남자의 말에 창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 씻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가서 복도를 따라 왼쪽. 세면용품은 샤워실에 있다.”

 

  창현은 곧장 샤워실로 사라졌다. 남자는 여전히 누워있는 동식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를 잡아먹을 듯 얼굴 가까이에 입을 가져가 크게 외쳤다.

 

 “기상!”

 

  동식 역식 튀어 오르듯 일어나 앉았다. 남자는 동식을 향해 말했다.

 

 “당장 가서 씻고 오도록.”

 

  하지만 동식은 아직도 비몽사몽인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5분만 더 잘게... 5분만..”

 

  남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잘 익은 감처럼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두꺼운 팔을 뻗어 동식의 목덜미를 잡아채서는 바닥을 향해 잡아끌었다. 그러자 동식의 거대한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제야 동식은 잠에서 완전히 깼는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어금니를 꽉 문 채 말했다.

 

 “당장. 가서. 씻고. 오도록.”

 

  동식은 남자를 한 번 보고는 문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동식이 나가고 잠시 후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어머. 벌써 시작하셨구나. 얘기 들으셨어요? 원욱 씨?”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뭘 말입니까?”

 

 “이번에 303특수전사령부가 우리 담당 타격대로 들어온다던데요.”

 

  원욱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함께 일했던 전우들과 다시 만나게 돼서 좋으시겠어요.”

 

 “전 이제 군인이 아닙니다. 그들과 공유할 전우애 같은 것은 더 이상 제게 없습니다.”

 

 “저는 군인이 어떤 것인지는 잘은 모르지만, 우리 모두 명령으로 움직이는 건 똑같잖아요. 우리라고 다를 것이 있나요?”

 

  여자의 질문에 원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자 여자는 재빨리 말했다.

 

 “애들 좀 살살 다뤄주세요. 저한테는 오기도 전에 잠들어버리면 곤란해요.”

 

 “체력이 곧 국력입니다.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나라를 지키는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원욱의 대답에 여자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하는 교육도 중요한 거거든요.”

 

  말을 마친 여자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원욱은 여자가 사라졌음에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윤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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