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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20화. 끝을 위한 시작
작성일 : 19-11-08 23:57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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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산다라네 집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은오는 산다라가 방을 정리 하는 동안 마루에 앉아 기다리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선비님 정리 다 되었...예서 주무십니까?”

 

 베개 하나를 품에 안고 은오를 부르러 나온 산다라는, 곤히 잠든 은오를 보고 조용히 옆에 앉았다.

 

 그때 스르륵 몸이 미끄러진 은오가 산다라의 어깨에 기댔다가 그의 무릎 위에 놓은 베개 위로 풀썩 쓰러졌다.

 

 “우음..”

 

 잠시 후, 은오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뜨자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산다라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나셨으면 방으로...”

 

 “으헉!”

 

 은오는 기겁하며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어지럼증에 비틀거렸다.

 산다라가 은오를 잡으며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으아어어! 괘..괘괜찮소!”

 

 은오는 기겁하며 산다라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산다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곤히 주무시길래 깨우지 못한 것입니다. 들어가서 주무시지요.”

 

 은오는 산다라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얼굴을 붉혔다.

 

 “어우! 저는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예. 그래 보이십니다.”

 

 산다라는 민망해 하는 은오에게 생글생글 웃어주었다.

 

 “저어...늦은 시간에 경우가 아닌 줄은 알지만 가능하면 몸을 좀... 닦을 수 있겠습니까?”

 

 “뭐, 어렵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조심히 물으시는지. 저를 따라 오시지요.”

 

 산다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당 뒷편으로 걸어갔고 은오도 얼른 자신의 짐을 집어 들고 쫓았다.

 

 산다라를 따라 집 뒷마당으로 간 은오는 작은 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안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집이 제가 머물 곳 입니까?”

 

 “이 곳은 제 누이를 위해 만든 것입니다. 대장장이이긴 하지만 제가 이런저런 솜씨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건축이지요.”

 

 산다라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랑하듯 작은 집의 겉 문을 활쫙 펼쳐 보였다.

 

 집 안에는 나무로 만든 욕조와 찬 공기를 차단할 수 있는 구조의 여닫이 문이 겹쳐 있었다.

 은오는 놀라움에 연신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직접 만드셨단 말입니까? 대단하십니다! 어찌 이런 생각을...!”

 

 “그럼, 선비님은 천천히 즐기다 오십시오.”

 

 “윤은오입니다! 편히 은오라 부르십시오.”

 

 “예? 아...그건 좀. 저는 산다라입니다.”

 

 “예. 압니다. 저보다 형님 되시지요?”

 

 “하하. 나이가 많긴 하지만...아무튼 저는 먼저 들어갑니다~.”

 

 산다라는 은오의 태도에 당황했는지 손을 흔드는 시늉을 하며 돌아섰다.

 

 은오는 산다라를 보고 피식 웃었다.

 

 “재밌고 멋진 분이시구나. 마음에 든다, 이곳.”

 

 

 

 **

 

 일렁이는 촛불이 방 안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해랑과 은가비를 비췄다.

 해랑은 한참을 뒤척이다가 옆에 가만히 누워있는 은가비 쪽으로 돌아누웠다.

 

 은가비는 산다라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이동생으로, 마을의 여인 중 유일하게 해랑이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소녀였다.

 

 어려서부터 걷지 못했던 은가비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책으로 혼자 글을 익혀서 수많은 종류의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철도 빨리 들었고 여러 가지로 아는 것이 많은 똑똑한 아이였다.

 

 “은가비. 자니?”

 

 해랑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이. 왜? 언니 잠이 안 와?”

 

 은가비가 해랑이 있는 쪽으로 돌아누웠다.

 

 “응. 자던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에이…. 내가 언니라도 잠 안 오지. 꽝철이 오라버니 걱정되지?”

 

 해랑은 돌려 말하지 않는 은가비의 직구에 말문이 막혔다.

 

 “어...그렇지. 아무래도.”

 

 “그럼 오라버니한테 갔다 오면 되지~!”

 

 은가비가 이불을 눈 밑까지 끌어 올리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은가비, 왜 그렇게 웃어~?”

 

 “오라버니가 여기 업어다 주면서 다 얘기해 줬거든. 언니네 집에 왔다던 마을 사람들이 바보 같잖아. 언니랑 꽝철이 오라버니가 없는 마을이 더 위험할 텐데.”

 

 “뭐? 아닐걸~? 푸훗...”

 

 해랑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마을엔 촌장님도 계시구 장산 아저씨랑, 아! 산다라 오라버니도 계시는데? 니가 맨날 자랑했잖아~ 세상에서 제일 세다고!”

 

 “이제 자랑 안 해. 울 오라버닌 바보야. 난 오라버니가 누굴 데려와도 좋은데...”

 

 “응? 무슨 말이야?”

 

 “나는 몰랐는데, 이번에 장터에 따라갔을 때 옆 마을 어른들이 말하는 걸 들었거든? 우리 오라버니가 나 때문에 장가를 못 간 거래. 장가갈 나이였을 때 내가 너무 아기라서. 그런데 이젠 서른이 넘어서 시집올 여인이 없대. 그래서 영영 장가를 못 갈 거래.”

 

 해랑은 남 얘기 같지 않은 은가비의 말에 울컥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냐! 누가 그런 말을 해! 은가비 너,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있다고 네 탓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헤헤. 내 탓 아닌 거 알아~! 다들 바보야. 우리 오라버니는 여인을 안 좋아하는데... 나는 오라버니가 누굴 데려와도 잘해주고, 좋아할 건데.”

 

 ‘여인을 안 좋아해서 장가 안 간다고 말씀하셨나 보네.’

 

 은가비의 대답에, 해랑은 피식 웃으며 은가비가 아직 그런 말을 믿는 어린아이라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 산다라 오라버니가 여인을 안 좋아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귀여운 누이랑 둘이서 지내는 것도...”

 

 해랑이 말끝을 흐렸고 은가비는 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언니. 나 혼자 있는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응?”

 

 “꽝철이 오라버니한테 가. 언니는 걸을 수도 있고 밤에도 빨리 달릴 수 있잖아.”

 

 은가비의 말을 들은 해랑의 마음이 울렁였다.

 시선이 자꾸만 걷지 못하는 은가비의 두 다리로 향했다.

 

 “은가비, 너...”

 

 “아~ 나 이제 잠 온다!”

 

 은가비는 이불을 머리 위로 푹 덮어썼다.

 

 해랑은 일어나 앉아서 고민하다가 은가비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

 

 한편, 달빛이 밝은 호수에서 치료를 마친 치우는 촌장이 가져다준 옷을 집어 들었다.

 

 “일단은 고맙네.”

 

 치우가 웃옷을 걸치고 자신의 몸과 팔에 감긴 붕대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일단은…. 말입니까? 호수에 들어가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지금 다 벗고 들어가라고?”

 

 촌장은 옷을 입는 치우를 물끄러미 보다가 치우가 시선을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닙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계시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촌장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펼쳐놓은 천 위에 늘어진 약초와 도구들을 정리했다.

 

 “병을 주고 약 주는 게 딱 이런 거잖아?”

 

 장난기가 사라진 치우의 말투에 부지런히 움직여대던 촌장이 손을 멈췄다.

 

 “뭘 놀라고 그래.”

 

 “영 몹쓸 몸이 된 건 아닌 모양이지...”

 

 촌장이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찌 아셨습니까?”

 

 촌장에게서 당당하고 겁이 없는 표정과 태도가 묻어났다.

 

 치우가 호랑이에게 입은 상처를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창귀는 호랑이가 부리는 노예나 다름없다. 그 영혼이 호랑이의 부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범에게 잡아먹히게 해야 하지. 헌데, 이상하게 그 범은 마치 창귀가 호랑이를 부리는 듯했어. 귀신을 부릴 줄 아는 이가 있다면 반대로 호랑이를 부리는 것이 영 불가능한 건 아닐 테지?”

 

 “허허. 그 말인즉, 제가 범을 끌어들였다...뭐 그런 말씀이십니까?”

 

 “이곳의 호랑이는 태생부터 영물이 아닌 놈이 없다. 애초에 인간을 잡아먹을 범은 없었다고. 네 녀석이 귀신 따위로 함부로 건드릴 녀석들이 아니란 말이다.”

 

 촌장은 다시 고개를 땅으로 내리고 하던 정리를 마저 하며 투덜댔다.

 

 “확인 할 필요도 없다는 듯, 확신을 하시는군요.”

 

 “해랑이가 소라와 고둥, 매실을 갖고 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으냐? 그 와중에 해랑이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지? 대체 어디서부터가 네 놈 계획이야? 멧돼지부터가 네 놈 짓이냐? 해랑이가 새끼를 죽이게 한 것도, 나와 사이가 틀어지게 한 것도?”

 

 치우의 말에 촌장은 그저 웃음만 흘렸다.

 

 “뭐가 우스워?”

 

 치우가 얼굴을 구겼다.

 

 “제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해봤자 믿지 않으실 것 압니다. 늘 저를 의심하며 부정한 짐승 취급을 해댔던 당신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이런 짓을 꾸몄어?”

 

 “제가 귀신을 부렸다고요? 저를 굉장히 대단한 위인으로 취급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촌장이 비웃으며 빈정거리자 발끈한 치우가 촌장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해랑이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했어! 넌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그 양반은…!”

 

 “그 양반이. 제가 당신께 드리는 병입니다. 앞으로 좀 아프실 테지요.”

 

 “뭐...?”

 

 촌장은 멱살을 잡힌 채 여전히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당신께 드리는 약이지요.”

 

 늘 호를 그리며 웃음 짓고 있는 촌장의 눈이 천천히 뜨이자,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가 치우를 꿰뚫을듯 보았다.

 

 호수를 감싼 우거진 나무 틈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말해. 아리송한 말로 둘러대는 거, 더는 용납하지 않아.”

 

 치우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해랑이에게 제가 준 소라와 고둥 말입니다. 비단 주머니에 담아주었는데...”

 

 “...”

 

 뜬금없는 촌장의 말에도 치우는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해랑이가 멧돼지 이야기를 하며 범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해서, 제가 혹시 모르니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라고 설득했는데도, 기어이 혼자 간다고 하길래. 그런데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것을 어찌 제게 따지십니까?”

 

 촌장의 말에 동요된 치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누가 해랑이를 그곳에 혼자 두었습니까? 위험한 순간에 해랑이를 살린 건 누굽니까?”

 

 “...”

 

 멱살을 잡은 치우의 손에 힘이 빠졌다.

 촌장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해랑이가 묻더군요. 어찌 소라나 고둥같이 비린내가 나는 것을 비단 주머니에 담아 주느냐고. 생각해보니 해랑이 말이 옳더군요. 귀한 그릇엔 귀한 것을, 귀한 것 또한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진 그릇에 담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 다가가서 아직 여미지 않은 치우의 옷깃을 헤치고 검지 손가락을 그의 심장 부근에 대었다.

 

 늙고 주름진 뭉툭한 손가락이 길고 매끄러운 손으로 바뀌며, 날카롭게 길어 나온 손톱이 그의 살점에 상처를 냈다.

 손톱 끝에 동그랗게 피 한 방울이 맺혔다.

 

 “여의주도, 담아 둘 곳에 담아 두어야지요. 한낱 동정심에, 아직까지 천한 그릇에 그대로 두어서야... 다시 쓸 수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소멸해 흙으로 돌아가는 게 당신의 바람이었습니까?!”

 

 바람이 불며 둘 사이로 작은 잎사귀가 흩날렸다.

 

 “하!...하하하하, 윤슬-!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놈이 말은 잘하는구나!”

 

 치우는 실소를 터뜨리다가 촌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껏 치우에게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보인 적 없던 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뭐라 했습니까?”

 

 “내가 금기를 깬 너의 최후를 모를 것으로 생각했느냐?”

 

 촌장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이 맺힌 눈으로 치우를 쳐다보았다.

 

 “...여의주가 어디 있는지, 이젠 기운조차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해랑이가 곁을 떠나면 찾을 수나 있구요? 하긴 알 턱이 있나. 금방 이곳에 왔다 갔는지도 몰랐을 테니...!”

 

 “뭐...?”

 

 치우는 커진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촌장을 지나쳐갔다.

 몸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힘겹게 걸어가는 치우의 뒷모습을 촌장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다. 끝이 있으려면 시작이 있어야지요. 그대가 바라고, 내가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질, 끝이.”

 

 

 

 **

 어느새 개운하게 목욕을 마친 은오는 준비해온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작은 집의 문을 닫았다.

 

 -휙 , 타닷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형상을 본 은오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마을에...산짐승이 들어온 건 아니겠지?”

 

 은오는 긴장하며 경계하다가 얼른 산다라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루 앞에서 신발을 벗으려던 은오는 멈춰 서서 담장 쪽을 돌아보았다.

 

 

 *

 은오는 혼자 작은 횃불을 들고 조용하고 컴컴한 마을을 걷고 있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모험을 하고 있나...돌아갈까?”

 

 은오는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가 망설이며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아냐. 어디로 갔을 줄 알고... 처자 둘이서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어.”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은어는 어느새 해랑의 집 앞에 다다라있었다.

 

 “들어가면 내가 위험한 놈 취급을 받을 테니...어디 보자.”

 

 은오는 담장 가까이 가서 손에 든 횃불을 집 안쪽으로 뻗어 살펴보았다.

 

 근방은 고요했고 부숴지거나 다른 흔적도 눈에 띄지 않았다.

 

 “휴우...별 탈 없는 모양이구나. 종일 산길을 헤매고 이상한 일을 겪어서...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지.”

 

 은오는 안도한 얼굴로 다시 산다라의 집 쪽으로 몸을 돌렸다.

 까마득한 어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만 무사히 돌아가면 된다, 나만.”

 

 침을 꼴깍 삼키며 발을 뗀 은오의 귓가에 미묘한 소리가 들렸다.

 

 은오는 굳은 얼굴로 멈춰 섰다.

 

 ‘무시하고 가자...’

 

 은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발걸음은 해랑의 집을 지나쳐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

 우물가 근처에 웅크린 형상이 보였다.

 

 “거기...누구있소?”

 

 “...?!”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웅크린 형상이 황급히 일어섰다.

 그리 커다랗지 않은 아담한 모습에 은오는 조심스럽게 횃불을 들어 비춰보았다.

 

 “혹...해랑...처자 입니까?”

 

 “예에...”

 

 해랑이 몸을 돌린 채로 푹 잠긴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니,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 아니, 있습니까?”

 

 “...”

 

 해랑은 대답 없이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방금까지 굉장히 위험했잖..습니까? 헌데 이 시간에 여기서 무얼 하고 있냐고... 말입니다.”

 

 은오는 걱정이 가득 담긴 상냥한 목소리로 해랑이의 뒷모습에까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상관 마십시오.”

 

 해랑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은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 울고 계십니까?”

 

 은오는 해랑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몸을 돌렸다.

 

 “안 웁니다.”

 

 해랑은 땅을 보며 말했지만,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떨었다.

 

 “...안 운다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한번더 말을 보태는 해랑을 바라보는 은오의 마음이 미어졌다.

 

 “볼 때마다 뭐가 그리 서러운 거냐, 왜 또 그렇게 혼자 애처롭게 울음을 참고 있어.”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는 따뜻한 말과 목소리에, 해랑이 고개를 들어 은오를 보았다.

 해랑은 울상을 짓고 있었을 뿐, 그녀의 말대로 울고 있진 않았다.

 

 은오는 울음을 눌러 참고 있는 해랑을 보고, 5년전에 만난 그 아이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저기, 있잖아. 그때처럼 내가 가려줄 수 있어. 내가 다 숨겨줄 테니, 차라리 그냥 울어.”

 

 은오가 해랑의 앞에 가까이 섰다.

 

 “은...오?”

 

 은오는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려 해랑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천천히 끌어다 기대게 했다.

 

 “응.”

 

 해랑은 은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한 손으론 그의 한 쪽 소매를, 다른 한 손으론 가슴팍의 옷자락을 쥔 채 울음을 쏟아냈다.

 

 “괜찮아... 괜찮다. 괜찮아, 그래... 괜찮을 거야.”

 

 남은 한 손으로 해랑의 등을 토닥여주며 달래는 은오의 목소리가 우물가에 내내 울렸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해랑과 은오를 지켜보던 치우는 등을 돌렸다.

 힘없이 늘어져있던 치우의 손에 힘에 들어가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도 그 아이 앞에서만 속을 풀어 내는 구나.

 아프다...아프구나. 이번에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구나, 윤슬.’

 

 치우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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