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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03화(마지막화)
작성일 : 19-11-08 23:09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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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일 생각도 못한 채 얼빵한 표정으로 봄이를 바라보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군....... 지금 자신이 무슨 결정을 내린 건지는 알겠지?”

 

  “네, 알아요. 그러니까 얼른 시작하죠. 늑장 부리다간 녀석들이 돌아올 거예요.”

 

  봄이의 주먹은 확신에 차 있었고, 두 눈은 불타는 장작처럼 이글거렸고, 아랫입술을 꽉 깨문 입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피식 웃었다.

 

  “뭐, 상관없어.”

 

  청년은 재킷 주머니를 뒤져 짤랑거리는 열쇠를 꺼냈다. 그러고는 봄이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잠깐, 널 도와주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해둘 게 있다.”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청년의 이마 주름이 깊게 패였다.

 

  “네가 말했듯이, 이건 너와 나 둘만의 개인적인 일이다.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그저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도 않은 꼬맹이를 쏴죽이는 게 영 찝찝해서일 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이 계획을 진행하는 도중에 다른 자경단원들이 알아채게 된다면 난 널 변호하지 않을 거야. 즉 들통나는 순간 너와 난 상호간에 어떤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도 아니었던 게 될 거라는 소리야. 네 그 사소한 목적 때문에 내 신변까지 위협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너 역시도 내가 도움을 주었다는 둥 하는 말은 꺼낼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네가 전부 동의한다고 약속한다면, 널 도와주겠다.”

 

  “비즈니스 관계란 소리죠? 알겠어요. 원래 누구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으니.”

 

  “꼬맹이가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청년은 만족한 듯이 대답하고는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봄이에게 할 말이 남았는지 다시 되돌아왔다.

 

  “얘야, 한 번만이라도 다시 생각해보는 건..........”

 

  봄이는 대답 대신 청년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기만 했다.

 

  결국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듣지 않겠지. 여기서 기다려. 불도저를 가져올 테니까. 명심해. 이걸로 넌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그리고 이제 누구도 널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봄이는 지금껏 참아왔던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청년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와의 우호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자신을 도와준다는 말로 경계를 늦추게 한 다음 불도저를 가지고 온다는 핑계로 자기네 동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아닐까? 우호관계를 먼저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막상 봄이는 청년에게 의혹을 품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봄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불안해지려고 했다. 조그마한 소리 하나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사람의 발자국처럼 들리는 소리, 치다 만 철조망에 굴러온 깡통이 걸리는 소리, 까마귀의 울음처럼 들리는 소리........ 이런 고요한 잡음들과 물 흐르듯 흐르는 정적은 봄이가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하려는 세상의 배려였을까? 봄이는 자신이 생각을 바꾸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등 뒤에서 검은 손이 어깨를 끌어당길 것 같았고, 누군가가 자신의 귀에다 대고 ‘그래서는 안 된다’ 며 속삭일 것만 같았고, 또다시 스스로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운명의 이끌림일 것이다. 봄이가 운명을 벗어나려 시도할 때마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허상들이 봄이를 다른 길로 이끌었기 때문에 봄이는 지금껏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봄이는 이번만큼은 운명이 노래하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애써 못 들은 척했고,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는 내면 속의 부추김에도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만 한다면 더 이상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이끌리게 되는 운명의 길에 결코 발을 디디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러면 결국 운명을 거스른 ‘기적’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를 기적 하나만을 위해 가만히 따르기만 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운명을 저버려야 하는 것인가?

 

  그 순간 드디어 봄이가 고대하던 소리가 들렸다. 불도저가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불도저 엔진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이 잠들어버린 지금 세계의 밤에서만큼은 단 한 발의 총성조차도 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요란했다.

 

  봄이는 재빨리 불도저를 향해 뛰어갔다. 불도저의 무한궤도가 드드드 하는 소음을 내며 느릿느릿 잔해 더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봄이는 자신의 이름이 씌인 장난감 자동차를 처음으로 경주에 내보내는 어린아이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도저는 봄이보다 훨씬 더 유능했다. 봄이가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치우기 힘든 잔해 더미를 불도저는 단 몇 초만에 깨끗이 밀어냈다. 한 뼘의 잔해가 밀릴 때마다 자욱한 모래먼지가 일었고, 그곳에는 회중전등을 비추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별 수 없이 봄이가 직접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봄이는 앞을 가리는 황사와 콘크리트 가루를 헤치며 불도저가 밀고 지나간 곳을 샅샅이 살폈다. 잔해가 깨끗이 사라지자 별의별 물건이 가득했다. 반 이상이 찢겨져 나간 책부터 잡지, 깡통, 깨진 휴대폰, 뭉개진 종이상자, 부러진 소총, 그리고 탄피까지. 하지만 봄이가 찾는 물건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도저가 세 바퀴 이상을 선회하며 잔해들을 밀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처음 나타난 쓰레기들의 양에 감탄한 봄이는 금방 펜던트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잔해들을 밀어내도 물건이 좀처럼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차 표정이 굳어져갔다.

 

  ‘뭐 좀 찾은 것 있어?’ 라고 소리치는 청년에게 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무리 불도저를 동원한다 한들 몇백 평이 넘는 까마귀 저택 잔해 속에서 펜던트 하나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선택만이 자신의 외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봄이는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불도저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먼지를 잔뜩 들이마신 봄이는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고통 속에서도 콘크리트 조각과 날카로운 철근 사이에 박힌 무엇인가를 보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였다. 봄이는 재빨리 달려가 그것을 뽑아보았다. 봄이에게는 꽤나 익숙한 물건이었다. 한 손에 모두 잡히는 스테인리스 개머리, 텅 비어있는 실린더, 짧은 총열을 보자 봄이는 자신이 뽑아든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면서도 반대로 몇 번이고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바로 봄이의 M60 리볼버 권총이었다. 이걸 여기서 찾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외쳤다.

 

  “이봐, 어떤 녀석이 허락도 없이 불도저를 모는 거야?”

 

  뭐라고 외치는지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그것이 사람 목소리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봄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기 너희들, 내려가서 살펴봐. 마저 폐쇄할 시간인데 어떤 녀석이 아직도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건지 알아야겠어.”

 

  봄이는 급한 대로 권총을 숨기고 외쳤다.

 

  “아저씨, 조금 더 빨리 운전할 수는 없어요?”

 

  “이게 최고 속력이야. 아직도 못 찾았어?”

 

  봄이는 불도저 조종사에게 희망을 거는 것을 포기하고 더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급박해지는 상황에 의지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점점 무너져내렸다.

 

  “이봐, 거기 누구야?”

 

  서너 개는 되어 보이는 회중전등이 멀리서 봄이를 비췄다.

 

  “당장 하던 짓 멈추고 손들어!”

 

  “4팀에서 알린다. 현재 봉쇄구역 내에 허가되지 않은 인원이 발견됐다. 반복한다. 현재 봉쇄구역 내에.........”

 

  봄이는 빛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재빠르게 달렸다. 아직도 잔해에는 모래먼지가 자욱했기 때문에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멈춰! 멈추라고 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봄이는 양 옆으로 밀려서 쌓인 잔해의 그림자와 먼지구름 사이를 옮겨다니며 최대한 식별을 어렵게 하려고 했다. 놈들의 수색을 피하는 도중에도 땅바닥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경고다. 멈추지 않으면 쏘겠다!”

 

  그러나 펜던트는 어디에도 없었다. 봄이는 불도저가 방금 막 터놓은 길을 따라가려고 돌무더기를 짚고 뛰어넘은 순간 느닷없이 총성이 울렸다. 놈들이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날아온 총탄은 봄이가 짚은 돌무더기 모서리에 날아와 꽂혔고, 두 번째 총탄은 봄이의 귓전을 스쳤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봄이는 머리를 감싸쥐고 불도저 뒤로 숨어들었다.

 

  봄이가 숨은 뒤에도 놈들의 공격은 계속됐다. 봄이가 보이든 안 보이든 무분별하게 총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봄이의 바로 한 발자국 옆으로 총탄이 날아와 흙먼지가 일었고, 곧이어 청년이 타고 있던 불도저에도 총탄이 빗발쳤다.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봄이가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아저씨! 멀쩡해요?”

 

  그러나 잠시 후 봄이는 그것이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리창이 없고 탑승자가 외부에 노출되었던 불도저 내부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계기판은 몇 개가 깨져있었고, 청년은 조종간을 놓지 않은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의 팔과 다리에는 최소 두세 곳은 될 법한 총상이 보였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 무언가 울컥한 기분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만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봄이가 자경단에 끌려온 뒤로 겨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 준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 커다란 은혜를 입은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음으로까지 내몰리게 하다니. 은인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게 고작 이것뿐이라니.......

 

  고해성사를 할 시간 따위는 없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몸이 이끌린 봄이는 성한 한쪽 손으로 청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의 손은 피범벅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 석 자라도 알려달라고 하는 건데.

 

  그러나 봄이는 그의 손을 놓아야만 했다. 총성은 이제 잦아들었지만 그 대신 놈들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메마른 눈가를 소매로 훔치고는 다시 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모든 건 전부 누나한테 달렸어.’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봄이는 더 이상 머릿속 존재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앞으로 밝혀질 진정한 ‘진실’ 에 말이야.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만두려는 건 아니지?’

 

  머릿속 존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봄이는 이미 상처투성이 손으로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놈들이 구덩이로 내려와 혼자 남은 봄이를 완전히 포위하기까지는 이제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펜던트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수십 개의 불빛이 시간차를 두고 켜졌다. 그 빛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봄이를 비추고 있었다. 봄이는 얼굴을 찡그린 채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렸다.

 

  “신원불명 거수자에게 알린다. 넌 포위되었으며 이 구역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이제 어디로도 도망칠 곳은 없다.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한다면 거수자 재판 결과에 반영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넌 포위되었으며.......”

 

  수십 개의 빛줄기 사이에서 누군가가 확성기에다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봄이가 주위를 둘러보니 족히 서른 개는 넘어 보이는 총구들이 모두 일제히 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도망칠 곳은 없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봄이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 속으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봄이가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자 확성기가 다시 외쳤다.

 

  “신원불명 거수자에게 알린다. 무기를 버려라!”

 

  봄이는 그제서야 방금 주웠던 권총을 슬그머니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무기를 내려놓고 다섯 보 물러서라.”

 

  봄이는 성한 한쪽 팔을 들어올린 채 확성기가 시키는 대로 뒷걸음질쳤다. 그런데 그 순간 뒷꿈치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좋다. 무기를 수거할 때까지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즉각 발포하겠다.”

 

  빛줄기 사이에서 인원 몇 명이 나와 봄이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봄이는 슬쩍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줄이 끊어지고 금이 간 은색 목걸이처럼 생긴 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모든 것에는 항상 대가가 뒤따르지. 물론 진실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아버리는 순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려. 절대로, 절대로 말이야.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지. 그녀가 단지 호기심 때문에 상자를 열어본 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한 번 생각해 봐.’

 

  머릿속 존재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덧붙였다.

 

  ‘정말로, 감당할 수 있겠어? 진정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걸?’

 

  머릿속 존재의 속삭임이 끝나기 무섭게 봄이는 잽싸게 허리를 굽혀 펜던트를 집어들었다. 확성기가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라! 경고한다!”

 

  그러나 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봄이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금이 간 펜던트를 붙잡고 부들거렸다. 그것이 자신이 지금까지 뇌리 속에서 지워버리려 하고, 부정하려 하고, 도망치려 했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두려움에 대한 마지막 고뇌였다.

 

  “저 년을 붙잡아!”

 

  누군가 그렇게 외친 직후, 마침내 봄이는 진실과 마주했다. 그 순간 세상이 뒤집혀버렸다.

 

  봄이는 허상과 진실의 경계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봄이는 이제 모든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게다가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펜던트 안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목도한 순간,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를 기억의 경계 속에서 떠올랐던 모든 조각들이 점차 제 자리를 찾아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조각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진실이라는 거대한 종양이 봄이의 기억 속을 완전히 침식해버렸다. 봄이는 이제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봄이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온 몸에서는 경련이 일어났다.

 

  봄이는 주저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스름이 걷히고 새벽녘 동이 트고 있었다. 전에도 이 비슷한 하늘을 본 적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마지막으로, 봄이는 곧바로 놈들에게 덮쳐졌다.

 

  땅에 떨어진 펜던트는 그대로 힘없이 깨져버렸다.

 

 

 < 마지막 봄 > 끝.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그 후의 이야기> 와 에필로그로 이어질 예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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