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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헌신하는 사람
작성일 : 19-11-08 10:10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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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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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자카르타 글로독에는 식기도매상점이 모인 구역이 있다.

 작년 우기에 나는 돌담 개업 준비를 위해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이제는 2호점을 위해 이곳을 또 찾아야 했다.

 

 교통정체를 뚫고 오니 해질녘이 됐다.

 해는 삽시간에 넘어가고 대로에 어둠이 깔렸다.

 

 그때 나는 핫플레이트에 목말라 있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고객이라면 눈이 높아서, 뿌리인다에서 사용하는 조잡한 중국산 핫플레이트로는 성에 안 찰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상점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무수리’에서 사용하는 고급스런 핫플레이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둡고 우리에겐 또 다른 일정이 있었다.

 나는 기사 노빨을 불러 차에 올라탔다.

 

 “길이 너무 막혀요. 돌아가야겠어요.”

 “뜨르스라.”

 

 노빨이 뒷골목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그때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인드라?”

 “예. 핫플레이트 유통업자랑 연락됐어요.”

 “그래? 누군데?”

 “제가 잠깐 일했던 크리스탈 자데에 접시 대주던 사람인데요, 대만제 좋은 핫플레이트도 수입한데요.”

 “좋았어! 역시 인드라야!”

 

 나는 환호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차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나는 노빨이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로독 상점가 뒤편은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대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차량 한 대가 지나가기도 버거운 흙바닥 골목이다.

 게다가 골목 양옆엔 낭떠러지 같은 배수로가 패여 있다.

 우기에 하도 침수가 잦다보니 배수로를 그렇게 깊게 파 놓은 것이다.

 

 우리의 봉고차가 어두운 골목에 갇혀 버렸다.

 차창을 내리고 타이어를 살펴보니 양쪽 다 배수로에 반쯤 걸쳐 있었다.

 핸들을 조금이라도 세게 틀었다간 배수로에 빠져버릴 게 분명했다.

 

 노빨은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위대한 인도네시아를 부르짖는 민족주의자가 자신의 이 위대한 골목 때문에 목덜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차가 살짝 움직일 때마다 양쪽 차문에 뭔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글로독에 괜히 왔다.

 인드라의 전화를 받을 줄 알았다면 이 망할 곳엔 발을 들여 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르릉 붕.

 노빨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체가 앞으로 조금 나가더니 기우뚱 거렸다.

 

 “으, 으헉.”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다리가 풀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혔다.

 나는 엉덩이를 좌석에 붙이지 못하고 들었다 놨다 하며 한절부절 못 했다.

 이렇게 어두운 골목에선 노빨이 천부적인 재능의 레이서라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노빨! 침착해! 겁낼 거 없어!”

 “미스뜨르나 침착하세요.”

 “내가 내려가서 봐 줄게.”

 “필요 없어요. 사람들이 알아서 와요.”

 

 갑자기 대로에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달려왔다.

 상인들도 손전등을 들고 달려 나왔다.

 여기저기서 손전등 불빛이 번쩍이고 고함 소리가 들렸다.

 

 “끼리!(왼쪽) 끼리!”

 

 사람들이 일제히 왼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갈대가 바람에 우수수 쓰러지는 모습 같았다.

 노빨이 핸들을 왼쪽으로 틀고 페달을 밟았다.

 

 “스톱! 스톱! 브르흔띠!”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노빨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내가 앉은 뒷좌석이 심하게 덜컹거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리는 상황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까난!(오른쪽) 까난!”

 

 이번엔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가을바람에 눕는 벼처럼 그렇게.

 노빨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이 상황은 인도 영화에 나오는 집단가무와 비슷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온갖 등장인물들이 뛰쳐나와 춤을 추는, 그런 장면 말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차를 가운데 두고 춤사위를 펼쳤다.

 이제는 양쪽 골목의 집에서 아이들까지 쏟아져 나와, 후면 유리창으로 나를 흘끔 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노빨, 이 사람들 즐기는 거 아냐?”

 “우릴 돕는 거예요. 자꾸 말 시키지 마세요. 신경 쓰여요.”

 

 노빨은 사람들의 지시를 받으며 비틀비틀 전진했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왼쪽과 오른쪽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가야 돼! 차바퀴가 저쪽에 더 많이 걸려 있잖아!”

 “아냐! 저 돌맹이 안 보여?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가야지!”

 

 좌파는 왼쪽으로 손을 흔들고, 우파는 오른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노빨은 에라 모르겠다 싶었는지 직진을 감행했다.

 

 덜컹.

 범퍼가 배수구 앞에 놓인 팻말을 쓰러뜨렸다.

 그 덜컹 소리와 함께 내 마음이 철렁 했다.

 

 오오오오.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몇몇 나이 든 사람들이 차창을 두드리며 그렇게 운전하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손전등 대여섯 개가 일제히 우리 차창을 비췄다.

 나는 눈이 부셔 고개를 숙였다.

 혹시 동네잔치에 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끔발리!(뒤로) 끔빨리!”

 

 노빨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 동안 좌파와 우파가 역사적인 타협을 했다.

 노빨은 또 사람들의 손짓에 따라 골목을 헤쳐 나갔다.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차 꽁무니에 달라붙어 시시덕거렸다.

 

 마침내 골목 끝에 다다랐다.

 이 골목만 지나면 대로로 접어들 수 있었다.

 골목 끝에 서 있는 슬리퍼 바람의 사내가 직진하는 차를 멈추더니 우리더러 끼어들라고 손짓했다.

 우리가 끼어들자 씩 웃더니 운전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노빨이 차창을 내리고 그에게 동전을 쥐어주었다.

 

 “이 사람들한텐 꼭 돈을 줘야 돼요. 봉사하는 사람들이니까.”

 

 노빨이 말했다.

 봉사는 무슨 얼어 죽을.

 사내는 그 동전 몇 푼을 받으려고 골목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끼지도 않고 골목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노빨. 대단했어. 이럴 때 위대한 인도네시아인은 뭐라고 칭찬해?”

 “그냥 소삐르(기사) 바구스(좋다)라고 해요.”

 

 우리는 다시 느릿느릿 차 막히는 도로를 헤쳐 나갔다.

 노빨의 셔츠 등판에 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핫플레이트만 보면 나는 골목의 그 축제가 떠오른다.

 핫플레이트의 검은 철판이 노빨의 땀에 젖은 등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

 그날은 모험의 날이었다.

 우리는 글로독을 빠져나온 뒤 남자카르타 수디르만으로 갔다.

 

 수디르만의 한 루꼬에 망한 식당이 쓰던 창고가 있었다.

 나는 이틀 전 그곳 매니저에게 연락해 가스렌지 위에 설치하는 스텐리스 후드와 환기통을 헐값에 인수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인테리어 비용이 비싸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자재가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망할 스텐리스가 들어간 것들이 가장 비쌌다.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처지였다.

 스텐리스를 헐값에 내놓겠다는 곳이 있으면 지옥에라도 달려갈 텐데, 수디르만 정도라면 백번 절해도 부족했다.

 

 우리는 교통 체증 때문에 약속시간 보다 늦게 도착했다.

 화교 매니저와 삿빰(경비) 한 명이 루꼬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또래인 듯 보이는 매니저는 눈길을 사로잡는 미인이었다.

 늘씬한 키에 동그란 눈과 갸름한 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 빛났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인도네시아에선 약속시간이 의미가 없어요. 차가 막히니까.”

 

 매니저가 명함을 내밀었다.

 써니라는 이름이었는데, 꾸닝안의 한 대형쇼핑몰 한식당 매니저였다.

 이 식당이 왜 망했는지 궁금해 나는 넌지시 운을 띄웠다.

 

 “요즘 꾸닝안 경기가 안 좋죠?”

 “새 쇼핑몰에 들어갔어요. 시간을 견디지 못했죠.”

 “아, 그렇군요.”

 

 나는 금방 이해했다.

 한국인 투자자가 무턱대고 쇼핑몰에 뛰어들었다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것이다.

 

 “올라가시죠. 불 켜놨습니다.”

 

 나는 노빨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원래 센트럴 키친으로 쓰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창고로 변했다.

 

 “노빨. 딸 사진 보여줘.”

 “왜요?”

 “딸이 너무 예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나는 곧 닥쳐올 노동에 대비해 노빨에게 아부를 해놔야 했다.

 요즘은 인도네시아 칭찬에 면역됐는지 잘 먹히지 않아, 슬슬 딸 칭찬으로 돌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빨이 걸려들었다.

 노빨이 핸드폰에 저장된 딸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속의 딸은 정말 인형처럼 귀여웠다.

 생일잔치 때 찍었는지 분홍색 드레스에 빨간 리본을 맸는데, 만화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이야, 진짜 귀엽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아이돌이 됐을 거야.”

 “인도네시아에서도 될 수 있어요.”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2층은 내게 보물창고였다.

 이제는 쓸모없게 돼버린 기물들이 사방에 가득 쌓여 있었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2볼 싱크대와 8구 가스렌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저것들이 있는 걸 알았으면 중고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물건 다 사고 싶네요.”

 “나중에 한 번 더 오세요. 정리하려면 한참 걸려요.”

 “꼭 오겠습니다.”

 

 나는 매니저에게 굽실굽실 거렸다.

 노빨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흥,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스텐리스 후드로 가서 사이즈를 쟀다.

 인테리어 업자가 불러준 사이즈와 얼추 맞는 것 같았다.

 

 “괜찮네요. 들고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편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건 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받았다.

 이제 이 무거운 후드와 환기통을 들고 가야 할 차례였다.

 2층에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계단은 좁고 가팔라 그냥 내려가기도 힘들었다.

 

 노빨과 나는 먼저 후드를 짊어졌다.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후드 뒷부분을 받쳤다.

 

 “괜찮습니다. 물러나세요. 다칩니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더럽게 비싼 데다 더럽게 무거운 스텐리스 덩어리가 우리 어깨 위에서 출렁였다.

 계단을 두 칸 정도 내려갔을 때 노빨이 비틀거렸다.

 후드와 노빨의 어깨가 동시에 기우뚱 하며 벽에 부딪쳤다.

 

 “노빨, 괜찮아?”

 “문제없어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눈가에 맺힌 땀을 닦으며 노빨의 등을 쳐다봤다.

 말라가는 땀이 검은 티에 허연 소금자국을 남겼고, 새로 난 땀이 등판 한복판부터 퍼져나갔다.

 

 그 등을 보는 순간 마음이 아렸다.

 노빨은 일을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내게 헌신적이었다.

 그것은 딸 칭찬을 하거나 추가수당을 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빨은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의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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