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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와서 보세요
작성일 : 19-11-08 10:08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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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그랜드 인도네시아 외식파트 총괄매니저와의 미팅이 잡혔다.

 예상외로 제안서를 보낸 지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나는 오전에 캐서린과 함께 중앙 자카르타로 출발했다.

 이번엔 100만루피(약 10만원)짜리 구색을 갖춘 바띡을 입어, 목덜미가 가렵진 않았다.

 

 “서울 스트릿은 문을 닫았죠?”

 “응. 하지만 직원들은 이달 말까지 계약돼 있어.”

 

 나는 그랜드 인도네시아 푸드코트에 있던 ‘서울 스트릿’ 주인을 만났다.

 한 기자의 말대로 주인아주머니는 서울로 완전히 이주할 계획이었고, 그랜드 인도네시아와의 계약도 종료된 상태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원한다면 직원들을 그대로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28살 함자라는 캐셔가 매니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입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 판에 푸드코트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직원들이 일한다니 그보다 반가운 일이 없었다.

 

 “미스뜨르, 계약하면 가진 돈 다 털어야 되죠?”

 “맞아.”

 

 캐서린은 그렇게만 물었다.

 그러게 우실로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랬냐, 돈도 없으면서 뭐 하러 모험을 하냐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 있어요?”

 “당연하지.”

 

 2호점을 열면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날 처지였다.

 한국 쪽 은행에 묻어둔 퇴직금마저 끌고 와야 했다.

 그러면 내게 남은 것은 사당동에 있는 32평짜리 아파트 한 채뿐이다.

 돌담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언제 통장에 고일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서울스트릿 주인아주머니에게 부탁해 매출자료를 받아봤는데, 그 작은 푸드코트 매출이 돌담 매출과 맞먹었다.

 외국인 손님이 많아서인지 르바란(이슬람 최대 명절) 때도 매출이 줄지 않았다.

 나는 기존 고객만 잘 유지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캐서린. 우릴 부른 거 보니 계약은 잘 되겠지?”

 “그렇진 않아요. 워낙 까다로운 데니까.”

 

 캐서린이 핸드폰을 꺼내 내게 보여줬다.

 누군가 캐서린에게 보낸 영문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빌어먹게 훌륭한 상도덕이군.'

 

 “이게 뭐야?”

 “잘 아는 식당 체인 마케터가 보낸 거예요. 내가 그랜드 인도네시아 미팅이 있다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더라고요. 거기가 스테이크 체인인데 서울스트릿 자리를 먼저 노리고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대요.”

 “프리젠테이션 한번 했다고 선점한 건 아니지.”

 “긍정적으로 논의가 오갔대요. 계약 직전 단계까지 왔는데 우리가 끼어든 거죠.”

 

 대형 식당 체인이 들어온다는데 우리와 미팅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캐서린. 우리한테 승산이 있어. 거긴 한식 코너를 꼭 하고 싶은 거야.”

 “글쎄요. 가 봐야 알죠.”

 

 나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가장 까다로운 첫 관문만 통과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캐서린, 결혼식 날짜 잡았어?”

 “아직이요.”

 “언제 쯤 할 생각이야?”

 “내년쯤.”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돼. 대충 형편 맞춰서 산다고 생각하면 안 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이해하고, 함께 살 자신이 있을 때 결정하는 거야. 이건 내 진심이니까 새겨 들어줘.”

 “알아서 할 게요.”

 

 캐서린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그녀를 이해시켜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멀리 그랜드 인도네시아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고동쳤다.

 중앙 건물이 탑처럼 우뚝 솟은 플라자 인도네시아와 달리, 그랜드 인도네시아는 네모반듯한 두 개의 건물을 다리로 이은 형태다.

 내게는 깍두기 같은 그랜드 인도네시아가 더 품위 있고 우아해 보였다.

 

 우리는 최고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40대로 보이는 통통한 부인이 총괄매니저였고, 그 옆에 비쩍 마른 30대 부매니저가 앉아 있었다.

 자카르타 유통업계는 부인들이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웬만한 쇼핑몰 총괄매니저는 죄다 아주머니들이었다.

 

 나는 캐서린에게 마리아라는 이름의 저 부인에 대한 악평을 들었다.

 성격이 워낙 다혈질이어서 부하 직원들은 물론 점주들까지 쩔쩔 맨다는 이야기였다.

 나긋나긋한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그녀가 악귀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부매니저가 저렇게 비쩍 마른 이유가 이해됐다.

 

 목이 탔다.

 나는 앞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총괄매니저는 내가 물 마시는 모습을 신기한 광경이라도 되는 듯 지켜봤다.

 물 마시는 가젤을 노리는 암사자 같았다.

 

 캐서린이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두 매니저에게 나눠줬다.

 총괄매니저는 안경을 꺼내 쓰고 자료를 꼼꼼히 읽더니 캐서린에게 물었다.

 

 “이건 제안서에 있는 내용 그대로 아니에요?”

 “더 세부적인 내용이 있어요. 제가 설명 드릴게요.”

 

 캐서린이 영어로 돌담의 메뉴와 조리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카르타에선 비즈니스 미팅 때 영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캐서린의 속사포처럼 터지는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다.

 캐서린이 숯이 장착된 그릴기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 총괄매니저가 손을 들었다.

 나는 순간 목을 움찔 했다.

 

 “그릴기는 안 돼요. 그랜드 인도네시아는 안전수칙이 엄격합니다.”

 

 총괄매니저는 그랜드 인도네시아를 일부러 느릿느릿 발음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캐서린은 그릴기를 건너뛰고 돌담의 성공신화에 대해 늘어놓았다.

 

 “아, 그만. 됐습니다.”

 

 총괄매니저가 자료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우리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총괄매니저는 두 손을 깍지 끼고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뜸을 들이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돌담은 푸드코트 경험이 없는데 얼마나 준비 돼 있나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때까지 나는 총괄매니저의 기에 눌려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나대신 캐서린이 재빨리 답변을 내놓았다.

 돌담이 푸드코트 경험은 없지만 한식의 간편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핫플레이트를 사용해 회전율을 높였다는 얘기였다.

 역시 캐서린은 순발력이 좋았다.

 그러나 총괄매니저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한식은 푸드코트와 안 맞아요. 서울스트릿 이전 가게들은 다 실패했어요. 그건 한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에요.”

 “서울스트릿은 성공했잖아요.”

 “서울스트릿은 경험이 많은 부인이 모든 음식을 만들었어요. 여긴 젊은 남자 사장님이잖아요.”

 

 이제 내가 대답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마른 침을 꼴딱 삼키고 날 노려보는 사자에게 더듬더듬 서툰 영어로 말했다.

 

 “이부, 그럼 와 보십시오.”

 “네?”

 

 총괄매니저가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캐서린은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썼다.

 

 한번 입을 여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사자에게 뿔을 들이밀기로 결심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푸드코트가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압니다. 중요하니까 엄격히 심사하시는 거겠죠. 그럼 입점 업체가 어떻게 식당 운영을 하는지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직접 볼 필요는 없습니다. 자료에 다 나와 있으니까요.”

 “자료와 실제는 다릅니다.”

 “그럼 프리젠테이션을 왜 합니까?”

 “이부. 푸드코트에 한식코너가 한곳은 필요합니다. 자신 있으니까 방문해 주십시오.”

 

 총괄매니저가 날 노려보았다.

 부매니저는 미팅이 끝났다는 걸 직감한 듯 주섬주섬 자료를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잘 들었으니까 이만 끝내죠."

 

 우리의 미팅은 이렇게 소득 없이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캐서린이 말했다.

 

 “이번에도 참 잘 하셨네요.”

 “무슨 말 할지 알아. 나는 사업가 재능이 없다는 거지?”

 “그것도 참 잘 아시네요.”

 

 다음 날 나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일어났다.

 그날 점심 장사가 유독 바빴다.

 외국어 대학교에서 큰 행사가 있는지 백팩을 맨 학생들이 끊임없이 몰려 들었다.

 나는 자말에게 채소를 다듬으라고 지시해 놓고 그릴기 앞에서 고기를 구웠다.

 치솟는 연기에 눈이 매워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선글라스를 낀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외식파트 총괄매니저 마리아였다.

 그녀가 혼자 와서 빈 소갈비 핫플레이트를 앞에 놓고 날 노려보았다.

 기름 묻어 번들번들한 입술을 냅킨으로 훔치면서도 시선은 내게 고정돼 있었다.

 

 그때 내 얼굴이 어떻게 비쳤을까.

 나는 조리모를 쓰고 검은 앞치마를 둘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땀을 뻘뻘 흘렸고 왼쪽 뺨엔 숯가루도 조금 묻어 있었다.

 

 나는 얼른 물티슈를 가져와 얼굴을 닦았다.

 사자가 내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계약이 성사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리아는 음식값을 치른 뒤 내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돌담을 나섰다.

 하지만 하루 뒤 그녀는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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