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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7장 천지인(天地人)(1)
작성일 : 19-11-08 05:31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7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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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츠마에서 술과 노래로 며칠을 보내고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 그리고 낭인들은 에치젠국을 향해 출발했다. 일행은 마치 나들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시종일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낭인들은 여행을 가는 데에 노래와 춤이 빠져서야 되겠느냐며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고 고 고양이가 게타를 신고 유카타를 입고…….”

  “야, 야, 그만해라. 그게 노래냐. 차라리 길가에 지나다니는 벙어리를 데려와도 너보다는 잘 부르겠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나 어디를 가나 지독히도 노래를 못 부르는 이들이 한둘쯤은 있기 마련인 법이었고, 그것은 낭인들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어찌나 노래를 못 부르는지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아마쿠사미코토마저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야할 지경이었다.

 

  “그대는 앞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내가 듣기에도 몹시 괴롭군.”

 

  마침내 더는 견디다 못한 유죠가 제발 노래를 그만 불러달라 애원한 끝에야 그는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었고, 일행은 더 이상 귀를 괴롭히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마쿠사님은 노래 안 부르십니까?”

  “나 말이냐?”

  “예. 저희는 아마쿠사님의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출발한 뒤로는 노래를 한 번도 부르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아마쿠사님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노래도 못 부르면서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 귀를 괴롭게 만드는 방해꾼이 조용해지자 낭인들은 이번에는 아마쿠사미코토에게 노래를 재촉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잠시 쉬었다 가자 말하고는 두 손과 두 발을 움직여 정적이고도 우아한 춤동작을 선보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영원히 깃들 곳이 못 되기에

  마치 풀잎에 내린 백로와도 같고, 물에 비친 달보다 덧없다네

  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앞서서 무상한 바람에 이끌려가고,

  남쪽 누각의 달을 즐기던 사람들도 그 달보다 앞서서 세상의 구름 속에 숨었다네

  인간의 오십 년은 하천의 세월에 비한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다르지 아니하니

  한 번 삶을 받아서, 멸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아츠모리로군요.”

 

  노래를 들은 유죠가 말했다. 유죠는 마치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헤이케모노가타리(13세기 초에 성립한 작자 미상의 군담소설. 헤이시라고도 불리던 타이라 일족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에 나오는 이야기를 극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까.”

 

  가미카타의 수준 높은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아츠모리라는 말에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던 낭인들이 헤이케모노가타리라는 말에 낯빛을 밝히며 저마다 좋아하는 장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죠는 그러한 낭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겐페이 합전(미나모토씨가 타이라씨를 물리치고 가마쿠라막부를 세운 전쟁) 때,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다혈질의 사무라이 쿠마가와 나오자네는 적장 타이라노 아츠모리와 일전을 벌여 그를 쓰러뜨렸지요. 그러나 투구를 벗기고 보니 아츠모리는 매우 앳된 소년에 불과했고, 나오자네는 아들이 생각나 그를 죽이기를 주저하지만 아군들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베고 말았다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

  “그 후, 아츠모리의 죽음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나오자네가 불문에 귀의하는 것이 아츠모리의 마지막 장면이며 핵심 장면이고요.”

 

  유죠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한 번 바라보았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을 배경으로 흰 구름이 떠가고, 그 주위를 검은 까마귀 떼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습니까.”

  “무엇이?”

  “나오자네 말입니다.”

  “어째서 말이냐?”

  “어쨌거나 나오자네는 그날의 전투를 통해 타이라씨가 망하고 미나모토씨가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우는 것에 큰 공을 세웠지 않습니까. 한데, 고작 적장 하나의 죽음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하다니요.”

  “…….”

  “아마쿠사 당신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사무라이의 삶이란 그런 꽃밭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베고 손에 피를 묻히는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인생이 무상하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그리 여기는 순간이 바로, 누군가의 손에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그런 순간이니까요.”

  “…….”

  “무엇보다 사무라이의 삶이란 천하와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는 그런 삶입니다. 그런 삶에 인생의 무상함 따위가 끼어들 여지란 있을 수 없지요. 그렇다면 천하도, 목숨도 얻을 수 없고, 얻는다 한들 보전할 수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

  “저 또한 그럴 것입니다, 아마쿠사. 저는 천하를 얻기 위해서든, 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든 반드시 강한 군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강한 군주가 되어 천황을 발 아래 두고,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할 것입니다.”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 일행은 어느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세키쇼(검문소. 보통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가 있는 마을인지 넓은 집 한 채를 중심으로 구니의 군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는 세키쇼의 일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마을 사람들 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여튼 너나 나나 세키쇼를 세워요. 그놈의 통행세가 뭔지.”

 

  낭인들 중 한 명이 툴툴거리며 주머니에서 통행증과 돈을 꺼냈다. 통행세를 내고 뇌물을 두둑이 찔러주면 통행증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라는 말에 낭인들은 맞는 말이라며 와하하하 웃고 박수를 쳐댔다.

 

  “자, 자, 그러면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

 

  일행이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마을 어딘가에서 쏘아져오는 화살 모양의 검은 기운을 본 아마쿠사미코토는 앞서 가는 낭인을 얼른 쫓아가 거칠게 돌려세우며 뒤로 저만치 밀어버렸다. 기운에 담긴 힘으로 보아, 이 정도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자라면 필시 보통은 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칡덩굴 치렁치렁

  황하의 물가에 자란다

  끝내 형제를 멀리 떠나

  남을 아버지라 불러본다

  남을 아버지라 불러도

  또한 나를 돌봐주는 사람 없어라

  칡덩굴 치렁치렁

  황하의 물가에 자란다

  끝내 형제를 멀리 떠나

  남을 어머니라고 불러본다

  남을 어머니라고 불러도

  또한 나를 가까이하는 사람 없어라

  칡덩굴 치렁치렁

  황하의 물가에 자란다

  끝내 형제를 멀리 떠나

  남을 형이라 불러본다

  남을 형이라 불러

  나를 불러주는 사람 없어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차분히 진언을 외우며 결계를 쳤다. 곧 가운데에 ‘아마쿠사(天 草)’라는 이름이 새겨진 방사형의 붉은색 결계가 일행의 주위를 에워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을 감고 상대의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나는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 아마쿠사미코토다. 너는 누구냐?”

  “…….”

  “누구기에 우리를 공격한 것이냐?”

 

  대답 대신 또다시 검은 기운이 화살 모양으로 쏘아져오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짓으로 보아 도저히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화살 모양으로 쏘아져오는 기운들은 아마쿠사미코토가 친 결계에 막혀 되돌아갔다. 상대의 힘으로 볼 때 스스로가 쏘아낸 기운을 다시 맞는다면 몸에 큰 무리가 가 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속 깊은 곳까지 기혈을 정돈했다.

 

  그러나 그리 강한 기운을 다시 맞고도 포기하지 못한 것인지 상대는 계속해서 화살 모양의 검은 기운들을 쏘아댔고, 참다못한 아마쿠사미코토는 결계에 걸려 있는 진법을 해제하고 게타로 땅에 금 하나를 그었다.

 

  “이제부터 다를 이 금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하여라. 나오면 죽을지도 모른다. 알겠느냐?”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은 기운이 쏘아져 오는 곳을 찾기 위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검은 기운은 마을의 뒤편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이동하며 쏘아져 오고 있었다.

 

  “뭐지? 이쪽으로 오는 것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타치를 빼들고 손으로 자신의 신력을 불어넣었다. 곧 칼날이 붉은 꽃잎 모양의 신력으로 뒤덮이고, 칼날이며 칼등에 불이 일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칼등 위를 손으로 쓸어 불꽃을 허공으로 던졌다. 곧 불꽃이 어느 한 지점으로 정확히 날아가 꽂혀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불꽃이 태우는 한 물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 환술이었던가.”

 

  마치 진짜는 이미 너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누군가의 칼날이 아마쿠사미코토의 눈앞으로 내질러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 칼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본의 검들과는 달리 칼날의 폭이 좁고 양쪽 모두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검은 아닌 것 같았다.

 

  “양날검이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칼끝을 가볍게 피하며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그었다. 곧 상대의 검에 주위의 기가 모이고 불꽃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래에서 위로 검을 올려 긋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검에 주위의 기를 모아 불을 붙이는 것은 하급신급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상대의 검을 칼등으로 받았다. 검에 불어넣은 주위의 기가 물로 바뀌어 상대의 검에 붙은 불을 순식간에 꺼버렸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까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아무리 하급신급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지만 고작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인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라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상대의 입에서 낯선 주문이 흘러나왔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몸 안의 모든 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상대의 주문이 마저 끝나기 전에 몸 안의 기를 모두 증폭시켜 상대의 영혼을 터뜨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에베소서…….”

 

  아마쿠사미코토는 엄지와 약지를 제외한 손가락을 깎지 끼고 엄지와 약지의 손가락을 붙였다. 엄지와 약지에 기운을 집중한 아마쿠사미코토는 수인(手 印)을 맺은 손가락을 얼굴 앞에 띄우고 팔을 사각형 모양으로 구부렸다.

 

  “폭마술염 화염신 퇴악마귀 부생혼무(爆 魔 術 炎 華 炎 神 退 惡 魔 鬼 不 生 魂 無). 내 앞을 가로막는 존재여, 사악한 존재이건 선한 존재이건 전쟁신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바. 그러니 그대는 혼 한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무(無)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에서도 다른 세상에도 그대는 안식을 취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대여, 그대의 혼이 가는 마지막 길에 축원이 있기를. 천상계의 모든 신들이 그대의 혼을 축원하…….”

  “내 신이 내 영혼이 사라지기를 축원하지 않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별안간 상대가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을 가로막으며 칼을 휘둘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부지불식간에 당한 공격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신이 자신의 영혼이 사라지기를 축원하지 않는다니? 신은 인간들에게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 거의 없거늘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신이라고요?”

  “무어?”

  “아까 당신이 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 아마쿠사미코토라고요.”

  “잘 알아들었구나. 한데, 그를 알아듣고도 공격을 하다니 대체 네놈이 섬기는 신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타카마기하라의 신에게 무례를 저질러도 된다 가르쳤단 말이냐?”

 

  하급신급의 능력은 된다 싶었더니 역시 신을 모시면서 신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었나.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은 망토를 둘러쓴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줄 수 있는 신이라면 필시 천상계의 신들 중 하나일 터였다.

 

  “저는 일본의 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죠. 물론, 저의 신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요. 아니, 좋아해야할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늘어놓은 상대가 여태 눌러쓰고 있던 망토의 뾰족모자를 벗고 물결처럼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망토 위로 드러내놓았다.

 

  “어엇?”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야마토인이 아니었다. 어쩐지 키가 크다 했더니 하얀 피부에 칼로 새긴 것처럼 뚜렷한 이목구비, 갸름한 턱, 크고 깊은 눈과 높고 오똑한 콧날이 이 남자가 야마토인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너 야마토인이 아니었구나. 혹시 에조인이냐?”

  “괜찮다면 머리끈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에 머리끈이 끊어졌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것을 사지 못해서요.”

 

  참으로 뻔뻔한 자였다. 먼저 일행을 공격하고 인간 주제에 신과 대등하게 맞서려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신에게 머리끈을 빌려달라니. 아마쿠사미코토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머리끈을 풀어주었다.

 

  “이왕이면 빗도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빗을 얼마 전에 잃어버려서요.”

  “그냥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라. 머리끈을 빌려줬더니 빗까지 내놓으라는 것은 대체 무슨 경우냐.”

 

  남자가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모아 한쪽 옆으로 묶었다. 남자는 그동안 머리가 많이 나풀거려 불편했다며 잔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 탓에 남자의 한쪽 귀에 달린 세 개의 커다란 고리가 찰랑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굵어 보이는 고리에는 저마다 방울과 보석 장식들이 매달려 있었다.

 

  “아, 이거 말입니까?”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남자는 이것은 인도 고아에서 있을 때 재미 삼아 뚫어본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아마쿠사미코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이름을 들었으니 제 이름 또한 알려드리는 것이 맞는 일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살짝살짝 흔들어 귀고리 장식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고리의 방울과 장식들이 맞부딪치며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매우 아름답고 청아한 것이 마치 풍경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저는 포루투갈에서 온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라고 합니다. 이름은 루이스, 성은 프로이스지요. 유럽은 일본과는 다르게 이름이 앞에, 성이 나중에 오니 다소 헷갈리시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때였다. 눈앞의 싸움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유죠와 낭인들이 다가온 것은. 낭인들은 남자를 붙잡아 무릎 꿇렸고, 남자는 허리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히닌이군요.”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낭인들이 남자의 등을 칼등으로 후려쳐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엎드리게 만들었다. 남자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요? 히닌에게 히닌이라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놈이 그래도!”

  “저는 사실을 사실이라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사실이라 말했다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당신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네놈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잖아! 그리고 아마쿠사님도 죽이려 했고!”

  “나 참. 들어보니 타카마기하라의 신이라면서요. 그러면 제가 죽이려 해도 쉽게 죽일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어차피 죽을 운명도 아니었건만 대체 왜이러시는 건지.”

 

  낭인들의 말에 일일이 웃으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남자를 본 유죠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기에 용맹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사츠마 사무라이들 앞에서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아니, 그전에 어떻게 인간이 천상계의 신을 공격할 생각을 한 것인지 유죠는 무척 궁금해졌다. 유죠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가톨릭 사제입니다.”

  “가톨릭 사제? 그것이 무엇이지?”

  “그야 전능하신 아버지인 야훼 하나님의 한 분 뿐인 아드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고 그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지요.”

  “야훼? 예수 그리스도?”

 

  한참을 더 남자에게 여러 가지를 물은 유죠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남자의 눈에는 피곤한 인간들이라고 말하는 듯한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묻도록 하지.”

  “또 뭘 말입니까?”

  “그대, 내 가신이 되어보는 것이 어떠한가?”

 

  유죠의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깜짝 놀라 유죠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유죠에게 유럽이라는 곳에 대해 설명해준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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