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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6장 풍림화산(風林火山)(3)
작성일 : 19-11-08 05:29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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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토스!”

 

  사츠마 사무라이들의 용맹함은 사츠마 사투리로 “죽어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괴상한 기합과 독특한 검법에서 빛을 발했다. 사츠마 사무라이들은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상단세로만 이루어져 있는 검법을 사용했는데 어찌나 그 힘이 센지 괴성을 지르며 무조건 앞으로 달려들기만 하는 칼날을 막으려다 칼이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정수리에서 배꼽까지가 한 번에 갈라진다 하였다. 그리하여 사츠마 사무라이들의 검법을 일컬어 “삼천지옥까지 베어버려라!”라는 말로 요약한다 하였으니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들을 절대 정면으로 상대해서는 안 됨을 유죠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죽기에는 일러서 말이다. 전국을 일통하기도 전에 죽으면 너무 아쉽지 않으냐.”

 

  유죠는 사방에서 내리쳐지는 검을 한 번 가볍게 피했다. 위에서 아래로 무작정 내려치는 검을 피하느라 땅바닥을 구르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지금은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 모양새보다 우선이었다. 유죠는 땅바닥을 굴러 근처에 미리 숨겨두었던 검을 꺼내들었다. 사철(沙 鐵)로 만들어진 우치카타나보다 더 좋을 거라며 아마쿠사미코토가 빌려준 최고급 강철로 만든 타치였다.

 

  “하앗!”

 

  타치를 뽑음과 동시에 기합을 내지르며 유죠는 낭인들이 다시 상단세를 준비하는 틈을 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그어 그들 중 몇몇은 가슴팍을 베고, 몇몇은 복부를 베고, 몇몇은 허벅지며 옆구리를 베었다. 유죠의 칼날에 길게 베인 낭인들이 상처를 움켜쥐며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유죠는 말했다.

 

  “이쯤 하지 그러는가? 그대들이나 나나 이 이상 싸워 좋을 것이 없을 테니.”

  “이놈……!”

  “사무라이의 신분을 돌려받고 싶은가?”

 

  고작 히닌 따위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낭인들을 바라보며 유죠가 홀연히 물었다. 낭인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유죠를 바라보았다. 유죠는 아마쿠사미코토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나른한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했다.

 

  “말 그대로이다. 그대들은 사무라이의 신분을 돌려받고 싶지 않은가?”

  “……?”

  “낭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무라이이되 사무라이일 수 없는 것. 그것이 낭인이 아니던가. 다른 사무라이들처럼 전장에 나가 적들을 베며 주군을 위해 싸우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는 것. 그리하여 전국을 통일하는 대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어 그저 무고한 인명이나 살상하고 주색잡기로 허송세월이나 보내는 것. 그렇다 보니 천하의 사람들에게는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낭인이라 멸시받고, 앞에서는 무사님, 무사님 하며 비위를 맞추는 이들에게조차 뒤에서는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들이라 무시 받으면서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낭인이 아니면 무엇인가.”

 

  유죠의 말에 낭인들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유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을 쓸모없다 여기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그대들은 작금의 일본에서 가장 용맹한 사무라이들이며, 나와 함께 천하를 이끌어갈 귀중한 재목들이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내 손을 잡아다오. 내가 내미는 손을 물리치지 말고 잡아다오. 그리하면 그대들은 천하를 재패한 무사로 당당히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너는 대체 누구냐!”

 

  낭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죠는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혜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가 말을 이어갔다.

 

  “너의 칼솜씨와 언행으로 볼 때 너의 신분을 일개 히닌이라 생각할 수 없다. 말하라. 너는 도대체 누구인 것이냐!”

  “나는 유죠다.”

  “무어?”

  “정확히는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라고 한다.”

 

  유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낭인들이 저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조금 전 유죠에게 소리를 지른 낭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네가 그 오와리국 카이히메의 동생이란 말이냐?”

  “세상에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가 둘이겠는가, 셋이겠는가. 또 세상에 어느 히닌이 감히 한 구니의 후계였던 이를 사칭하겠는가. 나는 오와리국의 선대 다이묘 이시다 단조노추 사이조노스케 마사토부의 아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다.”

 

  유죠는 낭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보았다. 낭인들의 눈에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당황한 빛이 역력하게 떠올라 있었다.

 

  “정말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가 맞다면 답하라. 그대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는 그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터. 대체 어떻게 우리에게 사무라이의 신분을 돌려줄 수 있단 말이냐?”

 

  어느새 유죠를 부르는 호칭이 ‘너’에서 ‘그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시다가의 이름도, 오와리국의 이름도 아닌 오직 유죠라는 한 인간을 바라봐주는 인간은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인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유죠는 대답했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전쟁이?”

  “도키 일족과 사이토 도시마사. 그리고 도키 일족을 지원하는 에치젠국의 아라쿠사가와 오와리국의 내 누님. 미노국을 두고, 천하를 두고 피할 수 없는 일전이 벌어질 것이다.”

  “한데?”

  “나는 이번 전쟁을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번 전쟁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세력으로 우뚝 서서 내 자리를 되찾고, 그 후에는 전국을 일통할 것이다.”

  “……!”

  “그리하여 천황을 내 발 아래에 두고 내가 진정한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할 것이다. 어떤가? 나는 그대들이 나와 함께 해줬으면 하는데.”

 

  유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낭인들이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무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유죠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머리에 꽂은 금장식을 만지작거렸다.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금장식을 계속 꽂고 있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은 게 대체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런 것을 어떻게 꽂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유죠는 금장식을 빼내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금장식을 빼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생각하며 유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었다.

 

  “결국, 천하를 무(武)로 덮겠다는 것인가.”

 

  의논을 마친 사무라이들이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유죠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전국을 일통한다는 것은 천하를 무로 덮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 그야말로 천하포무(天 下 布 武)로군그래.”

 

  천하포무. 그 엄청난 말에 유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하를 무로 덮는다. 그야말로 피로 피를 씻는 가시밭길이 아니던가. 자신의 입으로 전국일통을 이야기할 때와 남의 입으로 전국일통에 대해 들을 때에 느껴지는 감정이 이리 다를 줄이야. 무언가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얹어지는 듯한 느낌에 유죠는 현기증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그대의 그 말 믿어보기로 했다.”

  “나와 함께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걷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천하포무를 말하는 그대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곧 그대가 가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그 길을 함께 걷겠다는 것이 아닌가.”

  “…….”

  “그러니 약조를 잊지 말아라. 반드시 우리에게 사무라이의 신분을 돌려주어라. 그렇지 않는다면 그대는 천하의 주인도 아니요, 사무라이도 아니요, 사내도 아니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

  “그리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되었다. 이제 그대는 우리들의 주군이다.”

  “…….”

  “사츠마의 이름 없는 낭인들이 저희의 주군이신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님을 뵙습니다. 부디 저희의 충정을 가납하여주시옵소서.”

 

  말을 마치자마자 낭인들이 유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쌍수례를 올렸다. 유죠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주었다. 그들을 일으켜주며 유죠는 말했다.

 

  “반드시 약조를 지키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들에게 사무라이의 신분을 돌려주겠다. 이는 천하의 주인으로서, 사무라이로서, 사내로서, 사람으로서의 약조이며, 나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로서의 약조이기도 하다.”

 

  낭인들의 예를 받은 유죠는 그들을 아마쿠사미코토에게 데려가 인사시켰다. 타치를 돌려받은 아마쿠사미코토는 눈표범 위에 앉아 그들의 인사를 받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변치 않는 충정이 계속된다면 나 아마쿠사미코토가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의 명예를 걸고 그대들의 후손들까지 만대에 걸쳐 축복하겠다. 그러나 만약 변절한다면 그대들의 후손들까지 만대에 걸쳐 저주가 있을진저. 그대들은 이를 반드시 명심하라.”

 

 ※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 그리고 낭인들은 사흘밤낮에 걸쳐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한 낭인들은 유죠의 나이를 입에 올리며 유죠를 주군이라기보다 동생이나 조카로 여기겠다고 농담을 던졌고, 유죠는 건방지다 말하면서도 각각의 낭인들에게 연배에 따라 “숙부님”, “형님”이라 부르며 예를 올리는 시늉을 해 아마쿠사미코토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이야, 누가 보면 정말 숙질(叔 姪)간의 연이나 형제간의 연을 맺는 줄 알겠구나. 이것을 누가 주군과 신하의 연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주군과 신하의 연인지, 숙질간의 연인지, 형제간의 연인지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서로를 만나 인연이 된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왜, 그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무라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택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한다고요. 저희는 저희를 알아주는 유죠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뿐입니다.”

  “얀마, 사무라이가 아니라 선비다, 선비. 이 무식이 콸콸 흐르다 못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어 흘러넘치는 놈아.”

  “뭐?”

  “너같이 무식한 놈은 무가의 수치다. 알겠냐?”

  “뭐래. 이 배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놈이. 사무라이나 선비나 그게 그거지. 어, 사무라이는 칼에 죽고, 선비는 붓에 죽는데 결국에는 그게 그거 아니냐.”

  “하여튼 제 입맛에 맞게 갖다 붙이기는.”

  “에잇,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둘 다 시끄럽다. 저기 가서 둘이 실컷 싸워.”

 

  아마쿠사미코토가 우스개로 한 말에 낭인들 역시 토닥거림으로 응답했다. 자신들은 시골 출신이라 거창한 예법 따위는 모른다며 주군의 앞에서 술을 마시고 저희들끼리 토닥거리다 못해 방귀를 뀌고 트림까지 해대는 모습을 보며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아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대들은 정말 재미있구나. 아하하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이렇게 즐겁게 웃어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또 이렇게 사람냄새가 나는 이들과 함께해본 것 또한 얼마만이던가. 쇼비타 성에서는 늘 오와리국의 차기 다이묘로서, 이시다가의 차기 당주로서 후계수업을 받아야 했고, 시녀들과 시종들은 유죠 앞에서 작게라도 웃거나 울거나 하는 일 없이 철저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까지 도련님이었나 봅니다.”

 

  낭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아마쿠사미코토가 벚꽃이 그려진 술잔을 손에 들고 유죠를 돌아보았다. 낭인들은 귓가에 나른하게 울리는 아마쿠사미코토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꾸만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냥 이자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보통 사람들은 다 이리 살 텐데, 이리 마음대로 웃고 떠들며 얼굴에 희로애락을 그대로 드러낼 텐데 저는 아직도 이 모든 것들이 낯설게만 여겨집니다.”

  “…….”

  “저는 그동안 희로애락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귀인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마음대로 웃고 떠드는 것은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천한 것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배웠고요.”

  “…….”

  “참 우습지요? 이제 더 이상 도련님이 아니게 된 것이 작년 겨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보통 사람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다니요. 그리고 저를 주군으로 받아준 이들을 보면서조차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천한 것들이나 하는 짓인데’라고 생각하다니요.”

  “…….”

  “아무래도 저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말로는 강한 군주가 되어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겠다하면서도 백성들의 삶을 천하다 생각하다니요.”

  “…….”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쿠사.”

 

  ‘저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유죠의 말이 아마쿠사미코토의 가슴 한구석을 울렸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술잔 하나를 건네고 술을 따라주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이야기하자. 뭐하느냐? 어서 마시지 않고.”

 

  유죠는 술잔과 아마쿠사미코토의 눈치를 번갈아 보다 술잔을 입에 가져다댔다. 뿌연 술이 입술을 축이고 목을 타고 넘어와 찌르르, 하는 통증을 주었다.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크억, 하고 목을 부여잡았다.

 

  “맛이 어떠하냐?”

  “씁니다.”

 

  유죠는 술을 처음 마셔보았다. 그동안 유죠에게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술이 주어지지 않았다. 제사나 명절, 그리고 여러 행사 때마저 유죠는 술 대신 감주를 마셔야했고, 그때마다 자신보다 한 단 아래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누나 카이히메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다.

 

  “이 쓴 걸 왜 마시는 것입니까.”

 

  그때는 그렇게도 마셔보고 싶었던 술이었는데. 막상 마셔보니 이렇게 쓴 걸 도대체 왜 마시나 싶을 정도라 유죠는 자꾸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야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느냐. 누구가는 술이 달아서 마시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쓴 게 달단 말입니까?”

 

  유죠가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잔에 가득 남은 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것이다.”

  “예?”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너에게는 쓴 술이 누군가에게는 달 수 있는 것처럼, 내게는 말이다, 네가 아직 먼 것이 아니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겠다는 너의 꿈에 말이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잔을 빼앗아 입에 가져갔다. 유죠는 제 몫의 술을 빼앗기고도 멍하니 아마쿠사미코토의 입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카이히메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히닌이 된 이후의 너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무가 사람들은 너의 처지가 된다면 죽음을 택할 것이다. 살아서 치욕을 겪느니 죽어서 명예를 지키는 쪽을 택하겠지. 그리고 스스로 죽을 수 있게 해달라 애원할 것이다.”

  “…….”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다이묘의 후계에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너의 자리를 되찾고 전국을 일통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지 아니하냐?”

  “…….”

  “무엇보다 너는 살아남아 너의 자리를 되찾고 전국을 일통하기 위해 한때 다이묘의 후계였던 자존심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얻어맞으며 구걸을 하기까지 했다. 아니냐?”

  “…….”

  “그렇기에 너는 나를 얻은 것이고, 이들을 얻은 것이다. 이만하면 지금의 너는 아직 먼 것이 아니라 조금씩 너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만.”

 

  말을 마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자신에게 충을 바치는 신이 너는 자신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는 유죠의 눈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이채가 깃들어 있었다. 유죠는 고개를 숙이는 아마쿠사미코토의 어깨를 잡았다. 마치 다짐이라도 하는 듯한 유죠의 목소리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기백이 넘치고 있었다.

 

  “반드시 전국을 일통하겠습니다. 천황을 발 아래 두는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천하포무(天 下 布 武)의 깃발을 일본 전체에 꽂겠습니다, 아마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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