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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겨우살이 키스
작가 : 시나연
작품등록일 : 2019.9.16

[경고]
여러분은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설령 신성스러울 정도의 미인이어도, 느낌이 이상하다면 당장 도망치세요. 그러지 않으면 신변에 굉장한 위험이 닥칠지도 몰라요.

***

“걱정하지 마세요. 공윤 씨가 다치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당연하죠. 다치면 산재 신청할 거니까.”
남자는 웃었다. 치킨 집에 천사가 앉아있는 것 같았다. 공윤이 문득 물었다.
“저기, 혹시 사이비나 다단계는 아니죠? 장기 밀매도?”
“......”
“죄송해요. 확인 차.”

*표지는 키론입니다

 
The secret makes man man
작성일 : 19-11-07 23:57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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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웠다.

 공윤은 아무 빛도 밝히지 않고 소파에서 멍하니 웅크렸다.

 갖가지 사건이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방식으로 그녀를 휩쓸었기 때문에, 아무런 자극도 없이 이성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충격을 받으면 정말로 요절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행복했던 데이트가 너무도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있긴 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인생의 첫 데이트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좋아한 남자였다. 거의 평범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끝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선득거리며 요란하게 피를 뿜는 심장을 내리눌렀다.

 애초에 그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얼굴, 목소리, 행동, 첫 만남에서부터 그는 온몸으로 자신의 비범함을 내뿜고 있었다.

 알면서 좋아했다. 각오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내부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피, 채워지는 내장과 살점, 기계적인 손길로 마감하듯 아무는 피부.

 그런 걸 실제로 보는 건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아가씨?’

 온몸에 발작처럼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두피까지 소름이 돋는 기분에 벌떡 일어났다. 새벽 어두운 길거리에서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가 ‘아가씨’라고 불러도 이토록 소름 돋진 않을 것 같았다.

 너무나 달콤해서, 거의 비리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귀가 아니라 뇌를 통해 직접 스며드는 것 같았다. 공윤은 거의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뭐야?”

 ‘저런, 너무 무서워하지 마요. 귀엽게도......’

 목소리는 흐뭇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미친, 진짜 변태 아니야? 그녀는 따개비가 다닥다닥 달라붙은 것 같은 피부를 세차게 문질렀다.

 ‘결계만 아니라면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있을 텐데. 빌어먹을 놈 같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어.’

 목소리에 실린 증오가 그녀를 찔렀다. 공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놈의 목소리가 전두엽을 타고 두개골 안을 왕왕 울렸다.

 “닥쳐, 조용히 해...... 누굴 찢어버리겠다는 거야? 그러면......”

 공윤은 끙끙거렸다. 아, 진짜 대차게 욕해주고 싶은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공윤의 반응에 목소리는 뱀처럼 재빠르게 적개심을 감췄다.

 ‘나의 아가씨......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당신에게 그런 험한 꼴을 보여드릴 순 없죠. 당신이 내 말을 전부 들을 수 있다는 걸 깜박해서...... 많이 놀란 것 같은데 괜찮나요? 오, 이 저주받을 결계를 부술 수만 있다면......’

 공윤은 정신을 차리려고 뒤통수를 벽에 쾅 박았다. 저 놈이 말하는 방식은 두통을 유발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가 힘겨웠다.

 목소리가 염려하며 명령했다.

 ‘하지 마세요. 제가 못하게 하기 전에요.’

 “네가 닥치면 안 해!”

 공윤이 신음하며 소리쳤다. 목소리는 공윤이 뭘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혹시 저 놈, 이 안이 보이나?

 취조실의 투명유리처럼 목소리는 공윤을 볼 수 있고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움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었다.

 ‘아가씨, 전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예요. 절 경계하지 마세요......’

 할 말?

 공윤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뇌수를 핥는 불길처럼 느껴지는 키론을 향한 맹렬한 증오......

 그 순간 그녀는 정수리 위로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갈라지는 목으로 말했다.

 “네가 총을 쐈구나.”

 ‘제가 한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네가 키론을 공격했어. 그래서 키론이 나와 떨어지게 만든 거야...... 나한테 오려고.”

 내 데이트를 망친 놈이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이지? 그녀는 화가 나서 한순간 두통도 잊었다.

 그녀는 분노를 담아 쏘아붙였다.

 “주절 대지마. 날 아가씨라고 부르지도 마. 거지 같으니까.”

 그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 말을 하자마자 활화산이 그녀의 뇌를 덮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아니, 뭘 잘했다고 자기가 화를 내?

 도대체 뭐가 핀트를 자극했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물어뜯는 것처럼 말했다.

 ‘아가씨는 그 놈을 믿나요? 그래서 단 둘이 돌아다녔나요? 그 놈의 어떤 점을 믿는 거죠? 그 자가 당신에게 제대로 말해준 게 있긴 한가요?’

 이 망할 놈이 내 말은 다 무시하는군.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랬더니!

 ‘그 자가 왜 당신을 다정하게 대한다고 생각해요?

 목소리는 문득 전법을 바꾼 것 같았다. 목소리가 간드러질 정도로 달콤하게 속삭였다.

 ‘원래 선해서? 아니야, 그 자는 그런 성품이 못 돼요. 그렇게 이타적인 놈이 아니죠.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나요? 정말로?’

 억지로 오른 링 위에서 연타로 펀치를 맞는 기분이었다. 통증인지, 아니면 입안에 지독하게 차오른 달콤함 때문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가씨, 내게 와요. 나는 당신에게 비밀 따위 품지 않아.’

 공윤은 이를 깨물고 침묵했다.

 비밀!

 망할 놈의 비밀!

 그녀의 마음 속 어딘가 떠돌고 있던 의심이 마침내 형체를 갖추고 떠오른 느낌이었다. 왜 이 단어가 새삼 그녀를 공격하는 걸까.

 “네가 누군 줄 알고? 네 정체부터 말해.”

 그녀는 지쳐서 늘어진 채 말했다. 일단 저 놈이 누군지부터 알아야할 것 같았다. 그녀 생애에 이토록 사이코 같은 놈을 본 적이 없었다.

 목소리는 기뻐했다.

 ‘기꺼이 말씀드릴게요, 내 사랑. 나는......’

 

 갑자기 한층 더 짙고 훨씬 따뜻한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시나몬과 라벤더가 기묘한 조합으로 뒤섞인 향기가 났다.

 잠깐 어리둥절해졌던 공윤은 곧 키론이 그녀의 눈가를 손으로 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그녀를 부여잡듯 꽉 끌어안았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

 “공윤 씨,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공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멍해졌다가, 긴장했던 근육이 걷잡을 수 없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얼었다가 해동된 젤리처럼 키론의 팔 안에서 흐물흐물하게 늘어졌다.

 목소리가 분노했다.

 ‘너!’

 어찌나 강력한 감정이었던지, 결계에 파장이 부딪혀 쩡하는 소리가 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더는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키론이 뭔가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쓸모없는 것 같으니, 그 잠깐을 잡아두지도 못해......’

 목소리는 오래된 억양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것보다 모욕적인 내용이었다.

 “머리를 되찾았나?”

 키론이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처음으로 침묵했다. 하지만 공윤은 문 너머의 사이코가 무시무시한 기색으로 미소 짓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달짝지근하게 말했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할 말이 그것뿐이야? 실망이군, 키론. 몹시 실망했어.’

 목소리가 얼마나 ‘키론’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기색을 담아 발음했던지, 공윤은 어깨를 움켜쥔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영원히 봉인 아래에서만 숨 쉴 거라고 생각했나? 나는 불사다. 내 머리를 모조리 불태우고 그 재를 심해에 뿌려도 죽지 않아. 네놈의 반쪽짜리 불멸과는 다르지.’

 키론은 무감정하게 말했다.

 “그녀도 널 영원히 묶어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오......’

 목소리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진짜 미친 것 같았다. 굉장히 웃긴 소리를 들었는데, 그걸 자기 혼자만 이해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공윤은 그 웃음에 담긴 만족감을 싹 가시게 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굉장했지! 타르타로스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차라리 내 친애하는 할아버님이 나을 정도였어. 나름 머리를 썼겠지만 말이야, 영원한 비밀이 없듯이......’

 목소리는 ‘비밀’에 유독 힘을 주더니, 달콤한 어조로 말을 마쳤다.

 ‘영원한 봉인도 없어. 오직 죽음만 있을 뿐. 그조차도 잠깐이지. 그보다 이봐, 손 좀 놓지 그래? 아가씨에게 함부로 손대지 마. 잘라버리고 싶으니까.’

 “아직 아홉 개를 다 찾지는 못했나본데.”

 키론은 여전히 감정 없는 기색으로 말했다. 공윤을 감싼 손을 떼지도 않았다. 그랬으면 공윤은 정말로 화를 냈을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야. 내가 완전히 부활하는 날, 너는 소멸할 것이다. 육신의 편린조차 찾을 수 없이!’

 저주 같은 선언에, 키론은 처음으로 차갑게 웃었다. 그는 싸늘하게 응대했다.

 “기대하지.”

 공윤은 짜증이 났다.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네. 난 뭐, 꽹과리라도 들까?

 ‘아, 말해주는 걸 깜박했는데......’

 목소리는 비죽거렸다.

 ‘네 사랑하는 하숙생 중 하나가 나의 부활에 상당한 기여를 한 바 있어...... 고마울 따름이야. 언젠가 직접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전해.’

 목소리는 재수 없게 나지막이 웃더니 애정을 가득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 잘 생각해보세요. 부디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공윤은 몸서리쳤다.

 “꺼져.”

 그녀가 사납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그걸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웃기만 하더니 사라졌다.

 잔뜩 헤집어진 공간 안으로 고요가 내려앉았다. 키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빗겨봤다. 차마 공윤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입술을 달싹거리는 걸 공윤이 막았다.

 “집에 가서...... 얘기해요.”

 공윤은 간신히 그 말까지 하고,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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