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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래연 : 암행어사 출도요!
작가 : 린세이
작품등록일 : 2019.11.6

#찐암행어사#박문수#최도지#조선#청춘#로맨스#유쾌#상쾌#통쾌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가 자행되는 조선 중기.
백성들의 고충은 날로 극심해져만 가고 희망은 사라져 절망이 찾아온다.
그 가운데에서도 순수하고 의로운 처자가 있었으니. 범골의 최가댁 장녀, 최도지.
사또나리로부터 '수청을 들라!' 라는 청천벽력같은 명을 받게되고
수청이 아니면 죽음뿐인 삶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그때, 정의의 사도 암행어사가 나타났으니! 그 이름하야 박.문.수
부패한 탐관오리를 처단할 '찐'암행어사의 희망적 활약이 시작된다!

 
4. 망아지가 따로 없다.
작성일 : 19-11-07 23:46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6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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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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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지와 거지나리가 모퉁이로 돌아서 몸을 숨기자마자 인기척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을 밝힐 횟대조차 없이 달빛에 의지한 은밀한 걸음이었다.

 어둠을 더듬거리며 그림자를 벗 삼는 모습이 도지와 거지나리와 닮아 있었다.

 의심스럽다. 저들도 담을 기고 담을 타넘어 몰래 관아로 들어선 자들이려나.

 

 안도의 숨은커녕 들숨날숨조차 뱉고 마시지 못한 채 벽에 바짝 붙어선 도지와 꽤나 익숙한 자세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염탐하는 거지 나리였다.

 절그럭 절그럭, 인기척의 주인들은 관청고 잠금쇠 꾸러미를 꺼내들었다. 그들의 인기척이 이제는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도지는 침을 꼴깍 삼켜 넣었다. 끼기긱 열리는 창고 소리는 천지가 개벽을 하는 우레 소리와 같았다. 도지가 파르르 어깨를 떨자, 거지 나리의 꾀죄죄한 손이 도지의 손을 붙들었다.

 도지는 두 눈을 내리 깔아 거지 나리가 붙든 제 손을 바라보았다.

 

 "일 등급 진상품들이네."

 

 "아이고, 이리 저리 떠돌며 상품은 보지만, 역시 진상품만한 것은 없습죠."

 

 야생 송이버섯 향이 코를 찔렀다.

 

 “해도, 진상품보다 귀한 것이, 요 안성마춤(유기그릇의 한 종류) 아니겠습니까?”

 

 절그럭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차갑게 허공을 울렸다. 거지 나리의 비장한 눈썹이 꿈틀했다.

 

 “역시, 안성 유기그릇은 질이 다릅니다. 달라요.”

 

 “제 아무리 안성하면 유기그릇이라도, 죽산현에서 나는 유기그릇을 더 쳐주는 법이네.”

 

 “예? 죽산현이요? 그런 말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사또나리.”

 

 “어허 이 사람, 김 진사가 유기장 아니던가.”

 

 “하이고 김진사님이 그러합죠. 아유, 유기장이신 김진사님이 죽산현에 계시니 더 쳐주는 것은 당연지사지요! 암요!”

 

 허나 김진사를 추켜세우는 아첨의 목소리가 사또나리의 심기를 거스른 듯 했다.

 

 “한낱 장사치 주제에 죽산현의 현감이 김진사인냥 떠드는 구나?”

 

 사또나리와 장사치라는 조합에 거지나리의 입꼬리는 비틀리고 있었다.

 잡고 있던 도지의 손을 저도 모르게 꽈악 비틀어 쥐기 까지했다. 도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뱉으며 거지나리를 노려보았다.

 

 “아..아...아이고! 아닙죠! 안성의 가자앙~ 최고의 것은 유기그릇도 아니오, 유기장이신 김진사 어르신도 아니오! 당연지사 죽산현의 사또나리 한분 뿐이지요~”

 

 “흠흠... 요즘 김진사 하는 꼴이 진사 주제에 망할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 해.

 내 심기가 좀 불편했었네, 이해하게. 쯧.“

 

 방귀뀐 놈이 성을 내고, 잘못한 놈이 나무란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죄인들이거늘, 누구의 콧대가 더 높다며 말하는 꼴이 우습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대들보를 가리키는 꼴이라니. 거지 나리의 입술이 비틀리다 못해 일그러졌다.

 이내, 장사치는 뱀같은 혓바닥을 놀리며 알랑방귀가 시작되었다.

 

 “참, 지방 유지들이 갖는 불편한 오만함이 원래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셔야죠.

 해도, 진사나리 덕에, 이 놈하고 연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의 연결고리다~

 그렇게만 생각하십시오~“

 

 “아하! 아하하!”

 

 “쉬잇.. 워낙 호탕하셔서, 웃음소리 누가 듣겠습니다.”

 

 이미 다 들었다.

 

 “쉿. 흐흐흐, 참 자네는 사람은 괜찮아.

 진상품 가져갈 때 놋그릇 몇 개 얹어줌세.“

 

 이곳이 관아인지, 저잣거리 장시인지 도통 모르겠다.

 거지나리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잡힌 손에 몰려오는 고통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뱉다 못해 바둥거리던 소달이 파르르 떨림을 감지했다.

 소달은 거지나리에게 꽉 붙들린 손에 되려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반대로 거지나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흠칫, 모퉁이 너머에 온 신경을 빼앗겼던 거지나리가 그제야 도지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그리고 천천히 도지를 돌아보았다.

 도지와 거지나리는 어둠이 숨겨주는 한에서 서로를 지그시 응시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거지나리와 도지의 눈은 반짝거리며 빛을 발했다. 그리고 반짝임이라는 것은...

 가장 어두울 때에 더욱 돋보이는 것이었다.

 해서, 둘의 존재가 사또와 장사치에게 더는 숨겨질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살며시 늘어진 둘의 그림자가 사또의 눈에 띄고 만 것이었다.

 

 “저..저게 뭐야!!”

 

 서로를 응시하던 도지와 거지나리가 흠칫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그림자로 다 탈로나버린 뒤였다.

 

 “그..그림자 아닙니까!”

 

 거지나리는 아랫입술을 꽈악 내리 물었다.

 머리를 이리 저리 굴려 보았으나, 솟아날 구멍을 찾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순간 고요해진 밤하늘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쿵쿵쿵, 거지나리와 도지는 서로의 가슴 뜀박질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지나리와 도지는 서로의 손을 간절하게 붙들었다.

 저벅...

 저벅...

 자갈을 즈려밟는 소리가 도지와 거지나리가 숨어든 모퉁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지나리는 후훅 심호흡을 뱉었고, 도지는 꿀꺽 침을 삼켰다.

 

 “광에...쥐새끼가 들었나...”

 

 홱! 고개 하나가 숨은 모퉁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니라. 하시던 선인들이 말씀이 다 옳다. 도지는 그리 예전에 들은 할멈 말에 맞다 손바닥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쑥 들어온 고개가 악 지르는 비명 소리는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중치막 차림의 장사치 사내가 추욱 바닥에 늘어져있었다. 거지 나리의 제비같이 잽싼 다리가, 보부상 사내를 가격한 덕이기는 한데, 요것을 덕이라 표현해도 옳을는지.

 모퉁이를 돌아보다가 목석처럼 쓰러져 버린 장사치의 모습에 사또나리는 질겁했다. 주춤 뒤로 물러섰고, 거지나리는 이때다 도지를 휙 돌아 보았다.

 그리고 도지를 향해 이리 읊는 것이 아닌가.

 

 "튀어!"

 

 오냐! 도지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내 달렸다.

 마냥 내 달리기만 하는 도지의, 붙들고 있던 손목을 잡아당긴 거지나리에 도지는 허둥지둥 걸음으로 제자리 뜀을 뛰었다.

 도지가 무어라 불만을 토로할 새 없이, 거지나리는 유독 낮은 담벼락으로 도지를 잡아 끌었다. 저 멀리서 어느새 소란은 개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관아에 침입한 괴한이 있다, 잡아라!"

 

 기와 너머의 불빛들이 다급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거지나리는 다가오는 불빛을 확인하며 도지를 담벼락을 떠밀었다.

 

 "넘어 가거라."

 

 "예?"

 

 "이 길로 쭈욱 따라 올라서면 고을을 나서는 풍문루가 나오는데,

 아니지 네가 나보다야 길을 더 잘알겠구나. 허니, 어서 넘어나 가거라."

 

 "저는 담을 넘지 못합니다. 아니,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손을 양껏 내젓는 도지에게로 거지 나리 이를 악 물었다.

 도지는 저 멀리 다가서는 불빛을 망연자실 바라보았으니, 결국 무언가를 결심한 거지나리는 번쩍 도지를 안아 올렸다.

 

 "악!"

 

 얕은 비명을 내지르는 도지의 엉덩이를 기어코 담벼락에 걸 터 앉힌 거지 나리님은 재차 뒤를 살피며 독촉했다.

 

 "어서!"

 

 "거, 거지 나리님은 안 가십니까?"

 

 "대책 없는 계집이구나, 네코가 석자다. 내 걱정하기 전에 네 걱정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대로 거지 나리는 망설임 없이 도지의 어깨를 밀어젖혔다. 걸터 앉은 담벼락 너머로 기우뚱 넘어가는 도지의 절박한 손은 거지 나리를 향해 허우적거렸으나, 그런 도지의 절박한 손길에 거지 나리는 웃었던 듯 했다. 기가 차 웃었을지, 코가 차 웃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풀썩, 푹신한 수풀에 벌러덩 등으로 착지한 도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검은 하늘을 향해 두어번 눈을 깜박깜박 내리 감았다 떠올렸다.

 갖은 고통을 감내하며 기어 들어섰던 개구멍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안락함이었다.

 

 얼른 도지는 몸을 추슬러 일으켰다. 발끝을 들어 담벼락 너머를 살피려는 도지는 이내 코 앞으로 다가선 횃대의 일렁임에 얼른 담벼락 뒤로 주저앉아 몸을 숨겼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아직 거지 나리가 저 안에 있는데, 이 일을 어쩐담.

 허나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신발 한 짝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버선발을 한 자신의 처지를 내려 보았다. 달빛을 벗 삼아, 짚신 한 짝을 찾고자 했으나, 바로 지척의 관아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겁을 지레 먹어 결국 도지는 깽깽이걸음으로 나 살려라 언덕 베기를 타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의 한계는 그 얼마나 대단하던가.

 버선발로 빠르게 내 달린 도지는 삽시간에 범골에 도착했다. 범골의 입구에 와서야 허둥지둥 걸음을 늦춘 도지는 까맣게 내려앉은 고요한 집으로 들어섰다.

 털썩,

 대청마루에 한참을 혼이 나간채 앉아 있던 도지는 굳게 닫힌 계모 배씨와 원지의 방을 돌아 보았다. 고요하고 잠잠했다. 도지는 괜한 서러움이 차올랐다.

 

 "내 걱정도 안 했나... 죽다 살아왔는데."

 

 벌러덩 드러누운 도지는 이내 양심이 찔려, 미안함이 차올랐다.

 거지 나리... 어찌한담. 무사 하시려나.

 포로록,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뛴 도지에게 밤중의 일은 고역 중의 단연 최고였다. 금새 잠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근심 중에도, 까무룩 감기는 도지의 두 눈꺼풀이었다.

 

 #

 추위를 이겨낸 곤함 속에서 툇마루를 데굴 구르던 도지에게로 별안간 발길질이 찾아들었다. 도지는 두 눈을 번쩍 떠올렸다. 도지는 들이닥치는 아침햇살에 손차양을 만들어 햇살을 가로막았다.

 이불을 똘똘 말고 누운 도지의 곁에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발길질로 도지를 차는 누이 원지였다. 이를 악문 도지의 목소리가 낮게 그르렁 거렸다.

 

 "발 치워라."

 

 "엄마가, 밥 먹으랜다. 둔탱아."

 

 "...웬일로."

 

 밥 소리, 벌떡 몸을 일으키는 도지를 향해 부엌에서 나오던 계모 배씨는 쏘아붙였다.

 

 "먹기 싫음 관둬."

 

 여전히 가택과 어울리지 않는 고운 비단옷차림이었다. 도지의 보리밥 옆에 국그릇을 투욱 놓아주며 계모 배씨는 퉁명스럽게 마주 앉았다. 주 반찬은 어제 도지가 일 삯으로 얻어온 전거리였다.

 

 "그래서, 관아에서 또 불러 준다더냐?"

 

 "...몰라요."

 

 텁텁한 목구멍이 밥을 마다하나, 있을 때 양껏 먹어야 하는 것이 민초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쌀 없담서, 어서 났는데요?"

 

 "옆집 박씨네서 얻었지. 박씨네 아가, 그 누구냐."

 

 "순득이요?“

 

 “사내놈 말고, 계집애 있잖냐.”

 

 “순분이요."

 

 "그래 그거, 밥 차려준 대신으로."

 

 "그 옷은 또 샀어요?"

 

 "...왜? 또 나무라려고?"

 

 "아니, 예쁘다고."

 

 배씨 어멈은 급작스레 목이라도 메이는지, 벌컥벌컥 숭늉을 들이켰다.

 

 "나는? 나는?"

 

 따라 이쁘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 원지는 비단 댕기를 도지의 앞에 들이밀었다. 도지는 대충 댕기를 훑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근데, 신발 한 짝은 어디다 흘리고 버선을 진탕 물들이고 다녀?"

 

 나무라는 소리에 그제야 자신의 버선발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버선에 물든 짙은 흙의 기운을 살피며 도지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도지의 두 눈이 상 가운데 놓인 기름진 지짐이에 가 닿았다. 관아에 두고 온 거지 나리가 그제야 동동 떠올랐다.

 얼마 만에 차려준 아침상을 마다하고 도지는 할멈의 짚신 한 짝을 빌려 신었다.

 한 짝은 닳을 대로 닳았으며, 한 짝은 바짝 날이 선 새것이었다. 관아에서 도지의 낡은 짚신 한 짝을 쥐고 있다면, 범의 아가리를 향해 달려가는 꼴이었다.

 하여도, 거지 나리와의 의를 간밤에는 저버렸을지라도. 새하얗게 날이 센 지금에는 져 버릴 수가 없었다.

 

 #

 관아 앞에 도착한 도지는 차마 관아로 들어서지 못하고 고목 뒤에 몸을 숨겼다. 굳게 입구를 지키고 선 나졸들을 바라보며 도지는 아랫입술을 질근 씹고 다리를 동동 굴렸다.

 어쩐지, 관아의 분위기가 삼엄하고 분주한 것 같았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났는지 모르겠다. 전전긍긍걸음이 결국 용기를 내어 한발자국 관아로 내디뎠다.

 허나, 휙.

 익숙한 손길이 도지의 손목을 틀어쥐었으니.

 

 "대책 없는 계집이, 이젠 범의 아가리로 뛰어드는 게구나.“

 

 한탄을 머금은 질책하는 목소리와, 꼬름한 냄새로 알겠다. 도지는 반색을 머금어 외쳤다.

 

 "거지 나리!"

 

 "목소리 낮추거라."

 

 거지 나리가 확실했다. 행색에 비해 총명한 눈매도 여전하고 더럽고 냄새가 좀 나는 것만 빼면 흠 없는 용모도 여전했다. 잡혀 모진 형문을 견딘 자의몰골이 아님에 더욱 반가웠다.

 

 "제가 어찌나 걱정했는줄 아십니까?"

 

 "걱정했다는 자가, 어제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더냐? 잘도 도망치더구나."

 

 "...그...그럴리가."

 

 도지는 민망함에 우물쭈물 긴가민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 도망을 쳤으면, 돌아오지 말 것이지. 관아로 향하던 연유는, 날 고발하기 위함이더냐?"

 

 얕은 으름장이었다.

 

 "그럴리가요! 명명백백 거지나리님의 죄는 무고하다 밝히려 했습니다."

 

 "...대책 없는 계집이 하는 짓이 아주 망아지가 따로 없구나."

 

 "망아지요?"

 

 "날뛰는 망아지 말이다. 네가 나의 청렴결백함을 밝힐 수 있다는 그 해맑음을 아둔함이라 한다. 알겠느냐."

 

 이리 야박한 호통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도지는 눈을 동그랗게 떠올려 거지 나리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내 근질근질하던 입술이 벌어졌다.

 

 "그게 어찌 아둔함이라 그러십니까? 한 사람의 죄를 밝히지 못함에, 열 사람의 죄를 밝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그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그... 서책 많이 쓴... 공자님! 공자님도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나중에 서책 볼 일이 계시거든, 자알 찾아보십시오."

 

 "어제부터, 참 재미있는 말만 골라하는 구나."

 

 전혀 재미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거지 나리의 찌푸린 눈빛에 도지는 큼큼 맑은 목소리를 울렸다.

 

 "허면, 무사하신 것을 보았으니... 저는 이만."

 

 터업! 또 다시 붙들린 처자의 손목이었다.

 

 "그만 좀 붙잡으십시오. 누가, 봅니다."

 

 라는 타박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지 나리는 두 눈을 부라렸다. 손가락을 치켜들어 도지의 코앞으로 냉큼 들이밀며 위협했다.

 

 "나야 말로! 나야 말로, 누구에게 보여지기 꺼리는 자다. 누구 덕에 꼬이고 있다만."

 

 "...뭐, 그런 더러운 몰골이라면 보이고 싶지도 않겠죠. 냇가 가서 씻기라도 하십시오. 아직 날도 참을만하니 얼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아..."

 

 고개를 내저으며 질색하는 거지 나리의 눈을 사로잡는 도지의 신박한 짚신 모양새였다.

 누가 보아도 헌것과, 새것이었다. 저리 신는 치는 본 적도 없다.

 

 "그 짚신 꼴은 또 어찌 그러느냐?"

 

 "아, 이것 말입니까?"

 

 자신의 발꼬락을 신명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버선 위로 파다했다. 따라 신명 난 목소리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신명 나 떠들었다.

 

 "어제 잃어 버렸습니다."

 

 거지 나리의 미간이 파삭 구겨져 도지를 내려 보았다. 도지는 두 눈을 크게 떠올렸다.

 

 "어찌 그러십니까?"

 

 "어제, 언제?"

 

 "어제 밤에, 관아 담벼락을 넘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가서 찾아오려구요."

 

 마냥 해 맑은 도지의 어깨를 거지 나리가 단번에 움켜쥐었다.

 어깨가 아릴 지경에 도지는 사나운 얼굴을 한 제 앞의 사내를 올려 보았다. 그는 마치 예삿일이 아니라는 듯 진중하게 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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