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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88화
작성일 : 19-11-07 20:45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1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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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들이 탄 트럭은 용감하게 격전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머리는 숙였지만 귀는 막을 수 없었다. 수십 발의 총탄이 머리 위로 빗발쳤다. 적의 총탄 대부분은 트럭 차체에 가로막혀 거칠고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튕겨나갔다. 트럭 운전수는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발이 묶인 선발대의 바로 앞까지 돌진해서 트럭을 엄폐물로 쓸 수 있도록 멈춰세우고는 날아오는 총탄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

 

  “모두 내려! 차량 뒤에 꼭 붙어서 응사해!”

 

  “공격받고 있습니다. 후방 지원은 어디 있습니까?”

 

  “후발대는 오지 않아. 우리뿐이다.”

 

  여왕은 트럭 안에서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봄이와 베티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얼마나 세게 끌어내렸는지 봄이는 곧바로 진흙탕에 곤두박질쳤다.

 

  봄이는 정신을 차린 다음에도 숨을 쉴 수 없었다. 입에 진흙이 들어가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봄이의 심장과 폐는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혈관이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봄이의 폐는 너무나도 갑작스런 쇼크로 인해 수축해버렸고, 마치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총성이 요란하게 하늘을 가르는 죽음의 격전지에서, 한 소녀의 비명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아아아아........”

 

 그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의미도 없이 일정한 높이로 이어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 소리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외침도 아니었다.

 

  그리고 봄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포. 이 한 마디로 충분했다. 봄이는 몸을 제대로 엄폐물에 기대지도 않은 채로 감정 없는 한 가지 신음만을 흘렸다.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이 머릿속에서 이어지자 이윽고 봄이는 자신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저번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바로 천안에 오기 전 작은 집에서 상훈의 가족들과 힘을 합쳐 침입자들을 몰아냈을 때였다. 그 때에도 봄이는 공포를 마주했지만, 적어도 그 때에는 침입자들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명분이 있었다. 놈들은 번뜩이는 칼을 봄이에게 겨눴고, 놈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싸워야만 했다. 그것은 그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들의 보금자리, 유일한 버팀목을 위해 힘을 합쳐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왜 봄이는 눈 앞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적과 싸워야만 하는가? 운명이 봄이의 손을 잡아끌고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걸까? 봄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은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격전지에 내몰려 보이지도 않는 적과 총칼을 겨누고 대치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봄이에게 총을 겨눈 저 사람들은 봄이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없을 텐데......

 

  봄이가 뒤에 숨어 필사적으로 웅크리고 있던 트럭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놈들이 타이어를 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열심히 총을 쏘고 있었다. 봄이의 발 밑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힘없이 자빠져 있는 까마귀였다.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지만, 까마귀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봄이는 그 짧은 순간,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빗발치는 총탄이 귓전을 스치는 소리도,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과 함께 터져나오는 화약 소리도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봄이는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고통 섞인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배에 총탄을 맞은 것 같았고, 어떤 사람은 피가 흐르는 귀를 싸쥐고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히 들려왔다.

 

  아파.

 

  안 들려.

 

  그 목소리들을 듣자마자 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총성은 모두 잦아들어 있었다.

 

  모래 섞인 눈을 온 몸에 뒤집어쓴 채 웅크려 있던 까마귀가 외쳤다.

 

  “상황 종료.”

 

  “1번대, 피해 상황 보고하라.”

 

  “쿨라가 팔에 총탄이 스친 것 빼면 모두 멀쩡합니다.”

 

  “2번대, 3번대. 피해 상황 보고.”

 

  “에리나와 캣이 전사했고, 체리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의무대, 의무대 없습니까?”

 

  나름 상황이 정리되자 까마귀들은 몸을 일으켰다. 봄이도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적진 초소를 바라보았다.

 

  적들의 천막은 죄다 파헤쳐져 있었고, 총탄에 의해 구멍이 뚫려 너덜너덜했다. 자경단 소속임을 나타내는 천막 위에 걸린 흰 깃발이 휘날렸다.

 

 자경단 초소에는 빈 탄피와 시신들만 굴러다녔다. 봄이는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혹시라도 시신들 사이에 삼촌이나 겨울의 시신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시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일단은 다행히도 삼촌이나 겨울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지만, 봄이는 왠지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버렸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자경단 초소의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 생존자가 있었다. 그는 얼굴이 거의 다 찢어져 있었고, 허리와 어깨에는 이미 수십 발의 총탄 자국이 뚫려있었다.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가오는 까마귀들을 보자 권총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까마귀 중 하나가 그가 쥔 권총을 발로 차버렸다.

 

  “용케도 살아있었구나. 악인이여.”

 

  악인이라 불린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그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날 죽이지 못해.”

 

 그렇게 말하며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봄이는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어라, 너는.......”

 

  악인이라 불린 사내도 봄이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는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여 말했다.

 

  “너....... 그 때 외출증 없이 도망쳤던 꼬맹이 아냐?”

 

  그제서야 봄이는 이 낯익은 사내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봄이가 겨울의 마지막 설득을 무시하고 본부를 벗어나려고 했을 때, 바리케이드 쌓인 초소에서 외출증이 있어야만 본부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며 붙잡았던 그 사내였다.

 

  사내는 분통이 끓어오른다는 듯이 봄이의 소매를 힘없이 붙잡고 늘어졌다.

 

  “이 나쁜 년. 너도 이 식인종들이랑 한패였어? 그랬던 거야? 이 천벌 받을 악마 같은 꼬맹이가.......”

 

  그러나 다른 까마귀들이 달려들어 봄이와 사내를 떼어놓았다.

 

  나쁜 년이라고? 천벌 받을 악마라고?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사내는 그 후로도 봄이에게 뭐라고 저주를 퍼붓다가 제 풀에 못 이겨 축 늘어져버렸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그 때 널 붙잡았어야 했는데. 널 붙잡아서 엄중한 단속을 거쳐서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반역자는...... 첩자는....... 모두......”

 

  사내의 말을 듣고 주위의 까마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저 꼬마도 저 녀석들과 내통했던 반역자였어?”

 

  봄이는 주변 까마귀들이 자신을 향하는 시선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까마귀들은 자기네끼리 수근대더니, 곧 모두들 일제히 봄이를 쳐다보았다.

 

  그 때, 누군가가 군중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 사람은 여왕이었다.

 

  여왕은 조용히 봄이에게 권총을 겨눴다.

 

  “아가야.”

 

  봄이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크게 들릴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여왕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봄이에게는 전혀 부드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직접 말해보렴. 저 악인들과 내통했었던 적이 있니?”

 

  심장이 엄청나게 빠르게 뛰었다. 맥박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니까 저는, 아뇨.”

 

  봄이는 간신히 또박또박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그래?”

 

  여왕이 미소지으며 웃었다. 봄이는 그때만큼은 여왕의 부드러운 미소가, 마치 사람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얼굴이 뒤틀려 있는 것처럼 보였고,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여왕이 봄이에게 겨눴던 권총을 돌려쥐었다. 그리고 봄이에게 권총을 건넸다.

 

  “그럼, 네 손으로 죽여.”

 

  “그래, 죽여라. 내가 본부로 돌아가면 너희들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아, 그건 날 죽여도 마찬가지겠군.”

 

  여왕은 아무 말도 없이 권총의 총신을 쥔 채 봄이를 쳐다보았다.

 

  “뭐 해, 안 받을 거야?”

 

  여왕은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의 팔은 떨리지 않았고,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적을 처형하는 것이 봄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듯이 태연하게 권총을 내밀고 있었다.

 

  봄이는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격전지에서 불어오던 바람 소리도, 차갑게 식어버린 탄피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응시하는 수십 개의 눈동자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모두들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죽은 적들의 몸을 뒤지던 까마귀들도,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하던 까마귀들도, 빈 탄창을 갈아끼우며 총기를 정비하던 까마귀들도.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봄이는 자기도 모르게 권총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권총을 고쳐잡고, 무릎을 꿇은 채 까마귀들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의 얼굴은 피와 땀이 뒤섞여 표정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남자는 방금 전 여유롭게 죽이라고 말한 것과 대조적이게도 숨을 빠르게 몰아쉬고 있었다. 지금 귓가에 들리는 이 요란한 심장 소리는 누구의 심장 소리인가? 이 남자인가, 아니면 자신인가?

 

  봄이는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권총을 남자의 이마에 겨눴다. 그 순간까지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세계는 정지했고, 그 정지한 세계에서 봄이 혼자서만 무대에 올라서 있었다.

 

  지금 이 광경은 마치 커튼콜이 한창인 공연 무대와 다름없었다. 관중들은 공연자들이 보여준 공연에 만족하면서도 숨을 죽이고 있었고, 이제 정지한 세계의 유일한 공연자인 자신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보답만 하면 끝나는, 공연의 클라이막스이자 막바지였다.

 

  그러나 봄이는 유일한 공연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 봄이는 오직 자신만을 지켜보는 관중들에게 보답할 배짱도 없었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쏠 용기도 없었다.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갔고, 지켜보는 관중들은 하나둘씩 야유를 던지기 시작했다. 여왕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그녀의 인내심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봄이는 자신이 행했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첫 살인을 떠올렸다. 그 때의 상황은 지금과 무엇이 달랐을까? 봄이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 악마는 봄이를 따라잡고는 쇠 파이프를 휘둘러 봄이를 죽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봄이의 총이 먼저 불을 뿜었고, 악마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포효하더니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때 봄이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도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면, 봄이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은 그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눈앞에서 자신에게 무릎꿇은 남자는 봄이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봄이의 목을 옥죄는 악마는 없었지만, 봄이의 등을 떠미는 악마들은 있었다. 모두들 기대 가득한 눈으로 봄이를 쳐다보았고 또 도덕성을 한 번 버렸던 그녀가 이제는 남은 마지막 인간성을 저버리도록 부추기고 있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왜 나는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이 남자의 눈에는 봄이를 향한 살기가 없었다. 예전에 봄이가 쏠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눈동자에는 있었던 그런 살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이 남자에게 살기를 품어야만 하는가?

 

  “후배, 뭘 고민하고 있어? 어서 쏴버려!”

 

  베티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소리치는 베티에게 트럭에 타기 전 자신만만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악인을 무찌르고 싶다고 칭얼대던 베티의 눈은 벌겋게 부어있었다. 아마도 저 녀석도 제법 공포에 시달렸겠지. 까마귀 여왕이 아이들에게 말해주면서 미화되고 왜곡된 영웅담만 듣던 베티가 실제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내몰렸던 건 처음일 테니까.

 

  “저 녀석은 악인이야. 차마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잔인하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놈들이야. 그런 몰지각한 미친놈들 때문에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해? 악인들은 모두 죽어야만 해. 녀석들은 인간성이라고는 이미 진작에 악마에게 팔았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야. 어서 쏴!”

 

  하지만 베티의 외침과는 다르게 봄이의 손가락에서는 힘이 빠져나갔다. 봄이는 다시 한 번 사형수를 바라보았다. 인간성을 악마에게 판 악인. 그렇게 불린 남자는 그저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만 있었다.

 

  만약 이 남자가 정말로 악인이라면, 이 남자가 따랐던 자신의 삼촌, 그리고 그 삼촌의 하나뿐인 딸마저 모두 악인이라는 뜻인가? 엉망이 되어 찾아온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 삼촌도, 무모하게 죽음의 땅으로 떠나려는 자신을 마지막까지 따라와 마지막으로 설득하려 했던 겨울이도, 모두 죽어야 할 악인이라는 뜻인가?

 

  그 순간, 꿇어앉아 있던 남자가 자신을 붙잡은 두 까마귀를 뿌리치고 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봄이의 얼굴을 후려치고는 쥐고 있던 권총을 빼앗아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의 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봄이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대항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쓰러진 봄이에게 권총을 겨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남자는 좀처럼 봄이를 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이 남자도 방금 전의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자신에게 살기를 품지 않은 상대를 쏴야 자신이 살 수 있을 테니까.

 

  총성이 울렸다. 봄이의 얼굴에 핏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봄이는 총탄이 자신의 이마를 꿰뚫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곧 남자가 총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까마귀가 든 소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봄이를 자경단을 배신하고 까마귀에 붙은 배신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쏘지 않았을까?

 

  남자의 피투성이 얼굴이 눈밭에 파묻혔다. 그제서야 봄이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왕이 다가와서는 주저앉아 있던 봄이를 일으켰다.

 

  “오늘은 이쯤 하고 돌아간다. 여기 뒷수습은 후발대가 알아서 할 거야. 비록 희생자가 있긴 했지만 작전은 성공했다. 분명히 녀석들에게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가 될 거야.”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은 흩어져서 공연장을 나갔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관중들은 하나같이 불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공연이 기대에 미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여왕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까마귀 하나가 여왕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폭풍이 몰아치고 폐허만 남은 전쟁터에는 이제 봄이밖에 남지 않았다.

 

  봄이는 바로 자신의 발 밑에 떨어진 피 묻은 권총을 보았다. 봄이는 악마들의 부추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지켰다. 하지만 그 대신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과연 봄이가 택한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홀로 남은 봄이에게 베티가 다가왔다.

 

  “왜 쏘지 않은 거야?”

 

 앞으로 봄이를 수십 번, 수백 번은 괴롭힐 질문이었다. 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베티가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도 오늘 난 많은 걸 배웠어. 여왕님이 어째서 그렇게 날 전쟁터에 보내주지 않았는지 이제 깨달았어. 악인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라는 건 지금의 내가 뛰어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 지금의 나로선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사명이었다는 걸....... 부끄럽지만 말이야.”

 

  까마귀 하나가 봄이와 베티를 데리고 다시 트럭에 태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더 강해질 거야. 반드시 더 열심히 노력하고 강해져서, 결국에는 꼭 어엿한 전사가 되고 말겠어. 이제 더 이상 오늘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지는 않을 거야. 악인을 쏠 기회가 나에게 있었다면 주저 없이 쏴버렸을 텐데.”

 

  봄이는 베티의 말을 그러려니 말거니 하고 흘렸다. 더 골치아픈 이야기 상대가 트럭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트럭이 출발하자 여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봄이의 옆에 앉았다. 봄이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그 자를 쏘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겠어. 다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으로 알고 있을게.”

 

  봄이는 두 다리 사이로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앞으로 여왕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할지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하지만 봄이는 방금 전에 벌어졌던 일, 즉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봄이는 그저 본능에 따랐을 뿐이었다.

 

  “아가야, 이름이 뭐니?”

 

  봄이는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여왕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이름이라고? 갑자기 왜? 처음 봄이를 만났을 때에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왜 지금 하는 것일까? 그것보다 이들은 이름이라는 관습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하지만 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찾고 있다고 했지?”

 

  봄이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여왕은 그 말 한 마디가 봄이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게 틀림없었다.

 

  “나한테도 가족이 있었어. 여동생이었는데, 친자매였지. 마음이 약하기는 했지만, 용감하고 정의감 넘치는 녀석이었어. 녀석과 나는 마음이 맞는 동지들을 모아 까마귀를 세웠고, 그때부터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만든 악인들과의 투쟁을 시작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녀석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어. 엄청난 불만을 품고서는 말이야. 그때는 몰랐었지만, 우리는 사실 까마귀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이 서로 달랐던 거야. 신념이 맞지 않았던 우리는 곧 갈라졌어. 녀석은 까마귀를 나가버렸지.”

 

  “그 이야길 왜 저한테 하는 거죠?”

 

  “네가 찾고 있는 가족이란 건 생각외로 정말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여왕이 지금까지 가족만을 찾기 위해 지나왔던 봄이의 모든 여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가야, 넌 가족이란 게 뭐라고 생각해? 분명히 가족이라고 하면 모두들 친가족만을 떠올려. 정말로 ‘가족’ 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해도, 오래 전부터 자신을 버렸지만 단순히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들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그런 게 진짜 가족일까?”

 

  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생각은 좀 달라. 나는 진짜 가족이란 건 필요할 때 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피가 섞였든 그러지 않았든, 누구보다도 자신을 아껴주면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야.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비록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기꺼이 곁에 남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진짜 ‘가족’ 이 아닐까 생각해. 단순히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라는 것보다야 훨씬 그럴듯하지.”

 

  봄이는 뭐라고 반문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실 봄이는 이 의견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사실 봄이는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자신의 가족의 행방에 대해 약간씩 무뎌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우리라면 네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단다, 봄아.”

 

  여왕이 또다시 되도 않는 설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봄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던 봄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죠?”

 

  여왕은 미소짓기만 할 뿐 그대로 등을 돌려버렸다. 그에 흥분한 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서 여왕의 소매를 홱 잡아끌었다. 주변에 있던 까마귀들이 모두들 일어섰지만 여왕은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대답해요. 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름을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어요.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조차도요. 그런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죠?”

 

  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봄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젠장, 귀가 먹었어요? 뭐라고 말 좀 해 보라고요.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있죠? 도대체 나에 대해 뭘 알고 있길래 이러는 거냐고요. 아무 것이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좋으니까 나나 내 가족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부탁이니까 말해 줘요. 제발........”

 

  봄이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주저앉았다. 그렇게 있다 보니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대한 답답함, 어째서 자신은 그 묻혀만 가는 진실을 찾아나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자신은 가족을 찾을 수 있을지, 더해서 자신이 과연 그 진실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마저 더더욱 커져갔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째서 그런 질문을 나한테 하는 거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이라면 본인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윽고 굴러가던 트럭이 멈춰섰다. 저택을 떠날 때도 그랬지만 돌아올 때가 되자 하늘이 훨씬 더 어두워졌고 잦아드는가 싶던 눈보라도 어느새 매서워졌다. 저택 앞을 지키고 있던 까마귀들은 차량을 잠시 멈춰세우더니 곧 통과시켰다.

 

  봄이는 여왕에게 더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여왕은 봄이가 얼마나 자신의 내면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지 몰랐고, 봄이도 여기서 구태여 애원해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왕이 어떻게 자기 이름을 알아냈는지, 또 자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봄이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봄이는 원래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직접 밝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봄이에게는 친구가 얼마 없었고, 학교를 다닐 때는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어두운 아이로 낙인찍혔다. 그렇기 때문에 봄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봄이에게 난생 처음 보는 웬 여자가 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여왕은 다른 까마귀들과 비교하면 방독면을 벗고 맨얼굴로 있을 때가 많았지만, 여왕의 얼굴만 보아서는 봄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상훈의 가족들과 함께 작은 집에 머물렀을 때 꾸었던 꿈에서 나왔던 ‘얼굴이 지워진 여성’ 과도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또 기껏해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상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전에 도로 아래 소각장에서 봄이와 잠깐 만났었던 여자와 꽤나 닮은 것 같기는 했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봄이는 여왕에게서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저택으로 돌아와 혼자 침실에 틀어박혔다. 자꾸만 아까 그 사내의 눈빛이 떠올랐다. 눈을 감아도 그의 고통 섞인 신음소리와 함께 울려퍼진 짧은 총성이 뇌리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가 봄이가 쥔 권총을 빼앗고 나서 분명히 봄이를 쏠 수 있을 시간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쏘지 않았을까?

 

  그 사내도 짧은 시간 동안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와 살인을 강요당하는 소녀와, 그런 적군이 되어버린 소녀를 죽여야만 하는 본인 사이에서 그는 끝없이 갈등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침실 문이 열리고 베티가 들어왔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에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지금 바깥 홀에서 첫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모든 당직 지휘관들과 전사들을 위한 시상식이 시작하려고 해. 나가서 구경이라도 할래?”

 

  “아니, 난 됐어. 혼자 있고 싶어.......”

 

  지금껏 문틈에서 고개만 빼꼼거리던 베티가 들어와 봄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어디 아파?”

 

  오늘 일로 이래저래 기분이 좋지 않았던 봄이는 베티를 내치려고 했으나 베티는 진심으로 봄이가 걱정된다는 눈동자였다.

 

  “그런 것 아냐.”

 

 베티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봄이는 생각을 고쳐먹고 말했다.

 

  “아까 일 때문에 그러는 거지? 전쟁터에서 말이야.”

 

  “너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야.”

 

  “아니, 이번에는 널 참견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 때, 우리가 전쟁터 한복판으로 내몰렸을 때 말이야. 솔직히 난 두려웠어. 아까도 말했지만 전쟁을 겪어보기 전에는 악인과의 전쟁에 드디어 동참하게 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지. 나도 다른 까마귀 전사들처럼 인정받게 된다는다는 사실에 기대되기도 했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 팔다리조차 움직이지 않고, 털은 얼마나 곤두서던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꼼짝도 못하고 떨고만 있어야 했지. 역시 내 자만이 너무 심했나 봐......”

 

  봄이는 베티의 말을 듣자 그 때의 공포가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봄이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짚은 채 고개를 떨궜다.

 

  “그렇지만, 옆에 있던 네 덕분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용기가 났어. 비록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첫 전투에서 겁을 집어먹고 꼼짝도 못하고 있는 바보가 나 혼자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어.”

 

  “그런 말이나 하려고 날 찾은 거야?”

 

  봄이가 쏘아붙이다시피 이야기했지만 베티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작은 연고였다. 지저분하긴 했지만 얼마 사용하지 않은 듯한 양이었다.

 

  “아까 녀석한테 얻어맞았잖아. 다친 데 있으면 발라.”

 

  봄이는 얼떨결에 연고를 받아들었다. 사실 다친 데라고는 베티의 말대로 그 남자에게 뺨을 맞아 넘어질 때 생긴 작은 상처뿐이었다.

 

  “이제 너도 우리 가족이잖아. 기껏 후배가 생겼는데 잘 돌봐줘야지. 그래야 진짜 선배지. 안 그래?”

 

  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베티는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 방금 전에 여왕님에게서 단독 임무를 부여받았어. 저택 뒤에 조그만 산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땔감을 구해오라고 하셨거든. 나무를 패든지 나뭇가지를 주워오든지 말이야.”

 

  봄이에게는 베티가 말한 이 명령이 뭔가 얼토당토않게 들렸다.

 

  “뭐라고?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에 혼자서.......”

 

  “상관없어. 누가 뭐래도 결국 내가 처음으로 받은 단독 지령이니까. 여왕님께, 그리고 모든 자매들에게 인정받고 말겠어.”

 

  봄이는 가만히 앉아 베티에게 받은 연고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베티는 나가려다가, 미처 말하려던 걸 깜빡 잊었다는 얼굴로 돌아와서 말했다.

 

  “사실은 그 소식을 전해주러 온 거야.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내일 아침이나 되어서 돌아올 것 같아. 그러니까...... 잘 자.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베티는 말을 끝마치고 문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봄이의 한 마디에 잠깐 멈춰섰다.

 

  “미안해.”

 

  “아, 그리고 곧 식사 시간이니까 많이 먹고 쉬고 있어. 내가 여기 침실로 식사를 가져다달라고 대신 부탁해줄 테니까. 알겠지? 또 30분 후에는 홀에서 곧 실현될 신세계를 대비해서 특별 의식을 거행한다고 하니까 빼먹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는 베티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을 하던 봄이는 식사라는 말 한 마디에 머릿속이 깨끗이 청소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봄이는 그대로 침실에 누웠다. 저택에 들어온 이후론 고작 하루 이틀째인데도 온 몸이 불에 그슬린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그럼에도 오늘 밤에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어찌됐든 간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날에는 늘 잠자리가 사나웠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공포에 떨던 봄이는 지금 호화로운 저택의 아늑한 침실에서 포근한 침대에 몸을 맡긴 채 누워있었다. 이상한 삶이었다. 이렇게도 급변하는 삶이라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인가 생각하면서도 삶의 변덕스러움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후 누군가가 침실 문을 노크한 후 식사를 가져다놓았다. 봄이가 저택에 온 뒤로 처음 먹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배가 고팠던 봄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깃국을 마시기 위해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봄이는 아까 그 남자가 자기를 처음 보고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나쁜 년. 너도 이 식인종들이랑 한패였어? 그랬던 거야? 이 천벌 받을 악마 같은 꼬맹이가.’

 

  그가 분명 식인종이라고 했었는데....... 한패라니, 누가 식인종이라는 것일까?

 

  김이 펄펄 나는 국그릇에서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건더기가 떠다녔다. 그러고 보니 봄이는 지금까지 저택을 둘러보면서 가축을 기르는 목장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만약 있었다면 베티가 자랑스레 소개해주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곳으로부터 먹을 식량을 납품받거나 조달하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봄이는 마시려던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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