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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약속의 향기
작가 : 살리에르
작품등록일 : 2019.10.3

향기를 잃어 절망에 빠진 여자

사랑을 잃어 슬픔에 잠긴 남자

사랑은 자신에게 사치라는 여자

영원한 사랑은 존재한다는 남자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향긋한 아로마 향기처럼 다가오는 네 남녀의 사랑이야기

오늘도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의 향기를 느낀다.

 
약속의 향기 - #33. 약이 없는 병
작성일 : 19-11-07 18:28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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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의 향기 - #33. 약이 없는 병

 

 

 새벽과 성원이 함께 산속을 헤매고 있을 때, 민아는 어머니의 병실을 나와 자신의 진료실에 돌아와 있었다.

 

 민아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나와 본인의 진료실로 돌아오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순신도 이 길을 걸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료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지만 민아는 눈앞에 있는 차트들이 보이지 않았다.

 

 순신의 생각을 계속하니 가슴 한쪽이 꽉 막힌 것처럼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순신은 자신을 위해서 참 많은 것을 해주고 있는데, 자신은 그런 순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답답했다.

 

 그리고 순신의 마음을 알지만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늘 가슴보다는 머리가 시키는 데로 살아온 민아이지만 이번만큼은 순신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기에 너무 힘이 들었다.

 

 민아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카톡에 있는 순신의 연락처를 누를까 말까 고민했다.

 

 순신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고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민아를 도와주고 있는 박 간호사가 들어왔다.

 

 박 간호사는 민아의 테이블에 오후 진료 환자들의 차트를 내려놓고 진료실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진료에 필요한 비품들을 새로 정리하고 있었다.

 

 민아는 박 간호사가 정리하는 것이 보였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신에 대한 상념으로 어디 하나 집중하지 못했다.

 

 민아는 가슴이 답답한지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 부분을 툭툭하고 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오자, 박 간호사는 뒤를 돌아봤고, 자신의 명치를 마사지하고 있는 민아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어디 불편하세요? 체하신 거예요?”

 

 박 간호사는 민아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가슴이 조금 답답해서.”

 

 “너무 안 좋으시면 약이라도 좀 드시는 게 좋을 텐데. 아니면 제가 손이라도 따드릴까요?”

 

 박 간호사는 민아가 체한 것이란 생각에 손을 따는 것을 제안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민아는 박간호사에게 그렇게 말하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차트에 집중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민아의 시선은 핸드폰으로 자꾸 쏠리고 있었다.

 

 민아의 행동을 힐끔거리며 관찰하던 간호사는 민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연락 올 데가 있으세요?”

 

 민아는 박 간호사의 질문을 듣고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놀랐다.

 

 “네?”

 

 “아니요. 어디 연락 오실 데가 있냐고요.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만 들었다 놨다 하시는 거 같아서요.”

 

 “아니에요. 그냥 뭐 좀 보느라고..”

 

 민아는 말을 줄이며 다시 차트로 시선을 옮겼다.

 

 박 간호사는 그런 민아를 보면서 살짝 웃고는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한참을 자신에 일에 집중하던 간호사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민아에게 무심한 듯 천천히 이야기했다.

 

 “혹시 누구한테 연락을 하고 싶으신 거면 그냥 하세요. 그거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더라구요.”

 

 민아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듯 간호사를 쳐다봤다.

 

 간호사는 민아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자신의 일을 하며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걸로 많이 고민하고 결국 연락 안 하고 그랬는데, 결국 후회되라구요. 분명 나는 연락을 하고 싶었고, 연락을 해야만 한다는 이유를 찾는 건데 혼자서는 그 이유를 못 찾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연락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드리는 거죠.”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박 간호사는 민아의 대답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라면 다행이구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

 

 간호사는 민아에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박 간호사는 마지막까지 뭔가를 아는 것 같은 눈빛으로 민아를 보며 생긋 웃고 나갔다.

 

 민아는 간호사의 그런 모습에 괜히 자기 맘이 보였을까 걱정을 했다.

 

 박 간호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40대의 여자였다.

 

 여자의 직감인지 세월이 만든 감인지 박 간호사는 항상 민아가 생각하는 것을 먼저 알고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민아는 박 간호사가 나가자 간호사가 나간 문을 보며 피식하고 웃고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민을 하고, 옆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얼마간의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민아는 괜히 통화가 연결되지 말아라 하는 못된 생각을 하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꾀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전화를 받지 않자 민아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때, 반대편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이순신 씨 핸드폰 맞나요?”

 

 “네. 안녕하세요. 민아 씨.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고 아까 병실에 안 들리시고 바로 가신 것 같아서요.”

 

 “네.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인사도 못 드리고 갔네요. 죄송합니다. 민아 씨 어머니께도 죄송하다는 말 꼭 부탁드릴게요.”

 

 “아니에요. 바쁘시면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정말 바빠서 그런 거예요?”

 

 “네? 네.. 바빠서 그런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러시구나. 바쁘셨구나.”

 

 “네.. 아.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바쁜 건 이제 좀 끝나셨어요?”

 

 “아.. 네. 이제 바쁜 일은 거의 해결했네요.”

 

 “그러시군요. 그럼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

 

 “네?”

 

 “오늘 저녁 같이 먹자고요.”

 

 “갑자기요? 왜 저녁을..”

 

 “순신 씨가 저희 어머니 구해주시고, 새벽이가 일 때문에 못 온 거까지 커버해주셨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거 같아서요.”

 

 “아닙니다. 제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했을 일인 걸요. 그리고 저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렇게 마음 안 쓰셔도 됩니다.”

 

 “어떻게 하죠?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걸요. 그러니까 특별한 일 아니면 같이 저녁 먹어요.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어머니랑 함께 식사하세요. 제가 카페에서 맛있는 피칸 파이도 가..”

 

 “어후 진짜. 그냥 저녁 같이 먹자고 하면 같이 먹죠? 제가 순신 씨한테 빚진 거 같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저녁 같이 먹어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순신의 대답이 들렸다.

 

 “빚진 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편하신 거라면 그렇게 하죠.”

 

 “네. 제가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고 내일 저녁 어떠세요?”

 

 “네. 그렇게 하죠. 제가 민아 씨가 끝나는 시간 맞춰서 병원으로 갈게요.”

 

 “아니에요. 안 그러셔도 돼요.”

 

 민아는 순간 순신과 병원에서 함께 나가는 걸 희형이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순신은 그런 민아의 심리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차에서 안 내리고 그냥 있을 테니까요. 끝나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뵐게요.”

 

 민아는 전화를 끊고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순신에게서 받았다.

 

 민아는 순신을 여러 번 만나면서 이처럼 사무적이고 딱딱한 순신을 본 적이 없었다.

 

 민아는 혹시 자신의 행동이 순신을 그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토록 고민하던 순신과의 통화를 했지만 민아의 답답한 마음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민아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지 밖에는 기분 좋은 여름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속에는 여름보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러움이 될 때쯤, 성원은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성원은 어깨에 아직 새벽이 기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안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가볍고 작은 새벽이었지만 몇 시간째 성원의 어깨에 기대어 있자 성원은 어깨에서 통증들을 느꼈다.

 

 성원은 새벽이 아직 잠든 것을 확인하고 새벽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새벽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바치고 새벽이 편히 잘 수 있게 반대쪽 벽에 수건을 대고 기대어 주었다.

 

 새벽을 기대어주고 손으로 바닥을 짚은 성원은 바닥에 온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성원은 바닥에 온기가 느껴지자 밖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원은 온몸이 뭉쳐 있는 것을 느끼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성원이 밖으로 나가자 마당 옆쪽 구석에 한 남자가 모닥불을 피우고 주전자를 걸어 놓은 채,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느껴지는 향은 커피였다.

 

 성원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며 그 남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성원은 그 남자의 옆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성원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요.”

 

 남자는 성원의 말에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원은 다시 한번 남자를 향해 말했다.

 

 “혹시 이 집 주인 아니신가요?”

 

 성원의 질문에 그제서야 남자는 대답을 했다.

 

 남자는 조금은 걸걸하고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주인이 아니고 당신도 주인이 아니고, 이미 버려진 집에 주인이 어디 있겠소. 비를 피할 수 있었다면 그거면 된 거지 머.”

 

 성원은 남자의 말을 듣고 새벽과 자신이 그토록 찾던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성원은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마당에는 특별하게 바뀐 것이 없었지만, 자신들이 하룻밤을 보낸 집의 아궁이에서는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원은 남자가 불을 피워줬다고 생각하고 우선 감사 인사를 했다.

 

 “불까지 피워주시고 감사합니다. 여름이라는 게 믿기지 않게 어제 너무 춥더라고요.”

 

 남자는 이번에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흠. 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네. 그냥 내 약초들을 말리려고 불을 피운 거니까 오해하지 말게.”

 

 성원은 남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성원과 새벽의 젖어버린 등산화가 아궁이 옆에서 말라가고 있었고, 약초를 말리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열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성원은 남자의 곁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남자는 옆에 앉는 성원을 힐끔 보고는 가방에서 잔을 하나 꺼내 자신이 끓인 커피를 한 잔 부어서 건넸다.

 

 성원은 감사하다며 그 커피를 받았고, 한 모금을 들이켜자 뭉쳐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성원이 커피를 한두 번 더 마시고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이 커피는 분명 자신이 로스팅 한 커피의 맛이었던 것이다.

 

 대부분 카페에 있는 바리스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브랜딩 한 커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커피는 분명 ‘Café de Sua”에서 판매하는 그 커피였던 것이다.

 

 성원은 이 남자가 새벽과 자신이 찾아 헤맨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성원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남자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렵게 찾아왔습니다. 좀 아픈 친구가 있어서요.”

 

 남자는 성원의 말에 대답했다.

 

 “그 망할 놈에 커피쟁이가 말한 사람이 자네인가 보군. 내가 주소만 대충 적어줬는데 용케도 찾아왔어.”

 

 성원은 남자의 말을 듣고 속으로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투로 대답했다.

 

 “네. 정말 다행이죠. 아픈 사람은 제가 아니고 저 방에 있는 여자입니다. 새벽 씨인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후각을 잃었다고 했어요.”

 

 “후각을 잃어? 그게 무슨 소리지?”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갑자기 후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뭔지 병원에서는 아무런 원인도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후각을 잃었다.. 음.. 그런 경우는 처음인데..”

 

 남자가 고민을 하자 성원도 옆에서 가만히 생각해봤다.

 

 자신도 분명 새벽의 말을 들었을 때, 믿지 못했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기에 남자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성원이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바로 새벽이 자신에게서는 커피향과 비슷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성원에게 물었다.

 

 “안에 있는 여자는 애인인가?”

 

 “아닙니다. 그게.. 그냥 친구입니다”

 

 “친구? 그냥 친구인데 이 험한 곳을 업고 올라왔다고?”

 

 “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어? 그런데 제가 업고 올라온 건 어떻게 아셨어요?”

 

 성원은 약간 의심의 눈초리로 질문했다.

 

 어쩌면 이 괴짜 같은 남자가 어제부터 자신과 새벽을 훔쳐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성원의 그런 생각은 단순한 성원의 기우 일뿐이었다.

 

 남자는 아궁이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는 거지.”

 

 성원도 남자가 돌아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궁이 옆에는 성원과 새벽의 신발이 함께 놓여 있었다.

 

 별생각 없이 보던 성원도 남자가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신고 온 등산화는 온통 흑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고, 새벽의 운동화는 비교적 깨끗했기 때문이다.

 

 둘이 같은 길을 걸어왔다면 절대로 저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신발을 보고 있는 성원을 힐끔 보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원래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지. 그런 거야. 산다는 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새벽이 있던 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은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서서히 잠에서 깼다.

 

 새벽은 잠에서 깨고 옆에 성원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성원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새벽은 성원을 찾으려고 일어나다가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살짝 주저앉았다가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새벽은 조심스럽게 쩔뚝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방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는 성원이 새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원의 옆에는 개량한복 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새벽은 성원에게 누구냐고 입모양으로 물어봤고 성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은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는 뜻이란 걸 알고 자기도 모르게 급하게 그 사람을 향해 가려 했다.

 

 하지만 발목이 다쳐 넘어질 뻔하며 폐가의 마루 기둥을 잡았다.

 

 성원은 거의 튀어나가듯이 일어나 새벽을 부축해서 천천히 그 남자에게로 데리고 왔다.

 

 새벽은 남자를 보자마자 소리치듯이 말했다.

 

 “저 좀 고쳐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남자는 성원이 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새벽은 그런 남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말했다.

 

 “제가 냄새를 못 맡아요.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조향사거든요? 향수 만드는 그런 사람인데 향을 못 맡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저 좀 고쳐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는 성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방에서 컵을 꺼내 커피를 한잔 따라 새벽에게 권했다.

 

 커피를 받아 든 새벽은 커피를 마실 생각도 못 한 채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뇨도 고치고 암도 고치셨다면서요. 그런 엄청나게 무서운 병도 고쳤는데 냄새 못 맡는 거 정도는 금방 고치실 수 있는 거잖아요. 하라는 데로 전부 다 할 테니까 제발 저 좀 고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남자는 고개를 들어 새벽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새벽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새벽에게서 눈을 돌려 성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오게.”

 

 남자는 성원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천천히 일어서 가방을 메고 폐가의 뒤쪽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원도 새벽을 부축하고 남자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남자의 거처는 폐가 바로 뒤 산길로 조금 올라가니 보였다.

 

 폐가와 거의 다른 점이 없을 정도로 낡은 집이었지만 확실히 사람이 거처로 삼고 있어서였는지 폐가의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마당에 던져 놓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과 성원도 그 남자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내부에는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 몇 가지만 있는 아주 단출한 방이었다.

 

 남자는 방에 들어와 바닥에 사람이 누워있을 수 있게 간이침대를 폈다.

 

 그리고 그 뒤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누워 보게나.”

 

 새벽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부축하는 성원을 살짝 바라봤고, 성원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이고는 새벽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혔다.

 

 남자는 새벽에게 누우라고 말했고 새벽은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웠다.

 

 남자는 새벽에게 진맥부터 시작했다.

 

 한참을 진맥한 남자는 침과 뜸을 가지고 왔다.

 

 새벽은 남자가 자신에게 침을 놓으려고 하자 살짝 겁을 먹었지만 자신의 후각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는 듯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성원은 새벽이 주먹을 꼭 쥐는 것을 보고 새벽이 겁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원은 그런 새벽의 손을 잡아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자는 새벽의 얼굴과 목 부분에 침을 하나하나 꼽기 시작했다.

 

 그리고 뜸을 손으로 만들어 불을 붙이기도 했다.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지 남자는 새벽의 다리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새벽의 다친 다리를 살짝 만져보고는 침과 뜸을 떴다.

 

 “시간이 좀 걸릴 거니까 눈 좀 붙이고 있게나.”

 

 남자는 새벽에게 그렇게 말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새벽은 자신의 옆에서 걱정하는 성원을 보며 살짝 웃어 보이고 눈을 감았다.

 

 성원은 새벽이 눈을 감고 쉬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탕약을 달이고 있었다.

 

 달달한 한약 냄새가 온 사방에 퍼지고 있었다.

 

 남자와 성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타오르는 장작을 보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탕약이 완성되고 남자는 보자기에 꼭 짠 탕약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탕약을 새벽에게 건네 주었다.

 

 새벽은 탕약에 입을 가져다 댔지만 그렇게 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새벽은 그 탕약을 다 마시고 나서 자신의 상태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이 뭔가 남자에게 말하려고 하자 남자는 새벽에게 먼저 말을 했다.

 

 “세상에 그런 병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나는 그런 병을 고칠 재주도 없소. 그래도 내가 오늘 한 치료가 조금은 도움이 될 테니까 이만들 내려가들 보소. 금방 또 어두워지는 게 산속 날씨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새벽에게 놓았던 침들을 정리했다.

 

 새벽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옆으로 돌아앉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뭔가 모르게 더 이상 질문을 못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새벽은 짧게 인사를 하고 그 방에서 천천히 나갔다.

 

 새벽은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어렵게 찾은 만큼, 이 사람만 찾으면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상황이 한 번에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에게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새벽이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고, 붙잡고 있던 끈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성원도 그런 새벽이 걱정됐는지 함께 일어나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남자가 성원의 앞으로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던졌다.

 

 “냄새를 못 맡는데 쓰는 약은 아니고 최대한 몸을 안정시키는 약이오. 서울도 어디 가든 약탕 집은 있을 테니 거기 가서 내려다가 먹이는 게 좋을 것이오.”

 

 성원은 그 보자기를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저 여자는 지금 몸이 아픈 게 아니고 마음이 아픈 거요. 그래서 약이 없는 거지. 그러니 괜한 약을 찾아다니지 말고 편히 지내라고 전해주시오.”

 

 성원은 남자의 말을 뒤로하고 방문을 나섰다.

 

 성원은 먼저 걸어가고 있는 새벽을 쫓아가 새벽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함께 걸어내려갔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남자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결국 약은 사람이야. 사람.”

 

 성원과 새벽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람 인 (人)’모양을 하고 천천히 산길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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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약속의 향기 - #30. 추억을 써 내려가는 방법 2019 / 11 / 4 328 0 7331   
30 약속의 향기 - #29. 넘을 수 없는 산 2019 / 11 / 2 335 0 8787   
29 약속의 향기 - #28.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2019 / 11 / 1 338 0 6269   
28 약속의 향기 - #27. 은인이지만 인연은 아닌. 2019 / 10 / 30 335 0 7612   
27 약속의 향기 - #26. 사람이 작아지는 순간들. 2019 / 10 / 29 329 0 7511   
26 약속의 향기 - #25. 봄의 끝자락, 그녀의 결혼… 2019 / 10 / 28 336 0 8861   
25 약속의 향기 - #24. 쉬운 오해, 어려운 진심 2019 / 10 / 26 368 0 9117   
24 약속의 향기 - #23. 사람이 변한다는 건. 2019 / 10 / 25 362 0 7003   
23 약속의 향기 - #22.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2019 / 10 / 24 356 0 5812   
22 약속의 향기 - #21. 진심이 오해받는 순간들 2019 / 10 / 23 353 0 7461   
21 약속의 향기 - #20. 진실을 외면하는 방법. 2019 / 10 / 22 352 0 7799   
20 약속의 향기 - #19. 벚꽃 엔딩 (3) 2019 / 10 / 21 383 0 6491   
19 약속의 향기 - #18. 벚꽃 엔딩 (2) 2019 / 10 / 20 387 0 6999   
18 약속의 향기 - #17. 벚꽃 엔딩 (1) 2019 / 10 / 19 392 0 5934   
17 약속의 향기 - #16. 뜻밖에 여정, 그리고 (2) 2019 / 10 / 18 385 0 7336   
16 약속의 향기 - #15. 뜻밖에 여정, 그리고 (1) 2019 / 10 / 17 368 0 6039   
15 약속의 향기 - #14. 사과를 하는 가장 좋은 방… 2019 / 10 / 16 395 0 6318   
14 약속의 향기 - #13. 저마다의 사정은 존재한다. 2019 / 10 / 15 381 0 5156   
13 약속의 향기 - #12. 우리는 결국 이기적이다. 2019 / 10 / 14 388 0 7336   
12 약속의 향기 - #11. 혀는 때때로 칼보다 날카롭… 2019 / 10 / 13 407 0 6587   
11 약속의 향기 - #10. 사람마다 고민의 무게는 다… 2019 / 10 / 12 386 0 5918   
10 약속의 향기 - #9. 걸어가는 두 사람, 하나의 … 2019 / 10 / 11 386 0 7775   
9 약속의 향기 - #8. 사랑을 다시 믿어보게 만드… 2019 / 10 / 10 383 0 7360   
8 약속의 향기 - #7. 우린 때때로 너무 많은 오해… 2019 / 10 / 9 393 0 6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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