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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왜 열심히 해요?
작성일 : 19-11-07 09:39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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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누가 탁자를 탁 쳤다.

 옆자리의 한 기자가 누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영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 기자는 인도네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할머니 진짜 걸작이지. 내가 인정하는 걸작. 남편이 명문가 집안 장남이야. 와히드 정권 때 산업부 장관 지냈고 한동안 뜸했는데 요즘 민주투쟁당에서 활동한다더군. 아마 조코위가 대통령이 되면 입각할 거야.”

 “남편이름이 뭔데?”

 “자네도 몇 번 들어봤을 거야. 아르파디라고. 원래 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집안 출신인데 와히드 정권 이후 정계에도 많이 나와.”

 “근데 부인이 술집을 한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우리가 가면 문전박대해서 못 들어가지만. 그 할머니가 결혼할 때 아르파디네 집안 반대가 심했어. 아마 친구들만 모아 놓고 몰래 결혼식을 치렀을 거야. 한동안 홍콩에 있다가 인도네시아에 완전히 살러 와서 고생이 심했을 거야. 집에도 못 들이게 했으니까. 명문가가 화교 며느리를 받는 게 쉽진 않았겠지.”

 

 나는 주린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할머니는 남편과 관련된 일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고, 나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말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 할머니가 어찌나 고집이 센지 남편이 그렇게 반대해도 술집을 하더라고. 심지어 남편이 장관할 때도 그냥 했으니까.”

 “재미있는 할머니군.”

 

 기자들은 이제 나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민주화투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98년 반독재 시위 현장에서 만난 것 같았다.

 그때 얘기가 나오자 한 기자의 말이 조금 많아졌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1층 커피숍이 기자들 아지트였지.”

 “그래. 경찰들이 몰려와서 기자들이고 뭐가 다 두드려 패는데 자네 혼자 사진을 찍고 있었어. 대로에 혼자 서서 말이야. 난 그때 한국인을 다시 봤어.”

 “한국 생각이 났으니까. 도저히 도망갈 수가 없더군.”

 

 나는 그들의 무용담에 관심 없었다.

 다만 한 기자가 내뱉은 한 단어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얼굴.

 나는 기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 말든 계속 그랜드 인도네시아, 그랜드 인도네시아, 하고 되뇌었다.

 한 기자가 내게 물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에 관심 있으신가요?”

 “돌담이 거기 들어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지하에 큰 푸드코트가 있어요. 거기 ‘서울 스트릿’이라는 한식집이 있는데 맛이 괜찮아서 자카르타에 올 때마다 갔습니다. 한 달 쯤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그만 둔다고 하더군요.”

 “왜 그만 둔답니까? 그렇게 좋은 데를.”

 “서울 가서 큰 수술을 받아야 한데요. 아예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랜드 인도네시아.

 기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나는 꿈에 젖어 있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와 플라자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의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 쇼핑몰이다.

 자카르타 중앙도로인 탐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가 전통을 자랑한다면 플라자 인도네시아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나는 그랜드 인도네시아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기품을 더 좋아했다.

 

 그랜드 인도네시아.

 돌담이 그곳에 입주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수많은 외국인들이 돌아다니는 로비에, 국가적 행사들이 벌어지는 탐린 광장에, 중앙 자카르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쇼핑기지에 돌담이라는 이름이 퍼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캐서린은 규제만 많고 실속은 없는 곳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나는 그랜드 인도네시아라는 달콤한 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

 벌써 네 시간째다.

 나는 아이스티 한 잔을 시켜놓고 그 긴 시간 동안 수첩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서빙 직원들이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며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방금 들어온 손님인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딴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남자카르타 간다리아 쇼핑몰 2층의 작은 한식당이다.

 한국인이 아니라 화교가 소유한 식당 체인인데, 오픈한지 반년도 채 안 돼 자카르타 전역으로 지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식당 이름은 ‘무수리’다.

 웃기는 이름만큼이나 인테리어가 어설펐다.

 식당 전면에 종로 2가의 흑백 사진이 붙어 있는데, 관광객이 아무렇게나 찍은 스냅 사진을 무리하게 확대한 것 같았다.

 양옆 벽에는 경복궁 사진이 역시나 픽셀이 깨진 채 붙어 있었다.

 유럽 도시의 사진을 지저분하게 붙여 놓은 서울의 허름한 호프집을 연상시켰다.

 

 뭐니뭐니 해도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직원들이 입은 색동저고리였다.

 어디서 그런 촌스러운 것을 골랐는지 유치원 아이들이 학예회 때 입은 저고리만도 못해 보였다.

 

 그런데 잘 된다.

 자카르타의 저가 한식당들 중 가장 잘 된다.

 

 나는 11시부터 손님수를 수첩에 기록했다.

 이곳의 테이블 수는 20개 정도로 돌담과 비슷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첫 손님 수는 돌담과 비슷했지만, 이후 들어오는 손님 수는 돌담의 거의 2배였다.

 나는 회전율이 높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무수리’는 주문이 빠르고, 조리가 빠르고, 손님도 빨리 빠져 나갔다.

 

 3월 초 나는 한식 브랜드가 있는 푸드코트를 모조리 훑고 다녔다.

 서자카르타 까뿍부터 북자카르타 망가두아까지, 남자카르타 꾸닝안부터 동자카르타 브까시까지, 교통체증을 뚫고 노빨의 불평을 견뎌가며 돌아다녔다.

 그 어떤 한식 푸드코트도 ‘무수리’만큼 잘 되진 않았다.

 무수리는 푸드코트는 아니지만 푸드코트와 비슷한 형태의 음식, 가격, 운영방식을 채택했다.

 

 오후 3시, 인드라가 도착했다.

 점심장사를 방금 마치고 온 인드라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미스뜨르.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요.”

 “응. 놀러 다니고 있어. 빨랑 앉아.”

 

 인드라가 자리에 앉아 식당을 둘러보았다.

 

 “인드라, 어때?”

 “멋진데요.”

 “전혀 멋지지 않아.”

 “돌담엔 나무만 붙어 있는데 여긴 사진도 있잖아요.”

 

 인드라의 시선이 식당 전면에 붙은 종로 2가 사진에 꽂혔다.

 오후의 기울어진 햇살이 통유리를 뚫고 들어와 탑골공원을 강타했다.

 탑골공원 정문이 자체 발화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서울이 저렇게 생겼어요?”

 “아니. 저건 20년 전쯤 찍은 사진일거야.”

 

 인드라가 식당 이름을 되뇌었다.

 무수리, 무수리...

 입을 비죽 내밀고 자신이 생각한 한국어 발음에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인드라는 이런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식당 이름 그만 불러. 촌스러워서 내가 얼굴을 못 들겠어.”

 “무수리가 무슨 뜻이에요?”

 “옛날에 궁에서 음식 만들던 사람들이야.”

 “뜻도 좋은데요, 뭘.”

 “몰라. 어쨌든 촌스러워.”

 

 테이블마다 태블릿PC 형태의 소형 키오스크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평가해줄 만한 인테리어였다.

 나는 스크린을 넘기며 주문을 입력했다.

 비빔밥 하나, 불고기 하나, 잡채 하나를 시켰는데, 손가락을 잘못 놀려 잡채가 3개 찍히고 말았다.

 주문을 취소하려 했으나 아무리 뒤져봐도 취소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색동저고리가 다가와 주문을 재입력했다.

 그녀의 겨드랑이 부분 솔기가 뜯어져 있는 걸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국인 체면이 말이 아니군.”

 “한국 사람이라고 다 잘하나요.”

 

 음식이 나왔다.

 불고기를 담은 프라이팬 형태의 핫플레이트는 돌담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두껍고 고급스러워보였다.

 내가 돌아다닌 어떤 푸드코트에서도 이런 핫플레이트는 쓰지 않았다.

 

 “미스뜨르, 핫플레이트가 정말 좋은데요.”

 “당장 글로독 식기가게들을 뒤져봐야겠어.”

 

 우리는 음식을 맛보았다.

 돌담보다 맛이 훨씬 떨어졌다.

 아니, 아예 종류가 다른 맛이었다.

 돌담이 자연의 맛이라면, 무수리는 일본산 조미료로 감칠맛을 내고 설탕과 소금으로 혀를 찌르는 전투적인 맛이었다.

 네놈의 혀를 반드시 굴복시키겠어, 하는 맛.

 

 “인드라, 어때?”

 “음...”

 

 인드라가 포크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더는 못 먹겠다는 듯 냅킨으로 입가를 훔쳤다.

 

 “미스뜨르, 이건 요리가 아니에요.”

 “그럼 뭐야?”

 “제품이에요.”

 

 나는 가격을 다시 확인했다.

 돌담보다 약간 싼 정도였다.

 노력만 하면 이 정도 가격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일부터 한국 고추장과 간장을 수입하는 유통회사를 뒤져보기로 했다.

 지금 거래하는 회사보다 더 싸게 수입해오는 대형 유통회사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반드시 찾아야 했다.

 

 “인드라, 이 맛을 따라하고 싶어?”

 “아니요. 미스뜨르가 따라하라고 시켜도 못할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킬 일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한국 교민이라면 이런 데는 절대 오지 않을 거야.”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무슨 뜻이야?”

 “저길 보세요.”

 

 인드라가 엄지로 현관문 쪽을 가리켰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검지가 아니라 엄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느새 주먹을 쥔 채 엄지로 모든 사람과 사물을 가리키는 습관이 들었다.

 

 나는 현관문을 돌아보았다.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떠들며 들어오고 있었다.

 관광객은 아닌 것 같았다.

 영업사원쯤 되는 듯 양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한식과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조미료 맛을 보러 온단 말인가.

 그것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여러 번 와본 듯 자연스럽게 둘러 앉아 떡볶이와 비빔밥을 시켰다.

 

 나는 그 한국인들에게 다가갔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일도 이제는 자연스럽다.

 

 “실례합니다. 한국인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한국 사람만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나는 제법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넉살까지 떨어보았다.

 

 “그런데 여기 자주 오시나요?”

 “가끔 옵니다.”

 

 붉은 넥타이를 맨 남자가 날 뚱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는 공손하게 손을 맞잡고 다시 물었다.

 

 “여긴 왜 오시나요? 음식이 그리 맛있는 것 같진 않은데요. 아, 저는 식당 하는 사람이라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냥 편해서요. 편하게 먹고 가기 좋아요.”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드라에게 돌아왔다.

 

 “인드라, 시스템이야.”

 “그게 뭐에요?”

 “시스템 때문에 팔리는 거야. 여기 맛을 배울 필요는 없어. 하지만 여기 시스템은 배워야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모르겠어요.”

 “우린 푸드코트로 들어갈 거야!”

 

 나는 인드라에게 선언하듯 소리쳤다.

 인드라가 말없이 나를 보았다.

 인드라의 눈을 볼 때마다 소의 눈망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검고, 깊은 눈.

 인드라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미스뜨르...”

 “왜?”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나도 몰랐다.

 

 “나는 내가 부족한 걸 알아. 난 사업가랑 안 맞아. 그래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

 

 이게 맞는 답인 것 같았다.

 인드라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양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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