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서경이 아기 포대기 속에 손을 넣고는 아기의 엉덩이를 꼬집는다.
‘앙!’
아기가 요란하게 운다. 그러자 경찰이 통행증을 보다 말고 신경이 쓰이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서경을 본다. 서경이 다시 밑에 놓인 기저귀 가방을 발로 찬다.
그러자 가방이 넘어지며 기저귀가 바닥에 흩어져 정신없는 풍경이 된다.
“이런! 여보 조심해야지!”
기훈이 요란스럽게 일어서더니 바닥에 앉아 사방에 흩어진 기저귀를 과장된 몸짓으로 줍는다. 그 사이에도 아기는 으앙거리면 요란하게 울어대자 경찰은 완연하게 짜증을 낸다.
“거 애 좀 조용히 시키세요.”
옆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웅성웅성하더니 서경에게 소리친다.
“네. 죄송합니다.”
서경이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자 다른 승객이 경찰에게 소리친다.
“시끄러워 죽겠네. 나부터 통행증 검사합시다!”
다른 승객이 얼굴을 찌푸리며 경찰에게 자신의 통행증을 흔들어댄다. 경찰이 짜증스런 얼굴로 손에 들었던 서경의 통행증을 기훈에게 돌려주더니 몸을 돌려 다른 승객에게 간다.
통행증을 받은 기훈이 얼른 자리에 앉고 옆에 있던 서경도 우는 아기를 달래며 숨을 가라앉힌다.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경찰이 객실을 나가자 서경과 기훈이 마주 보며 살짝 웃는다. 발 아래 놓인 기저귀 가방에서 권총 삐져나온 것이 살짝 보인다.
신의주에서 무사히 검문을 피해 서경과 기훈은 개성에 도착한다. 개성역에서 인력거를 잡아 타고 친정인 봉성여관에 도착한 서경은 2 여년만에 보는 여관 간판에 감격이 무량해진다.
기훈에게 아기를 맡기고 얼른 문을 열고 어머니,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어머니!”
부르자마자 안쪽 살림집 문이 열리고 60대의 아버지가 보인다. 그새 흰머리도 많아지고 주름도 많아졌다. 아버지가 허둥지둥 달려 나온다.
“서경아!”
그 소리에 부엌 쪽에서 50대의 어머니가 뛰쳐나온다.
“뭐라구요? 서경이라구요?”
어머니도 흰머리가 많아졌다. 서경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달려가 셋이 얼싸안는다. 얼마만에 보는 얼굴인가?
서경은 눈물이 빰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동안 어머니 아버지 걱정을 너무 시켰다. 회한이 가슴을 친다.
어머니, 아버지의 눈도 붉어져 있다. 한동안 반가움에 울던 어머니는 몸을 떼 서경의 얼굴을 보며 어루만지더니 울면서도 웃으신다. 아버지도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신다.
서경은 안쪽 살림집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절을 올린다. 어머니는 벌써 아기를 받아 안고 만면에 웃음을 숨기지 못한다. 아버지도 아기를 보며 싱글 벙글이시다.
서경이 큰절을 하자 기훈도 옆에 그냥 서 있기가 뭣한지 함께 큰 절을 올린다.
“됐네. 됐어. 이젠 앉아라.”
아버지는 그저 둘을 보며 그저 흐믓한 표정이다.
“그럼 둘이 결혼한 거냐?”
서경과 기훈이 방바닥에 앉자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묻는다. 순간 서경과 기훈은 당황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그림이다.
“아, 그건 아니구요.”
서경이 말을 더듬는다.
“그게 아니면... 뭔 말이냐?”
이번엔 아버지가 묻는다. 기훈을 가리키며 되묻는다.
“그럼 이 분은 아기 아버지 아니니?”
기훈이 갑자기 얼어서 헛기침을 하며 어색해한다.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서경과 이한의 결혼은 의열단의 비밀 사항이다. 코민테른에서 결혼은 했지만 독립 운동가들은 이한의 수배 때문에 비밀을 지켜주고 있다.
만주의 안동현에서도 둘은 의열단 아지트에서 다른 의열단원들과 생활했기 때문에 결혼 사실을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었다. 서경과 기훈 모두 이한과의 결혼을 비밀로 해야 한다.
“저, 그게 아니라...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서경이 말을 더듬는다. 기훈을 보며 미안해한다. 그 표정을 보며 아버지는 눈치를 챈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구나.
“됐다. 그럼 얘기는 천천히 해라. 난 너가 이렇게 건강하고 또 아기도 데리고 오고. 그거면 충분하다.”
아버지가 선뜻 말한다. 어머니도 의아해하며 아버지를 살피다 품 안에서 옴지락거리는 아기를 보더니 ‘까꿍’ 웃어주며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서경은 부모님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무릎 걸음으로 아버지에게 가 품에 파고든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서경이 오랜만에 애교를 부린다.
“허허. 이거 보니 우리 딸 맞구나!”
아버지가 서경을 품에 안으며 웃는다.
“애까지 낳은 애다!”
옆에서 보던 어머니가 눈을 흘기며 웃자 서경이 어머니에게도 눈을 찡긋한다.
“그렇죠.”
하지만 앞에 있는 기훈은 어색해서 안절부절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는 그럼 가봐야겠습니다.”
“어딜?”
아버지가 일어서며 묻는다. 서경도 황급히 일어나며 말한다.
“하룻밤 자고 가세요.”
“아닙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저는...”
기훈이 일어서서는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방을 나선다. 서경도 미안한 표정으로 급히 기훈을 쫓아 나간다.
여관 문 앞에서 서경이 기훈을 잡는다.
“이렇게 그냥 가셔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무사히 서경씨를 친정집으로 데리고 왔으니 제 임무는 다 한 셈이지요.”
서경의 눈이 뭉글해지더니 허리 굽혀 기훈에게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그럼 고향인 안동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당분간은 고향집에서 지내려구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뵈어요.”
그 말에 기훈이 서경을 아련하게 보더니 입을 연다.
“꼭 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기훈도 서경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가방을 들고 걸어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 서경은 고마운 얼굴이다.
***
세미가 권총을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표적을 바라보다 총을 쏜다. 피웅. 하지만 총알은 앞에 있는 표적을 빗나간다.
“또 빗나갔네요.”
세미 옆에 서 있던 20대 청년이 중국어로 말한다. 주재소 폭파 공격때 세미를 지켜줬던 남자 칭센이다.
세미는 권총을 내리며 우물쭈물 할 말이 없다. 꽤 오랫동안 연습을 했는데도 사격술이 잘 늘지 않는다.
“그러게요.”
세미도 힘없이 중국어로 대답한다.
“세미 동지는 폭탄 잘 던져서 사격 좀 못해도 괜찮아요.”
칭센이 아랑곳없다는 듯 쾌활하게 위로한다.
“그렇지 않아요. 총도 잘 쏴야 하는데.”
세미가 힘없이 내뱉는다.
“한번 더 해 봐요!”
칭센이 말하자 세미는 다시 권총을 들고 표적을 향해 눈을 맞춘다. 칭센이 세미에게 다가오더니 세미의 어깨와 팔과 허리를 잡아준다.
“어깨를 똑바로 펴시고 팔을 쭉 뻗어 힘을 주고 표적물을 똑바로 쳐다보세요. 허리도 쭉 펴고.”
칭센이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손이 세미의 어깨를, 팔을 그리고 허리에 와 닿는다. 세미는 그의 향기가 싱그럽다고 느끼고 잠시 아찔해진다.
칭센이 손을 떼며 세미의 얼굴을 살피자 둘은 눈이 마주친다. 칭센이 살짝 웃어준다. 하지만 세미는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냉랭한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세미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총부리에서 손가락을 당긴다. 총알이 날아간다. 피웅.
하지만 이번에도 또 표적을 빗나간다. 세미는 속상해지고 칭센은 안타깝게 본다.
세미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모닥불 앞에서 밥그릇에 차를 마신다. 하늘에는 별이 포도송이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비교적 늦은 밤이라 모닥불 앞에는 드문드문 군인들이 앉아 있다. 세미는 밥그릇에서 피어오르는 차 냄새를 맡으며 지난번 이한이 서경과 함께 찾아 왔을 때 했던 얘기를 생각해 본다.
내년에 의열단의 국내 진입 작전을 도와 달라는 말, 세미는 통의군 군인 일보다 잘하는 일이 있다는 그 말, 그 말에 기분이 나빠졌던 게 세미 머릿속에 떠오른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어눌한 조선어이다. 세미가 돌아보니 칭센이 옆에 와 앉아 있다.
“... 중국인이 왜 조선 통의대에 들어 왔어요?”
세미가 자기 생각을 벗어나려고 다른 말을 꺼낸다. 칭센의 얼굴이 환해진다. 세미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서 고맙다. 눈이 밝아지며 흐믓한 표정이 된다.
“일본 놈들 나쁘다. 우리 집이 장춘동인데 일본 헌병들 와서 중국 사람 죽였다. 나도 총 들고 일본놈이랑 싸우고 싶다. 근데 이 근처 중국 군대는 일본놈이랑 싸우지 않는다. 마적대다.”
칭센이 어색한 조선어로 줄줄 읊자 세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그럼 조선인들 이해하겠네요.”
“많이 이해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사랑요? 하하. 뭐 사랑까지야.”
“사랑한다. 여자 포함해서.”
말하는 칭센의 얼굴은 정색해 있고 말투는 단호하다. 세미는 얼핏 웃다가 칭센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굳어진다.
칭센이 세미의 굳어가는 얼굴을 본다.
“그래. 너 같은 여자 사랑한다.”
세미가 완전히 굳어서 입을 열지 않고 칭센을 외면한다.
“세미! 내 마음을 알아줘. 넌 강물처럼 내게 쏟아져 들어온다. 저 하늘의 별처럼 내 마음에 빛이 된다.”
칭센이 어눌하지만 줄줄 조선어로 쏟아내자 세미가 피식 웃는다. 어느 시에서 외워 읊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 말아요.”
하지만 칭센은 심각한 얼굴을 지우지 않는다. 세미를 똑바로 쳐다보는데 눈에서 불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러다 다쳐요. 난 당신 사랑 안하니까.”
세미의 말투가 냉랭하다.
“왜?”
“전에도 그런 남자 있었어. 나를 너무 사랑하는 남자. 하지만 내가 사랑 안 해서 떠나 버렸어.”
세미는 반말로 바꾼다. 정을 떼어 내어야 한다. 하지만 칭센의 입술이 떨린다.
“알겠어요? 칭센?”
세미가 다짐하듯 똑바로 보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당신 떠나는 거 싫으니까.”
얼음이 갈라지는 냉랭한 말이다. 세미가 돌아선다. 하지만 칭센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체 올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뗀다.
“난 끝까지 떠나지 않아.”
칭센의 말도 단단하다. 세미가 돌아서 떠나려다 갑자기 다시 칭센을 돌아본다.
“나 정말 그렇게 총 못 쏘는 것 같아요? 오늘도 10발 쐈는데 하나도 못 맞췄어.”
칭센이 어리둥절해진다.
***
개성집에 짐을 풀고 신변을 좀 정리하자 서경은 제일 먼저 종희 언니 생각이 난다. 서경은 종희를 보기 위해 경성으로 향한다. 다행히 어머니가 손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셔서 마음 놓고 아기를 맡긴다.
“언니!”
“서경아!”
종희 집에서 만나 둘은 서로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다. 황포항 3단 공격 후 처음이다.
한참 안고 두드리고 때리고 좋아하다가 좀 정신을 차렸을 때 서경은 종희의 얼굴이 안 좋을 걸 발견한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종희의 얼굴은 대번에 흐려진다.
“상연씨를 찾을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둘이 지금 한참 연애하는 거 아니였어?”
서경이 묻자 종희는 거의 울 듯한 얼굴이 된다. 얼른 자기 방 문을 열고 바깥을 확인하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춘다.
“상연씨 한달 전에 동척에 폭탄 던졌어.”
“뭐야? 그게 상연씨가 한 일이야?”
서경이 눈이 커지며 저절로 목소리가 올라간다. 종희가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손짓을 한다.
“넌 남편이 의열단원이면서 그걸 몰랐니?”
“서로 다 알려 주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아. 안전상.”
서경이 말하자 복잡한 표정으로 서경을 보던 종희가 갑자기 흑 운다.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상연씨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흑흑. 한달이 넘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렇구나.”
서경이 종희의 어깨를 안아주며 토닥토닥거린다.
“너무 걱정 마.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잡히지 않은 모양이지.”
“그렇지? 그런 거지? 좀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거지?”
그 말에 종희가 서경에게서 몸을 떼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응. 그래.”
서경이 살짝 웃으며 대답하자 종희는 좀 안심한다.
“그래 어디 있는지 좀 알았으면... 소식도 없고...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종희는 걱정으로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
한달이 넘게 동척 폭탄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해 하시모토는 국장에게 심하게 문책을 당한다.
“헌병을 1천명이나 지원해 줬으면 성과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결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경무 국장이 질책하는데 하시모토는 할 말이 없다. 눈을 내리깔고 바닥만 바라본다.
“시간은 충분히 줬네. 지난번 이한 탈출 사건은 한번 용서해 줬지만 이번 건은 안돼. 사장이 죽었다고 얼마나 조선 언론에서 난리를 쳐대는지. 민심이 출렁거리는 책임을 내가 질 수는 없지. 자네는 개성으로 가라구.”
“네? 개성요? 지방에요?”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개성으로 가겠습니다.”
하시모토가 얼어서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