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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20 - 공성전 (1)
작성일 : 19-11-06 22:28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1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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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두운 밤. 달이 구름에 걸터앉은 채 땅을 향해 빛을 내뿜지만 어둠은 그런 달조차도 무시하며 도시를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소리와 시간마저도 잡아먹은 듯 도시는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에서 멈춰 있다. 가끔씩 길고양이나 들개가 어둠 속을 헤매는 것만 빼면.

 

  그런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 보였다. 어둠을 가르며 빛 하나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빛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꽤 큰 승합차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빛은 승합차의 전조등에서 나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 안에서도 전등으로 거리 곳곳을 이곳저곳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전등 빛 하나가 어떤 승합차를 찾아내자 빛을 뿜던 승합차는 재빨리 그 자리에 멈췄다. 차에서 조심스레 몇 명의 인원이 하차하여 주변을 살핀다. 그들이 찾아낸 승합차는 어떤 식당 앞에 세워져 있었으며 안에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사람들 몇몇이 코를 막으며 악취에 견뎌보려 애를 쓰지만 소용이 없다. 왜 이런 악취가 나는지 그 원인을 찾아 전등을 비추자 그 곳에는 뜯겨져 나간 살점과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작고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는다. 그들은 다 썩어가는 시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악취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상반신이 뜯겨진 시체와 머리가 없어진 시체가 썩어가며 뼈를 내보이는 모습은 그리 가까이 하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모두들 우물쭈물하는 와중에 차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거침없이 반 토막이 난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시체를 만져보더니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그는 쓴 입맛을 다셨다. 쓰고 있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어 고쳐메자 남자하다가 그에게 묻는다.

 

  “경묵님.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여기서 당한 모양이군. 여기 입고 있는 바지는 내가 상호한테 빌려줬던 거야. 피며 시체며 괴물한테 당한 것 같군.”

 

  “그렇습니까...?”

 

  “다만 당황스러운 것은... 여자들 시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경묵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등을 이리저리 조심스레 비추지만 역시 이것 외에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총들은 전부 그들이 찾는 인원수에 맞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괴물이 되어 버린 것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여자들만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게 좀 걸리는군. 거기다가 차안에 있어야 할 도시락의 시체도 없어. 그럼 여자들만 모두 괴물이 되었다는 말인데 왠지 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경묵이 시체를 몇 번 툭툭 건들인 다음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는 승합차를 지나 고기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쉰내 나는 채소들이 잔뜩 물러져 썩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각종 고기 양념 병들이 깨진 채로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그는 무너진 고기집 천장과 벽에 난 흔적들을 살펴본다. 평범한 흔적이 아니다. 무언가 터지면서 이곳 전체를 날려버린 것 같은 흔적. 수류탄이라도 터트린 게 아닐까하는 묘한 흔적들이 경묵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 근처에서 일단 잠을 청한다. 단서를 발견했지만 여자들 시체가 없는 게 수상하다. 괴물에게 당한건지 도망친 건지 확인하고 돌아간다.”

 

  경묵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고기집 안으로 들어간다. 늦은 밤, 승합차의 불이 꺼지면서 다시 새로운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여름이 찬 공기를 머금고 아침을 열고 있다. 새들이 평화롭게 전신주에 앉은 채 지저귀고 이슬들은 찌그러진 자동차 표면에 송글송글 맺혀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의 평화로운 단면은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 조차 가볍게 잊게 만들 정도로 눈부셨다.

 

  “번호.”

 

  “하나!”

 

  “둘!”

 

  “왜 이런 걸 해요. 척 봐도 세며...”

 

  “인원이 늘었으니 당연히 인원점검은 이제 필수 아니냐! 이놈의 새끼야!”

 

  아침 댓바람부터 대범의 발길질이 설전의 정강이뼈에 적중했다. 설전이 신경질을 내며 화를 냈지만 차마 아버지라 욕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제일 먼저 번호를 외친 영혜가 그러니까 왜 반항하느냐며 설전의 편을 들지 않고 대범의 편을 들었다.

 

  두호는 꼴좋다며 영혜의 핀잔에 동의했다. 두호와 영혜를 번갈아 쳐다보던 설전이 왜 하필 영혜냐면서 대범을 향해 투덜거렸다. 그는 다른 남자 놈들도 많은데 왜 하필 여자인 영혜냐는 것이었다. 설전의 말에 대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정제는 자기 아내 돌보느라 바쁘잖아. 지금 정제가 자기 애랑 애 엄마랑 떨어져 지낼 시기냐. 글구 요번에 데려온 애들 중에 총질 해 본 놈이 있겠냐? 죄다 고딩놈들인데다 그나마 어른인 사람은 병역 면제로 총 한번 쏘지도 않았다는데.”

 

  “아... 병역 면제시랍니까? 정말 신의 아들이시네. 아들치고는 늙었지만.”

 

  “그렇게 비비 꼬지 마. 일단 우리랑 같이 살게 된 식구잖아. 말도 가려가면서 해 이젠.”

 

  “하아.. 네 알긋슴느드.”

 

  설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입에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범은 그러려니 하며 설전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의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결국 우리들 중에서 제일 총도 잘 쏘는 애들 3명을 추렸다. 게다가 전투 경험도 풍부한 애들로 말이지.”

 

  “그냥 아버지가 저희랑 같이 가면 되잖아요.”

 

  “임마 대장은 지휘통제실에서 이런 저런 명령만 내리면 되는 거야.”

 

  “행동하지 않는 리더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그냥 노땅일 뿌...”

 

  다시 대범의 발길질이 설전의 정강이뼈에 명중했다.

 

  “으아.. 진짜! 왜 이렇게 폭력을 써요! 그냥 말로 하세요, 말로!”

 

  “네가 말로 한다고 알아먹을 놈이냐. 뭔 말이 그렇게 많어! 잔말 말고 이번엔 어디에 엮이지 말고 제대로 철조망이랑 소총, 총알, 수류탄 가져와. 전투식량도 넉넉하게 챙겨오고. 맛이 있든 없든 보존식품은 닥치는 대로 들고 와. 미리미리 이렇게 밖으로 나갈 때 마다 가져오는 게 좋아.”

 

  “늬예늬예, 알게쯤미다.”

 

  대범의 마지막 발길질이 설전의 정강이뼈에 명중함으로써 출발준비는 끝났다. 인원이 늘어났기에 보급품도 늘어야 했다. 무기도 인원이 늘어나자 부족해진 상황이었다. 결국 필연적으로 다시 군부대로 향해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오는 수밖에 없었다.

 

  설전은 인원 편성이 불만이었다. 자신과 두호는 전투인원으로 쓸만하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하지만 영혜를 데리고 가는 건 탐탁지 않았다. 근래 영혜는 자기 때문에 제법 많은 일에 휘말렸다. 전투경험이라고 해봤자 자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총을 쐈던 게 전부였다. 설전은 그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영혜를 빼고 싶었지만 대범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영혜가 자신이 가도 괜찮다고 오케이 해버렸기에 설전은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 젊은 남자들을 보충해왔더니 그 남자들의 실용성이 전혀 없었다. 내심 설전은 이제 영혜를 좀 쉬게 해줄 수 있구나 싶었는데 실망이 컸다. 그는 여태껏 영혜를 너무 많이 굴린 것에 대해 영혜에게 미안했다.

 

  설전 일행은 창고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 창고 주변에 있던 어느 박스트럭에 올라탔다. 두호가 운전석에 앉아 차키를 꺼내서 시동을 걸자 자동차가 엔진소리를 내더니 이내 시동이 걸렸다. 익숙한 진동이 차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실 설전네는 평소 사용하던 승합차와 두호가 타고 온 승용차 이 두 대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에는 화물 트럭 한 대의 차키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대범이 차키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화물 운송에 적합한 차량은 승합차 한 대 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두호가 창고 안의 함정들과 물품들을 정리하던 중 버려진 차키를 발견했고 설전과 이야기 끝에 이 차키는 주변 화물을 싣는 자동차 키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그리고 장마가 잠시 주춤했던 맑은 날 밖으로 나가 화물차에 닥치는 대로 시동을 걸었고 결국 이 박스트럭의 차키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야말로 신의 가호. 기적. 설전은 그리 생각했다. 승합차가 아무리 넓어도 물품을 싣는 것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품운송에 적합한 박스트럭을 이렇게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니. 설전은 두호의 운에 그야말로 감복하면서 고마워했다. 덕분에 두호의 자랑질을 심심할 때 마다 들어야 했지만.

 

  박스트럭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곧 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한다.

 

 

 

  권란이 옥상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차를 바라본다. 권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차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권란의 마음도 심란해져 간다. 또 다시 아들을 밖으로 내보내다니. 어머니로써 삼도천이라는 물가에 자식을 내놓고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다쳐서 올까. 아니, 다쳐서 오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 아들이 다쳐서 오는 것을 달가워할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권란에겐 그 아들이 다쳐서 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저 돌아오는 것. 그것만 해도 기쁨이었다.

 

  “여보, 뭐해. 아들내미 가는 거 지켜보고 있었어?”

 

  어느새 대범이 옥상까지 올라와 권란을 향해 말을 붙인다. 권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입을 열고 싶지 않으리라. 대범은 권란의 그런 반응을 이해했다. 그는 권란 옆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전엔 언젠가 품에서 떠날 자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품에서 떠나보내기가 그렇네.”

 

  “품에서 떠난다는 의미가... 이제는 다르게 들리네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대신 나가고 싶지만...”

 

  권란이 한 숨을 내쉬더니 울먹거린다. 대범은 일부러 과장된 반응을 한다.

 

  “아서라. 아들내미 성격 몰라? 당신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면 발광을 할 걸?”

 

  “그래도 마음이 정말 편치 않아요. 매번 이렇게 아들을 죽이러 보내는 것만 같아서...”

 

  “어쩌겠어. 어쨌든 밖으로는 나가야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범의 입에선 쓴물이 올라왔다. 그는 입이 쓴지 가볍게 혀를 차며 쓴맛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입안의 꺼림칙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권란은 주머니에서 담뱃갑 하나를 꺼내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갖다 대었다.

 

  대범은 그런 그녀를 향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권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에 연기가 피어오르자 권란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담배연기가 그녀의 한숨과 함께 아스라이 허공을 떠돌다 흩어진다.

 

  “아들한텐 끊었다고 예기하지 않았나?”

 

  “했죠.”

 

  “근데 왜 자꾸 펴. 몸에도 안 좋은 것을.”

 

  “몸에 안 좋은 거 아는데... 안 피면 더 몸이 안 좋을 것 같아서요.”

 

  권란이 다시 담배에 입을 댄 다음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다. 담배연기가 몸 혈관 곳곳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더니 이내 연기를 내뱉자 상쾌한 기분과 함께 연기가 다시 아까처럼 흩어진다. 대범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에게 오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저었다.

 

  권란은 담배를 든 채 아들이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매번 이렇게 아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아들이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자신. 가슴 속에 응어리가 생기자 권란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문다.

 

  대범은 권란을 바라보다 이내 주변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계속 아내를 바라보았자 서로 우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지 여름이라도 바람은 선선했다. 권란의 담배연기만 없다면 상쾌한 날씨다. 장마가 완전히 지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도 햇살이 맑은 날이었다.

 

  대범이 참 좋은 날씨라면서 거리를 바라보던 중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는 권란을 톡톡 치더니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권란이 대범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그의 말을 따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대범은 자리에 앉은 채 아슬아슬하게 머리만 내놓은 채 난간 밖을 바라보았다.

 

  강 건너 승합차 한 대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소 답답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대범이 낯선 차량의 등장에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영혜도 그렇고 태훈 일행도 그렇고, 사람을 잡아먹는 인육사냥꾼, 헌터라고 명칭한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까.

 

  그는 부디 그 차량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여기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를... 차량은 강을 끼고 조금씩 다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권란이 무슨 일이냐며 재차 물었지만 대범은 검지를 들고 입에 갖다 댈 뿐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승합차가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차량의 모습에 대범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거북함을 동시에 느꼈다. 속에서 더부룩한 느낌이 속을 막은 듯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차량은 다리를 완전히 건넜다. 그러나 차량은 멈추지 않았다. 다리를 건넌 차는 이제 대범의 시야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대범이 상체를 숙인 채 다른 쪽 옥상 난간으로 가려하자 권란이 재차 무슨 일이냐며 말을 걸었다.

 

  대범은 그제야 웬 이상한 차가 나타났다면서 그녀를 데리고 다른 옥상 난간으로 몸을 움직였다. 다른 쪽 난간에 도착한 대범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승합차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대범은 승합차를 찾으러 눈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승합차는 마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이윽고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전부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듯 보였다. 7~8명 정도의 사람들이 먼저 내리더니 이윽고 운전석에서 한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뒷 자석에서 한 명이 더 내림으로써 확실치는 않았으나 차에 있는 인원 전부가 내린 듯 보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대범은 그제야 사람들의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전부 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총을 들더니 마트 근처를 나누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범이 난간에서 좀 떨어진 다음 권란을 일으켜 세운 뒤 애들을 3층 운동기구 코너에 모으라고 다그친다. 권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자 대범도 권란도 동시에 마트 내부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경묵은 승합차 안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새벽에 부하들을 깨워 사람이 살만한 곳, 혹은 물품을 보급할 수 있는 곳을 수색하라 일러 둔 것이 유효했다. 아직 완전히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에 내린 명령은 몇 십분 지나지 않아 근처에 대형마트 하나와 식자재마트 한 곳이 포착되었다며 정찰대가 보고했다.

 

  그리고 그 중 대형마트는 벽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이상한 모습으로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경묵은 거기에 감을 잡았다. 차량에 탑승한 다음 마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옮겨 주차시켜놓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마트 외부를 감시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트 창고에서 나온 사람들이 박스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경묵은 저 사람들이 사라진 단비와 지희, 그리고 도시락에 대한 단서를 잡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저속으로 운전하며 마트에 접근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마트에 접근한 그는 인원을 반으로 나누어 마트 입구로 통하는 곳을 찾아보라 명령한 뒤 자신은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곳곳에 벽돌을 두른 기이한 모습의 대형마트. 분명 괴물들이나 사람을 막기 위해 입구를 막아놓았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천연의 요새일지 모른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다칠 위험이 있다. 경묵은 자기 스스로 그런 위험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사실 경묵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한 것은 설전의 불찰이었다. 설전은 언제나 매일 아침 마트 내부와 외부를 점검했다. 마트 내부에선 들어온 흔적이나 뚫려있는 곳은 없는지 감시하고 있다면 외부에선 뭔가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설전은 밖의 모든 풍경을 외우고 있었다, 나무, 자동차의 위치, 깨진 유리조각의 모습, 전봇대, 전신주, 유리창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 까지. 그러나 오늘 설전은 마트 내부만 순찰을 하고 철조망을 가져갈 준비를 하기 위해 영혜와 두호, 그리고 대범과 같이 회의를 했다.

 

  만약 설전이 마트 외부까지 순찰을 마쳤더라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경묵이 여기까지 못 오도록 위협사격 같은걸 가했거나 마트 내부 인원들에게 주의를 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아마 경묵의 접근은 막을 수 없었으리라. 주혁이 보낸 그들에게도 총이 있었고 목적이 있었으니까.

 

  경묵이 백미러에 달려있는 주사위 두 개를 떼어내더니 자신의 손에 굴렸다. 주사위가 경묵의 손에서 따닥따닥 소리를 냈다. 아직 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다. 경묵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고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뭐...뭐라고? 총을 쏘라고?”

 

  정태훈은 기겁을 했다. 그는 도리질과 동시에 손사래까지 치며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을 당하니 대범은 난처했다. 권란도 그런 태훈의 반응에 답답한 지 다시 한 번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래도 지금 인원이 너무 없어요. 만약 저 녀석들이 헌터고 그래서 우리를 잡으러 온 거면...”

 

  “그... 그럼 그 설전인가 뭔가 하는 애 시켜면 되잖아요. 왜 나한테 총을 쏘라고 그런 거예요!”

 

  계속해서 난색을 표하는 정태훈의 태도에 대범은 계속 그를 설득한다.

 

  “우리 아들은 지금 영혜랑 두호랑 철조망과 총알, 군용품들을 보급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대체 가능한 인원이 저랑 안사람, 그리고 정제랑 태훈씨 밖에 없어요. 그리고 총도 우리 둘 빼면 2정 밖에 없고요.”

 

  “전 못 쏩니다. 아시잖아요. 전 면제라 아예 갔다 오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총은 한 번도 못 만져봤다 이겁니다!”

 

  정태훈은 끝까지 거부했다. 그의 행동에 대범은 너무 난감했다. 현재 마트에 거주하고 있는 식구들 중에 태훈은 대범과 권란을 제외하면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이는 40 ~ 50대 정도일 텐데 나이에 맞는 품위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총 한번 쏴 본적 없던 사람에게 총을 쥐어주다니. 상대의 부담감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것도 당장 총을 들고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판국에. 이런 와중에 이미 정제는 총 한정을 메고 대범과 권란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간만에 전투조끼 입으니까 이상하네요. 전역한 지 꽤 되었는데.”

 

  “정제야, 넌 그냥 보람이랑 애들 곁에 있어라. 여차하면 네가 최후의 보루로 써야 될지도 모르는...”

 

  “아뇨. 아무래도 저도 같이 가는 게 낫겠어요. 밖의 인원이 10명 정도라면서요. 수비하는 입장에선 충분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두 분께 맡기기에는 좀 버거운 숫자가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안 된다. 너까지 가세하면 여길 막을 사람들이...”

 

  대범은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정제의 제안이 사실 반가웠다. 2명이서 10명을 상대한다니. 괴물이라면 납득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는 살아있는 인간. 그것도 총을 든 인간이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싸울 수 있는 인원수는 되도록 많은 게 좋다.

 

  그러나 막상 정제를 쓴다면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키고 그 곳을 지킬 인원이 없다는 것은 불안하다. 가장 어른인 정태훈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었으나 본인은 기겁을 하며 거부하고 있는 상황. 대범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민하고 있었다.

 

  “제가 총을 가지고 있을게요.”

 

  사람들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치수였다. 치수는 남아있는 총을 들어 어깨에 메더니 정제에게 어떻게 쏘느냐며 질문했다. 정제는 갑작스런 치수의 제안에 멍하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다음 조정간, 방아쇠, 조준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치수는 정제가 가르쳐 주는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더니 총을 견착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따라했다. 그는 조준하는 법도 따라하더니 이내 대충 알겠다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말을 했다. 정제는 알았다며 치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어떻게 할까요?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일단 정제는 정문 쪽으로 가라. 나는 창고 입구 쪽으로 움직일 테니. 여보, 당신은 옥상에서 혹시나 모를 총격전에 대비해서 옥상으로 올라가 저격과 엄호를 부탁할게.”

 

  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반응을 얻은 대범은 깊게 숨을 고르더니 치수에게 2층 직원 사무실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치수는 전투조끼를 입고 탄창 주머니에 탄창을 넣은 다음 사람들을 데리고 2층 직원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사람들도 그를 따랐다. 대범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몇 번 사람들과 교전을 한 적은 있으나 이번 건은 꽤 규모가 크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설전이 간 것이 못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지만 바로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아들에게 이런 위험한 짓을 부탁할 수는 없지. 안 그래도 사지로 계속 내보내는 형편이다. 그에게 계속 이런 무게를 지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남아있는 인원이 떠난 인원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다.

 

  대범과 정제가 빠르게 자신의 위치로 뛰어간다. 권란도 옥상을 향해 뛰어간다. 치수도 사람들을 데리고 보람이 있는 2층 직원 사무실로 들어간다. 보람은 이미 정제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럼에도 역시 막상 사람들이 오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에 대한 걱정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보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대형 마트 전체에 퍼져있는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방긋이가 갑작스레 울음을 터트린다. 태훈이 애 좀 조용히 시키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보람은 방긋이를 안더니 다 괜찮을 거라고 다독인다. 아이의 울음에 수진, 지애도 보람 곁으로 가서 방긋이를 달랜다.

 

  재연은 치수에게 괜찮으냐고 묻는다. 치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쏴보는 거지만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말한 치수였지만 낯선 총의 무게가 무겁다. 이것으로 사람이 죽는다. 그 누구도 죽여본 적이 없는 치수에겐 이 총의 무게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들 수밖에 없다. 지금 수진이와 다른 가족들을 지키려면 자신이 총을 들어야 한다. 목적이 확실해진 치수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대형 마트 밖, 승합차 안에서 경묵은 대형 마트를 바라본다. 그의 안경이 빛에 반사되어 빛난다. 잘 쌓아놓은, 잘 만들어진, 그건 한 마디로 성이었다. 크고 거대한 요새이자 성. 이 안엔 어떤 존재가 기다리고 있을까. 흥미와 묘한 두려움이 그의 심장을 떨리게 하고 있었다.

 

  성을 둘러싼 묘한 긴장감이 마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혹은 긴장감이 아니라 살의거나.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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