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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권, 빠기!
작성일 : 19-11-06 09:19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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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왔다.

 우리는 이제 더위를 걱정해야 한다.

 돌담의 간판 위에, 잡풀이 무성한 도로가 위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루꼬들의 지붕 위에 햇살이 불화살처럼 쏟아졌다.

 하늘에서 수억 개의 금빛 바늘이 떨어져 행인들의 잔등에 꽂혔다.

 돌담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길바닥에서 달궈진 뜨거운 공기가 달려들었다.

 

 그래도 밤은 시원했다.

 자카르타는 건기가 와도 바람이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영업이 끝나면 현관문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빈땅을 홀짝였다.

 

 돌담은 여전히 바빴다.

 이제는 허름한 뿌리인다 골목을 빛내는 명소가 된 느낌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변함없이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롯데 홀세일 마트에 몇 번 가본적도 있지만, 나는 그 작은 시장의 분위기가 더 좋았다.

 이제 내가 들어서면 상인들이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빡 권’(권씨)은 그냥 ‘권’이 되었고 ‘슬라맛 빠기’(아침인사)는 그냥 ‘빠기’(친한 사이끼리의 간단한 인사)가 되었다.

 

 “권! 빠기!”

 “빠기, 이부”

 

 나는 먼저 멸치를 사러 건어물 가게에 들렀다.

 건어물 가게 주인아줌마는 딸이 아주 많은 모양이었다.

 

 “권. 점점 잘생겨지네. 우리 첫째 딸 소개해줘야겠어. 걔도 사별하고 혼자야.”

 “저번엔 둘째 딸 주신다면서요?”

 “걔는 남자 생겼어. 편의점 하는 사람이래.”

 “식당보다는 낫네요. 이깐 끄찔(멸치) 주세요.”

 

 자카르타 전통시장은 아직도 한쪽 끝에 추를 올리는 재래식 저울을 썼다.

 처음엔 제대로 무게를 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돌담에 돌아와서 전자식 저울로 재보니 조금씩 무게를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 남자가 장 보러 다니니 만만하게 본 것이다.

 전자식 저울을 들고 다니며 무게를 다시 재기 시작하자 이제는 조금씩 더 얹어준다.

 

 “여기 있어. 좀 더 준 거야.”

 

 나는 아줌마가 내민 멸치 봉투를 받았다.

 인도네시아산 멸치는 왠지 쓴 맛이 강해서 손질을 꼼꼼히 해야 한다.

 돌담을 처음 열었을 때는 나 혼자 다듬느라 고생께나 했다.

 

 나는 준비한 돈 봉투를 내밀었다.

 어제 아줌마네 조카딸이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서민들은 가족 중 누군가 수술 받을 일이 생기면 사돈에 팔촌까지 온 가족이 모여 조금씩 돈을 보탠다.

 

 “이게 뭐야?”

 “조카딸 수술비 보태세요. 얼마 안 돼요.”

 “권은 얼굴이 고와지니 마음씨도 고와지네.”

 

 아줌마는 멸치를 몇 움큼 더 집어 넣어주었다.

 나는 채소 가게로 가려다 쌀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쌀가게 아저씨가 쌀부대를 붙들고 저울과 씨름하고 있었다.

 내가 시장에 가기 전에 쌀을 배달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조금 늦는 것 같았다.

 

 “빠기, 빡!”

 “빠기.”

 “오늘은 좀 늦으시네요.”

 “무릎이 아파서 한숨도 못 잤어. 관절염이 도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아저씨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저울에서 가게 문 앞으로 나올 때부터 다리를 살짝 절뚝거렸다.

 

 “쌀 이리 주세요. 앞으론 제가 그냥 차에 실을 게요.”

 

 나는 쌀부대를 지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실었다.

 시장으로 돌아와 보니 아저씨는 여전히 가게 문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콜라 안 드려야겠어요.”

 “안 돼. 그건 내 성수야.”

 

 아저씨는 성수를 ‘홀리 워터’라고 영어로 말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돌담에 오면 항상 콜라를 챙겨 드렸지만, 앞으론 과일 주스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는 잘 되지?”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잘 돼요.”

 “음식이 맛있어. 인도네시아 사람들한테도 잘 맞아. 그랜드 인도네시아 가도 성공하겠어.”

 

 언젠가 아저씨가 가게 앞을 지나칠 때 식사를 드린 적 있다.

 아저씨는 돌솥비빔밥에 고추장 소스를 비벼 맛있게 먹었다.

 

 “근데 말이야, 미안한 얘길 좀 해야겠어.”

 

 역시 아침부터 돌담 칭찬을 늘어놓은 이유가 있었다.

 아저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가격을 조금 올려달라고 했다.

 계산을 해보니 여전히 유통업체 가격보다 쌌고, 돌담 장사가 잘 되는 통에 여유도 있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 장을 마저 보았다.

 채소가게를 혼자 운영하는 씩씩한 청년, 달걀 가게를 졸린 눈으로 지키는 할아버지도 내게 덤을 주었다.

 

 점심 장사가 시작됐다.

 이제 나는 손님들 얼굴을 많이 기억한다.

 그들의 습관, 태도,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들을 알아갈수록 내 모난 성격도 닳고 유들유들해졌다.

 

 돌담에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화교 부인이 친구와 쁨반뚜(가사도우미)를 데리고 들어섰다.

 화교들이 대개 쁨반뚜에게 엄격한 편이지만, 이 부인은 정도가 심해 식사 하는 내내 의자 뒤에 서 있게 했다.

 

 ‘하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쁨반뚜였다.

 그녀의 고향은 자바 섬의 외진 시골일 것이다.

 18세가 될 때쯤 집안이 그녀를 자카르타의 일자리로 내몰았을 테고, 그녀는 월급의 대부분을 집에 송금할 것이다.

 월급으로도 부족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닦달 당했을 테고, 가불로 어찌어찌 메워왔을 것이다.

 가족은 시골 소녀들 등에 붙은 거머리였다.

 

 나는 두꺼운 안경을 쓴 하리를 볼 때마다 여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도 눈이 안 좋아 그런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리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달려가 접이식 의자에 앉혔다.

 부인이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 나는 이렇게 변명했다.

 

 “손님이 서 계시면 음식 나르는데 방해가 돼서요.”

 

 언젠가 하리에게 눈은 괜찮으냐고 물어본 적 있다.

 하리는 마른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한탄했다.

 

 “시력이 계속 나빠져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쩔 수 없대요.”

 

 그 병원이 어떤 곳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골절 환자에게 항생제나 처방해주는, 의사에게 면허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동네 허름한 병원일 것이다.

 

 화교 부인이 합석한 친구와 발리 여행에 대해 떠들었다.

 나는 생수를 나르다 하리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발리보단 우리 고향 앞바다가 더 예쁜데.”

 

 하리가 올 때마다 식사를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부인 눈치도 보이고 하리조차 오지랖을 떤다고 할까봐 그러지 못했다.

 나는 하리가 만지작거리는 핸드폰을 보았다.

 조잡하고 낡은 그 중국산 핸드폰은 액정이 나갔는지 글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망가졌어?”

 “네. 어제부터요.”

 

 나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지난달까지 쓰던 블랙베리 저가폰을 들고 나왔다.

 그건 임시로 쓰려고 시장에서 산 물건이고, 이번 달부터는 쇼핑몰에서 산 갤럭시폰을 쓰고 있었다.

 

 “내가 안 쓰는 건데 작동은 잘 돼.”

 

 하리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내민 동정과 자신의 자존심을 저울질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하리의 손에 핸드폰을 억지로 쥐어주었다.

 결국 하리는 웃으며 내 폰을 받았다.

 

 주 3일쯤 들르는 것 같은 회사원이 또 들어왔다.

 그녀는 2월 중순경 돌담에 처음 등장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바빡, 신라면 있어요?”

 

 돌담은 인스턴트 라면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2층에서 내가 먹던 신라면을 들고 내려와 끓여줬다.

 한국 수입산이 아니라 중국 공장에서 생산돼 인도네시아에 유통되는 신라면이었다.

 

 나는 한번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와서 신라면을 찾았다.

 돌담 메뉴에 신라면이 없다고 설명해도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마치 이 지구상에 신라면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돌담뿐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덕분에 줄리는 오직 그녀만을 위해 신라면을 끓여야 했다.

 

 나는 오늘도 신라면을 후루룩거리는 여사원에게 맛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김 낀 안경을 들고 물고기를 낚은 에스키모의 표정으로 말했다.

 

 “천상의 맛이에요.”

 

 왜 집에서 끓여먹지 않는지, 돌담에서 먹어야 천상의 맛이 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작은 공기에 담은 밥을 갖다 줬다.

 밥을 말아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자 그녀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평온한 나날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언제나 2호점이 있었다.

 매순간 2호점을 열겠다고 다짐하다보니 그게 내 사명이라도 된 듯 했다.

 

 **

 3월 첫째 주 수요일, 이브누라는 이상한 기자가 찾아왔다.

 손님이 뜸한 오후 4시경이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의 그 익숙한 트렌치코트를 발견했다.

 날이 더워졌는데도 이브누는 코트를 벗지 않았다.

 

 “아이고, 바빡. 오랜만입니다.”

 

 이브누는 역시나 넉살 좋게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인사했다.

 이브누 뒤에 잘생긴 중년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화교처럼 보였지만 쌍꺼풀 진 큰 눈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혼혈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경상도 억양이 밴 굵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들을 홀 한가운데 자리로 안내했다.

 

 “이 친구는 한국 기자에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한식 먹고 싶어서 이리로 끌고 왔습니다.”

 

 이브누는 친한 한국 기자를 공항에서 픽업해주기 위해 나온 듯 했다.

 한국 기자가 바리톤의 음성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한영철이라고 합니다. 뿌리인다에도 이렇게 좋은 한식집이 있는지 몰랐네요.”

 “어느 언론사에 계십니까?”

 “저는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두 사람은 소갈비와 육개장을 주문했다.

 한영철이라는 기자는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다.

 이브누가 밥을 먹으면서도 새된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냈지만, 한영철은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짧은 대답만 내놓았다.

 이브누의 신나는 바이올린 연주에 간간히 화음을 넣는 콘트라베이스 같았다.

 그들이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테이블로 다가가 한영철에게 물었다.

 

 “맛이 어떠세요?”

 “소갈비 맛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맛이에요.”

 “육개장은요?”

 “음... 독특하긴 한데 이것도 맛있습니다.”

 

 이브누가 우리의 대화에 영어로 끼어들었다.

 

 “이분이 우실로한테 와히드를 존경한다고 한 분이네.”

 

 한영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마저 큰 북을 두드리듯 둥둥 울렸다.

 

 나는 이브누가 살렘바 교도소에서 터뜨린 특종에 대해 물었다.

 이브누는 자신의 단독기사가 아기 오줌에 젖어 날아가 버릴 뻔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실로와는 사업을 계속하기로 하셨어요?”

 

 이브누가 말끝에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나보다 우실로의 사업이 궁금해 찾아온 것 같았다.

 

 “바빡은 우실로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군요.”

 “우실로보다는 우실로의 돈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돈이 어디서 흘러드는지 물 쓰듯 하고 있거든요.”

 “죄송합니다만 바빡 우실로와는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브누가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우리의 얘기에 집중하던 한영철도 고개를 돌렸다.

 이 기자들은 나와 우실로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알자마자 안테나를 접어버렸다.

 

 “바빡 이브누는 바빡 우실로와 친구 사이 아닌가요?”

 “친구는요 무슨. 고향이 같으니까 아는 체 하고 살죠.”

 

 이브누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가 우실로를 경멸한다고 느꼈다.

 

 “제가 아는 분은 바빡 우실로가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얘길 하던가요?”

 “아, 대단한 분은 아니고요, 블록엠에서 술집을 하는 중국인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블록엠?

 이브누는 그 단어들을 몇 번 입안에서 굴리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이부 주린 아닌가요?”

 “맞습니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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