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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9화. 편련(片戀)
작성일 : 19-11-05 23:54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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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왜 가만히 앉아 있어요. 팔 좀 보자니까...”

 

 해랑은 자신의 방에서 깨끗한 물을 받은 대야와 깨끗한 수건 그리고 허 노인에게 받아온 약을 앞에 늘어놓고 앉아, 그것들과 치우의 팔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치우의 시선은 해랑에게만 고정되어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치우에게, 해랑은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팔을 걷으려 했다.

 

 치우가 해랑의 손을 밀어냈다.

 

 해랑이 멈칫하다가 이내 울컥한 얼굴로 치우의 젖은 옷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치료 안 할 거예요?! 이대로 둘 거냐고!”

 

 “해랑아.”

 

 대답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치우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내내 생각했다. 난 이제 어느 정도 너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치우의 눈에 지친 기색이 서렸다.

 

 “너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만큼 내 무엇이 네 맘을 상하게 했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너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지...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치우의 말을 들은 해랑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아니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기만 했는데... 왜 날 위해 희생한 오라버니가 저런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해.’

 

 “그땐!”

 

 해랑이 다급하게 입을 열자 치우는 기대하는 대답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단지 그날 심술이 나서 그랬다거나 화풀이였다는 말이라도 치우는 괜찮았다.

 

 “그땐...”

 

 ‘오라버니와 남매라 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그런데 오라버니가 초아 언니와 너무 잘 어울리니까, 질투가 나서. 혼인 이야기를 꺼낸 것이 날 밀어내려는 것만 같아서.’

 

 뻐끔거리다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해랑을 보고 치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말대로 오라버니인 척 참견할 자격도 없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아니,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한 것인지...”

 

 “아냐, 나는...”

 

 “애초에. 처음부터. 참견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혼잣말인 듯 혼잣말이 아닌 치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해랑은, 돌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쿵 하고 무겁게 울렸다.

 

 “허나 어찌하겠느냐. 우린 이미 이렇게 되었고. 고아로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녹록치가 않으니. 혼인할 때까지는 이런 오라비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미안하구나.”

 

 해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좀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눈물이라도 흘리면 자신의 마음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눈물도 나지 않았다.

 

 “...”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문 채 앉아있는 해랑을, 애처로운 얼굴을 하고 천천히 뜯어본 치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걸어갔다.

 

 “몸의 상처는 다 아물어 흔적도 없을 텐데 옷에 피가 묻어 있으면 안 되지. 갈아입는 게 좋을 것이다.”

 

 치우의 발소리가 해랑을 지나쳐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어릴 때 늘 듣던 말투.

 다시 그 거리감으로 돌아가는 건가.

 이제 다시는...꽝철이라고 놀릴 수도 없는 건가.

 나를 짐처럼 여길까 봐, 그 말이 듣기 무서워서 내가 먼저 상처 줬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럼 오라버닌! 저를 정말 누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해랑이 벌떡 일어나며 치우를 향해 소리쳤다.

 

 해랑은 해야 하는 말보다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고 이내 후회했다.

 돌아올 답은 뻔했고 바라는 답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둘 사이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치우가 해랑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 이상이라는 것의 의미는 분명 ‘여인’보단 ‘자식’에 가까운 것이리라.

 

 해랑은 맥이 탁 풀렸다.

 다시 이 관계라도 유지하지 않으면 치우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오라버니가 날 혼인 시키고 싶은 것 같아서! 내가 가지 않겠다 하면, 나를 짐처럼 여길까 봐. 아니, 좋아하는 여인이 있어서 이미 날 짐처럼 여기고 있을까 봐.”

 

 울음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참으며 말을 잇는 해랑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 또한 그녀의 진심이었다.

 

 치우는 급히 몸을 돌려 해랑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 진짜 오라버니도 아니니까 혼인시키려 하지도 말고, 진짜 오라버니도 아니니까 혼인하고 싶은데 내 눈치 볼 필요 없다고...우윽...흑”

 

 “해랑아, 해랑아. 뚝! 뚝...하거라.”

 

 치우가 고개를 숙인 채 우는 해랑을 감싸 안으며 토닥였다.

 

 “내가 너를 그리 대한 적 있던? 그리 말한 적이 있던? 어찌 그런 생각을 해?”

 

 “그치만, 나는. 나는 오라버니가... 계속......”

 

 해랑이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으려던 찰나, 돌연 방문 밖이 밝아지며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신해랑! 나와!”

 

 샘찬의 목소리였다.

 

 “어...?”

 

 “해랑아, 옷부터. 옷부터 갈아입거라. 절대 나오지 말고.”

 

 치우는 인상을 쓰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

 

 횃불을 들고 앞장서있는 샘찬의 뒤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고 촌장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일로 다들 여기까지 오셨어요?”

 

 치우는 일단 그렇게 물었지만,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샘찬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해랑이를 봐야겠어.”

 

 “이 밤중에, 내 누이를 왜?”

 

 치우도 경계하며 물었다.

 

 “이렇게 숨기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샘찬은 중얼거리며 해랑이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마루에 올라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

 

 치우가 그를 막아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샘찬이 치우의 곁에 바짝 다가서며 조용히 속삭였다.

 

 “촌장과 니가 붙어먹으며 한 짓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뭐?”

 

 “이런, 생긴 것부터 여우 같은 새끼. 모른 척하는 것 보게?”

 

 샘찬이 다시 몸을 떼어 치우의 가슴팍을 기분 나쁘게 툭툭 쳐대며 시비를 걸었다.

 

 ‘촌장과 내가 함께 있는 걸 보았다고? 윤슬을 보았다는 말인가?’

 

 치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니가 촌장과 한 짓거리, 여기서 다 들키고 싶지 않으면 니 누이 퍼뜩 불러오라고.”

 

 ‘윤슬, 이 자식은 어디서 무얼 하는 거야? 정체를 들켰으면 이 녀석이 이렇게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리 없는데...?’

 

 치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곤란해하는 체했다.

 

 “해랑이는 내내 산을 정찰 다녔어. 몸이 좋지 않아서 재웠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깨워.”

 

 “너...!”

 

 치우의 주변에 푸른 바람이 살짝 일렁이자 해랑이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차림새였다.

 

 “다들, 무슨 일이세요?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어야지...”

 

 바깥의 이야기를 못 들었을 리 없는 해랑이, 천진난만한 미소로 묻자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움에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했다.

 

 [호랑이에게 당한 상처를 확인하면 마을 안에 둘 수 없다.]

 

 “해랑아, 우리가 확인을 해야 할 게 좀 있어서.”

 

 샘찬은 기습적으로 해랑에게 손을 뻗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간 촌장의 집을 맴돌며 다리 저리게 숨어있었던 노력의 열매를 얻는 순간이 온 것이다.

 샘찬은 처음부터 최근에 일어난 모든 일이 촌장이 초아를 꽝철이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꾸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이 위험하다고 여인들의 안위를 맡긴 것부터, 치우가 뛰쳐나가자 바로 초아의 집으로 가서 치우를 쫓게 한 것까지.

 전부 초아를 꼬여내기 위해 세운 계략이라고.

 그는 그렇게 믿었다.

 

 ‘물론 호랑이가 나타난 것은 정말 의외였지만, 풀숲에 숨어 해랑이의 앞섶이 피로 물드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봤으니...!’

 

 호환을 입었다며 여동생이 마을 밖으로 쫓겨난다면, 치우가 분명 여동생만 마을 밖으로 내보내진 않을 터라는 것을 샘찬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로 초아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서진 않겠지만, 적어도 촌장과 꽝철이 자식이 함부로 나댈 수는 없게 될 것이라고 샘찬은 확신했다.

 

 샘찬은 재빨리 뻗은 손에 잡힌 것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 투둑

 

 

 천이 뜯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해랑의 눈이 커졌다.

 마을 사람들의 이목은 샘찬이 서 있는 쪽으로 쏠렸고, 개중에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리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뒤늦게 쫓아 온 은오와 사람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현장을 보고 있었다.

 

 “장....샘찬!!!”

 

 그리고 촌장과 함께 걸어와, 그 광경을 지켜본 초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

 치우는 웃옷이 풀어 헤쳐진 채 화가 난 얼굴로 샘찬과 해랑 사이에 서 있었다.

 치우의 가슴팍에는 호랑이의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해랑은 치우의 뒤에서 두 손으로 앞섶을 누른 채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초아가 달려 들어와 샘찬을 밀치며 치우 앞을 막아섰다.

 

 “장샘찬!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다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치우의 상처에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렸다.

 

 “초...초아야? 정신을 차린 거야? 난 그게 아니라...!”

 

 초아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자신을 향한 초아의 원망스러운 눈빛에 샘찬은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이 둘의 사이만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꼴이 되리라 생각하니 오기가 생겼다.

 

 “우리 마을이 위험해질 수 있다니까?!”

 

 샘찬은 치우 앞을 막아선 초아에게 최대한 설득력 있는 자세로 설명하려 들었다.

 

 “물러서.”

 

 싸늘한 치우의 목소리에 초아와 샘찬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긴장했다.

 

 초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오라버니가 다치신건 날 지켜주려다가 그리된 것인데...”

 

 초아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 치우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대체 오라버닌 어찌 아직 치료도 하지 않으신..”

 

 “물러서라고 했다.”

 

 치우가 싸늘한 표정으로 초아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샘찬이 발끈했다.

 

 “너 이 자식! 지금 초아한테 그게 무슨 말투야!”

 

 치우는 옷고름이 뜯겨 벌어진 웃옷을 벗어 던지고 팔에 덧댄 천도 거칠게 잡아 뜯어냈다.

 피가 치우의 팔을 타고 다시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모두 입을 다문 가운데 치우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샘찬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해랑이한테 확인하려던 게 이것이냐?”

 

 분노에 찬 치우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해랑이가 다쳤으면 다시 호랑이에게 화를 당할까, 그것이 두려워서 마을 밖으로 내쫓기라도 하려고 했어?”

 

 치우의 말에 은오는 충격받은 얼굴로 사람들을 돌아보았고 해랑도 고개를 숙였다.

 샘찬을 따라갔던 몇몇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댔다.

 

 “하하.”

 

 치우의 눈이 붉게 물들자 그를 지켜보던 촌장은 급히 마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푸른 바람이 강하게 불며 사람들이 들고 있던 횃불이 모두 꺼졌다.

 

 “사는 게 그렇게 두렵다면, 여기서 전부 다..”

 

 ‘안 돼...!’

 

 촌장이 어둠 속에서 치우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해랑의 손이 그의 눈을 가렸다.

 

 순식간에 바람이 멎고 정적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적막 속에서 치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마루 중앙이 아닌, 문 바깥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해랑이의 옷에 묻은 피는 저의 피입니다. 초아를 시켜 확인하면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걸 알겠지요. 제가 마을을 나갈 테니, 지금부턴 아무도 나와 내 누이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십시오.”

 

 “아니, 신군! 우리는 그러려고 온 건 아니었네..!”

 

 “그래, 그 몸으로 어딜 간단 말인가.”

 

 “미안하네. 다친 자를 내보낸다니, 우리가 어찌 그런 생각을!”

 

 “누가, 불 좀 켜 봐요!”

 

 

 곧 불이 밝혀졌지만, 치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 끼익, 탕.

 

 해랑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고 초아도 따라 들어갔다.

 

 “촌장님. 어찌합니까?”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 촌장에게로 쭈뼛쭈뼛 다가왔다.

 

 은오는 마루에 쓰러지듯 걸터앉아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피곤하구나...’

 

 초아는 금방 방문을 열고 나왔다.

 

 “신이 오라버니가 말한 대로입니다. 상처는 없어요.”

 

 촌장이 가만히 끄덕였다.

 

 “...내일 일찍 호식장(*창귀를 예방하기 위한 장례식 형태의 주술)을 치룰 테니, 다들 이제 좀 흩어지도록 하게. 호식총을 만들고 나서 신군을 불러오면 될 테지.”

 

 “예...에.”

 

 사람들이 안도한 얼굴로 대답하자, 촌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신군이 저 몸으로 내일까지 살아 있다면 말일세.”

 

 샘찬이 대답도 하지 않고 가장 먼저 자리를 떠났다.

 

 

 *

 

 사람들이 머쓱해 하며 모두 흩어질 동안, 계속 은오를 따라 그의 곁에 있었던 산다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촌장은 그런 산다라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은오에게 말했다.

 

 “선비님 집은 아직 머물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보다시피 이 마을엔 주막이 없으니, 오늘은 저의 집으로 함께 가시지요.”

 

 “그런..!”

 

 산다라의 다급한 외침에 마루에서 몸을 일으키던 은오가 깜짝 놀랐다.

 

 “왜 그러는 것이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은오의 물음에 산다라는 커다란 덩치에 답지 않게 미적거렸다.

 

 촌장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신경 쓰지 말고 가시지요.”

 

 촌장이 은오를 향해 말하고 문 쪽으로 걸음을 떼자 산다라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찌! 촌장님 집으로 저 사낼 데려가십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촌장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산다라의 말을 가로챘다.

 

 “그럼 여인이 있는 집에 묵게 할까?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내가 초대한 손님이시니.”

 

 “허나...”

 

 촌장과 산다라가 주고받는 대화에 은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것들 보시오. 난 노인이 혼자 사는 집이든, 여인이 있는 집에 머물든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짓은 하지 않소. 나를 무슨 도적 보듯 말하는 것은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산다라는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으로 은오 앞에 허리를 숙였다.

 촌장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아무래도 촌장님과 둘이 계신다는 게...”

 

 “그만.”

 

 촌장의 차가운 말투에 산다라는 허리를 숙인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저희 마을의 규칙에, 해가 지고서는 촌장님 댁에 출입을 금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그것이 좀..”

 

 촌장은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은오도 다시 마루에 주저앉았다.

 

 “그럼 나는 어찌하란 말이오? 모두 가버렸는데.”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산다라가 은오의 질문을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처럼 덥썩 대답했다.

 

 “그럼, 은가비는? 네 누이는 어쩌고?”

 

 촌장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때 해랑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은가비는 이곳으로 데려오지요. 저와 함께 있으면 되니.”

 

 해랑이 말을 마치고 은오를 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은오는 갑작스러운 해랑의 행동에 당황해서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촌장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렇게들 하든지... 늙은이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

 은가비를 해랑이의 방까지 업어 다 주고 산다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오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괜히 저 때문에... 자고 있던 누이동생을 불편하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산다라는 은오의 표정과 태도를 훑어보고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보다시피 은가비는 걷지 못해서 밖에 나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해랑이를 잘 따르고 좋아하는데, 해랑이는 밤마다 집에 없으니... 오늘 같은 날이라야 같이 시간도 보내겠지요.”

 

 “밤마다... 그렇습니까.”

 

 

 

 생각에 잠긴 채 걷던 은오를 산다라가 툭 쳤다.

 

 “이곳입니다. 집이 누추하지만,”

 

 은오가 산다라를 보며 씨익 웃었다.

 

 “집 없는 이 몸 앞에서 그런 말씀을 하실 겁니까?”

 

 은오의 소탈한 반응에 산다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들어오시지요.”

 

 “그럼, 하루 잘~ 신세 지겠습니다.”

 

 

 *

 달과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치우는 호수에 들어가지 않고 커다란 바위 위에 누워있었다.

 달빛에 비친 치우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치우의 입에서 짧은 숨이 불규칙하게 터져 나왔다.

 

 “늙은이가 걸음이 느려서 이제야 왔습니다.”

 

 촌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치우의 짧은 숨에 힘겨운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거북 느린 거야, 하루 이틀 일인가.”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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