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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13
작성일 : 19-11-05 18:31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1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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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는 언제나 출퇴근시간은 칼같이 맞춰 1분도 빨리, 늦게 오고가는 법이 없었다. 사실 교직이수를 한 정식 선생도 아닌지라 본인 수업 있을 때 맞춰 왔다 수업 끝나면 사라지는 그를 두고 뭐라 할 근거는 없었다. 딱히 다들 그럴 생각도 없었고. 애시당초 청장의 성질머리에 의해 온 사람이고 또 그게 전우치니 익스큐스가 되는 바이다. 그날도 오전에 하나 있는 수업을 끝낸 후였다.

 “가보겠습니다.”

  또 그는 사회생활 할 때는 예의를 잘 지키는 편인지라 수업이 끝나고 퇴근할 땐 언제나 교무실에 들러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이에 같은 교무실 선생들은 ‘생각보다 사람 괜찮은데 왜 소문이 그리 났는지 몰라.’라며 입을 모았다. ‘그래서 저분은 저렇게 칼퇴하고 어디 가신대?’ ‘나야 모르지. 집 가서 쉬시나.’ 그의 퇴근 후 일상에 관심을 가지는 이도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가 친분을 쌓는 성격도 먼저 살가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는 성격도 아닌지라 그렇게 미스테리로 남았다.

  북쪽 끝에는 천지요 남쪽 끝에는 백록담이요. 그 둘을 잇는 지리산 학당 내에 위치한 중앙 못, 누구는 선녀가 다녀갔다 하여 선녀못이라 하였고 누구는 천 마리의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천룡지라고도 불렸다. 외부엔 알려진 적이 없는 곳인지라 여전히 공식명칭 없는 채로 중앙 못이라 제일 많이 불렸지만. 여하튼 너른 중앙 못이 가장 반짝이는 곳. 학생들이 지내는 곳과 정 반대에 있어 아이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 하지만 미성년자 학생들은 수업 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곳. 그곳에 전우치가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다.

 “전우치, 네 또 금강전도에 들어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지?”

  머리 위로 들리는 목소리에 전우치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언제 온 것인지 굵은 가지 위에 구미호가 앉아 있었다.

 “삼겹살 아니고, 갈비.”

 “어찌 그래 자꾸 금강전도에 들어가.”

  그 사이 전우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저치들은 모른다. 금강에 앉아 천하를 내려다보는 기분을. 그건 너와 나 둘뿐 아니더냐.”

  전우치가 고개를 들어 구미호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눈길에 싱긋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너른 못을 바라보았다.

 “목이 아파 오래 보질 못하겠구나. 내려올 생각은 없는 게냐.”

  전우치의 정수리만 줄곧 내려다보던 구미호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무 아래로 풀썩 몸을 날렸다. 여전히 본인보다 앞에 앉아 있는 전우치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전우치의 옆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걸음 뒤에 떨어진 그는 중앙 못에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내 여기 있는 줄은 어찌 알고.”

  그제야 전우치가 고개를 돌려 구미호를 바라봤다.

 “이화야.”

  오랜만에 불린 이름에 기어코 다시 시선이 마주했다.

 “내 그것 하나 모를까.”

  사실 이화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았는지. 이들에게 있어 그건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은 일이었다. 여전히 말없이 자신만 바라보는 이화에 전우치는 낮게 껄껄 웃었다.

 “내 너무 늦게 널 만나러와 심통이 난 게로구나.”

 “심통은 무슨 누가 심통이 났다 그러느냐.”

  이화는 다시 한걸음 걸어 그의 옆에 자리를 트고 앉았다. 따스한 햇살이 중앙 못에 내려앉아 푸스스 푸스스 부서졌다. 전우치는 여전히 환히 웃으며 이화를 바라봤다.

 “그래, 그저 내가 너무 늦은 탓이다. 용서해다오. 그리 오래 살아도 나는 여전히 너보다 느리구나.”

  연못 너머로 종소리가 울렸다. 한창 시끄러운 점심시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어렴풋하게만 들리는 한적한 숲 속. 전우치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엔 더 이상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만 둘 사이로 쏟아졌을 뿐.

 

 -

 

 “야야, 너네 그거 기억해?”

  도형이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와 은호와 결이 사이로 파고들며 말했다.

 “갑자기 뭘?”

 “우리 입학했을 때 강당에서 오티 같은 거 했잖아.”

 “근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사 쌤이 옛날에 여우 구슬 달라했던 사람이 있었단 거 말이야.”

 “왜, 도형이 너도 여우구슬 받아서 도력 만렙 찍게?”

  결의 말에 도형의 눈이 똥그레졌다.

 “뭐야, 여우구슬이면 도술학당도 프리패스야?”

 “도술학당만이 게? 여우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천년만년 살텐데.”

 “헐 몰랐어. 대박이다.”

 “그래서 우리 지금 여우구슬 가지러 가?”

  놀라 얼타는 도형에 은호가 물었다. 그제야 다시 정신이 돌아온 도형이 말을 이었다.

 “아, 그게 아니고 그 옛날에 여우 구슬 가져갔던 사람이 전우치래.”

 “우리 수업 들어오는 그 전우치?”

 “예스!”

 “근데 그게 왜?”

 “왜라니. 너네 안신기하냐?”

 “신기하긴 한데. 난 당장 다음 주가 중간고사인 게 더 신기해. 누가 내 시간 들고튀었지요?”

 “아우, 시험. 시험 아, 머리야.”

  도형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조선후기. 도사가 되고 싶은 맹랑한 꼬맹이가 있었다. 도사가 되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다니는 어린 아이에 동네 어른들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꼬맹아. 저 산에 사는 구미호에게 가서 여우구슬 달라 하여라. 그럼 엄청난 도력을 얻어 최고의 도사가 된다 하더라.”

  세상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풋내 나는 어린 아이에겐 매우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이야기였다.

 “아이고 이 양반아! 어린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얘 너 저 산에 올라갈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아라.”

 “왜요?”

 “왜긴 왜야. 구미호 만나기 전에 호랑이 밥 될 것이 뻔하지 않으냐.”

 “아이 왜 그러오? 혹시 아오? 저 아이가 여우구슬을 받아 도~사가 되면 지 잃어버린 아비도 찾고 우리 마을 원님도 혼~을 내줄지.”

 “쯧쯧, 자네 그렇게 사또 흉보다가 들켜서 볼기짝이 터지도록 맞고 싶은가? 나랏님보다 무서운 게 원님인 걸 아직도 몰라?”

  결국 저이들끼리 왈가왈부하는 어른들 틈 사이를 빠져나오며 어린 아이는 ‘여우구슬, 여우구슬, 저 산에 사는 구미호의 여우구슬.’이라 되뇌었다.

 

  아픈 어미는 애저녁에 죽었다. 절 홀로 돌보던 아비는 어느 날에 사라졌다. 원님인지 나랏님인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높으신 분이 잡아갔다. 몇날 며칠을 울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절 두고 죽은 어미가 그리워 울고 절 두고 잡혀간 아비가 그리워 울었다. 어린 마음에 원망도 했다. 그래도 떠난 그 둘이 영영 돌아올 생각을 않더라. 다행히 아비의 오랜 친우가 절 거둬 배는 곯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그가 일하는 상단에서 잔일을 하며 보내던 날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와 저녁 그 사이 어드메, 얼굴을 가려 보이지 않는 이가 곰방대는 물고 장승처럼 서있었다. 그 상단에 물건을 사고팔고 왔다 갔다 하는 이가 워낙 많은 지라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곰방대를 물고 뻐끔 뻐끔 한창 연기를 피워내다 본인 앞을 종종 걸어가는 아이를 불렀다.

 “얘야.”

  갑작스런 부름에도 아이는 자연스레 대답하며 그의 앞으로 갔다.

 “예, 어르신.”

  곰방대를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턱 끝을 들어올렸다. 숙인 아이의 고개가 절로 올라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얼굴. 왜 인지 여전히 개지 않는 연기가 둘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다.

 “팔자 한 번 고되구나.”

  그의 말에 아이는 그저 눈만 꿈벅거릴 뿐이었다.

 “연으로 엮여, 연으로 끝날 팔자로구나.”

  그 말을 끝으로 아이의 턱 끝의 손을 치웠다. 그리곤 제 품 속에서 부채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곧 필요한 날이 올 것이니. 잘 간직해 두거라.”

  조심스레 받아든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찾았을 땐, 그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르신.”

 “아이구!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하지 않았니!”

 “괜찮네. 그래. 어언 일이더냐.”

  출타 후 방으로 들어온 어르신을 종종 거리며 쫓아 들어갔다. 어르신의 방에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이는 그 아이 하나였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언제나 웃으며 반가이 아이를 반겼다. 괜한 마음에 속이 타는 건 상단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고 곰방대를 피우는 사람?”

 “예, 어르신.”

 “허, 글쎄. 한양에서 온 책방을 한다는 이가 그런 모습이었지 아마.”

 “그 분은 뭐하시는 분이십니까?”

 “그 치? 도사지. 도술 부리는 도사.”

  그게 그 아이가 도사가 되겠다 만든 일이었다.

  어르신께는 말하지 않았다. 본인을 걱정할 것이 뻔하여. 그래서 같이 일하는 형님들과 아주머님께만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아이의 말에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구미호?”

 “얘야, 그 산은 호랑이 밥이 되기 십상이야. 산 넘어 산이지. 호랑이를 피하면 구미호한테 간을 뺏긴다고.”

 “그 듣자하니 구미호가 성격이 아주 괴팍하다지.”

 “그래. 어린 아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제 손에 걸렸다 하면! 간부터 뜯어 간다.”

 “살려주세요! 외칠 틈도 없는 기라. 인정머리라곤 눈꼽만치도 없으니께.”

 “도사니 구슬이니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그만 두고 그 산에 오를 생각은 추어도 말아.”

  그들이 수차례 말렸음에도 아이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도사가 되겠다고. 바쁘디 바쁜 상단 사람들이 아이만 붙잡고 말릴 수도 없었다. 결국 아이는 집을 나섰고 산으로 향했다. 이리 저리 걸어도 구미호는커녕 구미호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산 속에 구미호가 살았단 말만 들었지 산 속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는 알지를 못했다. 산 밑보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이리저리 바쁘게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구미호, 구미호, 여우구슬 구미호..”

  그러다 아주 정면으로 마주했다. 방금 전까진 없었는데,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나무 위에 앉아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찌 구미혼지 알았냐. 치마 옆으로 탐스럽기 그지없는 9개의 꼬리가 너풀거리고 있었으니까. 사실 아이는 눈이 마주친 순간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무표정을 지나 싸늘하기 그지없는 구미호의 표정에 아이는 아직 뜯기지도 않은 간이 이미 뜯긴 기분이었다. 아이는 아이었다. 무서움을 꾹 참고 입을 뗐다.

 “저기...”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구미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얼굴만 뚫릴 듯이 쳐다봤다. 풍성한 꼬리만 여전히 나풀, 나풀 흔들렸다.

 “저...”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양 손을 꼭 쥐었다. 어떻게 만났는데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었다.

 “저에게 여우구슬을 주세요!”

 “...”

  이쯤 되면 감히 무엄하다며 제 간을 쥐 뜯든, 뭔가 일어나야하는데 여전히 그 주위가 고요했다. 아이는 꼭 감은 눈을 살며시 떴다. 여전히 구미호는 그 자리에 동상처럼 있었다. 다시 눈이 마주친 그제 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우구슬이 무엇인진 아느냐.”

 “도, 도, 도술을 부리는. 도사가 되는...”

 “도사라...”

  구미호의 열린 입에 오히려 닫힌 건 아이의 입이었다. 난생 처음 듣는 구미호의 목소리는 그저 평범한 여인의 목소리인지라 아이는 더욱 헷갈렸다. 물론 제 눈에 보이는 9개의 꼬리가 그가 구미호인 것을 반증했지만, 소문처럼 성격이 괴팍하지도 자신의 간을 노리지도 않는 평범한 목소리의 여인이 자신이 구미호를 만났단 사실을 그저 꿈처럼 느끼게 했다.

 “도사가 되면 무얼 하려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아아, 그런 것이라면 주지 않는 게 좋겠구나.”

 “어째서 입니까? 자식이란 무릇 어버이가 보고 싶은 것을 정녕 모르신단 말입니까?”

 “연(緣) 집착하지 말거라. 그것이 널 속박하는 순간, 끝없는 고통 속에 잠식할 터이니.”

 “저희 아버지는 억울하게 관청에 잡혀가셨습니다. 아버지를 구하고 아버지를 잡아간 사또를 혼내줄 것입니다!”

  어느 새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있는 구미호는 아이로부터 등을 돌렸다. 새파랗게 어리디 어린 아이가 꽤나 간절히도 자신을 찾길래 나타났더니 여우구슬이 갖고 싶고 그 이유가 ‘제 아비가 보고 싶다’라... 안타깝게도 구미호의 마음엔 차지 않는 이야기였다. 여우구슬은 구미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물건. 마음에 들었다 한들 쉽게 내줄 수도 없는 물건이렸다. 그러나 돌아서는 구미호에 다급해진 아이는 한걸음 내딛으며 소리쳤다. 그 간절한 목소리에 구미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부디 저에게 도사가 될 수 있는 구슬을 주세요...”

  눈물어린 목소리가 구미호의 등을 두드렸다. 찬찬히 뒤를 돈 구미호는 아이를 향해 물었다.

 “아이야. 내가 너에게 여우구슬을 주면 너는 내게 무엇을 줄 것이냐.”

 “..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제야 아이는 구미호가 간을 빼앗는 요물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혹여, 제 간을 원하십니까?”

  아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뱉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느리지만 정확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구미호에 여우 구슬은 고사하고 간이나 빼앗기고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그런 아이의 말에 구미호는 처음으로 감정을 비췄다. 아주 작았지만 하하, 웃는 구미호에 아이는 죽음이 목전까지 왔다 생각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

 “간이라.. 네 정녕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더냐.”

  그제야 아이는 작게 ‘아니요오...’ 말끝을 흐렸다. 맞잡은 작은 손이 꼼지락거렸다.

 “근데 어찌하여 내게 간을 원하느냐 묻는 것이냐.”

 “마을의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구미호는 간을 원한다 하여...”

 “두렵지 않았느냐. 여우 구슬은 고사하고 간이나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랐을 상황인 것을.”

 “그래도... 도사가 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그런 아이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구미호는 아이의 허리춤에 달린 부채를 발견했다. 박영감 눈에 든 아이로구나. 어쩌면 그는 이미 이 둘이 만날 일도 그리고 이 아이가 도사가 될 미래도 이미 봤을지 모른다. 아니, 알았으니 이 부채를 아이에게 주었겠지. 그리고 나에게 떠넘기듯 맡기고 간 이 책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의 눈앞에 반짝이며 빛을 내는 주황구슬 하나가 나타났다.

 “이게... 무업니까?”

  그제야 박힐 듯 숙였던 아이의 고개가 올라갔다.

 “네가 원한 것 아니더냐.”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우구슬이라니. 이제 드디어 자신이 도사가 될 수 있다니! 아이는 양손을 뻗어 조심스레 여우구슬을 받았다. 아이는 받은 여우구슬을 자신의 보물 주머니에 담았다. 그 보물 주머니엔 제 어미가 남기고 간 가락지 하나와 제 아비가 남기고 간 돈 몇 푼이 들어 있었다.

 “그걸 왜 거기에 담느냐.”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보물 주머니를 품은 아이가 구미호의 말에 “예?”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것을 왜 거기에 넣느냐 말이다. 여우 구슬은 구미호의 생명의 구슬. 삼켜야 제 효능을 한단다.”

  삼키라니 이리도 큰 구슬을 삼키는 게 가능이나 한가. 아이는 반신반의 하며 다시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들다 구미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생명의 구슬이요?”

 “그것도 모르고 달라하였느냐.”

 “그런 것이라면 제가 가져가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되었다. 어차피 죽지도 못하는 몸이니. 구슬하나 없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저 죽는 만도 못하는 삶을 살겠지만. 어여 삼키기나 하여라. 삼키는 순간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 알 테지.”

 그리고 구미호는 박영감이 자신에게 맡기고 간 책 한권을 아이에게 건넸다.

 “천서(天書)니라. 세상의 모든 도술이 그곳에 담겨있어 그 책만 보면 못하는 도술이 없고 이기지 못하는 자가 없다 한다. 명도, 청도 수많은 사람을 보내 이 책을 얻고자 하였으나 얻은 이가 하나도 없다고 하니. 네가 처음이겠구나.”

 “이리 귀한 것을 저에게 주어도 되는 것입니까?”

 “돌려받을 것이다. 네가 성년이 되는 해 첫 번째 보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그때까지 네 아비도 만나고 네 아비를 괴롭힌 자들도 모두 혼내주고 오너라. 약조할 수 있겠느냐.”

 “그럼요! 당연히 돌려드리겠습니다.”

 “모두 그리들 말하였지. 여우구슬은 인간에게 영생을 가져다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괴로움인지도 모르고... 잊지 말거라. 네가 성년이 되는 해 첫 보름이니라.”

 “꼭! 꼭 구미호님을 만나러 다시 오겠습니다. 수결을 하올까요?”

 “되었다. 그런 인간들의 약조는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만 가거라. 피곤하구나.”

 “그렇담 제가 해드려야 할지...!”

  아이를 등지고 숲속을 향해 걷던 구미호는 고개를 아이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두 눈이 깜박 깜박, 감았다 뜬 후 구미호가 말했다.

 “언젠가 내가 인간이 되면 술이나 한 잔 하자꾸나. 아이야.”

  그렇게 구미호는 더 깊고 깊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가 성년이 되기까지 꼬박 7년간, 구미호는 가장 길고 깊은 겨울잠에 들었다.

 

 -

 

 와장창-

  충청도에서 제일간다는 대감 집의 살림살이 깨지는 소리가 동네를 휘감았다. 고을 잔치를 앞두고 있던 지라, 만든 음식도 산더미, 받은 뇌물도 산더미인 그 집이었다.

 “네 누구냐! 언놈이 감히 내 집을 이리 박살내!”

 “나? 도사 전우치요.”

  7년 사이, 전우치는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조선 팔도 그 어디를 돌아다녀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하니 과연 그게 맞는 말이었다. 도사라고 나타나 백성들의 간지러운 곳을 쏙쏙 골라 긁어주니 싫어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이치요, 도술이요. 그 모든 것을 터득하고 통달했을 즈음, 가장 처음은 자신의 아비를 찾는 일이었다. 근데 찾고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더라. 땅을 치고 울다 한 일이 억울히 죽은 자신의 아비의 원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원님의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곳간을 풀어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원님이고 나랏님이고 골치 아픈 전우치를 잡고자 여간 노력을 한 게 아니었으나 얼굴도 나이도 어디 사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니 이것 참 아랫사람들만 죽어나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동네방네 다 들쑤시고 다니는데 왜 얼굴을 모르냐. 신기한 도술로 얼굴을 하도 바꾸고 다니는 지라 그를 본 이 마다 말하는 것이 달랐다. 어느 이는 그가 80먹은 노인네라 말했고 어느 이는 아주 잘생긴 젊은 청년이라 했다. 그리고 운 좋게 그를 잡아 의금부에 호송한 적이 있었다.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칼도 채우고 줄로 칭칭 감아 감옥에 넣고 이제 임금님만 기다리던 날이었다. 아니 근데 임금님 오실 시간에 맞춰 대령하고자 감옥에 다시 갔더니 이게 웬일이야. 사람은 어디가고 웬 볏짚이 칼을 차고 앉아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날로 나랏님 머리 싸매고 앓아 누우셨다.

  그리고 아까 말한 충청도 대감 집을 박살낸 그날은 성인이 되기 딱 3개월 전이었다.

 

 “구미호! 구미호!”

  7년 전 그날처럼 그 산을 오르는 이는 다름 아닌 전우치였다. 이리저리 부지런히 고개를 돌리며 구미호를 찾았지만 여간 보이질 않았다.

 “아니 어디서 만나는지 약조도 안하고 바보같이 헤어져 버렸구만. 구미호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딜 그리 헤매느냐.”

 “어우! 깜짝이야. 구미호!”

 “어째 몸은 컸으면서 간은 그대로 콩알만 하구나.”

  여전히 나무 위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구미호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전우치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곤 여전히 가슴께를 쓸어내리는 전우치의 옆으로 풀썩 내려갔다.

 “그래서 어찌 그리 유명한 도사가 되었을꼬.”

 “아이, 나는 갑자기 나타나는 쪽이었지 당하는 쪽이 아니었지 않는가.”

 “네 간은 먹어도 쓸모가 없겠구나.”

 “7년 만에 만나서 그리 무시무시한 소리만 할 건가?”

 “네 어찌 약속을 지키러 왔구나.”

 “사람이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겠는가. 자네, 아주 얼굴색이 말이 아니구만. 자. 이거 다시 가져가시게. 내가 오는 길에 저 냇가에서 깨끗이 씻어왔어.”

 그가 건넨 것은 고운 비단 주머니였다. 제 주인을 알아본 것인지 여우구슬은 주머니 안에서도 밝게 빛났다.

 “난 네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날 그런 파렴치한으로 봤다니. 실망이구만.”

  구미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제 주위 구미호만 봐도 인간과 사랑에 빠져 여우구슬을 넘겨줬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하고 모든 능력을 잃은 채 시름시름 앓으며 구미호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본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여우구슬을 넘겨줄 당시 아이는 맑고 순순한 영혼이었지만 여우구슬을 가지고 거대한 능력과 도술을 가진다면 이야기가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여우구슬이 무언가. 이치를 깨닫게 하고 더 나아가 영생을 가지게 해주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가 아이에게 여우구슬을 건넨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기나긴 인생이 너무나 무료해서. 아이의 눈이 간절해 보여서. 그리고 그 아이와의 연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이미 시작되었다 생각했으니까.

 “에이, 자네랑 마시려고 내 술도 가지고 왔는데. 나 혼자 마셔야 겠구만.”

  그리 말하면서도 품속에서 잔을 꺼내 먼저 구미호에게 건네는 아이었다. 잔속에 달빛이 부서져 반짝였다. 길고 무료한 인생이 잠시나마 흥미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제 동료들을 보며 인간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제 앞에 앉아 술잔을 부딪치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동료들이 무얼 보고, 무얼 믿으며 구슬을 건넨 건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이야. 네 이름은 무어더냐.”

 “나는 전가네 우치라 하오.”

  전우치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환한 달빛이 안주가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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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1세기 도사 35 2020 / 9 / 30 254 0 7619   
34 21세기 도사 34 2020 / 9 / 29 257 0 5780   
33 21세기 도사 33 2020 / 9 / 27 242 0 5116   
32 21세기 도사 32 2020 / 9 / 25 243 0 5090   
31 21세기 도사 31 2020 / 9 / 23 251 0 6801   
30 21세기 도사 30 2020 / 9 / 22 246 0 8018   
29 21세기 도사 29 2020 / 9 / 20 247 0 7555   
28 21세기 도사 28 2020 / 9 / 16 246 0 5935   
27 21세기 도사 27 2020 / 9 / 13 258 0 6935   
26 21세기 도사 26 2020 / 9 / 10 244 0 9542   
25 21세기 도사 25 2020 / 9 / 4 261 0 5338   
24 21세기 도사 24 2020 / 8 / 29 241 0 5112   
23 21세기 도사 23 2020 / 8 / 17 259 0 11612   
22 21세기 도사 22 2020 / 8 / 11 258 0 5098   
21 21세기 도사 21 2020 / 8 / 2 276 0 10576   
20 21세기 도사 20 2020 / 7 / 27 264 0 5463   
19 21세기 도사 19 2020 / 6 / 14 296 0 6482   
18 21세기 도사 18 2020 / 4 / 20 311 0 5034   
17 21세기 도사 17 2020 / 2 / 17 299 0 5857   
16 21세기 도사 16 2019 / 12 / 8 306 0 5497   
15 21세기 도사 15 2019 / 11 / 9 332 0 5196   
14 21세기 도사 14 2019 / 11 / 7 324 0 7693   
13 21세기 도사 13 2019 / 11 / 5 349 0 10150   
12 21세기 도사 12 2019 / 11 / 2 310 0 5163   
11 21세기 도사 11 2019 / 10 / 29 350 0 7013   
10 21세기 도사 10 2019 / 10 / 26 321 0 7172   
9 21세기 도사 9 2019 / 10 / 22 309 0 7060   
8 21세기 도사 8 2019 / 10 / 19 338 0 7467   
7 21세기 도사 7 2019 / 10 / 17 330 0 6405   
6 21세기 도사 6 2019 / 10 / 15 321 0 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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