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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천마검엽전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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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에 지옥이 구현되고 마의 군주가 현신하면 그누구도 그를 막지 못하리라!
이는 태초 이전에 맺어진 혼돈의 맹약, 육신에 머문 자나 육신을 벗은 자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구속의 약속일지니……
주검과 피, 그리고 살기가 강물처럼 흐르는 전장에서 본연의 힘을 되찾게 되는 신마기!
신마기의 주인은 전장을 거칠 때마다 마기와 마성이 점점 더 강해져 종국에는
그 자체를 마(魔)가 된다…….
제어되지 않는 신마기…
이는 곧 혼돈의 저주, 겁화의 재앙이다!

 
제 10 화
작성일 : 16-07-12 14:07     조회 : 627     추천 : 0     분량 : 7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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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팔월도 다 지나갈 무렵이 되었다.

 그러나 척천산장의 후원에 있는 와호당, 이천릉의 거처에서는 한여름의 뙤약볕도 뜨겁다고 자신하지 못할 열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엽아는 앞을 보지 못해. 그런 아이에게 자네들의 무공을 전수한다고 어찌 대성할 수 있겠나. 투로는 어떻게 볼 것이며, 배움이 올바른지 그른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적의 접근은 또 어떻게 알고 막아낼 수 있겠는가. 저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지, 자네들의 그 손발을 힘겹게 놀리는 무공이 아니야!”

 구양문의 음침하던 눈매는 들끓는 열기로 인해 뜨겁게 변해 있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음침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열혈의 청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좌우와 정면에는 네 명의 노인이 빙 둘러앉아 있었는데 이천릉을 비롯한 노인들이었다.

 구양문의 말에, 장현이 둥그스름한 코에서 콧물이 튀도록 크게 코웃음 쳤다.

 “흥! 구양 노귀야, 그 무슨 네가 부리는 이매망량들이 자다가 재채기할 헛소리냐. 무공이 일정한 경지를 넘어서면, 시력은 오히려 본질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귀찮은 물건일 뿐이야. 오감을 넘어선 곳에 기감(氣感)이 있고 그것을 넘어서 초감(超感)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냐! 기감의 단계만 도달해도 시력이 있고 없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시커먼 영감탱이야!”

 말을 하는 장현도 그런 경지가 말처럼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랴.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당대 무림에서도, 그 정도의 성취를 얻은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장현은 억지라도 부려야만 했다. 구양문이 익히고 있는 공부는 시력이 없는 상태에서 배우기에는 무공보다 훨씬 나은 종류였으니까.

 그가 다시 한 번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하긴 일 년 열두 달 삼백 육십오 일을 그 음침한 지하 골방에서 부적과 귀신 나부랭이와 뒹굴며 사는 네가 그처럼 높은 경지를 알 수야 있겠느냐마는.”

 “이 짜리몽땅한 늙탱이가!”

 서로를 노려보는 구양문과 장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누군가 두 사람 사이에 심지만 가져다 대면 바로 불이 붙을 것만 같은 분위기이고 기세였다.

 이천릉, 남일공, 노굉은 구양문과 장현의 말싸움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엿새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말싸움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남일공과 노굉이 구양문과 장현처럼 싸웠었다.

 그들이 지쳐 입을 다물자 구양문과 장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 것이다.

 남일공과 구양문이 검엽을 욕심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이유가. 그러나 장현과 노굉이 맹인인 검엽을 욕심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현의 암기술과 노굉의 권법은 맹인이 배우기에는 실로 난해한 무공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남일공과 구양문은 장현과 노굉에게 더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현과 노굉에게도 남일공이나 구양문 못지않게 검엽을 욕심낼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엽이 도착하고 이틀 뒤부터 이천릉은 검엽에게 도인술을 전수했다.

 자신의 거처에서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검엽의 건강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검엽이 아프면 자신을 믿고 검엽을 맡긴 여은향을 볼 면목이 없으니까.

 마침 이천릉의 거처에 놀러 왔던 장현과 노굉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도인술의 전수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일각도 지나기 전에 기절초풍한 얼굴들이 되었다.

 그들 중 검엽의 맹인답지 않은 운신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도인술은 몸을 움직여 배워야만 하는 종류의 공부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검엽에게 전수하는 과정은 시력이 정상인 사람에게 전수할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일.

 이천릉은 검엽에게 도인술의 구결을 알려준 후 직접 검엽의 몸에 손을 대고 자세를 잡아주었다.

 도인술의 구결이라고 해야 삼백여 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천릉 등은 처음에 그 구결을 한 번 듣고 외운 검엽의 머리가 똑똑하다는 정도의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검엽이, 이천릉이 검엽의 몸을 움직이며 한 번 가르쳐 준 도인술의 일흔두 가지 자세를, 두 번째에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을 본 노인들은 경악했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이천릉이 손으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알려준 일흔두 가지의 복잡한 자세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하는 재능은 그들이 일찍이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검엽의 천재성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게 배움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노인들 사이에서 검엽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네 노인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이천릉이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언제까지 어린아이들처럼 다툴 건가? 더구나 내 방에서! 요 칠팔 일 동안 시끄러워서 살 수가 있냔 말일세! 누가 가르칠 것이든 빨리 결론을 내라고!”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어투.

 네 노인의 시선이 일제히 이천릉을 향했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였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입 닥치고 앉아 있어!”

 그 기세의 흉험함은 절정이라, 이천릉은 바로 짜증스런 기색을 얼굴에서 지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주먹 네 개가 동시에 날아올 분위기였으니까.

 검엽을 가르칠 권리(?)를 얻으려는 네 노인에게 이천릉은 경계 대상 제 일호였다. 검엽이 찾아온 사람이 이천릉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천릉에게는 그들 네 명에게 없는 무언의 권리가 있었다. 검엽에 대한. 물론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긴 했지만.

 만약 이천릉이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다면 다른 세 명은 헛물을 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천릉이 그런 기색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알 수 없는 이상 노인들은 누구도 그의 개입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 경계할 수밖에.

 이천릉은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그는 다른 노인들과는 달리 검엽의 자질을 알고도 그에게 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검엽을 데리고 온 여인과 그녀의 주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다른 노인들의 능력이, 당세 무림의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일신에 지닌 공력과 비교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임도 분명했다.

 그런 그녀들이 검엽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에게 보냈음은 필유곡절(必有曲折)이었다.

 짜증을 삭이며, 자신의 방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어 버리는 네 노인의 다툼을 지켜보던 이천릉의 인내심도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가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시끄러!”

 네 노인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천릉은 그들의 살벌한 기세에 굴하지 않으며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입만 뻥긋하면 제일 먼저 이 방에서 쫓아버리겠다. 그러니 닥치고 들어!”

 지금이야 척천산장의 후원에서 하늘만 보며 소일하는 노인이 된 이천릉이지만, 한때는 섬전수라는 별호보다 노해광도(怒海狂濤)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던 그다.

 노인들은 침묵했다.

 이천릉이 정말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진심으로 화를 내면 다혈질의 정점에 있다는 척천산장주 소진악도 손을 쓰지 못한다.

 “그렇게 그 녀석을 원하면 그 녀석이 선택하게 해라. 그 녀석이 사부로 모시겠다고 하는 녀석이 사부가 되면 되잖아. 여기서 백날을 싸워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게 뻔한 이런 짓을 더 이상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장현 등은 떨떠름한 눈초리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천릉이 제시한 해결책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그들이라고 그런 방법을 몰라서 지금까지 신경전을 벌인 게 아니었다.

 이천릉의 제안대로 하면 검엽이 지목하지 않은 세 사람은 입 다물고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검엽의 자질은 그렇게 쉽사리 포기할 정도로 찾기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검엽이 선택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치졸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절실하기 짝이 없는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다.

 서로의 눈치를 보던 노인들은 한숨을 토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무도 먼저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이천릉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아야 했다.

 

 이천릉을 제외한 네 노인은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이며 검엽을 주시했다.

 그를 부른 것이 일각 전.

 일각 동안 노인들은 검엽에게 자신들의 무공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일종의 품평회(?)를 가진 후, 자신들 중 한 명을 사부로 선택할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문파의 비전을 전해줄 훌륭한 자질의 제자를 맞이할 순간인데다가,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천릉을 제외하더라도 경쟁자가 셋이나 되는 것이다.

 검엽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빙 둘러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을 향해 장읍을 취했다.

 “어르신들께서 저를 이처럼 예뻐해 주시니 무어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윗사람에게 엄한 훈육을 지속적으로 받지 않았다면, 검엽의 나이에 저런 정중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아이는 정말 드물다.

 ‘뉘 집 자식인지 정말 제대로 키웠네. 저 녀석을 제자로 들이면 말년은 대접받으면서 지낼 수 있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현의 생각.

 ‘꼬마 놈이 너무 늙은 티를 내는 거 아녀?’

 평생을 제멋대로 살아와 예의범절과는 거리가 먼 노굉의 생각.

 ‘분위기가 밝기보다는 야간 음침한 것이 본 문의 후예로 딱이다.’

 스산한 미소를 짓는 구양문.

 ‘저만큼 자세가 잡힐 정도로 가르친 집안이니 다른 것의 기초도 훌륭할 거야. 놓칠 수 없어.’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알려진 남일공의 탐욕스럽게 느껴지는 눈빛.

 그들 사이에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 앉아 돌아가는 걸 지켜보고 있는 이천릉.

 노인들의 기색이 어떤지 알 도리가 없는 검엽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사정이 있어 사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턱을 괴고 있던 이천릉의 팔이 탁자 위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네 노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폭탄선언이었다.

 그들이 누구던가.

 이천릉을 논외로 치더라도 장현은 당대 무림의 최정상을 달린다는 팔절의 일인이었고, 다른 세 사람도 장현에게 뒤지지 않는 비전을 가진 노인들이었다.

 가히 기연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기회를 검엽은 간단하게 걷어차 버린 것이다.

 장현이 다급하게 침을 삼키며 말했다.

 “엽아,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살면서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란다. 다시 생각해 보거라.”

 “장가의 말이 맞다. 우리 중 어느 한 사람의 진전이라도 물려받으면 천하의 어느 누구도 너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가진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곤란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장담할 수 있다. 한 번 더 생각해 봐라.”

 장현을 거든 사람은 남일공이었다.

 노인들의 쟁탈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이천릉도 끼어들었다.

 “엽아, 이 늙은이들이 주책없기는 하다만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없어. 이건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란다. 그렇게 단번에 거절하지 말고 좀 더 숙고한 후 결정을 하는 게 좋겠구나.”

 하지만 검엽은 노인들의 만류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는 노인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방을 나갔다.

 그 태도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와호당의 노인들조차 더 이상 말을 붙여볼 엄두를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남은 노인들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로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자신들의 비전을 가르쳐 주겠다는 걸 면전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아이가 있을 줄이야.

 이천릉조차 정신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천릉을 꼬아보는 노굉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가야, 엽아에 대해 말해봐라. 저 아이에게 있다는 사정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이런 기회를 발로 걷어차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엽아가 보통의 평범한 아이라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어떤 것인지 가늠을 못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되겠지만…….”

 이천릉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라고 검엽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나도 몰라.”

 “저 아이를 데려온 그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이냐?”

 남일공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천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별 말이 없었다. 그저 가능하면 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옆에서 도와달라는 말뿐이었다.”

 “원하는 대로?”

 남일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검엽을 데려온 여인이 검엽에게 악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건 이천릉이 검엽을 대하는 태도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여인이 이천릉에게 검엽을 원하는 대로 살도록 도와달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그녀도 검엽의 삶에 관여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섯 노인 중 머리 좋기로는 그가 제일이다. 평생 그 어렵다는 진법과 기문진식을 벗하며 산 그였기에, 그것은 다른 노인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노인들 중 성격이 가장 괴팍하고 급한 구양문이 불쑥 말했다.

 “그 여자가 뭐라 했든, 또 엽아의 사정이 무엇이든 난 엽아를 포기할 수 없다. 말로 해서 안 되면 강제로라도 엽아를 제자로 삼아버리겠다!”

 결기가 느껴지는 어조였다.

 다른 노인들의 눈빛도 구양문의 눈빛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결기는 이천릉이 입을 여는 순간 무참하게 부서져야 했다.

 그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명백한 조소였다.

 “강제로라도? 미쳤구먼. 만약 그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명년 그날이 자네들의 제삿날이 될 거야.”

 “뭐라고!”

 분노한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방 안의 기물들이 지진에 휘말린 것처럼 뒤흔들렸다.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그들 중 누구도 타인에게 이런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다.

 말을 한 사람이 이천릉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당장 출수했을 것이다.

 이천릉의 심드렁한 대답이 방 안을 울렸다.

 “말 그대로야. 그녀가 노한다면 자네들은 죽어. 내가 일 초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무공을 가진 그녀야. 자네들 중 나를 꺾을 사람 있나? 그러니 강제로니 뭐니 하는 망상은 하지도 말게.”

 지난날 여은향은 그를 삼 초 만에 패배시켰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섯, 그는 절정기인 사십 대였다.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가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불문가지였다.

 그녀와 겨루게 된다면 그는 그녀의 일 초가 아니라 반 초를 받아낼 자신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가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현실이 그러했다.

 검엽을 데리고 온 여인은 그녀의 수하에 불과한 듯했는데도 그보다 강했다.

 팔절의 일인인 그도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뚜렷하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하조차 그러한데 당사자야 말해 무엇 하랴.

 명백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침묵이 강물처럼 흘렀다.

 노인들의 쩍 벌어진 입에서 침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천릉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 준 충격은 그렇게 컸다.

 자존심 강하기로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섬전수 이천릉이 스스로를 저렇게 낮추는 것을 그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천릉의 태도는 노인들에게 검엽을 이곳으로 보낸 여인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었다.

 당세를 삼분해 지배하고 있는 구주삼패세의 주인들, 천공삼좌(天公三座)의 누구도 이천릉을 단 일 초에 패배시키지는 못할 터였으므로.

 장현이 슬쩍 이천릉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녀가 대체 누구이기에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가?”

 이천릉의 진물 가득한 눈이 장현을 향했다.

 “장가야,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심드렁한 어조였지만, 이천릉의 눈 깊숙한 곳에 흐르는 것은 경외심이었다.

 그것을 느낀 노인들은 진짜 침묵했다. 섬전수 이천릉이 경외심을 느끼는 여인이라니…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진실에 직면한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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