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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나답지 않아
작성일 : 19-11-05 09:07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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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집 여기저기서 캐시, 캐시, 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도 손님들을 아는지 자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방긋방긋 웃었다.

 멍하니 아이를 보는 내게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손녀 참 예쁘죠?”

 “네. 예쁩니다.”

 “기획사에서 연예인 시켜준다고 난리에요. 얼마 전에 과자 광고도 찍었어요.”

 

 손녀를 자랑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손녀만큼 천진난만했다.

 하지만 손녀를 며느리에게 돌려줄 땐 엄격한 귀부인의 얼굴로 돌변했다.

 

 “늦었다. 가라.”

 “예.”

 

 벤츠가 사라지자 할머니가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그때쯤 박 사장의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이부. 이 친구가 미쳤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할머니가 가만히 웃었다.

 나는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권. 어떻게 미쳤어요?”

 “돈을 싫어하는 미친병에 걸렸습니다.”

 

 할머니가 또 카랑카랑한 웃음소리를 냈다.

 목감기 때문에 쉰 소리까지 섞여 있었다.

 

 “아까 잠깐 들었는데 우실로 얘기가 나오더군요.”

 “우실로를 아세요?”

 “아뇨. 여기저기서 얘기만 들었어요.”

 “어떤 사람이라고들 하던가요?”

 “음...”

 

 할머니가 손을 허리에 짚고 전등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눈이 더 가늘어졌다.

 할머니는 한참을 그런 자세로 있더니, 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욕심 많은 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의 개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권은 권다워야 해요.”

 

 할머니는 이 말을 남기고 다른 손님에게 갔다.

 박 사장은 취한 뒤부터 이런저런 사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화상교육사업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그건 허브 사업이 파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 사장의 주량이 더 늘어난 것도 불길한 징조였다.

 

 백발의 손님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린 할머니가 그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 부러움을 못 견디고 노래를 시작할까봐 나는 박 사장을 부축해 술집을 나왔다.

 

 **

 블루버드를 타고 기사에게 뿌리인다를 외쳤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기사가 날 소리쳐 깨웠을 때 차창 밖으로 익숙한 뿌리인다의 도로가 보였다.

 귀가하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인도 없는 좁은 도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밤 11시였다.

 나는 취기를 느끼며 비틀비틀 택시에서 내렸다.

 영업이 끝난 돌담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다가 잠시 망설였다.

 아무도 없는 루꼬에 혼자 들어가기가 오늘은 더욱 싫었다.

 나는 열쇠를 도로 넣고 터벅터벅 아무데나 걸었다.

 

 도로에선 차들이 앞차의 꽁무니에 전조등을 휘둘렀다.

 오토바이들이 무법자처럼 차들의 행렬을 이리저리 비집고 돌아다녔다.

 나는 계속 걸었다.

 뿌리인다의 허름한 루꼬들은 대부분 불을 껐다.

 오직 큰길 저편의 쇼핑몰만이 불을 환하게 켠 채 퇴근하는 직원들을 내쫓고 있었다.

 

 한 무리의 폭주족이 쇼핑몰 뒤편에서 줄 지어 나왔다.

 폭주족 이래봤자 동네 젊은이들이 허름한 오토바이로 밤 마실을 나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워졌다.

 한 사회의 이방인은 작은 위협에도 놀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 속에 사는 것이다.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줄 돌담이 나타날 때까지 발걸음을 조금 빨리 놀렸다.

 마침내 돌담 간판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현관문으로 다가가려다 멈춰 섰다.

 

 누군가 돌담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헬멧을 쓴 여자였다.

 헬멧 밑으로 검은 곱슬머리가 빠져나와 어깨에 걸렸다.

 여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다이아몬드라도 박혀 있는 것처럼 간판만 보고 있었다.

 

 창백한 가로등 불빛이 핼멧에 떨어졌다.

 가로등의 반사광에 비친 여자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줄리. 웬일이야?”

 

 줄리가 뒤를 돌아봤다.

 헬멧을 쓰니 눈이 더 커 보였다.

 줄리는 그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쁜 일을 한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퇴근하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왜?”

 “그냥 돌아다니고 싶어서요.”

 

 나는 루꼬 벽에 세워둔 줄리의 오토바이를 보았다.

 줄리 만큼이나 작은 스쿠터였다.

 

 “근데 간판에 뭐 묻었어? 왜 그렇게 쳐다 봐?”

 “그냥 허전해서요.”

 “뭐가 허전한데?”

 

 줄리는 입을 다물고 잠시 망설이다 다시 말했다.

 

 “그냥... 우리가 아니라 딴 사람들이 돌담을 운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웃었다.

 줄리는 방금 ‘끼따’(우리)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어에서 ‘끼따’는 자신과 대화의 상대방을 함께 어우르는 말이다.

 반대로 ‘까미’는 상대방을 제외한 ‘우리’를 뜻한다.

 나는 줄리의 입에서 나온 ‘끼따’라는 단어가 참 정겹고 따뜻하게 들렸다.

 

 “근데 미스뜨르는 왜 이제 와요?”

 “나도 돌아다녔어. 돌아다니고 싶어서.”

 

 줄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타요.”

 “왜?”

 “돌아다니고 싶다면서요. 그럼 돌아다녀야죠.”

 

 나는 줄리의 오토바이에 올라타, 안장에 묶여 있던 보조 헬멧을 썼다.

 헬멧이 작아 머리통이 꽉 끼었다.

 

 "이거 누구를 위한 헬멧이야? 네 조카?"

 “미스뜨르가 운전해요. 가고 싶은 데로 가게.”

 “난 자전거도 못 타.”

 “아두...”

 

 줄리가 시동을 걸었다.

 둘이 타기엔 너무 작은 스쿠터가 힘겹게 털털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로 갈까요?”

 “몰라. 아무데나.”

 

 우리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줄리는 경적을 울리는 차량 사이를 헤집다가 쇼핑몰 앞에서 우회전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스쿠터가 쓰러질까 무서워 안장을 꽉 잡았다.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줄리야! 대학교로 가자.”

 “거긴 왜요?”

 “몰라. 거긴 조용하잖아.”

 

 줄리가 골목에서 빠져나와 수리아 외국어대학교 쪽으로 가는 좁은 도로를 탔다.

 줄리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코를 간질였다.

 나는 한 손으로 안장을 잡고 한손으로 코를 긁다가, 줄리가 방향을 틀 때 떨어질 뻔했다.

 

 “아악! 조심해서 운전해! 사람 다쳐!”

 “아두...”

 

 외국어대학교 정문이 보였다.

 하지만 쇠사슬로 문이 잠겨 캠퍼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줄리가 정문 옆에 있는 가루다상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힌두 신화에 나오는 새 가루다를 참 좋아한다.

 무슨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있으면 가루다라는 이름이 자주 들어간다.

 국영 항공사 이름도 가루다고, 국가기관이나 대형 건물 앞에도 가루다를 세워놓곤 한다.

 

 “여긴 아무 것도 없잖아요. 안에도 못 들어가고.”

 “난들 문이 닫혀 있을 줄 알았나. 캠퍼스 산책하려고 했지.”

 

 나는 가루다의 머리를 만졌다.

 서늘하게 식은 화강암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줄리. 얘는 너무 못 생기지 않았어?”

 “위엄을 갖춘 모습이라고 해주세요.”

 

 가루다는 곧 빠질 것처럼 튀어나온 눈으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많은 인간 중 심하게 땅딸막한 몸에 날개를 붙여 놓은 것도 웃겼다.

 저 위대한 비슈누신의 전용 탈것 치고는 외모가 형편없었다.

 그래도 나는 가루다가 귀여워 자꾸 쓰다듬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우기가 지나도 자카르타의 바람은 지지 않는다.

 저지대 항구도시 자카르타는 이따금 한밤중에 폭풍처럼 강한 바람으로 온 거리를 흔든다.

 이런 밤, 밖에 있으면 춥기까지 하다.

 바람 때문인지 점점 취기가 물러나는 것 같았다.

 

 줄리가 헬멧을 벗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허공에 펄럭였다.

 나도 머리에 꽉 끼는 헬멧을 낑낑거리며 벗었다.

 줄리는 두 손으로 날아오르는 앞머리를 붙들고 나를 보았다.

 

 “그거 알아요? 미스뜨르는 사업과 잘 안 맞아요.”

 “나도 알아.”

 “크게 사업을 벌이다간 너무 힘들어져서... 힘들어져서...”

 “힘들어져서 죽을 거라고?”

 “날아가 버릴 거예요.”

 

 나는 웃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다.

 일 때문에 한나절이라도 사람을 만나면 힘이 빠져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더 힘들었다간 쓰러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 한다.

 

 나는 가루다의 뾰족한 부리를 만졌다.

 그 부리 끝에도 작은 이슬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거 타고 돌아오면 되지.”

 

 줄리는 웃지 않았다.

 나는 멋쩍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고, 검은 구름들이 뭔가에 쫓기듯 날아갔다.

 길가의 먼지들이 날아올라 눈이 따가웠다.

 

 “죽을 때... 뭐가 더 후회가 적을까?”

 “무슨 소리에요?”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답지 않아.”

 

 나는 고개를 떨궜다.

 가루다상의 머리에 다시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이 아프도록 힘을 주었다.

 

 “줄리. 곧 2호점이 생길 거야.”

 “2호점만 생기겠어요? 3호점, 4호점 막 생기겠죠.”

 “아냐. 2호점만.”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줄리가 인상을 쓰며 나를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우리 힘으로 2호점을 열거야. 우리 힘으로만.”

 

 줄리가 마침내 웃었다.

 저렇게 예쁜 웃음을 왜 항상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돌담으로 돌아와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게 전화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캐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안 되는 거죠?”

 “미안해.”

 “뜨르스라. 그럴 줄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된 캐서린의 흐느끼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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