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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꿈꾸지 않는 자
작가 : 양박사
작품등록일 : 2019.11.4

한번도 꿈꿔본 경험이 없는 주인공이 어느 날 처음으로 기묘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동시에 잠들고 동시에 깨는 특이한 증상을 가진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주인공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운데...

 
꿈꾸지 않는 자 (4~7)
작성일 : 19-11-05 08:21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8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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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침을 못 먹었다.

 아침 먹기에 조금 어정쩡한 시간에 일어난 탓이다.

 출근길에 회사 앞 샌드위치 트럭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산다.

 이천원짜리.

 식빵 두 쪽 사이에 계란, 다진 양파와 감자를 섞어 만든 패티에 케첩을 뿌린 샌드위치.

 맛도 식감도 제법 괜찮다. 가격까지 생각하면 완전 땡큐다.

 맛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는 내게 딱 맞은 음식일지도.

 아저씨는 사각형의 식빵을 먹기 좋게 삼각형모양으로 반을 잘라 알루미늄 호일로 싸준다.

 이천원을 건넨다.

 아저씨는 손가락 부분만 잘라낸 면장갑을 낀 손으로 돈을 받고는 트럭 천장에 달아놓은 검은 비닐 뭉치에서 하나를 툭 떼어 샌드위치를 담아준다.

 손가락도 장갑도 더럽다.

 그런데 묘하게 이런데서 파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난적은 한 번도 없다. 단 한번도.

 만든 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뜨뜻하다.

 날은 덥지만 이 뜨뜻함은 싫지가 않다.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차라리 아침을 먹고 나올 걸 그랬다.

 

 사무실에서 먹기가 조금 그래서 곧장 휴게실로 향한다.

 여섯 평 정도 되는 회사 휴게실에는 먼저 온 여직원들 세 명이 격렬한 토론 중이다. 우리 팀의 세경씨도 그 중에 끼어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녀들의 대화가 잠시 멈칫한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그녀들은 나와의 심리적 거리 유지를 위해서인지 휴게실 문쪽으로 슬금슬금 이동한다. 내가 들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직원들은 힐끗 나를 보고 2초 정도 눈빛을 교환한다. 나와 그녀들과의 거리, 그리고 내 귀에 꽂힌 이어폰의 예상 데시벨 값을 보정 후 선형대수와 베르누이 방정식을 이용하여 그녀들의 대화의 볼륨을 순식간에 조절한다. 이 정도 거리와 음량이면 됐다는 확신이 섰는지 이내 하던 얘기들을 계속한다.

 

 다 들린다 요것들아. 이어폰은 그냥 뻘쭘해서 꽂고 있는 거야.

 

 주말 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침이지만 힘들이 넘친다.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주가 돕는 것일까? 아니면 주말마다 몸에 좋은 거라도 먹으러 다니는 것일까?

 그녀들의 에너지가 부럽다. 젊음도 부럽다.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적어도 아침 10시까지는 말할 기운조차 나질 않는다.

 이놈의 아침 무기력증...

 그녀들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모두 입사한 지 삼 년도 넘는 베테랑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휴게실에서의 대화는 귓속말 빼고는 다 들린다.

 나는 그냥 안 들리는 척하며 샌드위치를 꺼내서 먹기 시작한다.

 스마트 폰을 꺼내어 뉴스를 훑어본다.

 정치, 경제 다 시시한 뉴스들뿐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기사는 어제부터 난리 중인 탑 여배우와 탑 남배우의 열애설에 관련된 기사다. 한창 이슈였던 정치인 놈들 비리를 또 이렇게 덮으려나 싶다.

 그밖에는 인도 북부지방에 2천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국가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것 정도다.

 과학자 놈들이 달은 정복했어도 지구는 아직 덜 정복한 모양이다.

 여하튼 덕분에 음모론자인 내 친구 서노돈이랑 대화꺼리가 생겼다.

 서노돈. 내 친구 음모론자 쉐리.

 온갖 음모론을 섭렵하고 있는 이놈은 아폴로 달착륙 조작설은 물론, 랩틸리언인가하는 파충류가 인간 가죽을 뒤집어쓰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 놈이다.

 이번 뉴스도 이미 5초만에 논문을 써놓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음모론 맹신자...

 심지어 이 쉐리는 신혼여행 조차 미국 네바다로 갔다. UFO 출몰지역인 51구역 가보겠다고 말이다.

 마누라가 보살이지... 이런 놈이랑 결혼을...

 그나마 제수씨에게 다행인 건 이놈이 돈 꽤나 버는, 펀드매니저라는 거다. 해외투자 쪽을 주로 맡고 있는 녀석은 직업적 이점을 백분 활용해서 본인에게 제공되는 공식, 비공식 정보들을 이용해 범세계적인 음모를 세계정치, 외교, 자원문제까지 버무려서 추론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이 꽤나 그럴싸하다.

 게다가 몇몇은 진짜 현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멘탈도 엄청 강해서 웬만한 욕이나 정신 공격들은 메이웨더의 위빙 마냥 흘려보내고 마는 놈이다. 하는 짓은 또라인데 가끔씩은 천재같다. 아니 천재라서 또라이인가?

 난 이놈처럼 중증은 아니지만 나름 음모론에 흥미가 있어서 새로운 음모론이 나오면 서로 공유하곤 한다.

 

 [기사 봤냐?]

 

 [당연하지]

 

 무슨 기사인지 말 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냐?]

 

 [당연히 외계 문명이지]

 

 [ㅋㅋㅋ 미친]

 [오늘은 39도라더라. 뒤지지 말고]

 

 [ㅇㅋ]

 

 

 “꺄르륵….”

 “아 정말? 대애애애박!”

 “아 진짜 ‘그여자 그남자’에 김현수 진짜 멋있지 않냐? 이번 주 밀가루 키스 대박!! 세경씨도 봤어?”

 

 밀가루 키스? 그놈의 키스들 참 많이도 만들어 낸다. 밀가루 키스라... 줄여서 밀키스인가? 큭큭.

 안돼! 웃지마. 이건 아재개그야! 안돼!!!

 

 아재개그가 떠올랐다는 사실에 이성적으로는 대노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입꼬리는 이미 씰룩대고 있다. 쉬바. 이미 아재가 된 것이다.

 

 “아니요, 못봤어요. 전 주말에 김해갔다가 어제 밤늦게 왔어요.”

 

 우리 팀의 세경씨가 피곤하다며 연신 하품을 해댄다.

 서울말로 순화된 경상도 억양이 어색하다. 하지만 본인은 항상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말이 언어적 우위에 있다 생각해서 그런 것이리라.

 과거 자신이 서울말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월감에 취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1/4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우월했고 지방에서 올라온 동료들을 상당히 무시하곤 했다. 저렇게까지 부정하는 걸 보면 세경씨도 그런 쉐리 중 하나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과거에 내가 만났던 비슷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본능적으로 우위를 점하려 했던 것 같다. 그들이 묻는 나의 나이, 출신지역, 출신학교, 직업에 대해 답변하면서 나는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아마도 그 질문들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너보다 우위 할 수 있냐, 없냐’ 를 가늠하기 위한 저의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부지중에 이런 행동들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적인 문제일 지도 모른다. 그래 맞다. 유교문화?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나이문화의 잔재? 대한민국의 절반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 경험하는 군대문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만연한 문화를 대단한 문제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지금은 누군가에게 아래지만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위가 될 수도 있기에 그저 모른 체 하고 산다. 쉬바, 빌어먹을 서열문화. 그래. 나의 속사람은 이 사회에 상당한 불만을 가진 레지스탕스지만 겉사람은 불의를 상당히 잘 참아내는 사회화 된 ‘인재’다. 누군가 내게 민감한 사회문제 따위를 물어 와도 그냥 두루뭉술한 말로 적당히 넘어갈 뿐이다. 말해 뭐하나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거...

 

 세경씨가 말을 잇는다.

 

 “저희 엄마가 김해에서 가사 도우미 하시잖아요. 근데 이번에 새로 무슨 대기업 임원 아저씨네서 일하게 되셨거든요. 근데 그 아저씨 성질이 그렇게 더러븐가 봐요. 엄청 부자라서 돈 많이 주니까 참고 좀 더 해보신다고 하는데 워낙 괴팍해서 힘드신가봐요. 역시 돈이랑 싸가지는 반비롄가?”

 “그럼. 내가 예전에 얘기했던 미영이 있잖아. 그 부잣집에 시집갈려고 고등학교 때부터 플랜 짰다던 애.”

 “아~ 그 친구분이요?”

 “걔가 결국 부잣집으로 시집갔거든, 근데 얼마 전에 동창회에서 걔 만났는데 친구들한테도 갑질하더라! 어이없게.”

 “헐”

 “막 친구들한테 잔심부름 시켜. 미쳐가지고. 고등학교 때는 말도 함부로 못 걸던 게.”

 “사람들이 돈이 곧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뭐 현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내 말이! 요새는 일진도 부잣집 애들이라매? 부모도 문제지. 공부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래! 잘못하면 혼나는 게 당연한건데. 우리 어렸을 때는 잘못하면 파리채건 뭐건 엄마 손에 잡히는 무기로 그렇게 두드려 맞았는데. 그래서 그나마 이렇게 인간처럼 자랐지.”

 “맞아요. 저는 효자손 부러질 때까지 맞아봤어요.”

 “아 진짜? 너 같은 순둥이가?”

 “네, 저 어렸을 때 말 진짜 안들었거든요. 적어도 두 개는 분질러 먹었을 걸요?”

 “상상이 안간다 야.”

 “우리나라가 너무 고도성장해서 아직까지도 정신적으로나 사회 저변에 깔린 인식들이 저질인 것 같아요.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을 못 따라가는 거죠....... 하~암.”

 “오올~ 고도성장, 물질문명. 야, 세경이 너 좀 멋있는데? 머리 좀 식혀 크크. 뇌를 너무 많이 써서 막 힘든가보다, 하품이나 하고. 나도 어제 늦게 자서 그런지 피곤하네. 하~암.”

 “하~암. 언니 저도요.”

 “어? 9시다. 빨리 들어가자.”

 

 우리 개념 찬 여직원들이 드디어 갔다.

 아무것도 재생되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그녀들의 대화에 실소가 나올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빈 이어폰 뒤에 숨어 나는 꽤나 잘 참아냈다. 피식 웃음이라도 터졌다면 원치 않는 그녀들의 이목을 끌었으리라.

 샌드위치는 진즉 다 먹었다.

 다만 그녀들이 휴게실 입구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이놈의 소심함.

 이상하게 여자 2명까지는 괜찮은데 3명이상 모여 있으면 다가가기가 힘들다.

 나는 재빨리 종이컵에 물을 따라 한잔을 마신다.

 쉬바 샌드위치 때문에 목이 막혀 죽을 뻔했다. 침을 모아 삼켜서 간신히 죽음은 모면하고 있었다.

 한잔을 더 마시고 또 한잔을 채워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입구 정면 두 번째 자리가 내 자리다.

 책상에는 사람이 앉았을 때 귀 위의 머리통이 딱 보일 정도 높이의 파티션이 쳐져 있다. 훌륭하신 윗분들께서 우매한 것들을 감시하시기 딱 좋은 높이시다. 쉬바.

 그리고 나만 빼고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있다. 팀장인 성부장까지도 말이다.

 젠장. 억울하다.

 죄인이 된 느낌이다. 출근은 30분 전에 했는데...

 결과적으로 성부장보다 늦게 왔으니 난 이미 죄인인거다. 쉬바.

 변명은 나를 더 추하게 만들 뿐이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성부장의 불편한 심기가 등 뒤에 꽂힌다.

 

 

 

 5.

 

 오늘도 점심은 청국장이다.

 성부장 놈 단골집이다.

 “이 집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야. 안그래, 윤차장?”

 “예 맞습니다. 어젠가? 티비에 보니까 청국장이 항암 효과가 그렇게 뛰어나다네요.”

 “그치? 내가 이거 먹고 이렇게 건강한가봐. 허허허. 내일 점심은 윤차장이 골라봐 몸에 좋고 맛있는 걸로.”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일도 청국장일게 뻔하다. 윤차장 저분도 권력 앞에 힘없는 월급쟁이일 뿐이니까.

 아니 그건 그렇고 뭐가 그렇게 맛있다는 건지... 그저 그렇던데...

 다들 맛있다고 칭찬 일색이다.

 고자놈들...

 항암효과? 좋아하시네. 발암효과겠지. 쉬바.

 

 “허대리, 무슨 일 있어?”

 

 성부장 놈이 내 표정을 읽고 물어본다. 하여튼 눈치는 또 귀신같다.

 

 “아 아닙니다. 조금 피곤해서요.”

 “아 그러니까 밤에 좀 일찍 자. 마누라랑 딴 짓 하지 말고. 허허허”

 “아, 네.....”

 

 저 개놈 쉐리, 성희롱으로 신고할까?

 어떻게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저렇게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걸까?

 ‘성공하는 진상짓의 일곱가지 원칙’이라는 강의라도 듣는 걸까?

 

 음식점 밖으로 나온다.

 한 낮이라 더위는 극에 달해 있다.

 더위에 녹아버렸는지 매미 소리조차 나질 않는다.

 아... 청국장 냄새...

 역시 온몸에 배어 있다.

 죽을 것 같다. 쉬바.

 탈취제를 뿌려볼까 잠깐 생각해 보지만 예전에 한번 청국장 냄새 밴 와이셔츠에 탈취제를 뿌렸다가 고블린 소환사의 겨드랑이 냄새처럼 업그레이드 되서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냥 참기로 한다.

 홀애비 냄새도 이긴다는 초강력 탈취제도 청국장 냄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냄새 계의 끝판 대장님이시다. 항암효과라더니... 설마 냄새로 암세포들까지도 다 조지는 건가?

 

 사무실에 들어간다.

 어둡다.

 점심에는 사무실 전등을 모두 끄는 것이 규정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에 다시 불을 켠다.

 에너지 절감이란다. 이거 하나 마음에 든다. 전력낭비 줄이기.

 1시가 넘었는데 불이 안 켜져 있다.

 벽쪽으로 가서 스위치를 켠다.

 세경씨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아까 점심먹으러 갈 때도 자고 있던데... 주말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아 피곤한가보다.

 

 “세경씨. 1시에요.”

 

 조용히 불러 깨운다.

 반응이 없다.

 

 “세경씨?”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지? 숨은 쉬고 있는데.

 괜히 시끄럽게 만들 필요 없겠지.

 뭐 곧 일어나겠지.

 

 

 

 6.

 

 거래처에서 성부장 손님이 왔다.

 

 “세경씨! 여기 손님이랑 나랑 차 두 잔만 주세요. 얼음 가득 넣어서 시원한걸로~.”

 

 “…….”

 

 “세경씨?”

 

 헉. 여전히 자고 있다. 벌써 3시 반인데.

 

 “세경씨. 팀장님이 부르시는데요?”

 

 이민수 과장이 참다못해 일어난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세경씨를 본다.

 

 “어? 세경씨. 어디 아퍼?”

 “…….”

 “야, 허대리, 니가 대신 차 좀 타다드려.”

 “넵.”

 

 얼음 반 커피 반으로 얼른 두 잔을 타서 갖다 준다.

 그 동안 이과장이 세경씨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여전히 반응이 없다.

 

 “뭐야? 기절했나? 숨은 쉬는데? 야, 허대리 119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네?”

 “뭐가 ‘네?’야? 얼른 전화해봐.”

 “그냥 자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역시 액션맨 이민수과장이다. 자고 있는 사람 깨운다고 119에 신고하란다. 어이가 없다.

 

 “야, 피곤한가보지, 그냥 조용히 하고 놔둬. 부장님 손님 와 계시는데 소란 떨지 말고.”

 

 윤차장이 조용히 속삭이며 소란을 잠재운다.

 이과장은 자리에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간다.

 

 

 

 7.

 

 “하~암.”

 

 세경씨가 잠에서 깼다. 오후 5시다.

 다들 우려의 눈으로 세경씨를 보고 있다.

 세경씨는 아랑곳 않고 연신 하품을 하고 있다.

 

 “세경씨!! 이리 좀 와봐!!”

 

 역시나다. 손님이 간 뒤 간신히 참고 있던 성부장이 세경씨의 거침없는 하품 소리에 드디어 폭발했다. 우리는 거북이 마냥 모니터 쪽으로 목을 쭉 빼고 키보드를 쳐대거나 마우스를 딸깍거린다. 하지만 눈높이는 파티션 위의 1mm 높이에 맞추고 곁눈으로 저쪽을 보고 있다. 성부장 바로 앞에 있는 윤차장은 귀까지 움찔댄다.

 그녀가 성부장 책상 앞으로 서서히 걸어간다.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세경씨! 여기가 호텔이야? 여관이야? 아니 왜 회사와 와서 잠을 처자고 있어!! 손님들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쪽팔려 죽을 뻔 했어, 너 때문에! 밤에 뭐했어? 응? 뭐하고 여기서 처자냐고!!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일도 못하는 게 나와서 회사 돈만 축내고 있어. 꼴보기 싫으니까 저리가!”

 

 세경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란 얘기 안들려?”

 

 그제서야 세경씨가 뒤로 돌아서 자기 자리로 향한다.

 평소 같았으면 성부장이 ‘여기가 여관이야’ 정도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야 정상인데 오늘은 그냥 멍한 표정이다. 잠이 덜 깬 사람마냥.

 

 “하~암.”

 

 세경씨가 자리로 돌아오면서 하품을 한다.

 

 “......!!!”

 

 적막이 흐른다.

 다들 너무 놀라 그녀와 성부장을 번갈아가며 본다. 물론 고개는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말이다. 놀라운 능력들이다.

 

 “야!!! 정신 나갔어?! 팀장이 뭐라고 하는데 하품을 해?? 지겹냐? 지겨워??!!”

 

 성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완전히 꼭지가 돌았다.

 

 “부장님, 부장님, 저기 상무님 들으십니다. 담배나 한 대 태우러 나가시죠.”

 

 윤차장이 급히 성부장을 막아선다.

 

 “아니, 저게....”

 “부장님, 신경쓰지 마시고 얼른 가시죠.”

 “어휴 내가 저거 올해 안에 꼭 자른다.”

 

 윤차장이 이과장에게 대충 수습하라는 눈빛를 보낸다.

 

 눈치 빠른 이과장이 윤차장의 사인을 못 알아먹을 리 없다. 하지만 이과장은 골치 아픈 수습보다는 부장님과 무개념 사원 뒷담이나 하면서 점수 따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계산을 마치는 데는 0.0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저도 같이 가시죠, 부장님.”

 

 나만 덩그라니 남았다.

 세경씨 곁에 간다.

 

 “세경씨, 괜찮아요?”

 “아, 네....”

 

 평소의 세경씨 느낌이 아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아, 네...”

 “그...”

 

 위로의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세경씨에게도, 나에게도 무의미하니까.

 

 내 자리로 돌아온다.

 조금 있다 이과장이 헐레벌떡 다시 들어오더니 짐을 정리한다.

 성부장과 윤차장의 옷과 가방을 챙겨서 나간다.

 

 “어디 가세요?”

 “부장님이 차장님이랑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허대리도 일 대충 끝내고 퇴근해.”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30분이나 남았는데... 역시 회사는 정치다.

 이과장이 급하게 다시 돌아온다.

 

 “허대리, 미안한데 그 내가 하던 보고서 그거 거의 마무리 단계거든? 그것 좀 완성해놓고 가.”

 

 쉬바. 개놈쉐리. ‘마무리 단계?’ 웃기고 있네. 그거 일주일 전부터 하기 싫다고 제목만 써놓고 손도 안대고 있던 걸 내가 옆에서 뻔히 보고 있었는데....

 호랑이나, 곰이나, 여우나 다 한통속이다. 다들 동물원 우리에 처넣고 썩은 청국장이나 던져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야근이다.

 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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