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18 - 다이나믹 듀오 (3)
작성일 : 19-11-04 21:43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1076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설전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건물 아래로 내려온다. 건물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기겁을 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거대한 괴물들의 사지가 이리저리 찢어진 채 피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미라 3마리의 시체 조각들이 거리 전체에 오순도순 퍼져있었다.

 

  그 뿐 아니라 건물 벽 전체에도 자신들의 사망흔적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징그럽게 엉겨 붙은 괴물들의 피부들과 내장들이 끈적한 피와 함께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사람들이 처참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설전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끔찍한 걸 봤자 기분만 나쁘지.”

 

  “어...어떻게 쓰러뜨린 거예요?”

 

  “수류탄 2개를 깠어. 아무리 피부가 두꺼운 새끼들이라도 2개를 근거리에서 한 번에 쳐맞았는데 무사할 리 없지.”

 

  수진의 질문에 설전이 자미라의 피부 조각 하나를 짓이기며 말했다.

 

  “그래도 꿈틀거리며 살아 있길래 눈깔에 총알 몇 발씩 먹여줬지. 명이 질긴 놈들이야.”

 

  설전이 총구로 한 쪽을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도 저절로 총구 끝을 향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미라 3마리의 거대한 시체가 끔찍하게 찢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한 여자는 구토를 하려는 시늉을 했고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며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설전이 자신이 있던 리어카로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설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설전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피가 흐르는 상처부위를 찾더니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머리에 묶어 지혈했다.

 

  머리가 답답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손수건을 꽉 맨 설전은 피가 지혈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한 후 프라모델 박스를 살폈다. 설전이 리어카 안에 앉아 프라모델 박스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있는 동안 건물 아래로 내려온 두호가 설전과 사람들을 찾았다.

 

  “다이, 어디야?”

 

  “여기. 리어카 있는 곳.”

 

  “오키 오키. 지금 곶감.”

 

  두호가 말도 안 되는 개그를 하며 리어카를 향해 뛰어왔다. 그는 설전에게 가면서 자신을 향해 쳐다보는 여자를 향해 살짝 윙크까지 하는 여유를 부렸다. 설전은 그 행동을 보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아까 두호에게 빚도 있고 해서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다.

 

  “오, 세상 최강의 츤데레.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을 구하는 츤데레. 예에-”

 

  “뭐가 츤데레냐. 이제 어쩔 거야. 정말 이 사람들 데리고 갈 거냐?”

 

  설전이 감정을 실어 거칠게 말했지만 두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쉽게 긍정했다. 물론 두호가 설전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여기로 데리고 내려 온 거면 너도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단 거잖아. 정말 싫었다면 넌 그냥 알아서 살아가세요, 여러분들. 하고 보냈겠지.”

 

  “그냥 네 의견까지 들어보고 결정하려 했던 거였어.”

 

  “야, 흉년이 들어도 네 지랄은 풍작이구나. 내 의견 들어도 결국 네 맘대로 할 거였잖아.”

 

  “존나 사람 못된 새끼 만드네, 이거.”

 

  “못된 새끼 만드는 게 아니라 못된 새끼의 껍질 벗겨주고 있다.”

 

  설전과 두호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사이 여자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두호가 마음에 들어 하던 그 여자였다.

 

  “저... 저기...”

 

  “네, 말씀하세요. 뭐가 문제시죠?”

 

  두호가 설전의 주둥이를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설전이 화를 내며 주둥이를 막은 두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두호는 더욱 거칠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호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흔들림이 없었고 그의 미소는 어느 때보다 더욱 친절했다. 설전에게 행하고 있는 짓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전과 두호가 투닥거림을 멈춘다. 두 사람은 굉장히 쑥스러운 듯 서로 딴청을 피운다. 그러다가 어색한 침묵이 막 정착되기 직전 두호가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죠.”

 

  설전이 난 아닌데 라고 중얼거렸지만 두호는 무시했다. 여자는 연신 감사하다면서 두 사람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을 한다.

 

  “그런데... 두 분 다 어떤 분들이죠?”

 

  여자의 질문에 두호가 대답하려는 찰나 이번엔 설전이 두호의 입을 막은 다음 자신이 대답했다.

 

  “걱정 마. 인육 먹는 그런 새끼들 아니니까.”

 

  그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심하라고 한 말이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인육 먹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럽게 느껴질 만 했다. 설전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다음 말을 덧붙였다.

 

  “아니라고. 단지 당신들이랑 똑같은 사람 중 하나를 구한 적 있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아, 영혜 말이지?”

 

  두호가 맞장구쳤다. 물론 그것은 사람들의 걱정과 의심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리고 더불어서 당신들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과 안면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근데 영혜도 그럼 이 사람들처럼 벗고 있었냐?”

 

  “응.”

 

  “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했냐.”

 

  “미친X끼.”

 

  설전이 두호의 대가리를 치려고 했지만 두호가 날쌘 동작으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피한 자신감으로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보인 두호는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설전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했냐?”

 

  “야 이 미친...”

 

  “농담이고 어쩔 거야, 이 사람들? 난 데리고 가고 싶은데 결국 가족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놈은 너잖아.”

 

  “어쩌긴 뭘 어째. 이 정도 고생까지 했는데 함부로 돌려보낼 수 있나.”

 

  “오호, 그럼 철조망은?”

 

  “철조망은 어쩔 수 없지. 이 사람들을 데리고 철조망 구하러 돌아다닐 수 없잖아.”

 

  두호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내심 안도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설전에 대한 의심과 공포로 인해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두호가 투덜거리며 리어카를 끌었다. 설전은 두호에게 씨부렁거리지 말라며 그의 행동을 나무랐지만 그럴수록 그의 투덜거림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설전은 두호가 여자를 에스코트하는 게 매너남의 기본 소양이라며 자신이 여성들이 탄 리어카를 끌겠다고 한 것을 상기시켰다.

 

  매너남이 한숨을 쉬었다. 설전은 그 매너남에게 후회의 한숨이냐고 따져 물었다. 매너남은 그저 참된 노동을 하자 가슴이 벅차오름을 표현한 것뿐이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설전은 그의 대답을 개소리라며 일축했다.

 

  매너남이 끄는 리어카에는 옷을 차려 입은 여자 둘이 타고 있었고, 그 뒤로 남자 셋도 옷을 입은 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주변 상가에 옷가게가 있어 거기서 대충 차려입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두호는 크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신발은 없었기에 결국 맨발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라 햇살은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아스팔트는 계절에 걸맞게 아주 잘 익어 있었다. 두호는 그런 아스팔트 위를 여자들이 걷게 해선 안 된다면서 여자들에게 리어카를 타도록 제의했다.

 

  처음엔 괜찮다며 만류한 여자들이지만 설전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는 남자도 힘들다. 어차피 저 녀석이 생색내는 건데 한번 이용해줘도 괜찮지 않으냐며 설득하자 머뭇거리던 그녀들도 두호의 제의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러나 지금 매너남이 된 두호의 얼굴엔 후회의 구슬땀들이 폭포처럼 내리고 있었다. 탄창이 든 전투조끼와 소총까지 메고 있는데다가 아무리 가벼운 여자 둘이 탔어도 리어카를 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다가 전투 때문에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니 더욱 힘들 수밖에.

 

  그런 두호를 보며 설전은 내심 고소해 하고 있었다. 자기 멋대로 사람들을 구하니 마니 한데다가 여자에게 멋있어 보이려고 생색까지 내면서 이미지를 좋게 보이려고 한 그가 눈꼴 시렸는데 이리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설전의 표정에서 두호는 괜히 자신에게 분함을 느낀다. 괜한 고생을 사서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뒤에서 여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자신의 이름을 최지애라고 밝힌 여성은 두호에게 연신 힘들지 않냐며 걱정을 했다. 그녀의 걱정을 받은 두호는 아까의 후회들이 싸그리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애에 이어서 옆에 있던 여자는 김수진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수진은 뒤에 따라오는 한 남자를 가리키며 한치수라고 소개했다. 치수는 수진이 자신을 소개하자 자기 이름을 정식으로 밝혔고 그 뒤를 이어 뒤에 있던 남자 아이는 박재연, 그리고 설전을 화나게 만든 아저씨는 정태훈이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 이설전, 그리고 여기서 생고생하면서 리어카를 끄는 매너남은 유두젖이라고 한다.”

 

  “윤두호, X발놈아.”

 

  “뭐, 어때 비슷하잖아.”

 

  “존나 경찰 있었으면 성희롱으로 고소감이였어. 길거리에서 그딴 소리나 내뱉다니.”

 

  “다행이지? 경찰도 없고 뭣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설전이 윤두호를 놀렸지만 두호는 리어카를 끄는 행위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리어카를 멈추면 여자들이 놀랄까 봐서였다. 이런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발휘하고 있는 두호였지만 오히려 그런 두호를 설전은 사정없이 공격했다.

 

  그런 두호를 향해 지애가 계속 말을 걸며 격려해주었다.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정말 인육 먹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걱정, 어디서 살며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는 말, 힘들지 않느냐는 걱정, 괜찮다면 내려서 걸어가도 된다며 무리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그럴 때 마다 두호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두호의 미소에 지애는 겁에 질려하던 표정에서 벗어나 조금 생기를 되찾는 얼굴이 되었고 동시에 보이지 않았던 미소를 조금씩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두호는 리어카를 끄느라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것은 설전이었다. 설전은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알콩달콩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저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 거야.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두호가 좋다니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런 설전이 갑자기 다급하게 두호보고 멈추라고 소리친 뒤 어느 부서진 자동차를 겨냥했다. 두호도 갑작스런 설전의 외침에 깜짝 놀라며 리어카를 멈춰 세웠다. 리어카에 타고 있던 수진과 지애가 휘청거린다. 뒤를 따라오던 남자 셋이 무슨 일이냐며 허둥댄다.

 

  설전은 리어카 뒤에 숨어있으라고 말한 뒤 자동차를 계속해서 겨냥한다. 두호도 총을 들어 리어카 뒤로 돌아가 후방과 옆을 경계한다. 설전이 조심스레 한발씩 자동차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리어카와 자동차 사이, 거리의 반절 가량 왔을 때 자동차 너머로 벌거벗은 남자 둘이 손을 들고 기웃거리며 나왔다.

 

  “사...살려주세요!”

 

  “제발요! 다시 갇히라면 갇힐 테니... 괴물들한테서 제발...”

 

  덜덜 떨며 나온 두 사람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설전을 맞이했다. 둘은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으며 마치 곧 도살장으로 끌려갈 짐승의 눈으로 설전과 두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전이 누구냐고 연거푸 질문을 던졌지만 두 사람은 그저 공포에 몸을 떨며 살려달라고만 부탁할 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 두 사람을 알아본 지애가 아는 사람들이라며 설전을 향해 외쳤다. 그녀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자신과 같이 탈출 버스에 같이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괴물들이 버스를 습격했을 때 무사히 도망친 거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설전이 지애와 치수, 수진의 사정을 알 리 만무했다. 아직 제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데리고 오는 거였으니까. 설전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두 사람에게 던졌다.

 

  떨어진 라이터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던 두 사람에게 설전이 사람들에게 시켰던 행위를 두 사람에게도 시켰다.

 

  “라이터 불을 켜서 살갗에 갔다 대봐.”

 

  “네?”

 

  “뭐... 뭐라고요?”

 

  두 사람이 머뭇거렸다. 라이터를 던지면서 총구를 내려놨던 설전이 다시 총구를 들며 위협을 가했다. 아까는 한번 해보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말이었다면 이번에는 목소리에 칼이 서려있는 협박의 어조였다. 두 사람이 계속 머뭇거리더니 라이터를 들었다.

 

  설전이 두어 걸음 물러서더니 켜서 살갗에 대보라고 다시 강요한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두 사람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두호가 리어카 뒤에서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애가 어째서 저 두 사람한테 저러는 거냐고, 어째서 설전이라는 사람이 라이터 불에 집착하느냐고 묻자 두호는 말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남자 하나가 라이터를 들더니 말했다.

 

  “지금 너무 힘이 없어서 그런데.. 대신 켜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괴물들한테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지금 제대로 힘이 안 들어갑니다.”

 

  라이터를 든 손이 심하게 떨린다. 저 정도로 떤다면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데 분명 힘들겠지. 설전이 수긍하더니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두 발자국 정도 걸었을 때 설전은 조정간을 연발로 맞추더니 그대로 겨냥도 안한 채 두 사람을 향해 총을 갈겼다.

 

  두 사람의 몸이 총을 맞는 충격 때문에 심하게 뒤틀린다. 피가 사방으로 튀며 두 사람의 참혹하고 끔찍한 모습이 어떤지 알렸다. 지애와 수진은 비명을 질렀고 남자 셋은 설전의 행동에 놀라며 욕을 내뱉었다. 멀쩡한 사람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봤는데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두 사람이 쓰러진다. 여자들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고 남자들은 무슨 짓이냐며 설전을 향해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를 욕하고 있었다. 특히 정태훈이 더욱 심했다. 그는 갑자기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딨냐며 설전을 살인마로 몰아 세웠다.

 

  치수는 사람을 정말 쏜 거냐며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박재연 또한 왜 사람을 쏜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야유와 욕설 속에서도 설전은 총을 놓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조정간을 단발로 바꾸었다.

 

  그런데 당연히 움직이지 않아야 할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입이 갈라지고 혀가 튀어나왔으며 피가 흘러야 하는 곳에서 이상한 붉은 돌기, 촉수들이 솟아나왔다. 한 명은 손에서 낫과 같은 갈고리가 튀어나왔고 다른 한 쪽은 등에서 갈고리가 튀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낫잡이와 저글링. 두 사람은 그렇게 모습을 변이시키고 있던 중이었다. 난데없이 사람이 괴물로 변화하자 설전의 행동에 공포를 느끼던 사람들은 돌연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다만 처음부터 저리 될 거라 여겼던 두호만이 설전을 향해 조심하라고 외칠 뿐이었다.

 

  허나, 두호의 걱정과는 달리 설전이 조심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급습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두 괴물은 이어지는 설전의 총알에 머리를 꿰뚫리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설전은 쓰러진 괴물들 머리에 다시 총을 쏴서 확인 사살까지 마친 뒤 리어카로 돌아왔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설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전이 뭘 그리 쳐다보냐면서 사람들에게 면박을 줬다.

 

  “응원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정태훈 아저씨. 덕분에 용기가 났어요.”

 

  설전이 퉁명스레 말한 다음 두호에게로 갔다. 설전은 두호에게 와서 길을 돌아가야 될 것 같다며 리어카에 타고 있는 두 여자에게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물었다. 그녀들이 망설이더니 사고가 난 지점을 설전에게 말했다.

 

  설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리어카 뒤로 이동한다. 그는 두호에게 자신은 후방을 경계하면서 갈 테니 이동하자고 재촉한다. 두호는 알았다며 리어카를 끌고 이동하는 방향을 바꾼다. 일행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낯선 골목으로 향한다.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괴물화가 되었다면 지금 사람들을 데리고 전투를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두호를 만난 그때처럼 자동차가 있어서 기동성에 기대볼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전투 인원은 고작 2명. 버스를 습격했다면 괴물들의 양은 제법 많았을 것이고 아까처럼 괴물이 된 사람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그 숫자를 예상해보건대 감히 맞닥뜨릴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 인원과 상황을 생각해보면 결국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돌아가는 편이 설전에게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나 편하다. 이 인원들로 그 숫자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설전은 리어카를 바라본다. 여자 둘에 남자 셋. 얼마 전만해도 넷 에서 하나가 더 늘었는데 이번에도 다섯이 늘어났다. 요즘 갑작스레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거보단 지금은 일단 이 위험을 벗어나는 것이 설전에겐 더 중요했다. 설전은 더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괴물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동한다.

 

 

 

  어느 슈퍼마켓 안에서 설전 일행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강렬한 여름 날씨에 두호와 설전도 지쳐있었고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했던 남자들의 발도 식힐 겸 쉬러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대형마트로 가는 다리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괴물이 습격한다 해도 재빨리 구조를 바랄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안에서 유통기한이 언제 지난지도 모른 과자와 음료수들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고 두호와 설전은 그늘에 세워둔 리어카 안에 앉아 쉬고 있었다. 설전이 수통 마개를 열어 물을 마신 다음 한숨을 내쉰다. 그는 머리를 감싼 손수건을 만진다.

 

  피는 멎은 듯 했으나 또 이런 꼴로 들어가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엄청 호통을 치시겠지. 벌써부터 잔소리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설전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철조망 구하러 나갔다 온다던 애가 철조망 대신 사람들을 줄줄이 데리고 들어오다니.

 

  설전이 두통에 시달리는 동안 프라모델 박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두호에게 지애가 다가온다. 지애는 머뭇거리더니 두호에게 목이 마르지 않느냐며 이온음료 하나를 건넨다. 두호가 고맙다며 미소를 짓자 지애는 볼이 빨개지더니 후다닥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섹시한데 귀엽지 않냐?”

 

  두호가 으쓱거리며 말했다. 설전은 그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 두호는 이제 설전이 안 부럽다며 약을 올렸지만 설전은 그러려니 하며 다시 수통에 입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다시 말이 없어진 두 사람. 가게 안은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구해준 두 사람은 묘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생각해봤는데...”

 

  침묵을 깨고 두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아까와 달리 차분하고 낮다. 목소리 때문에 공기마저도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갑작스러운 두호의 태도변화에 설전은 약간 긴장했다.

 

  “너...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잖아.. 괴물이 되려다 만 수명이 다하기 직전의 사람을...”

 

  뜸을 들이는 두호. 그리고 그 정적 동안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설전.

 

  “...네가 스스로 말했잖아. 그 괴물이 되려다 만 사람은 아마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근데 그 사람이 너한테 무슨 부탁을 했고 네가 그 부탁을 들어줘서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는데...”

 

  두호가 손가락으로 소총을 몇 번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죽어가는 자신한테 대신 죽여 달라고 말할 것 같지 않거든... 그래서 말인데...”

 

  소총을 두드리는 두호의 손가락이 빨라진다.

 

  “그때... 그 사람이 뭐라고 부탁했냐?”

 

  침묵. 설전은 아무 말이 없다. 두호의 질문이 끝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설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생각하느라 그러는 것일까? 하지만 기다려도 역시 설전은 대답이 없다. 두호는 설전이 아마 총으로 협박을 해도 입을 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두호가 대답을 듣는 걸 포기하려는 찰나였다.

 

  “어떻게 하면 되었을까? 방아쇠를 당겨야 했을까? 아니면 그냥 놔둬야 했을까?”

 

  반대로 설전의 질문이 두호의 머리를 때렸다. 두호는 머뭇거렸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막상 그에 대한 답을 바로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양심은 놔둬야 한다고 말했지만 왠지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왜일까? 왜라고 자신에게 물었지만 두호는 그 이유를 애써 밖으로 꺼내지 않고 묻으려 하고 있었다.

 

  설전은 고뇌에 빠진 두호를 쳐다본다.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두호. 역시 쉽게 말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설전은 시선을 옮겨 총을 바라본다. 그는 총열덮개를 몇 번 두드리더니 입을 연다.

 

  “쏜다고 해서 생각난 말인데. 우린 왜 총을 쏘는 걸까?”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당연히 살려고...”

 

  “그래.. 살려고.. 살고 싶어서 쏘는 거겠지.”

 

  이번엔 두호 대신에 설전이 소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살기 위해 쏘는 걸까, 아님 죽이기 위해 쏘는 걸까?”

 

  “어? 같은 말이잖아. 괴물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예전에 어떤 여자가 바퀴벌레가 징그럽다면서 죽이는 걸 본 적 있거든. 그 바퀴벌레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고작 징그럽다는 이유여서였지. 그 벌레의 생명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짓이겨 버린 거였어. 그리고 거기에 죄책감 따윈 생각지도 않았지. 마치 벌레는 당연히 죽여도 된다는 것처럼.”

 

  “얌마, 벌레랑 우릴 죽이려는 괴물이랑 같냐.”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괴물들도 예전엔 사람이었어.”

 

  두호가 멈칫한다. 설전의 말에 두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소총을 두드리는 설전의 손가락이 점점 빨라진다.

 

  “살기 위한다는 변명으로 우리는 괴물들을 죽이는 행위를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설전이 다시 수통에 있는 물을 들이킨다. 목구멍으로 미지근한 물이 넘어간다. 물을 마신 후 깊게 숨을 내쉰 설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은 검은 구름 몇 점을 머금은 채 파랗게 반짝이고 있었다.

 

  “괴물 입장에선 어떨까? 우리가 벌레 같지 않을까? 당연히 감염시켜야 되는 징그럽고 하찮은 미물로.”

 

  두호는 말이 없다. 설전의 말에 동의할 생각도, 대답할 생각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전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삶인 걸까. 알 수 없는 급류에 휘말려 숨 막히게 살며 이리저리 치이며 사는 것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계속해서 살 수 있을까? 정상이 아니게 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하늘은 파랗다. 설전의 시선은 계속해서 하늘에 꽂혀있다. 검은 구름들이 해를 가리며 설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쨌든... 난 그때 방아쇠를 당겼어. 그건 변함이 없어.”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24 - 공성전 (5) 2019 / 11 / 10 212 0 16021   
23 23 - 공성전 (4) 2019 / 11 / 10 225 0 15246   
22 22 - 공성전 (3) 2019 / 11 / 9 223 0 13988   
21 21 - 공성전 (2) 2019 / 11 / 9 230 0 11495   
20 20 - 공성전 (1) 2019 / 11 / 6 218 0 10846   
19 19 - 다이나믹 듀오 (4) 2019 / 11 / 6 221 0 12222   
18 18 - 다이나믹 듀오 (3) 2019 / 11 / 4 224 0 10764   
17 17 - 다이나믹 듀오 (2) 2019 / 11 / 4 234 0 11760   
16 16 - 다이나믹 듀오 (1) 2019 / 10 / 31 226 0 11107   
15 15 - 레볼루션 (2) 2019 / 10 / 31 212 0 10703   
14 14 - 레볼루션 (1) 2019 / 10 / 28 219 0 12400   
13 13 - 동창회 (4) 2019 / 10 / 28 221 0 12191   
12 12 - 동창회 (3) 2019 / 10 / 23 229 0 12501   
11 11 - 동창회 (2) 2019 / 10 / 23 219 0 10800   
10 10 - 동창회 (1) 2019 / 10 / 21 227 0 14861   
9 09 - 비의 레퀴엠 (3) 2019 / 10 / 21 207 0 13302   
8 08 - 비의 레퀴엠 (2) 2019 / 10 / 16 230 0 15640   
7 07 - 비의 레퀴엠 (1) 2019 / 10 / 16 215 0 18556   
6 06 - 쏴야 할 곳을 봐라 (2) 2019 / 10 / 14 239 0 16689   
5 05 - 쏴야 할 곳을 봐라 (1) 2019 / 10 / 14 228 0 18130   
4 04 -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3) 2019 / 10 / 10 237 0 11981   
3 03 -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2) 2019 / 10 / 10 211 0 14859   
2 02 -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1) 2019 / 10 / 7 248 0 19488   
1 01 - 그리고 그 후 2019 / 10 / 7 406 0 971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브리튼 던
전Yeah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