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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작성일 : 19-11-04 08:51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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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어젠 본 캐서린과 오늘 보는 캐서린은 내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직원들이 봉지를 들고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캐서린이 식당 안에서 군것질 하는 걸 싫어해 자주 면박을 줬기 때문이다.

 

 나는 포스기 쪽으로 다가오는 캐서린을 보았다.

 단발머리를 동여매고 유니폼과도 같은 검은 양장바지를 펄럭이며 캐서린이 다가올 때, 나는 주름투성이 얼굴을 출렁이며 흐느끼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미스뜨르,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아무 것도 아니야.”

 

 캐서린이 포스기를 점검하고 서랍에 든 장부를 꺼냈다.

 장부 위에 볼펜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미스뜨르, 생각해 봤어요?”

 “뭘?”

 “쁘라위지 뭐긴 뭐에요?”

 “생각하고 있어.”

 “빨리 생각하세요.”

 

 캐서린은 계속 장부를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투자를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미스뜨르가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단 한번 만나는 기회가 지금이라고요. 쁘라위 가문의 돈이 우리 레시피를 살릴 거예요.”

 “그래도 돌담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우실로가 되는 거잖아.”

 

 나는 이 말을 해놓고 딴청을 피웠다.

 뒷벽에 묻은 검댕을 떼기도 하고 카운터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을 줍기도 했다.

 캐서린이 볼펜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를 높였다.

 

 “사업가는 모험을 즐겨야 한다고 했잖아요! 투자만 받으면 돌담은 전국 체인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요.”

 “음...”

 “그래요. 미스뜨르 말대로 우실로가 돌담을 사는 셈이죠. 그래서 달라지는 게 뭐예요? 직함 하나 바뀌는 거?”

 

 나는 캐서린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미스뜨르, 우리 직원들한테도 더 좋은 일이에요. 지금보다 월급 더 많이 받고 유명 브랜드 다닌다고 자랑할 수도 있어요.”

 “알았어. 빨리 결정할게.”

 “근데 오늘따라 이상해 보여요.”

 “뭐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제는 보지도 못하고 계속 딴 짓하고.”

 “아무 일도 없어.”

 

 캐서린이 출근을 위해 돌담을 나섰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2위의 호텔 및 식당체인 회계팀 실무자로 일하고 있다.

 우실로와의 계약이 성사된다면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있다.

 

 캐서린이 나가자 직원들이 주방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현관문을 닦던 디디도 카운터로 달려 왔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렸다.

 리리가 내게 두 팔을 파닥여 날아오르는 시늉을 했다 .

 

 “오오, 위대한 돌담은 드디어...”

 “하지 마. 그만 해.”

 

 리리가 여전히 그 자세로 마수드를 보며 말했다.

 

 “이보시오. 마수드 백작. 돌담이 드디어 제국이 된다 하오.”

 “오오, 리리 공주. 그거 잘된 일이오.”

 

 다들 시끌벅적한데 인드라와 줄리만 조용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주방 문 앞에 서서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떤 상념이 그들의 머릿속을 지나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그 네 개의 크고 검은 눈동자들을 향해 변명하듯 말했다.

 

 “아직 결정 안 했어.”

 

 **

 “권 사장. 정신 나갔어? 그걸 고민해?”

 

 나는 저녁 장사도 빼먹고 리틀홍콩의 은은한 할로겐 불빛 아래 앉아 있었다.

 박 사장은 위염 때문에 화주 대신 하이네켄을 시켰다.

 나는 여전히 빈땅이었다.

 

 술병 선반 위에 놓인 스피커에서 <마이웨이>가 흘러나왔다.

 주린 할머니는 오늘 목감기에 걸려 노래를 못 부른다고 했다.

 

 “미안해요 권. 내가 노래를 불러줘야 술맛이 날 텐데.”

 “아쉽지만 할 수 없죠. 이부 건강이 먼저니까요.”

 

 저희 고막에는 참 다행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게 둘러댔다.

 할머니는 목에 노란 스카프를 맸다.

 빨간 장미 무늬가 들어간 그 스카프는 줄리의 노란 머리핀처럼 잘 어울렸다.

 

 할머니는 노래를 못 불러서 심심한지 오늘따라 손님들과 수다를 많이 떨었다.

 아까는 뒷방 기원에 들어가서 훈수를 두더니, 지금은 바 건너편 중국인 노인과 하하호호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우리 앞에 놓인 땅콩 접시가 바닥날 쯤이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땅콩을 부어줬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권 사장. 정신 차려. 아님 병원을 한번 가보던가.”

 

 박 사장은 내 고민을 듣자마자 나를 정신병자 취급했다.

 쁘라위 가문이 투자한다는데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망설일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돌담을 팔아넘기는 셈이잖아요. 거기에 내 모든 게 담겼는데.”

 “그래. 말 한번 잘 했다. 권 사장의 모든 걸 돈으로 보상받는 거야. 얼마나 좋아?”

 “돈 받고 팔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

 “누구에게나 팔기 싫은 소중한 것들이 있겠지.”

 “맞아요.”

 “그래서 그 빌어먹을 것들을 끌어안고 지지리 궁상을 떨다 죽어간단 말이야. 그런데 돈 많은 사람이 그 가치를 알아봤어. 풍족한 돈까지 주면서 그 가치를 키워준대. 이게 바로 자네가 말하는 우실로의 제안이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위염이 있다던 박 사장은 하이네켄을 벌컥벌컥 잘도 들이켰다.

 저러느니 차라리 독한 화주 몇 잔을 먹고 뻗는 게 위장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 맞은편의 벽을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리틀홍콩을 거쳐 간 직원들과 찍은 사진이 벽에 도배돼 있었다.

 그 한 장 한 장 마다 할머니는 직원의 볼을 비비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직원과 찍은 사진을 한 장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 밑에는 사진들을 보관한 아주 두꺼운 앨범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일을 하다가도 짬이 나면 그것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차가울 땐 한 없이 차갑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내일 당장 직원들과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찍어줄 직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권 사장.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틀려?”

 “아 참. 쁘라위 저택에 갔다가 이상한 기자를 봤어요.”

 

 나는 박 사장과 더 이상 논쟁하기 싫어 화제를 돌렸다.

 

 “기자? 무슨 기자?”

 “이브누라는 <뗌뽀> 기자였어요. 얼굴에 아주 철판을 깔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은 여기 와서 처음 봤어요.”

 “오, 그래?”

 

 박 사장이 꺼억, 트림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은 처음 봤겠지. 당연히.”

 “무슨 뜻이에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처음 봤을 거야.”

 “설마요.”

 “그 기자는 수하르토 정권에 개기다가 감옥에 오래 있었어. 거기서 옆방에 있던 사나나 구스마오(동티모르 독립 영웅)를 인터뷰해서 대특종을 했어.”

 “감옥에서 어떻게 기사를 써요? 독재정권이 그걸 놔둬요?”

 “부인이 젖먹이 애를 데리고 면회를 자주 왔단 말이야. 그 애 기저귀에다 기사 쓴 종이를 감췄어.”

 

 뜻밖이었다.

 이브누의 껄렁껄렁한 태도에선 맹렬한 기자정신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원체 유명한 인간이야. 얼마 전에 한국 신문과도 인터뷰해서 크게 나왔던데, 몰랐어? 이브누는 원래 로스쿨 졸업해서 변호사가 된 사람이야. 근데 수하르토랑 한판 붙으려고 기자질 한 거지. 지금은 변호사와 기자를 겸업하는 것 같던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나는 바 건너편 주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무슨 게임에서 이겼는지 중국 노인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술집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는 주린 할머니와 이브누 기자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사람들 말이다.

 

 “근데 이브누와 우실로가 친해 보이던데요? 우실로는 골카르당 소속이잖아요. 독재 잔당.”

 “둘 다 엘리트니까 반둥이 고향이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겠지.”

 

 박 사장은 다시 쁘라위 투자 건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시작하기 쉬운 사업이 식당이지만 가장 돈 벌기 어려운 사업도 식당이야. 기회가 한두 번밖에 오지 않아. 그걸 잡아.”

 “함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쁘라위 가문은 브로커가 아니야. 그쯤 되면 계약서 갖고 장난치지 않아. 걔들한테 돌담은 그럴 가치도 없는 하찮은 물건이니까. 말하자면 쁘라위 가문은 군것질 좀 하려고 하는 거야.”

 

 박 사장의 말이 맞았다.

 맞지만, 맞장구치고 싶지 않았다.

 

 “형님. 허브 투자는 어떻게 돼 가요?”

 “어, 땅 사서 농장 만들 거야. 잘 돼가고 있어.”

 “지금 저한테 훈계하실 때가 아니에요. 그거 더 깊게 들어가지 말고 접으세요. 밑 빠진 독이니까.”

 

 할머니와 노닥거리던 중국인이 다가와 발렌타인을 돌렸다.

 이 술집에는 손님들이 격의 없이 술을 나눠 먹는 문화가 있었다.

 박 사장은 사양하지 않고 잔을 받아들자 마자 원샷 했다.

 지금 박 사장의 뱃속에선 맥주와 양주가 섞여 폭탄주의 회오리를 만들며, 헬리코박터균과 함께 열심히 위벽을 깎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술집 문 앞에 번쩍거리는 검은 벤츠가 나타났다.

 손님들은 그 밴에 익숙한 것 같았다.

 우리 말고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밴에서 질밥을 쓴 중년 부인과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렸다.

 귀에 찰랑거리는 귀걸이를 한 그 아이는 인형처럼 예뻤다.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동아시아인의 매력을 간직한 얼굴이었다.

 할머니가 달려가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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