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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3장 공명(共鳴)의 갈림길(3)
작성일 : 19-11-03 05:56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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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여름이 되자 전염병은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먹물 한 점이 하얀 종이를 검게 물들이는 것처럼, 오와리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은 곧 사방으로 번져 일본 전역을 휩쓸었고, 그것은 아마쿠사의 작은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매일같이 시신을 불태우는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무표정한 얼굴로 담뱃대를 물었고, 그때마다 마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숨을 거뒀는지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만 같은 통곡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듯이 울려 퍼졌다.

 

  인간의 오십 년은 하천의 세월에 비하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다르지 아니하니

  한 번 삶을 받아서, 멸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언제 보아도 인간의 생이란 참으로 덧없었다. 하루에도 수 명에서 수십 명이 구토와 고열, 설사로 쓰러져 바닥을 기었다. 전염병자들은 가족과 격리되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그들은 자신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모아놓은 움막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기를 기다렸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한 줄기 눈물과 함께 생을 마감하고 거적에 말려 들것에 실려 나가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어서 이 집을 수색해!”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눈앞에서 다른 이들이 그렇게 덧없이 장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본 전염병자의 가족들이 병자를 집 안에 숨기고 신고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다짐한 이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결국, 마을의 지도자들과 관리들은 무력을 써서 각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모든 집들을 수색해 숨어 있는 병자들을 강제로 끄집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때마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슬퍼하는 이들의 비탄과 절망이 이곳 작은 신사로까지 전해져왔고, 아마쿠사미코토는 전장과는 상관없는 감정들이 전해져오는 것에 신경질이 나 괜히 마을 어귀의 정령들을 잡아 죽이며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괜찮은 건가?”

 

  이제는 더 이상 죽일 정령도 없을 정도로 정령들의 씨가 마르자 아마쿠사미코토는 권태감에 휩싸여 제단에 드러누워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 다행히 아이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고, 이제는 마을에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지 신사에 틀어박혀 근처의 숲에서 나물을 뜯고 풀뿌리를 캐와 깨끗이 씻고 삶아서 신상 앞에 바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는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먹어야 할 때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들풀들을 알아두었지요.”

 

  향긋하면서도 비린 어린잎과 줄기, 뿌리를 씹으며 아이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런 아이를 한동안 지켜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활과 화살을 들고 나가 새 몇 마리를 잡아왔다. 전염병이 도는 마당에 먹는 것마저 부실해져 저 아이가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그녀를 강하게 충동질한 까닭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잡아온 새고기를 손질하고 불에 구워 잠든 아이의 옆에 놓아두었다.

 

  “가미사마?”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아이가 구운 새고기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쿠사미모토는 아이가 감격한 표정으로 새고기를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새고기를 맛있게 먹는 아이의 얼굴에는 또래 아이들의 얼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음에는 새 말고 다른 것도 잡아다줄까.”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사를 청소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요 며칠 아이는 신사에서만 지내면서도 할 일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전과는 달리 마실 물도 몇 시진을 가라앉혀 팔팔 끓인 후에야 마셨고, 걸레나 옷을 빠는 물도 몇 시진 동안 가라앉힌 것만 사용했다. 또한 입과 코를 가린 큰 천은 매일매일 새 걸로 갈았고 깨끗이 빨아 말려놓았다. 마치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한 태도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호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까지 공부를 했기에.”

 

  아이의 이런 노력 덕분인지 마을 사람들이 수없이 전염병에 걸리는 동안에도 이곳 신사만은 무척 평화로웠다. 지금 돌고 있는 전염병의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환자가 발생하던 날에도 아이는 마을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때 감염되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건만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확실히 키가 자랐군. 뼈대도 굵어지기 시작했고.”

 

  아이의 키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이제는 자신이 준 옷들이 맞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열한 살 아이의 키가 이렇게까지 빨리 자라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아마쿠사미코토는 멀리까지 나가 좋은 옷감을 끊어와 아이가 입을 옷을 지었다. 이제는 타비와 신발마저도 발에 맞지 않는지 발가락이 밖으로 비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을 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타비 몇 켤레를 새로 만들기로 하고, 전염병으로 파리만 날리고 있는 신발가게로 가 가죽으로 된 조리와 게타, 그리고 짚신을 새로 사왔다.

 

  “살펴 가십시오.”

 

  가게 주인이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는 것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선 아마쿠사미코토는 신발보퉁이를 들고 마을을 한 번 돌아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전염병자들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 없는지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끓이지 않은 우물물을 그대로 마셨고, 코와 입도 가리지 않았고, 대소변을 본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다.

 

  “저러니 병이 급속도로 번질 수밖에.”

 

  혀를 차며 신사로 돌아온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가 나물을 뜯으러 간 틈을 타 신상 앞에 신발보퉁이를 끌러놓았다. 새 신발을 보고 기뻐할 아이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가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치 미친년처럼 혼자 실실 웃어대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귀엽잖아. 아직 애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새 정이 든 건가…….”

 

 ※

 

  그 무렵, 마을에서는 이번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회의이지 사실상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눈 먼 유랑무녀를 불러다 점을 치는 것으로, 오로지 그녀의 점괘에 의해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신불들께서 분노하셨습니다.”

 

  한참을 점을 치던 무녀가 백태가 허옇게 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모두 그녀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마을 근처 숲에 있는 귀신의 신사와 그 신사에 사는 히닌 아이. 그들 때문에 신불들께서 분노하셔서 이 마을에 재앙을 내리신 겁니다.”

 

  무녀의 말에 좌중이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전염병의 원인이 신사와 아이라 하나, 그 신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은 대단했다. 게다가 그 히닌 아이는 그 신사에 살며 귀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두려움은 또다른 두려움을 이기는 법. 마을 사람들은 신사를 파괴하고 아이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손에 손에 농기구며 몽둥이, 무기, 횃불 등을 들고 신사를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귀신의 신사!”

  “신불들을 분노하게 한 원흉!”

  “사라져라!”

 

  마을 사람들의 분노 어린 외침과 함께 토리이에 날카로운 쇠붙이들이 꽂히고 돌이 날아들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문득, 아이를 찾았다. 일단은 아이를 찾아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결국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아이가 손에 나물광주리를 든 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얼굴을 본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돌을 던지고, 발길질을 퍼부었고 아이는 나물이 든 광주리를 놓치며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신불들이 분노하셨다!”

  “죽어라, 이놈! 죽어!”

  “잠깐!”

 

  누군가가 주먹 만 한 돌을 아이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아이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아이의 눈에는 위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너희들은 어찌 이 전염병이 신불들의 분노 때문이라 여기는 것이냐. 또한 그것이 어찌하여 나 때문이라 여기는 것이냐.”

  “무어?”

  “전염병은 그저 병일뿐이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 사람의 몸이 아프고, 그로 인해 죽는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그것은 신불들의 분노 때문이 아니며, 더욱이 나의 탓도 아니다.”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런데도 너희는 비합리적인 과거의 사고방식과 미신에 사로잡혀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신불들을 들먹이고, 남의 탓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아니하냐.”

 

  마치 마사토부의 후계였을 때로 돌아간 듯한 말투였다. 아이는 마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쏘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보아라. 너희들이 물을 끓여 마신 적이 있느냐. 걸레를 빨고 옷을 빨고 그릇을 씻는 물을 가라앉혀 쓴 적이 있느냐. 아니면 대소변을 보고 손을 씻은 적이 있느냐.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저 신불들의 분노로, 나의 탓으로 모든 원인을 돌리니 그 정도 의지로 어찌 가족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느냐.”

  “닥쳐라!”

 

  아기 머리통 만 한 주먹이 아이의 입가를 후려쳤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알고 있었다. 지금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저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이름을 불렀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아마쿠사미코토의 입에서 불린 이름에 마을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새파랗게 질렸다가 이내 화색을 띠기 시작하는 것이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가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다이묘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저들과 말을 섞지 마라. 인간이란 본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법이다. 더구나 저렇게 무언가에 쉽게 현혹되어 누군가가 쉬운 해결책을 제시해도 들을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더더욱 그렇지.”

 

  유죠의 이름을 부를 때부터 아마쿠사미코토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 신사의 제신인 것을 알아보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유죠만이 눈가에 황홀한 표정을 띄우고 쌍수례를 올릴 뿐이었다.

 

  “이 신사의 제신이신 분께 미천한 인간이 문후 올립니다. 그간 저 때문에 노고가 많지는 않으셨는지요?”

  “유죠.”

  “예.”

  “얼굴을 들어라.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라.”

 

  아마쿠사미코토의 명령에 유죠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상에 새겨진 그대로 검붉은 옷을 입고 칠흑같이 검은 머리를 검정색 머리끈으로 묶어 올리고 있었다. 얼굴 양옆으로 가지런하게 내린 애교머리 때문인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늘고 길게 휘어진 눈 사이로 드러난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빛무리가 되어 몰아치고 있음을 유죠는 볼 수 있었다.

 

  “나는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 아마쿠사미코토다. 그런데 감히 인간들 따위가 아마츠카미의 신사에서 난동을 부리며 신불을 논하다니. 너희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하였구나.”

 

  아마쿠사미코토의 하얀 잇새로 으득,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곧 아마쿠사미코토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서너 사람이 땅바닥으로 쓰러지며 붉은 피가 땅바닥에 줄줄 흘렀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으나 아마쿠사미코토의 검이 한 발 더 빨랐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치 춤을 추듯이 앞으로 나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을 긋고 머리에서 배꼽까지를 갈랐다. 그 모습이, 끝이 둥근 나기소데와 머리끈이 펄럭이는 것이 마치 유녀가 검을 들고 춤을 추는 것 같아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아마쿠사미코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미사마, 제발 자비를!”

  “살려주십시오!”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신의 분노는 잔혹하기만 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에 이채를 띠고 마을을 바라보다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곧, 하늘에서 주먹만 한 불덩이들이 떨어져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신사에 오지 않고 마을에 남아 있던 전염병자들과 노인들, 아이들이 산 채로 불에 타며 질러대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너희들은 나를 조용히 살게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혼자 조용히 쉬고 싶어 신관들과 무녀들까지 쫓아낸 나다. 그런데 감히 그런 나를 건드리다니 그토록 죽고 싶었단 말이냐.”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아마쿠사미코토는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은 왜 이렇게까지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조용히 사는 것을 방해받은 것이 화가 나서? 아니면 신사가 파괴되는 것이 화가 나서? 그러나 조용히 사는 것은 유죠, 저 아이가 오면서부터 틀린 일이 되었고, 어차피 자신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굳이 원인을 찾자면……

 

  “잘 봐둬라, 유죠. 인간을 설득하는 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말로는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이다. 철저히 힘으로 짓밟아야 그 힘에 굴복해 설득당하는 그런 존재란 말이다. 너는 다이묘의 후계였기에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한데도 어찌하여 말로써 이들을 설득하려 하였단 말이냐.”

 

  신사에 온 마을 사람들을 모두 베고 돌아서는 아마쿠사미코토의 칼날에는 굳어지기 시작한 피와 기름, 그리고 약간의 살점이 겹겹이 묻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칼날 위를 쓸며 불길을 일으켜 그것들을 닦아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말했다.

 

  “칼로만 다스리려 든다면 아무도 저를 따르지 않을 테니까요. 아니, 저를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저의 칼이 두려워 복종하는 척하는 것일 뿐. 뒤에서는 언제고 저를 배반할 기회를 엿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저들이 저의 말에 설득당해 저를 따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유죠의 대답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하, 하고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저 이 상황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진중한 것이 평소에 자신의 자리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음은 물론,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신하들과 백성들을 어찌 다스릴지도 고민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작금의 전국은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지금 너의 말은 이러한 시대에 교화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다스리겠다는 것이 아니냐. 너는 그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것이냐.”

  “지금 당장 가능한 것만 이루려 든다면 그 어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제가 말하는 교화의 정치 역시 칼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말 테지요. 그렇기에 저는 한편으로는 강하고 잔인하고 냉혹한 군주가 되고, 한편으로는 자애롭고 부드러우며 덕(德)으로 모두를 품어 안고 교화하는 군주가 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이 신사에 숨어만 있었지? 밖으로 나가 너의 사람들을 찾지 않고?”

  “처음에는 그저 머물 곳이 필요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가미사마의 진심을 느끼고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더 큰 이유는?”

 

  대답을 하기 전, 유죠가 아마쿠사미코토의 앞에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고 아마쿠사미코토를 올려다보며 유죠는 말을 이어갔다.

 

  “가미사마를 얻고 싶었습니다.”

  “뭐?”

  “지금의 저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히닌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시다가의 이름을, 오와리국의 이름을 보고 저에게 오는 사람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인물에게 진정한 충(忠)을 바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히닌이어도 진심으로 품어주시는 가미사마를 보며 ‘이분은 이시다가의 이름도, 오와리국의 이름도 보지 않으시는구나. 그저 유죠라는 한 인간 자체를 보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경스럽게도 가미사마께 저에 대한 충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열한 살 아이의 말 치고는 지나치게 청산유수였다.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 그러니 이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공을 들이며 정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마쿠사미코토는 물었다.

 

  “네가 말하는 충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너를 도와 네 누나를 몰아내는 것?”

  “아닙니다.”

  “하면?”

  “제가 말하는 충은 바로 ‘전국일통’입니다. 작금의 일본을 하나로 통일해 막부를 없애고 천황을 저의 발 아래 두고 천하의 유일한 주인으로 올라서는 것.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이고, 그 모든 여정에 함께해주시는 것이 제가 가미사마께 원하는 충입니다.”

 

  전국일통. 천황을 발 아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하루후사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한참동안 아이의 얼굴만 들여다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문득, 자신이 이 아이를 유죠로 보기 시작한 지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유죠.”

  “예.”

  “가자.”

  “…….”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라. 우리는 이 신사를 떠나 세상으로 간다. 그곳에서 너의 사람들을 만들고 전국일통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가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충이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 떠나기 전, 두 존재는 불타는 마을과 나뒹구는 시체들을 뒤로 하고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 속에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있는 감정이 싹트고 있음을 두 존재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연심(聯 心)이라는 것도 두 존재는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
 

 드디어 전국일통을 향한 두 주인공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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