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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8화. 충돌(2)
작성일 : 19-11-01 23:32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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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꺅!”

 

 초아의 외마디 비명이 어둠 속에 메아리쳤고 커다랗고 검은 형체가 노란 안광을 흘리며 초아와 해랑이의 사이를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 동안, 해랑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눈으론 초아를 좇던 치우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해랑은 호랑이의 발톱에 뜯겨 피가 흐르는 앞섶 부근에 통증을 느꼈지만, 노란 안광을 쫓느라 상처를 확인할 틈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면 앞발에 머리가 날아갔을 거다...’

 

 잔뜩 긴장한 해랑이 시선을 둔 곳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저것이 영역을 넘어온...범?’

 

 하지만 웬일인지 호랑이는 선뜻 두 번째 공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응시한 채로 서 있었다.

 

 해랑은 호랑이의 앞발에 걸린, 찢겨져 나간 자신의 옷 조각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운 끈이 발톱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단 주머니?’

 

 그녀는 퍼뜩 눈을 돌려 비단 주머니에서 흩어져 나간 매실과 소라, 고둥의 흔적을 찾으려 주변을 살폈다.

 

  ⁃ 까드득, 까드득

 

 소라 껍데기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해랑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서둘러 소리를 좇아 풀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 번째 공격 이후에 다시 공격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넋이 나가 호랑이.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형체.

 

 그녀가 가정 했던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창귀...! 오라버니가 제압할 수 있을까? 허나. 그전에...’

 

 해랑은 초아와 은오를 떠올렸다.

 그들에게 치우의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내가 눈을 돌릴 테니 마을로 도망쳐.”

 

 해랑이 생각에 잠긴 사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던 은오가 어느새 해랑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당신이 뭘 할 수 있다고...! 비켜요.”

 

 “안돼. 그럴 수 없어.”

 

 은오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서려는 해랑의 팔을 꼭 쥐었다.

 당황한 해랑은 자신의 팔을 잡은 은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렸지만 비장한, 죽음도 각오한 듯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 자는 왜...’

 

 “해랑이를 두고 그대로 물러나시오.”

 

 기절한 초아를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두고 온 치우가 그들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은오는 해랑이의 손을 더욱 꼭 붙들며 말했다.

 

 호랑이는 걸어오는 치우를 보고 뭔가에 반응하 듯 안광을 번뜩이며 울부짖었다.

 

 “움직여서 범을 자극하지 마시오...!”

 

  ⁃ 까드득 까득

 

 은오의 말에도 치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가까이 걸어갔다.

 

 “신호를 줄 테니 저쪽의 처자를 데리고 마을로 가서 상황을 알려주시오. 부탁하오.”

 

 은오는 가까이 다가선 치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은오의 눈이 커지며 시선이 흔들렸으나, 곧 해랑의 얼굴과 정신을 잃은 초아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허나...”

 

 “우리 마을의 일이오. 그리고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누이를 죽게 할 일 따위, 남의 손에 내 누이의 안위를 맡기는 일도 없을 것이니. 그 손. 놓으란 말이오.”

 

 은오는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나서 해랑의 손을 놓았다.

 

 해랑은 손을 놓고 초아가 있는 쪽을 향해 딱 한 걸음을 걷고 멈춘 은오에게 들리도록 나지막이 말했다.

 

 “마음..고맙습니다.”

 

 은오는 해랑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 ...까득.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세요. 그래야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은오가 끄덕였고 해랑은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매실 한 알을 주웠다.

 

 - .......

 

 해랑과 치우의 귀에만 들리던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치우는 호랑이가 있는 쪽으로부터 해랑이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가시오!”

 

 은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초아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호랑이를 뒤로한 채 소라와 고둥을 먹어치운 창귀가 치우를 돌아본 순간, 호랑이도 치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해랑은 재빠르게 손에 쥐고 있던 매실을 으깨서 호랑이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던졌다.

 

 매실 냄새를 맡은 창귀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호랑이의 움직임도 다시 멈췄다.

 

 해랑은 곧장 호랑이 쪽으로 달려갔고 치우는 매실을 주으러 가는 창귀에게 향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이 미끄러지며 잔상을 남겼다.

 순식간에 창귀를 붙잡은 치우는 자주 가던 호숫가로 단숨에 몸을 옮겼다.

 

 

 

 *

 호수가 눈앞에 보이자 치우는 주저하지 않고 창귀와 함께 호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잔잔하던 호수의 물이 거칠게 일렁이며 호수보다 더 시커먼 그림자가 호수를 가득 채웠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한밤중이었지만 거북마을은 집마다 불이 밝혀져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 곳에 모여 횃불을 세워놓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촌장의 집에선 허 노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초아의 상태를 봐주고 있었다.

 

 “허허. 다행히 별 탈 없으니 곧 깨어날 거야. 많이 놀랐을 테지.”

 

 허 노인이 촌장을 보며 듬성듬성한 이가 훤히 보이게 허허실실 웃었다.

 

 “다행이네.”

 

 옆에 앉아 있던 해랑과 은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은오가 정신을 잃은 초아를 안고 가다가 촌장을 마주쳤고 해랑이도 금방 뒤따라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 여태 치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발이 문제지. 어찌 신도 신지 않고...쯧.”

 

 상처가 가득한 초아의 발을 보고 혀를 차며 치료를 마친 허 노인 앞으로,

 은오가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해랑을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르신, 이 처자의 상처도 좀....”

 

 “저는 괜찮습니다.”

 

 해랑이 손목을 잡아빼자 은오는 그녀에게 돌아앉아 어깨를 감싸 잡았다.

 

 촌장은 그런 은오의 모습을 가만히 곁눈질하며 조용히 웃음 지었다.

 

 은오는 앞섶을 가리어 포갠 해랑의 두 손을 치우려 하며 걱정이 가득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기는! 앞섶에 묻어나온 이 피 좀 보아라...!”

 

 

 

 “그 손 치워. 무례한 놈.”

 

 치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은오는 치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해랑의 손을 꼭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여 황급히 손을 뗐다.

 

 “아...! 미안하오. 나는 그저, 걱정이 돼서…”

 

 치우는 은오의 말에 대꾸도, 표정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 시선... 말투. 틀림없다. 분명 그때의 그 사내가 맞는 것 같은데. 허나 지금쯤 더 나이가들었을 텐데 어찌 앳된 목소리에 수염조차 없는 모습이란 말인가.... 그저 나의 착각인가?’

 

 방의 밝은 빛에 비추인 치우의 모습을, 은오는 시끄러운 속을 부여잡고 꼼꼼히 뜯어보았다.

 

 치우는 은오를 단번에 알아보았던 터라, 그에게서 느껴지는 자신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모를 턱이 없었다.

 

 치우는 은오에게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 촌장을 보았다.

 

 ‘우연? 아니, 그럴 리 없지. 이게 내 기다림에 대한 대답이냐, 윤슬.’

 

 자신을 보는 치우의 시선에 촌장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실로 만족스러워 보이는 듯한 촌장의 표정이 치우의 눈에 거슬렸다.

 

 “나가서 얘기 좀 하지.”

 

 은오는 자신의 변명엔 대꾸도 하지 않고 나이가 지긋한 촌장을 막 대하는 치우를 보고 뭐 저런 무뢰배 같은 놈이 있나 싶어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양반이라도 되는가? 아무리 그래도...’

 

 

 “신 군도 이리 들어와서 치료부터 받는 게 어떨까 싶은데...?”

 

 촌장은, 앞뒤 가릴 것 없다는 듯 다른 이 앞에서 반말을 하며 선전포고를 해온 치우의 태도에도 여유롭게 자신의 마음대로 분위기를 주도하려 했다.

 

 “바닥을 다 적실 수는 없잖아.”

 

 냉랭한 치우의 태도에도, 촌장은 여전히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피를 멎게 해야지.”

 

 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부터 그쪽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던 해랑이, 촌장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치우를 보았다.

 

 온몸이 흠뻑 젖었는데도 유독 소매를 뜯어낸 그의 오른팔에서만 뚝 뚝 느리게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해랑의 눈이 커졌다.

 

 “다쳤잖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치우에게 다가가 오른팔을 끌어당겼다.

 대충 감싸 맨 젖은 천에서 계속해서 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해랑의 머릿속에 자신 앞에 있던 초아를 품으로 당겨서 감싸 안던 치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다쳤구나…몰랐...하. 어찌 난 그런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치우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그를 보는 해랑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다는 아니지만 피는 멎을 정도로는 회복된 자신의 상처와는 달리, 그의 상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덧댄 천이 무색하게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이렇게 다쳤는데 호수로 들어가면 어떡해! 아무리…”

 

 “신해랑!”

 

 치우가 이성을 잃고 소리치던 해랑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놀라서 눈을 크게 뜬 해랑을 안심시키려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쉬잇…울지 말고, 집에 가서 제대로 치료하면 돼. 그렇지?”

 

 치우는 피가 흘러 너저분해진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해랑이를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촌장은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신군, 그리고 해랑이. 고생이 많았구나. 네가 다쳐서 네 오라비가 내게 따질 것이 한가득이겠지만. 일단 가서 네 오라비 팔을 좀 봐주렴.”

 

 촌장은 허 노인이 찧고 있던 지혈약초를 챙겨서 해랑의 손에 들렸다.

 

 “네, 촌장님. 일단 가요, 오라버니.”

 

 해랑은 잽싸게 신을 신고 촌장에게 꾸벅 인사했다.

 치우는 돌아서기 전에 자신을 여유롭게 쳐다보고 있는 촌장을 싸늘하게 한번 쏘아보고 해랑의 재촉에 못 이겨 몸을 돌렸다.

 

 ‘왜 아무도 저 아이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는 거냐. 호수로 들어가…? 호수에? 범은 어찌 되었고? 대체 이곳은...! ’

 

 은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서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은오의 눈초리를 촌장도 지켜보고 있었다.

 

 “선비님께 결례가 많았습니다. 초행길이라 피곤하셨을 텐데, 혼자서 찾아오시게 한 것도 모자라 이런 일을 겪게 하다니... 하마터면 크게 다치실 뻔하였습니다.”

 

 은오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호명되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아니오. 마을에 우환이 있는데 나를 맞으러 나올 틈이나 있었겠소.”

 

 “모시러 나갔으나 어찌 길이 엇갈린 듯합니다...저의 불찰입니다.”

 

 “괜찮소. 그나저나...그, 호랑이가 있다는 말은 미리 듣지 못하였는데...”

 

 “예.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지라... 마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단하시겠지만, 선비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다녀온 후에 말씀을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촌장은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고 은오도 따라 일어서며 촌장의 앞을 막았다.

 

 “아니.”

 

 “예?”

 

 촌장은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놀라 되물었다.

 

 “같이 갑시다.”

 

 **

 

 “피곤하실 텐데, 따라 오지 마시래도...”

 

 “이제 함께 살 사람들인데 겸사겸사 얼굴이나 보지요.”

 

 불편해하는 촌장을 보며 은오는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따라갔다.

 

 이윽고 어수선한 무리 사이로 촌장과 은오가 들어섰다.

 아까는 무리중에 보이지 않던 샘찬도 어느새 자리를 채우고 앉아 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아가 호환이라니…”

 

 “에이, 설마… 초아네 일가친척 중엔 호환을 당한 이가 없다던데?”

 

 “그럼 애가 왜 한밤중에 자다가 거북머리로 갔겠어? 창귀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홀려서 간 것이지!”

 

 “아니, 내가 산 속 깊은 이 마을에 살면서두, 주변 마을에서 도깨비 보았단 이야긴 들어보았지만 호랑이 얘긴 들어본 적도 없네! “

 

 종전에 초아가 정신을 잃고 업혀 온 것을 보고 초어의 어머니는 통곡을 했고, 그 소리를 통해 번진 소문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져 있었다.

 

 “크흠!”

 

 촌장이 목을 가다듬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옆...엔 뉘시오?”

 

 모두의 시선이 은오에게로 쏠렸다.

 

 “아, 저는 이제부터 이 마을에...”

 

 “촌장님 정말 초아가 호환을 당한 겁니까? 아이고!”

 

 평소에 초아를 예뻐라 하던 사냥꾼 장산이 멀리서부터 활을 맨 차림으로 촌장 앞에 달려 나와 소매를 잡으며 울먹였다.

 

 “자자, 다들 조용히 하시게. 초아는 놀라서 기절 했을 뿐이지, 범에겐 상한 곳 하나 없이 몸 성히 돌아왔으니 걱정 마시오.”

 

 “그렇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은 맞단 말이오?”

 

 누군가 불쑥 끼어들어 물었고 사람들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기도 내가 낄 자리는 없나 보오...”

 은오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멀리, 해랑과 치우가 걸어갔던 방향을 바라봤다.

 

 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하지만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니 걱정 말고 들어가서 편히 주무시오.”

 

 마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몇몇 사람은 땅에 주저앉기도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구먼. 자자 들어들 가십시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제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순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냉소적인 표정을 짓던 샘찬은, 촌장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호랑이는 어찌 되었습니까?”

 

 샘찬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촌장에게로 향했다.

 

 “잡았습니까?”

 

 샘찬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차 대답을 재촉했다.

 

 “잡았소? 호랑이 가죽을 처음 만져보겠구먼!”

 

 “으으, 소름이 끼쳐 가죽을 어찌 벗깁니까.”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게끔 인도하는 창귀는 치우가 정화해 없애버렸고

 귀신이 씌였다가 정신이 든 호랑이는 해랑이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갔으나,촌장은 이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달리 설명 할 방도가 없었다.

 

 촌장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편안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호랑이는 잡지 못했지만, 큰 상처를 입은 채로 돌아갔네. 사냥은커녕 제대로 달릴 수도 없을테니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테지. 염려들 말고 어서 들어가시오.”

 

 “큰 상처라구요? 누가 그리했단 말입니까? 꽝철이? 아니면 설마 해랑이?”

 

 촌장은 그제야 자꾸만 따져 묻는 샘찬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초아도 있었고 선비님 한 분도 계셨다.”

 

 “그런데 다들 어디 있는 거죠?”

 

 “내가 그 선비..”

 

 “아니, 그 남매 말입니다. 초아는 촌장님 댁에 있고.”

 

 샘찬이 은오의 말을 끊으며 받아쳤다.

 

 샘찬은 분명 촌장에게 무언가 꿍꿍이를 가지고 따져 묻고 있었지만, 아주 걱정스러워하는 표정과 말투로 묻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샘찬에게 동조하여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촌장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샘찬이 쐐기를 박으려 말을 보탰다.

 

 “설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호랑이를 막다가 다친 것 입니까?!”

 

 사람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숨길 것이 아니라 어서 치료해야 하지 않소?”

 

 “신군과 해랑이 남매도 촌장님 댁에 초아와 함께 있는 것이오? 얼마나 다친 거요?”

 

 “장산 어른댁에 치료제가 많지 않습니까? 어서 챙겨갑시다!”

 

 “촌장 어른 말씀 좀 해보시오.”

 

 사람들이 동요하는 소리에 촌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놈은 분명 무언가 알고 있다. 그리고 저놈이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는 걱정은 남매의 안부가 아니구나. 괘씸한 것…’

 

 촌장은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진정하고! 해랑이가 피곤해하여 신군이 집에 데려간 것이야. 걱정할 일은 없으니 돌아가시오. 어서!”

 

 다들 주뼛거리며 발을 옮기자 샘찬이 시무룩한 척 중얼거렸다.

 

 “상처하나 입지 않았을 리가…. 헌데, 상처만 입었어도 호환이라 하는데 … 사람을 습격한 호랑이는 창귀가 붙어있으니 사람을 찾아온 것 아닌가…?”

 

 중얼거림이었지만 그토록 조용한 곳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 목소리였다.

 

 남매의 안위를 걱정하던 사람들의 따뜻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

 

 창귀는 호랑이에게 당해 죽은 사람의 귀신이다.

 창귀는 호랑이의 노예가 되어 곁에 붙어 다니는데, 그 영혼이 호랑이의 부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범에게 잡아먹히게 해야 한다.

 

 무서운 것은 창귀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웃사촌과 가족까지도 찾아다니며 불러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부터 범에게 물려간 사람이 있는 집안하고는 사돈을 맺지 않았을 정도인데, 샘찬은 지금 호환을 당한 남매가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말을 한 것이다.

 

 물론 샘찬의 말이 다 맞지만, 창귀는 사라졌고 정신을 차린 호랑이는 촌장과의 약속 때문에 절대 이 결계를 넘어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촌장은 그걸 설명할 방도가 없었고 이젠 무턱대고 안심하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난감해졌다.

 

 촌장도 딱히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모두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새색시 새나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그 애들 때문에 호랑이에게 물려갈까, 그게 그렇게들 걱정이시라면 찾아가 확인이라도 하지 그러십니까?!”

 

 “그리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자, 촌장님!”

 샘찬이 부러 철없는 대답을 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새나의 말이 자신들의 염치없음을 탓하려는 말인 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들 모른 척 샘찬의 말을 따르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

 

 촌장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우물가 옆 남매네 집으로 몰려갔다.

 은오와 남은 몇 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촌장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무슨일이 날지 모르니 나는...아무래도 저들을 따라가 봐야겠소! 같이 좀 갑시다!”

 

 은오도 뒤늦게 남은 이들을 이끌고 해랑의 집으로 가는 무리를 뒤쫓았다.

 

 “질투심에 눈이 먼 인간이란…….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혼자 남은 촌장이 섬뜩한 기운을 내뿜으며 곧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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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호의와 적의 2019 / 9 / 17 217 0 6886   
4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2019 / 9 / 13 237 1 7584   
3 3화. 두 쌍의 오누이 2019 / 9 / 10 226 1 5870   
2 2화. 악몽의 끝, 두번째 이름 2019 / 9 / 6 245 1 6150   
1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2019 / 9 / 3 358 1 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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