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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왜 내게 온 거야
작성일 : 19-11-01 09:05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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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를 하나씩 벗겨냈다.

 온 얼굴을 뒤덮은 주름살을 하나씩 하나씩, 움푹 팬 곳을 하나씩 하나씩, 늘어지고 쳐진 곳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다시 물었다.

 

 “혹시... 캐서린?”

 

 이번엔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나는 뒤로 물러섰다.

 어떤 거부감이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나를 밀어냈다.

 캐서린의 유령은 반갑다기보다 무서웠다.

 

 캐서린이 이렇게 늙어버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카르타의 중산층 엘리트라면 곱게 늙을 기반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캐서린의 얼굴에는 깊은 고통이 흉터처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런 얼굴이 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우울과 슬픔이 저절로 배어 나오는 얼굴 말이다.

 지금 캐서린의 얼굴이 그랬다.

 

 “앉자.”

 

 나는 간신히 말했다.

 캐서린이 굽은 등을 의자 등받이에 내려놓았다.

 뼈밖에 안 남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을 때 그녀는 끙, 신음을 냈다.

 

 “여기 오니까 좋아요. 한창 행복하던 시절의 돌담.”

 “그리웠어?”

 “그럼요. 많이. 그릴기도 새 거고 식탁도 새 거고. 그리고 우리 마음도 새 거.”

 “우리 마음은 언제나 새 거일 거야.”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이 모든 게.”

 

 캐서린은 식당을 다 둘러본 뒤에야 내게 인사했다.

 

 “미스뜨르.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긴. 몇 시간 전에 헤어졌는데.”

 

 캐서린이 웃었다.

 반둥에서 말을 타던 캐서린의 명랑한 웃음과 할머니가 된 캐서린의 쓸쓸한 웃음이 교차했다.

 나는 슬펐다.

 슬퍼서 아무 말이나 주절거렸다.

 

 “우린 반둥에 갔어. 거기서 빠당도 먹고 화산도 구경했어. 말 타고 한 바퀴 돌기도 했지. 그리고 또...”

 “그만 하세요. 다 알아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캐서린은 세월에 모든 걸 뺏겼지만 선생님 같은 태도만은 뺏기지 않았다.

 

 “만나서 좋아요.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그 말은 아까 했잖아.”

 “좋아서 그래요. 좋아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캐서린은 왜 오랜만이라는 걸 강조하는 걸까.

 

 “우리가 얼마나 오래 안 만난 거야?”

 “음...”

 

 캐서린이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보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음... 아주 오래요.”

 “얼마나 오래?”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알았어.”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오랜 기다림 끝에 캐서린과 나를 이곳에 묶어 놓았다.

 그러나 그 힘이 무슨 얘기를 나누라고 가르쳐주진 않았다.

 

 “미스뜨르.”

 “왜?”

 “난 불행하게 살았어요. 그것만 알아줘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캐서린의 삶이 어땠는지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배어 나오는 슬픔에 괴로웠다.

 그냥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어떤 말도, 어떤 질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레오와 안 맞았어요. 그 사람은 끊임없이 날 괴롭혔어요.”

 “내 생각이 맞았군. 나는 캐서린이 레오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

 “레오는 사업에 계속 실패했고 결국 나를 버렸어요. 내게는 그를 위해 진 빚만 남았죠.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였어요.”

 “왜 내게 불행을 털어놓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돼.”

 “아뇨. 그러고 싶어요.”

 

 그러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캐서린의 한탄을 계속 들어야 했다.

 

 “사실 이때쯤부터, 그러니까 우리가 반둥에 다녀온 뒤 얼마 안 돼서 집안이 계속 기울었어요. 아버지가 새 사업을 시작했는데 소송에 걸렸거든요. 소송 당사자가 힘 있는 사람이라 질 게 뻔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졌어?”

 

 캐서린은 내 질문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 할 말만 계속 했다.

 

 “소송에서 지면 모든 걸 다 내놔야 했어요. 집도 사업체도. 결국 나는 무너져가는 집안을 구해야 했어요. 나 혼자 집안을 짊어진 거예요.”

 “힘들었겠네. 나는 뭘 했어? 그냥 손 놓고 보기만 했나?”

 “미스뜨르한테도 힘든 시기가 올 거예요. 하지만 미스뜨르는 날 도와주려고 했어요. 자기가 힘든데도 나부터 도우려고 했어요. 난 놀랐어요. 그리고 미스뜨르는 돌담을 다시 일으켰어요.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크게. 전 또 한 번 놀랐어요.”

 

 캐서린이 날 보았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내 눈을 노려보았다.

 

 “미스뜨르. 자카르타에서 화교가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힘들겠지. 돈 때문에 버티는 사람들이니까.”

 “화교가 돈이 없으면 비참하게 길거리에서 죽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전 너무 겁이 났어요.”

 “알았어. 힘들었겠지.”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미스뜨르만 날 도우려 했어요. 난 말로 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너무 고마웠어요. 그걸 기억해 주세요.”

 “알았어.”

 

 캐서린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는데, 가슴에 걸려 있던 걸 털어내는 느낌이었다.

 

 “날 도와주려고 했어요... 놀랐어요... 그래요... 놀라고 고마웠어요... 좋은 사람...”

 

 캐서린은 계속 혼자 그 말을 되뇌었다.

 나는 캐서린의 피곤한 영혼을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 하나는 해야 했다.

 

 “우리는 계속 친구였어?”

 

 캐서린이 눈을 떴다.

 얼굴의 주름살들이 출렁였다.

 굽은 등과 마른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캐서린은 울고 있었다.

 눈물샘이 메말라 눈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분명히 울고 있었다.

 

 “미스뜨르...”

 “괜찮아. 말 해.”

 “참 말하기 힘드네요.”

 “우리가 싸웠을 수도 있지. 서로 힘들었을 텐데.”

 “죽을 때 미스뜨르가 떠올랐어요.”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털썩 기댔다.

 최악의 대답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날 떠올렸다는 것은, 내게 깊은 한이 맺혔다는 뜻이었다.

 나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다 괜찮아. 우리가 이렇게 봤으니까.”

 “나는 미스뜨르가 한 말 중에 두 개를 기억해요. 평생 그 두 개가 생각났어요.”

 “뭔데?”

 “하나는 돌담 개업하기 전에 나한테 한 말이에요. 지금부터 친구가 되자는 말. 그 말을 듣고 난 너무 기뻤어요. 날 경계할 만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해주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아마 한참 웃었을 거예요.”

 “그랬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에게 친구가 되자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

 캐서린의 단단한 껍질 밑에 따뜻함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두 번째는?”

 “앞으로 할 말이에요.”

 “뭔데?”

 “그건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요.”

 “그럼 말하지 마.”

 

 캐서린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이 창처럼 나한테 꽂혔어요. 평생 그걸 가슴에 꽂고 살았어요. 그 말만 떠올리면 가슴에 피가 흘렀어요.”

 “내가 모진 말을 했군.”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생의 어느 길목에서 우리는 다퉜고,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와서. 그게 다. 이런 제길.

 나는 캐서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아뇨. 내가 미안해요.”

 

 캐서린과 나는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

 나는 눈을 떴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두드렸다.

 

 자카르타의 아침은 새소리로 요란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보다 새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애완용 새를 파는 시장은 1년 내내 손님들로 북적인다.

 

 나는 새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앉았다.

 뭔가 허전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그 속으로 바람이 들이치는 것 같았다.

 

 캐서린의 방문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나는 그걸 알 수 없었다.

 

 이전까지의 방문은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박 사장, 인드라, 주린 할머니 모두 아직 현실에서 만나기 전에 나를 찾았고, 나는 그 인연으로 그들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이 작은 루꼬는 나와 그들의 만남을 중개하는 통로였다.

 그 세 번의 방문은 다 행복했다.

 

 “캐서린, 대체 왜 온 거야?”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캐서린의 방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난 밤 캐서린과 함께 자리에 앉은 뒤 내내 캐서린의 한탄만 들었다.

 급기야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먼저 사과해야 했다.

 나는 캐서린의 흐느끼는 얼굴을 떠올리며 의문에 젖었다.

 

 “대체 왜?”

 

 **

 돌담의 홀에 아침 햇살이 비쳐들었다.

 디디가 마른 걸레로 현관문을 닦았다.

 작은 체구의 디디에게 걸맞지 않는 거대한 그림자가 현관문부터 카운터까지 길게 드리웠다.

 

 나는 힘이 솟았다.

 무거운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화창한 아침이 전날 밤 캐서린의 유령에게서 전염된 슬픔을 말려 주었다.

 

 아침부터 카운터에 직원들이 몰려 있었다.

 주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인드라도 그 안에 끼었다.

 

 “뭐 해?”

 “아침밥이요.”

 

 카운터 위에 검은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까끼리마(다섯 개의 다리라는 뜻으로 노점을 뜻함)에서 사온 튀김들이 가득 들었다.

 리리가 거대한 튀김 하나를 입에 넣고 통통한 손가락을 청바지에 슥 문질렀다.

 

 “이런 것 좀 먹지 마. 몸에 안 좋아.”

 “몸에 안 좋으니까 맛있는 거예요.”

 

 리리의 입에서 침방울과 함께 노란 호박 조각이 튀어나왔다.

 자카르타 서민들은 까끼리마에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더운 열대다보니 쉽게 상하지 않는 튀김류가 주종을 이룬다.

 젊은 층도 위장병을 자주 앓고 면역력이 떨어져 우기에 골골대는 이유가 이런 식단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인드라가 직원들 식사를 챙겨주지만 아침마저 챙길 순 없었다.

 

 “정말 맛있어?”

 “하나 먹어 보세요.”

 

 나는 리리처럼 작고 통통한 튀김 하나를 집어 들고, 장티프스를 걱정하며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튀김 옷 안에 국수가 들어 있었는데, 쌉쌀한 후추가 느끼함을 덜어 주었다.

 

 “맛있네.”

 “삼발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그놈의 삼발.

 인도네시아인들은 삼발이 없으면 밥이 안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삼발을 밥에 비벼먹기도 하니까.

 

 리리가 케이팝을 틀었다.

 스피커에서 포미닛의 <이름이 뭐에요>가 울려 퍼졌다.

 

 “리리, 내가 가사 해석해줄까?”

 “해보세요.”

 

 나는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하는 척 했다.

 콧소리로 멜로디를 따라가다가 내 맘대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문이 열리고 멋진 미스뜨르가 들어오네요. 이름이 뭐에요. 뭐긴 뭐야 권이지.”

 “쳇.”

 

 리리가 꼬마 마수드에게 소리쳤다.

 

 “마수드여, 여기 이상한 작사가가 오셨네.”

 “오오, 불경한 소리 하지 마시오. 위대한 작가시구려.”

 

 이렇게 돌담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활기차고, 평온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 없는 아침이 또 열렸다.

 나는 이런 날들만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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