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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3)
작성일 : 19-10-31 23:23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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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찰나의 순간 에밀리의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상식이 충돌했다. 하녀로서의 상식과, 친구로서의 상식. 하녀로서 고용주의 사생활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이참에 아예 마주쳐버려서 백작을 후보에서 제낄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멀쩡히 연애 중인 인간을 결혼상대로 삼진 않겠지.

 

  …잠깐. 하녀와의 연애라고 진지하게 안 보면 어쩌지?

 

  에밀리는 잘 알았다. 세상은 계급 차이가 나는 남녀의 연애를 대체로 한쪽의 유희쯤으로 여긴다는 것을. 급 낮은 쪽이 여자라면, 게다가 하녀라면 더더욱. 비비안은 어쩌면 한나를 그저 난이도 낮은 장애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쓸데없는 승부욕을 불태울지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머리가 더 핑핑 돌았다.

 

  그때 비비안이 에밀리를 툭툭 건드렸다.

 

  “에밀리. 왜 그래?”

  “어, 네?”

  “저기 뭐라도 있어? 녹스. 뭐 보여?”

 

  비비안의 말에 따라 녹스가 저 멀리로 시선을 틀었다. 에밀리는 흠칫했다. 그는 키가 크니까 한나가 바로 보일 것이다.

 

  “아아니에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에밀리는 그의 무릎 뒤쪽을 발로 콱 찍어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어머….”

  “…….”

  “…….”

 

  비비안만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보는 내가 다 아프다는 듯. 순식간에 땅바닥에 무릎을 꿇린 녹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에밀리는 잔뜩 억누른 빡침이 그의 두 눈동자에 고요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최대한 달래는 투로 아무 말이나 뱉었다.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요.”

  “…….”

  “이제 좀 눈높이가 맞네? 호호.”

 

  에밀리는 원숭이처럼 웃었다. 녹스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슬쩍 비비안에게 도움 요청하는 신호를 보냈지만, 비비안은 그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구경하다가 에밀리와 눈이 마주치자 잘했다는 듯 싱긋 웃었다. 어쩐지 녹스와의 심적 거리가 한 걸음 멀어진 대신 비비안에게 점수를 딴 것 같았다. 뭘 잘했다는 건지는 몰라도.

 

  “…….”

  “어, 얼굴 다 봤으니 일어날까요?”

 

  에밀리가 어색하게 내미는 손을 녹스는 잡지 않고 혼자서 일어났다. 에밀리는 머쓱하게 손을 치우면서 한나가 있던 곳을 흘끗 쳐다봤다. 다행히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어서 대화를 마무리 짓고 저택으로 들어가야 했다. 에밀리는 재빨리 비비안의 손을 붙들었다.

 

  “저 할게요. 비비안 아가씨. 저, 그런데…”

 

  단서를 덧붙일 때 으레 따라 나오는 접속어가 붙자 비비안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역시, 당장은 상냥하게 굴긴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못 참을 귀족 아가씨가 맞다. 에밀리는 심호흡을 하고 이어 말했다.

 

  “저한테 열흘만 말미를 주시겠어요?”

 

 ***

 

  에밀리는 침대에 누운 채 고민에 빠져있었다. 옆에는 제가 쓰던 원고와 연애소설 따위를 몽땅 어지른 채.

 

  ‘으음. 어쩌지.’

 

  비비안이 눈 돌아갈 남자를 저택 밖에서 찾아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크리스토퍼 백작이 상당히 유력한 후보인데, 아무리 그래도 친구의 애인을 꼬시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휘갈겨둔 ‘앞으로 할 일’에는 이를 위해서 해치워야 할 문제들이 단계적으로 나열돼있었다.

 

  1. 조건에 맞는 남자를 알아온다.

  2. 괜찮은 남자인지 검증한다.

  3.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

 

  1번부터 난제였다. 거울만 봐도 매일매일 개안하며 살았을 비비안이 손톱만 한 펜버 땅 어디에 있는 남자를 보고 흡족해 한단 말인가. 작은 단서라도 얻기 위해 아까부터 에밀리는 신분 높은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연애소설을 뒤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들이 항상 ‘거친 매력’으로 포장된 남주인공의 안하무인 태도에 터무니없이 반하고 나서 평균적으로 일주일쯤 뒤에 그와 거친 사랑을 나눈다는 점. 만일 소설을 참고하여 비비안에게 그런 남자를 소개해줬다간 일주일쯤 뒤에 에밀리가 그 남자와 함께 거칠게 생매장될 것이다.

 

  덧붙여 에밀리는 비비안이 말한 팔푼이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못난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애소설도 찾아봤는데, 그런 소설은 절대 없었다. 단 한 권도.

 

  진전이 없던 차에 누군가가 문고리를 움직였다. 에밀리는 벌떡 일어나 침대 위에 널려있던 것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봉쇄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녹스였다. 괜히 찔려서 에밀리는 그를 째려봤다.

 

  “나한테 볼일 있어요?”

  “여기 내 방인데.”

 

  아. 그랬지.

 

  녹스가 없는 틈을 타서 에밀리는 그의 방을 제 것처럼 쓰곤 했다. ‘원래는 제 방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며 그녀는 묻지도 않은 이유를 뻔뻔하게 댔다. 녹스는 화내거나 한숨 쉬는 것도 지겨워서 그냥 들고 온 물건이나 그녀에게 건넸다. 저번에 부러진 스툴을 그가 수리한 것이었다.

 

  “어머… 손재주가 제법이네요.”

  “칭찬하지 마. 불안하니까.”

 

  칭찬 속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간파한 녹스가 정색하고 말했다. 빗자루질 이래로 에밀리는 어떻게든 녹스에게서 부려먹을 틈새를 찾았다. 그러다 가넷에게 걸려서 등짝을 한 대 얻어맞고 끝나는 듯했더니, 다음날 가넷은 그에게 은근하게 다가와 우물물 길어오기를 부탁했다. 아니, 한 손에 낫을 들고 있었던 걸 봐선 ‘시켰다’는 편이 맞다.

 

  이후 녹스는 저택의 자질구레한 노동거리를 간간이 떠맡았다. 남의 방에서 한가로이 휴식시간이나 즐기는 누구 덕분에. 그 ‘누구’를 내려다보던 시선이 문득 그녀의 옆에 의심스럽게 뭉쳐있는 이불더미로 향했다. 에밀리의 시선도 그를 황급히 따라갔다.

 

  “뭐, 뭐예요?”

  “내 방 수색.”

 

  녹스가 그대로 손을 뻗었지만 에밀리가 반 박자 빨랐다. 그녀는 이불을 걷으려는 녹스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왜 남의 사생활을 들춰보려고 해요?”

  “왜 네 사생활이 내 침대 속에 있는 건데?”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을 읊는 녹스를 에밀리는 너 아주 못됐다고 말하듯 째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예 이불 위로 올라타 버렸다. 녹스가 저를 한 손으로 들어 옮기고 쉽사리 이불을 들춰볼 수 있다는 걸 그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저 안에 뭐가 있기는 있군, 하고 생각했지만 녹스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그것에 더 힘 빼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는 잊지 말아야 할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어제 제안 말이야.”

 

  에밀리는 잠깐 물음표를 띄우더니, 곧 비비안의 부탁을 말한다는 걸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녹스는 말을 잇기에 앞서 조금 고민했다. 돌려 말해야 하나, 아니면 이유부터 대야 하나. 결국 그는 평소보다 조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손 떼.”

  “싫은데요?”

 

  단칼에 대답이 날아왔다. 녹스가 이유를 묻듯 눈썹을 찡그렸다.

 

  “아가씨께 미움 받기 싫단 말이에요.”

  “그럴 일 없어. 어차피 금방 잊어버릴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해요?”

 

  왜 그렇게 확신하긴. 그는 제 여동생을 잘 알았다. 하지만 에밀리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다른 표현으로 대체했다.

 

  “곱게 자란 아가씨의 지나가는 변덕일 뿐이니까.”

 

  이번에는 에밀리가 눈썹을 찡그렸다.

 

  “가벼운 마음이라고 단정할 권한, 제3자한텐 없는 거 알죠?”

  “…….”

 

  에밀리가 보기에 녹스는 그저 경호원이고 제3자였다. 그는 비비안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함부로 판단할 권한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녹스도 이를 알기에 일단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여전히 고집스런 시선을 거두지 않자, 에밀리는 논리정연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아가씨 고집을 꺾을 수도 없잖아요. 차라리 내가 있는 게 나을걸요. 그래야 그나마 이상한 놈 중에 괜찮은 놈 선별해서 데려가지.”

  “…선별. 그건 무슨 수로?”

  “음, 먼저 만나서 겪어봐야겠죠?”

 

  간단하지만 확실한 인사 검증이었다. 에밀리는 이 정도면 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녹스는 그 모습에 오히려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면 이상한 놈을 먼저 만나서 겪어보는 본인은 괜찮다는 건가. 위험한 순간에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녹스가 선뜻 긍정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자 에밀리는 한숨을 폭 쉬고는 급기야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정 못 미더우면 같이 가요.”

 

  약속하자는 거였다. 그녀는 녹스의 손을 주워들어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제 새끼손가락에 그의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가슴께로 힘 있게 끌어당겼다. 그녀의 작은 손이 이끄는 대로 그가 함께 끌려갔다. 손등과 손가락 사이, 굵게 도드라진 뼈마디 위에 에밀리는 가볍게 입 맞췄다. 그건 아스타인식 약속의 표시였다. 별다른 강제력은 없지만 아스타인의 시골내기들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겼다.

 

  녹스는 나름대로 저를 안심시키려는 에밀리에게 더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경호원으로서 오해를 사지 않을 수준의 간섭은 딱 이 정도임을 스스로도 알았다.

 

  “결론 났죠?”

 

  대강 찾아온 듯한 평화에 에밀리는 잘 됐다는 듯 미소 지었다. 때마침 창밖에서 가넷의 매서운 욕지거리가 날아들었다. 청소해야 되는데 다 어디 갔냐고 찾는 소리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스가 돕겠대요!’ 하고 소리친 뒤 에밀리는 그에게 손 흔들었다.

 

  “이제 가서 청소해요.”

 

 ***

 

  얼마 후, 에밀리는 약속한 대로 녹스를 불러냈다. 다들 한가로이 쉬고 있는 주말 오후쯤이었다. 저택 식구들의 눈을 피해서 그녀는 테이블이 있는 빈 방에 그를 밀어 넣은 뒤, 첩보요원이라도 된 듯 문을 걸어잠갔다.

 

  방 한가운데의 넓은 테이블엔 곧 그녀가 가져온 종이뭉치가 한 장씩 놓였다. 4장씩 5줄, 족히 20장은 되는 그것은 몽타주였다. 누구 실력인지 아주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녹스는 조금 질린 표정이 되었고, 에밀리는 아주 의욕적으로 말했다.

 

  “자, 그럼 하나씩 살펴볼까요?”

 

 

 
작가의 말
 

 1) 현생에 떠밀려 다음 화는 일주일 후에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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