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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브리튼 던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8

블루튜더의 전사였던 요한은 레드튜더와 전쟁 준비 중 블루튜더가 레드튜더에 흡수되자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탈단하여 외진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요한 앞에 아무라는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하는데...

 
06
작성일 : 19-10-31 22:47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1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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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손 부족…….”

 

  요한이 들고 있던 의뢰 전단지를 골똘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무는 옆에서 존티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가 요한이 세상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자 그에게 다가가 묻는다.

 

  “보통 여기 올라오는 것들이 일손 부족으로 인한 구인 광고가 대부분이잖아. 근데 뭘 그리…….”

  “으음……. 그렇긴 한데 이건 좀 구미가 당기면서도 좀 망설여지네.”

 

  그가 내민 전단지는 어촌 지역에 사는 망그르브의 의뢰로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일정 수량을 채우는 내용이었다. 간단한 의뢰였으나 대부분 이곳의 구인광고의 등급이 F임에도 이번 의뢰는 E등급이었다.

 

  “아무래도 전문 낚시꾼이 아니면 대부분 어려운 내용이니까요. 거기다 일정 수량을 채우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세릴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요한은 아무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사실 낚시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내륙 쪽에서만 활동을 한데다 민물낚시도 못 해 봤는데, 이번 기회에 해볼까 싶었지만……. 배우러 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건데 그런 목적으로 가도 되나 싶기도 하고, 거기다 못하면 괜히 민폐만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요한이 곤란한 표정으로 아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무는 눈에서 빛을 내뿜으며 그 전단지와 요한을 붙잡고 말한다.

 

  “드디어 다시 이 날이 온 건가? 다시금 나의 혼을 불태울 장소가 생겼군.”

 

  그러면서 그는 요한을 데리고 당장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서 채비를 하고 나온 요한과 아무는 곧장 망그르브가 있는 어촌으로 향한다. 비교적 가볍고 따뜻한 복장의 요한에 비해 아무는 옷 곳곳에 찌를 걸어두고 장화에 낚싯대에 이어 색안경까지 끼고 제법 낚시꾼의 포스를 풍긴다.

 

  “제법 제대로구나 너?”

  “전장에서 칼과 방패, 갑옷을 차고 나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요한은 그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저 멀리서 제법 꼬장꼬장해 보이는 백발의 노인 하나가 다가온다. 구릿빛 피부에 말랐지만 딴딴한 잔근육, 매서운 눈빛. 척 봐도 억세 보이는 바다남자였다.

 

  그는 요한과 아무를 번갈아 보더니 요한을 향해 앞니가 하나 빠진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여기서 설마 이리 유명한 인물을 보게 될 줄이야! 반갑소! 여기 온 지 꽤 됐을텐데 인사도 한 번 하러 간 적이 없었구만! 망그르브요! 부르기 어려우면 레이미처럼 망할 할배라던지 좋을 대로 부르쇼!”

  “아, 저는 그냥 부르는 것도 편합니다. 저번에 주신 연어는 잘 먹었습니다.”

  “그래? 거 보낸 보람이 있구만! 그거 이젠 내년되거나 저기, 북쪽으로 올라가야 잡을 수 있어. 좋은 시기에 와서 좋은 거 먹은 거라구! 하하하하하!”

 

  여기 사람들은 호쾌함이 기본 패시브인 건가? 이번에도 밀고 들어오는 투박한 호쾌함에 요한은 잠시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 망그르브는 손을 내밀어 요한과 악수를 한 뒤 옆에 따라온 아무를 바라본다.

 

  “너는 뭐한다고 여기 왔어?”

  “낚시 의뢰가 나왔잖아, 할배! 나의 낚시혼이 불타오르고 있다고!”

  “낚시혼이 불타오르면 평소에도 하면 될 걸 왜 꼭 의뢰할 때만 나오고 이 짓거리냐 이 말이야.”

  “거, 뭔가 동기라는 게 있으면 불타오르잖아? 그런 겁니다.”

  “낚시혼이 아니라 그냥 땔감이었구만. 썩 꺼져!”

 

  망그르브는 아무에게 손으로 저리 꺼지라는 시늉을 하면서 요한에게 다시 다가간다.

 

  “근데 우리 유명인께서는 낚시를 해본 적 있나 모르겄소. 낚시하는 법은 알고 있나?”

  “아, 대충 알고 있습니다.”

 

  요한은 두 손을 모아 머리 위에 올렸다가 휙 하고 내린다. 그러고선 조심스레 망그르브의 얼굴을 살핀다. 망그르브는 씨익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하, 모르는구만. 낚시 퀘스트는 초짜만큼이나 귀찮은 것도 없는데.”

 

  망그르브는 요한을 데리고 낚시의 기본 지식과 미끼, 떡밥, 릴링, 챔질 등을 가르쳐 준다. 요한은 머리로 이해하곤 있었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감을 잡지 못했기에 일단 망그르브와 함께 직접 낚시를 해보기로 한다.

 

  근처 갯바위로 향한 그는 이미 포인트에 앉아있던 아무를 발로 차서 내쫓은 후 요한에게 낚싯대를 던져보도록 시킨다. 그 후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뭐, 이래도 저래도 낚시란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다림과 인내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 번에 그걸 낚아 올리는 거야. 인생과 다를 바 없다고!”

  “흠, 인생과 다를 바 없다…….”

 

  망그르브가 잠시 집으로 돌아간 뒤, 요한은그의 말을 중얼거리며 앉아서 낚싯대의 끝부분을 바라본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낚는다……. 그게 과연 될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안 오는 와중에 옆에서 뭔가 분잡한 소리가 들려온다.

 

  “으업! 으업! 으어어업!”

 

  아무는 낚싯대를 이리저리 휙휙 젓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는 등 뭔가 좀 바빴다. 그는 이상한 기합까지 넣으면서 낚싯대를 흔들어보지만 영 낚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초짜인 요한에겐 뭔가 제대로 된 낚시처럼 보인 모양이다.

 

  “아무, 너 뭔가 좀 있어 보인다?”

  “그렇지? 이대로만 하면 100마리는 문제없다 이 말이야!”

 

  아니, 문제였다. 아무는 금세 지쳐선 썩은 눈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낚싯대를 귀찮다는 듯 이리저리 휘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지루한 건 요한도 마찬가지였는지 요한은 하염없이 낚싯대의 끝만 보고 있었다.

 

  물긴 무는 건가? 아니, 문다고 해도 낚을 수 있으려나? 요한은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자신에게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는 건 힘들었다.

 

  그때 뭔가 이상한 감각이 손을 두드린다. 파도가 일렁이며 줄을 건드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낚싯대가 살짝살짝 휘더니 요한에게 무언가 전하려 하고 있었다. 요한이 의아해하는 사이 낚싯대가 휜다. 요한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낚싯대를 들어 올린다.

 

  분명 잡힌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뭔가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잡아당기던 낚싯대의 무게감이 줄어든다.

 

  “아아아…….”

 

  낚시초짜인 요한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방금 물고기를 놓쳤다. 입질이 왔지만 요한이 긴가민가하는 사이에 달아나 버렸다. 요한이 실망을 하며 안타까움을 아무에게 털어 놓는다.

 

  “이야, 아까웠어. 신기한 느낌이네, 이거?”

  “…….”

  “음? 아무? 왜 그리 조용해……?”

 

  요한이 고개를 돌리자 증오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잔뜩 배어있는 눈으로 아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왜 네 녀석에게만!”

  “어?”

  “용서하지 않겠다! 바다 신의 저주가 네 녀석에게 내릴지니!”

 

  아무는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입질을 요한이 받았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고작해야 낚시 경력 1시간 미만짜리가 먼저 입질을 받는다니. 아무는 휘적거리던 낚싯대를 더욱 더 크게 휘적거리기 시작한다. 아무가 낚싯대를 마구 휘적거리는 사이 요한은 다시 한 번 손에서 입질을 느낀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 전장에서 갈고 닦은 날카로운 감이 요한의 손에서 빛을 발한다. 누구보다도 재빠른 손짓으로 낚싯대를 끌어올리는 요한. 낚싯줄의 끝 부분이 부서지는 바닷물과 함께 반짝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아아…….”

 

  이번에도 낚인 것이 없다. 이번에는 물고기가 제대로 물기 전에 끌어올린 게 문제였다. 망그르브가 아까 말한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을 요한은 떠올리지 못한다.

 

  실패란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역속적인 실패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그건 곧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꼴과 같다. 요한은 그 후에도 3번 가량 입질을 받았지만 제대로 낚아 올린 건 한 마리도 없다. 그 와중에 아무가 질투의 눈으로 그를 노려보는 건 덤.

 

  그 후, 연이어 요한이 물고기를 두 번을 더 놓치고 나서야 망그르브가 갯바위로 올라온다. 그는 계속 허우적거리는 요한의 등을 발로 찬다.

 

  “낚시를 하는 거야, 장난을 치는 거야? 그렇게 휘적거린다고 물고기가 낚이겠냐?”

  “미끼에 생동감을 주어서 낚으려는 나의 낚시법이야!”

  “물론 그런 낚시법도 있긴 하지. 하지만 여기선 아니야! 장소에 맞게 해야 올바르게 낚이는 거지!”

 

  망그르브는 혀를 차더니 요한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좀 잡았나?”

  “계속 물기는 하는데 자꾸 빠지네요…….”

 

  시무룩해하는 요한을 향해 망그르브는 혀를 차더니 낚싯대를 줘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잠시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기다린다.

 

  “물었는지 물지 않았는지 어떻게 채야 하는지, 이런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부분 경험이야.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뭐, 세상에 흔한가?”

 

 낚싯대가 휘기 시작하자 그는 조심스레 손을 잡는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기회가 찾아왔다고 일찍 경거망동하면 툭 하고 빠져버리고 그렇다고 긴가민가하고 우물쭈물 거리면 스윽 하고 지나가버리지. 그래서 언제나 타이밍을 잘 봐야해.”

 

  그러더니 그는 조금 있다 낚싯대를 휙 하고 들어 올리더니 챔질과 릴링을 번갈아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고 너무도 수더분해서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이윽고 물고기가 올라온다. 팔딱팔딱 뛰는 녀석의 꼬리지느러미를 들어 보이며 망그르브는 웃는다.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촥! 하고 낚으면 된다고. 어렵나?”

 

  어렵지. 요한은 그렇게 속으로만 대답하고 고개는 끄덕거렸다. 망그르브는 일단 먹고 하라면서 찬합 두 개를 건넨다. 하나는 요한, 하나는 자기 거라고 했다. 아무 거는 없냐고 물어보지만 저 녀석은 물고기를 낚아도 닭만 먹을 새끼라면서 안 가져왔다고 당당히 말한다.

 

  “게다가 저 짓거리하고 있는데 뭐가 이쁘다고 주겠어?”

 

  아무는 여전히 뭔가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는데 입질도 못 받고 있었다. 그런 아무를 무시하고 찬합을 열어보니 안에는 전갱이 튀김에 소스가 뿌려져 있었고, 그 외에 어묵, 생선 순살 튀김, 오징어 볶음 등 다양한 반찬들이 들어있었다.

 

  시야에 음식이 들어오니 잊고 있던 허기가 돈다. 요한이 빠르게 식사를 하는 동안 망그르브는 제발 가만히 있으라며 아무를 욕했고 아무는 망그르브에게 머리를 한 대 맞고 나서야 얌전하게 낚시를 하기 시작한다.

 

  때리러 가서는 찬합을 아무에게 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망그르브는 참 귀찮은 녀석과 한 집에 살게 됐다고 말한다.

 

  “저거 꽤나 분잡해서 정신머리가 사납거든. 뭐, 같이 지내봤으니 알겠다만.”

  “아, 네…….”

  “저런 놈이 언젠가 칼 맞고 바로 뒈지는 거야. 누구 칼에 맞을지가 문제인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망그르브는 킬킬거리며 웃는다.

 

  “그래도 처음에 왔을 땐 무슨 승냥이마냥 으르렁 거리던 놈이었는데 지금은 꼬리 흔들면서 깽깽 거리니 귀엽긴 하다만.”

  “으르렁 거렸다고요?”

 

  전갱이 튀김의 기름과 육즙을 동시에 느끼면서 요한이 묻는다.

 

  “2년 전에 여기에 살기등등해가지고 와선 낚시 좀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구. 스마 영감탱이가 데리고 왔는데 와, 저거 잘못하면 내가 깨물린다 싶을 정도였어.”

 

  망그르브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돌린다. 망그르브가 놔두고 간 도시락을 게걸스럽게 처먹고 있는 아무를 보며 요한은 확실히 저런 모습을 보면 짐승이 맞긴 하다고 생각한다.

 

  “요놈 새끼 본새가 별로라 혼꾸녕을 내줄 생각으로 배에 태웠지. 역시 육지에 살던 짐승새끼라 그런지 바다에선 얌전해지더라고! 크하하하하하하! 잔뜩 경계하더만 물에 빠지는 건 싫은 거겠지!”

 

  다시금 그 때 그 모습이 떠올랐는지 망그르브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요한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품속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더니 화염석으로 만든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서 망그르브는 요한에게 묻는다.

 

  “내가 좀 직설적이지?”

  “음, 그렇습니다.”

  “크크크, 빈말도 안 해주는구만.”

 

  그는 다시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는다.

 

  “후우우우……. 성격이 이 모양이라서 그래. 이런 일을 하다보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고.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내가 잘해야 본전이고 바다가 도와줘야 먹고 하늘이 도와줘야 살아 돌아올 수 있으니까. 아침에 나갔지만 저녁에는 내가 여기에 있지 않을 수도 있거든.”

 

  큭큭 거리고 웃으며 내뱉은 말에는 묘한 짠맛이 배여 있다.

 

  “그러니 아침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저녁에 내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이거야. 그러니 바로바로 내뱉는 거지. 적어도 뒈질 때 후련하게 죽을 수는 있잖아.”

  “……그런 말을 하지 말걸 같은 후회는 없을까요?”

  “뒈질 때 그런 걱정을 왜 해? 어차피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그러니 툭툭 내뱉더라도 생각은 하고 내뱉어야지.”

 

  감정표현을 바로바로 해야 한다는 게 망그르브의 신념이었다. 요한은 그런 망그르브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때 낚싯대가 움직인다. 요한은 먹던 밥을 놔두고 재빨리 낚싯대를 부여잡는다. 낯선 듯 이젠 조금 익숙해진 진동이 그의 손을 흔든다. 아까 망그르브가 보여줬던 챔질을 생각하며 요한은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챔질과 릴링을 하기 시작한다.

 

  망그르브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옆에 있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하면서 내심 요한의 낚시를 눈치껏 본다. 이윽고 요한의 릴링이 점차 빨라지더니 이내 물고기 하나가 바다를 벗어나 햇살을 받으며 튀어 오른다.

 

  붉은 비늘에 거친 파도 근처에서만 산다는 레드 아이 치푸라였다. 크기는 평균치에 못 미치는 30cm 정도였지만 요한은 얼떨떨하게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바라본다.

 

 

  //

 

 

  저녁 노을이 져갈 무렵, 요한, 아무가 낚은 고기는 6마리 뿐이었다. 목표량인 10마리를 못 채웠기에 의뢰 자체는 실패라고 봐야 했다. 죄책감을 얼굴에 새기고 요한이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했지만…….”

  “괜찮아! 기대를 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지!”

 

  엄지를 치켜세우는 망그르브였지만 오히려 그런 말이 요한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한이 다시 한 번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망그르브는 연신 괜찮다고 말한다.

 

  “어디 뭐, 인생이 잘 풀리기만 하겠나? 오늘처럼 꽝도 있지만 어떨 때는 씨알 굵은 놈을 낚아 올려 손맛, 입맛, 눈맛 다 보는 날도 있는 거지. 그렇기에 이런 날도 좋은 날인 거야!”

 

  그러면서 그는 나무상자 하나를 건넨다.

 

  그 안에는 소금얼음으로 채워진, 요한이 낚은 레드 아이 치푸라가 들어 있었다.

 

  “첫 고기야. 가져가서 한 번 맛보라고. 웬만하면 회 쳐 먹는 것을 추천하지!”

  “아아, 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망그르브는 한사코 거부하는 요한의 손에 억지로 퀘스트 보수를 쥐어준 채로 두 사람을 보낸다. 영혼이 털려나간 아무는 집에 도착한 후 치킨으로 집 나간 영혼을 불러들여 부활, 가져온 레드 아이 치푸라로 회를 뜬다.

 

  “도대체 낚시도 못하면서 어떻게 이런 기술은 익히는 거야?”

 

  아침과 상반되는 요한의 평가에 아무의 영혼은 다시금 가출을 시도한다.

 

  간장에 찍어 먹는 회의 맛이 요한의 입안에 퍼진다. 쫄깃하면서도 탱탱하고 고소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그의 입 속에서 장대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간장은 그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튀어나오는 맛을 정렬시키고 다음 악보가 들어오는 것을 준비한다.

 

  첫 낚시의 맛이었다.

 

 

 //

 

 

  요한이 살롱에서 미트 스파게티를 후루룹 하고 있는 중에 가게 문을 열고 한이 들어온다. 한은 자루에서 손질된 돼지고기들을 구스토스에게 건넨다. 구스토스는 자루를 카운터 안쪽에 내려놓고 안을 확인하더니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야생 돼지들을 이렇게 잘 잡는 사냥꾼은 여기엔 자네뿐일 거야.”

  “애초에 여기서 사냥꾼으로 밥 벌어먹는 놈이 나 하나뿐인데, 뭐. 얼른 마실 거 하나 서비스로 줘.”

 

  구스토스는 얼음이 든 잔과 버번을 내놓는다. 한은 잔에 술을 따르고 기분 좋게 마신다.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가자 마치 목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해 마신 듯 한은 상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한은 버번을 한 잔 더 따르더니 구스토스에게 사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요즘 마물들 영역들이 제각각이야. 저번에는 여기 살지도 않는 [포이즌 혼 와이번] 소형종이 숲을 돌아다니더라니깐.”

  “뭐? 그런 위험한 녀석이 왜 이 근처 숲에?”

  “요즘 전쟁통이니 산이고, 숲이고, 들판이고 죄다 난리잖아. 아무래도 영역을 옮기고 옮기느라 약한 녀석이 여기까지 밀려나 들어온 모양이겠지. 위험할까 싶어서 바로 쏴 죽였어.”

  “와이번의 간을 술에 담그면 각별하다던데.”

  “안 그래도 오늘 담가놓고 오는 길이야. 다음 주 쯤 되면 맛보게 해주지.”

 

  그렇게 껄껄 거리더니 마저 한 잔을 비운 다음 한은 구스토스에게 보수를 받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이봐, 한! 또 사냥인가?”

  “이번에는 퀘스트 지점에 들러서 뭐 건질만한 사냥감이 있나 살펴보려고.”

 

  그러더니 그는 가게 문을 열고 나간다. 요한은 버번과 잔을 치우는 구스토스에게 요즘 한이 바빠 보인다고 말한다.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법 느긋하게 지내시는 분이셨는데 요즘 꽤나 바쁘시네요?”

  “자기만의 휴식기를 가지는 겁니다. 보통 2주 정도 쉬는데 쉬는게 끝나면 무지하게 돌아다니죠. 오늘만 해도 제가 부탁한 야생돼지 2마리는 물론 다른 곳에 토끼 고기 10마리도 바로 납품한 걸로 알고 있어요.”

 

  10마리씩이면 사냥 말고 그냥 토끼 농장에 부탁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었지만 야생의 맛도 각별해서 그런 건가 싶어 요한은 가만히 있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 요한은 집에 들어가서 쉴지, 아니면 퀘스트 지점으로 가 일을 더 찾아볼지 고민한다. 집에 있기 보단 역시 밖에 돌아다니는 편이 더 좋을 거란 생각에 요한은 퀘스트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퀘스트 지점 게시판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아까 가게를 나간 한이 턱을 괴고 게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요한이 다가가 한에게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묻자, 한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게시판에 고정한 채로 대답한다.

 

  “사냥 의뢰가 올라왔긴 한데 이거 애매해서…….”

  “애매하다고요 어떻게……?”

  “웬만하면 내일 아침까지 끝내고 오전에 살롱에서 한 잔 걸친 다음 집에서 퍼질러 자고 싶거든. 근데 이거 혼자서는 내일 아침까지 못 할…….”

  그러다 한은 고개를 돌려 요한을 바라본다. 그는 요한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연다.

 

  “시간 있나?”

  “네? 시간이요? 저도 지금 무슨 퀘스트를 받을까 하고 온 거라…….”

  “그럼 나랑 같이 하나 좀 하지. 보수는 6:4로 자네가 4정도로 어때?”

 

  갑작스런 제안에 요한은 당황했으나 이내 한 씨와 같이 퀘스트를 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선뜻 수락한다. 한은 고맙다면서 전단지를 뜯어 요한과 같이 한의 집으로 향한다. 요한처럼 마을 외곽에 위치한 한의 집 마당에서 그가 기르는 사냥개인 잭이 꼬리를 치며 반긴다.

 

  잭은 거대 늑대 중 하나인 에피키온의 믹스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크기가 웬만한 대형견들의 2배가량 컸다. 만약 조금만 더 컸다면 안장을 채워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거대한 개를 강아지 다루듯 쓰다듬으며 안으로 들어간 한은 사냥 채비를 하고 나오더니 요한에게 활을 주며 말한다.

 

  “활은 쏴 본적 있나?”

  “네. 그 정도는 합니다.”

  “사냥을 해 본적은?”

  “낚시 정도는 해봤지만 사냥은 해 본적 없습니다.”

 

  한은 알겠다면서 꼬리를 치는 잭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 그 정도면 됐지. 활도 못 쏠 정도면 짐꾼으로만 써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역시 전장을 누빈 몸이라 활 정도는 쏠 수 있군.”

 

  그는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잭과 요한을 데리고 집을 나선다. 들판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 두 사람과 한 마리. 꽤나 깊게 들어온 숲은 산과 인접한 곳으로 지형이 제법 억세고 울퉁불퉁했다. 한은 개울이 흘러 모인 맑은 연못 앞에 캠프를 설치한다.

 

  “오늘은 사슴 5마리와 남방엘크 대형종 하나를 잡을 거야. 대형종은 이 녀석이 일을 해줄 거고 일단 자네와 내가 할 일은 사슴 5마리 정도를 잡는 거지.”

 

  한은 잭을 쓰다듬으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을 한다. 잭은 말을 알아들었는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요한과 한은 활을 들고 숲속을 살핀다. 한은 거친 숲길을 마치 제 집 안방인 마냥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요한도 본바탕 체력이 꽤 되는지라 그런 한을 놓치지 않고 바짝 따라붙는다. 한이 멈추자 요한도 멈춘다. 앞에는 규모가 크다곤 할 수 없는 들판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사슴 무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아, 저기 있…….”

 

  요한이 말을 하려 했지만 막힌다. 한의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소 가벼운 느낌의 한이었는데 지금 주변의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오른 쪽 눈이 평소보다 날카롭고 차가운 건 기분 탓이 아니다.

 

  그는 호흡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다음 활을 든다. 요한은 그 일련의 동작이 너무도 매끄럽고 수려해서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너무도 고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옆에 누구도 없는 느낌. 그 기운을 유지한 채 한은 활 시위를 놓는다.

 

  얄팍한 바람소리가 귀를 스쳐지나간 후 사슴 하나의 머리가 화살에 꿰뚫린다. 사슴 무리는 당황해 이리저리 도망을 치고 그제야 한은 약간의 숨을 고른 다음 요한을 바라본다.

 

  “아, 미안. 자네가 쏠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바로 해버렸군.”

  “아니,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도 쐈어야 하는 건데……. 워낙에 음…….”

 

  한에게 그런 분위기에 대해 말을 하는 건 지금은 좀 실례가 아닐까 싶어 말을 아낀다. 한은 죽은 사슴에게 가 단숨에 목과 다리를 베어 피를 빼곤 그걸 어깨에 짊어지고 캠프로 향한다. 요한이 대신 들어주겠다고 말했지만 한은 고개를 저으며 사양한다.

 

  “내가 죽인 생명의 무게는 내가 짊어져야 하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잭에게 시키지만 손질하기 전엔 내가 대부분 다 옮겨.”

 

  그렇게 옮기고 난 후 한은 잭에게 먹지 말라는 말을 당부하며 다시 숲으로 향한다. 끼잉 거리며 실망하는 잭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이번엔 거칠고 높은 산을 오른다. 제법 고도가 있는 곳에 올라온 한은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은 아래는 물론 옆의 산 위쪽도 훤히 보일 정도로 트인 곳이었다. 그는 자리에 잡더니 품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 질겅질겅 씹는다. 요한에게도 하나를 권했기에 요한은 받은 고기를 같이 씹으며 말한다.

 

  “담배라도 태우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긴 하는데 사냥할 땐 안 그래. 숲에 불을 내면 저주받는다는 말이 있지.”

 

  가볍게 웃은 다음 그는 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낸 다음 입에 대고 술을 마신다. 요한은 그런 한을 보면서 참 술을 맛있게 마시는구나 생각한다. 고기를 뜯고 또 한 모금을 마신 후 한이 요한을 보고 말한다.

 

  “그래, 사냥은 처음이라 그랬지?”

  “네. 사람 쏘는 일은 많이 했는데 짐승 쏘는 일은 처음이라니 좀 아이러니 하죠.”

 

  비하적인 말에 한이 킬킬거리며 웃는다.

  “거, 그것도 그렇네. 킬킬.”

 

  한이 요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람을 쏠 줄 안다고 짐승까지 가볍게 쏠 수 있는 건 아니라네.”

  “네? 짐승을 쏘는 게 더 쉽지 않나요?”

  “음, 저 쉬울 때도 있긴 하지만……. 어쩔 때는 절대 활 시위를 놓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

 

  힘 플라스크에 입을 갖다 대는 한을 향해 요한이 그런 경우도 있냐며 의문을 표한다. 한은 힙 플라스크에서 입을 떼더니 듬성듬성한 턱수염이 있는 턱을 긁으며 대답한다.

 

  “전쟁에선 서로 적의를 가지고 있으니 날 끝을 향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이잖아? 물론 그것도 일반인에겐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근데 자연은 아니거든. 정말이지 순수해. 그 순수함이 너무 무서울 정도거든.”

  “순수함이요?”

  “맑고 고운 눈. 짐승들은 하나 같이 그런 눈들을 하고 있어.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순수함에 압도당하고 말지. 내가 저기 저 생명을 앗아갈 자격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는 거야.”

 

  한이 입 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눈을 가리킨다.

 

  “만약 내 옹이구멍에 눈깔이 하나 더 있었다면 난 지금쯤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지. 그래도 나는 활시위를 놓는 사람이었어. 그래도 그 때는 여느 때처럼 거 참, 잘 맞았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더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한은 고기를 들어 보인다.

 

  “결국엔 이렇게 먹기 위함 아닌가? 나도 어차피 하나의 포식자라고 생각하면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아 그나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러더니 그는 활을 들어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아래에 보이는 들판에 사슴 무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요한도 따라 활을 든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순간 한의 활이 먼저 사슴을 향해 날아간다.

 

  활은 사슴의 몸통을 꿰뚫었고 사슴 무리는 빠르게 도망치는 바람에 요한의 활은 다시 나가지 못한다. 두 번 째 사슴을 옮긴 후 한은 아무래도 따로 떨어져서 활동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

 

  “목표를 포착하면 나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사냥감에만 몰두하니까 아무래도 나 혼자 사냥하게 되는 것 같아. 캠프는 기억하지?”

  “네, 걱정마세요. 다만 저 혼자 허탕치고 돌아올 것 같아 걱정이네요.”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요한은 한이 추천한 구역에 자리를 잡는다. 적당한 높이의 언덕이었는데 저 멀리 들판이 보이는, 전망이 괜찮은 곳이었다.

 

  요한은 수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활을 들고 대기한다. 어느새 저녁노을이 하늘을 불태우는 시간이 됐다. 구름들은 태양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늘어져 있었고 들판은 불타는 하늘 아래에 주황 빛 물결로 넘실댄다.

 

  요한은 그 때 앨리와 같이 본 노을을 떠올린다. 힘들면 가끔씩 가보라고 했던 곳.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블루 튜더에서 검과 갑옷이 보내졌을 때 한 번 갔으면 괜찮았을까? 괜히 머쓱해져 요한은 콧잔등을 긁는다.

 

  그러면서도 요한은 날이 저무는 것에 대해 걱정이 생긴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으면 사냥하는데 제약이 생기니까. 시간이 너무 지나지 않기를 바라는 와중에 들판에 사슴 한 마리가 보인다.

 

  무리에서 벗어난 녀석인가? 아니면 길을 잃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활을 들고 천천히 활시위를 당긴다.

 

  어렵지 않다. 수많은 과녁의 중앙에 화살을 꽂아 본 요한이었다. 움직이는 적장의 어깨 죽지에 화살을 박아 넣을 정도의 실력자이다. 요한은 거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곧 한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고 깊이 공감한다.

 

  저 멀리 떨어진 사슴의 눈을 바라본 순간, 그 깊은 눈동자는 사심 없이 저녁 들판을 거닐고 있었다. 아무런 죄도 없이, 그것은 자연 그대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

 

  저 생명의 목숨을 내가 거둬도 되는 건가? 요한의 손에 망설임이 들러붙는다. 마치 요한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듯 사슴은 귀를 쫑긋거리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미안해.”

 

  요한이 활시위를 놓자 날렵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정확히 목을 꿰뚫은 화살은 사슴의 목숨을 그 자리에서 거둔다. 요한이 사슴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이제 어둠이 내려앉아서인지 순수함을 품고 있던 사슴의 눈은 빛을 잃었다.

 

  그 눈에는 원망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요한의 마음은 더욱 무겁다.

 

 

 //

 

 

  캠프로 돌아오니 거대한 짐승 하나가 쓰러져 있다. 목에는 선명하게 거대한 이빨자국이 나있는 그 시체 옆에 피투성이의 잭과 털에 묻은 피를 씻겨주는 한이 있었다. 한은 요한이 짊어진 사슴을 바라보더니 그를 향해 묻는다.

 

  “그래, 쐈는가?”

 

  요한은 말이 없다. 한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사슴 5마리와 남방엘크 대형종까지 있으니 제법 양이 많았다. 그 많은 무게를 잭은 견디며 한을 따라간다. 한은 잭을 쓰다듬으며 녀석을 격려한다.

 

  “가면 살이 가장 많이 붙은 뼈를 줄 테니 힘내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잭은 꼬리를 흔들며 거대한 혀로 한의 얼굴을 핥아댄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한은 쉴 틈 없이 바로 사체를 뒤뜰로 옮긴다.

 

  “…….”

 

  해체를 하기 직전 한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 어떤 내용의 기도인지 요한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모습이 사냥 때처럼 너무도 고요하고 무거웠다.

 

  한은 하나 둘, 잡아온 사냥감들을 해체한다. 해체가 끝나고 나머지 찌꺼기들은 다시 통에 옮겨 놓는다. 그는 통을 닫고 그걸 잭의 등 뒤에 묶자 잭은 능숙하게 통을 가지고 마을 밖으로 향한다.

 

  “나머지는 자연에 돌려보내주는 거지. 만약 내가 사냥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장례를 치르되 시체는 놔두고 마을에서 죽으면 숲에다가 그냥 던져놓으라고 했지. 자연에 화살을 들이대던 놈의 업보인 셈으로 말이야.”

 

  키득 거리며 웃는 한의 얼굴. 아무리 떼가 묻었어도 크리스탈의 본질은 바뀌지 않듯이 한의 떼 묻은 순수함의 본질도 바뀌지 않는다. 해맑게 웃는 한이 그렇다.

 

  헤어지기 전 한이 요한을 향해 한 말이 있다.

 

  “자연에게 항상 감사하도록 해야 하네. 우리 모두 자연에서 받은 걸 빌려 쓰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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