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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15 - 레볼루션 (2)
작성일 : 19-10-31 22:46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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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호는 진주가 간부가 되었을 때 기뻤다. 그녀를 내심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그녀가 먹이로써 먹힌다면 자신은 어찌해야 될까 하고 그는 언제나 괴로워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직접 간부가 되겠다고 자원했고 주혁은 그녀와 동침함으로써 그녀를 허락했다. 물론 제호는 괴로웠지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호는 진주가 간부가 된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하려는 행동에 대해서도 적극 동의했다. 제호도 간부였지만 인간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먹이로써 살고 싶지 않아 주혁의 밑에 있었던 거니까.

 

  그리고 그녀를 위해 동료들을 모으고 먹이가 될 사람들을 돌보며 지냈다.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서였다.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를 위한 행동. 제호에게 점점 삶의 목적은 진주에게로 맞춰지고 있었다.

 

  진주는 아름다웠다. 먹이로써 살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삶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농락하려고 하는 일부 머저리들에게도 전혀 굽힘이 없었다. 그래서 폭력을 당하고 성추행을 당했어도 그녀는 절대로 자신의 의지를 밀어내진 않았다. 물론 그 머저리들은 제호가 알아서 처리했지만.

 

  그리고 간부가 되었어도 그녀는 자신의 긍지를 관철했다. 때때로는 주혁에 반항하고 주혁에게 얻어맞기 까지 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는 간부로써의 할 일을 다 하면서도 먹이가 되는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제호는 어려운 자신의 상황에서도 그런 그녀를 보며 빛이 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호는 그 빛을 꺼뜨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호는 이번 계획에서 그녀가 가장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작전을 짰다.

 

  그리고 덕분에 진주는 안전하게, 정말 안전하게 마지막 인원들을 수송할 수 있었다. 제호는 출발하지 못한 버스에 미련이 남았지만 진주가 계획대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합류지점까지 무사히 가리라 여겼다.

 

  그는 손을 흔들며 가라는 시늉을 했다. 피로 도배가 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뚫린 왼쪽가슴에 피를 뿜어내며 제호는 몽롱해지는 의식으로 진주에게 말했다.

 

  “도망...쳐... 진주...야... 그 .. 녀석은...”

 

  제호의 손이 떨어진다. 그러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핏덩어리들은 주인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맹렬히 뿜어져 나오고 있엇다.

 

 

 

  진주는 이제 막 사회 초년생으로써 삶을 시작하려 했던 신입사원이었다. 그녀는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심각한 취업난에 그나마 취직이 된 것으로도 감사하고 있었다. 물론 취직을 했다고 자금사정이 나아질 거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기뻤다. 스스로 돈을 벌며 살게 되었다는 것에.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그녀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첫 출근 전날 밤. 하늘에서 내려온 재앙, 불행들로 인해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며 깨어졌다. 그녀의 출근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우와, 영혜와 마찬가지로 진주도 왁자시 피난소에 있던 피난민 중 하나였다. 피난소에 오기 전 그녀는 눈앞에서 부모님이 괴물이 되고 그 두 사람이 동생과 언니를 잡아먹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 수라장을 겨우 빠져나와 군대의 도움을 받은 그녀였다.

 

  그러나 얼마 후, 피난소 내부에서 괴물들이 나타났고 피난소는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괴물들을 피해 도망쳤다. 한 밤중에 살기 위해서 괴물들을 피해, 도망치려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뛰쳐나갔다. 그 후 기억이 그녀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기억의 처음 부분은 어느 구멍가게 안이었다. 구멍가게는 갖가지 물품들이 가득했고 그것은 가정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구멍가게 입구는 거대한 트럭이 가게 내부까지 들어와 트럭 왼편은 구멍가게 안쪽에, 오른편은 밖을 향해 있었으며 가정집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은 무너진 천장이 막고 있었다. 결국 진주의 머리만한 창문을 제외하곤 사방이 막힌 채였다.

 

  만약 탈출하려 한다면 입구로 돌진해 있는 트럭 왼쪽 문을 통해 트럭 오른쪽 문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진주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트럭 문을 열고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왔으리라. 진주는 이곳에서 탈출하기 보단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여건이 충족된 이곳에서 계속 살기로 결심한다. 진주는 그렇게 8개월가량을 그 안에서 보내야 했다. 8개월 동안 그곳은 진주의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8개월 째, 진주는 한 동안 열리지 않던 트럭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와 마주했다. 검은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았던 첫인상이었지만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붉은 눈. 새빨갛고 기분 나쁜 붉은 눈이 진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진주는 오랜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나 먹이로써 감옥에 갇히게 된다. 진주는 생각했다. 괴물들은 괴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괴물들은 괴물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감옥에 갇힌 그날 밤, 진주의 눈물이 곰팡이 냄새나는 담요 속에 깊게 스며들었다.

 

  진주가 갇힌 지 한 달째 되던 날, 감옥 안에 남아있던 사람은 진주와 어린 소녀 둘 뿐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끌려 나갔고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애시 당초 끌려간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진주는 함께 남은 소녀를 가엾게 여겼다. 소녀는 사태 이전에 부모를 잃고 사태 때 동생을 잃었다고 했다. 그녀는 동생에게 너무 나쁘게 대해서 만약 다시 살아서 만난다면 꼭 잘해주고 싶다며 후회했다. 자신보다 어린 소녀가 감당해야할 무게에 진주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 후 진주는 간부가 되었다. 간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간고기를 먹고 주혁과 관계를 맺으면 되는 것이었다. 진주는 옆방에서 간간히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중년 남자의 고기를 먹은 다음 주혁과 함께 잤다. 그리고 그렇게 진주는 간부가 되었다.

 

  간부가 된 그녀는 식량을 관리하며 인간이 식육이 되는 것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그녀는 언제나 먼저 정찰을 나서 인간을 제외한 식량을 한도까지 가져오며 큰 공로를 세웠다. 덕분에 주혁도 인간을 잡아먹지 않으려는 그녀를 그다지 터치하지 않았다.

 

  그런 반면, 진주는 몰래 제호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을 모아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기가 오면 주혁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구출해 마을을 이뤄 괴물들에 대항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다. 주혁의 공포정치에 맞서 사람들이 마음으로 화합한 공동체를 이루자. 진주는 그리 결심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찰을 갔다 온 진주는 소녀가 다른 정찰대에 의해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소 그녀를 싫어하던 여자 둘이 벌인 일이었다.

 

  진주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간 정찰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에도 슬펐다. 그 일 이후 그녀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반란을 절대로 실행시키고, 성공하고 말리라.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주혁이 최정예 멤버들을 내보내고 경계근무를 자신과 뜻을 같이한 동료들로 바꾼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제호와 동료들에게 계획을 실행시키도록 전달했다. 그리고 밤 9시. 어두운 밤에 이뤄진 쿠데타는 성공했다.

 

  주요 시설 및 탈출에 위험이 될 만한 곳은 장악했고 적의 수도 줄였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사히 탈출하여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진주와 제호, 동료들만 탈출하면 모든 계획이 완료될 터였다.

 

  그러나 지금, 제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제호가 와서 동료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것으로 계획이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제호는 보이지 않는다. 진주는 동료들을 불러 모은다. 동료들은 그녀에게 현재 남아있는 주혁 측 병력들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먼저 탈출하라고 지시한다. 예상대로 동료들이 만류하며 고개를 흔들지만 진주는 확고하다. 그녀는 제호를 데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탈출할 테니 합류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전한다.

 

  결국 동료들은 진주를 놔두고 교도소를 떠난다. 그들은 부디 진주가 제호를 데리고 무사히 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지막 인원들이 탈출하는 것을 본 그녀는 제호가 사라진 복도를 향해 걷는다. 그리고 복도 끝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그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곤 그 계단에 발을 옮긴다.

 

  발자국 소리가 콘크리트 벽을 울린다. 복도 위에 설치된 건전지 램프는 바람도 불지 않음에도 심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전자램프의 빛이 일렁거리며 눈을 어지럽힌다. 진주는 숨을 참으며 조심, 그리고 또 조심하며 계단 아래를 내려간다.

 

  계단을 다 내려온 그녀는 지하 복도를 걷는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이상한 불안함이 그녀의 몸을 감싼다. 진주는 불안함을 떨쳐버리려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진한다. 그럴 시간도, 그럴 여유도 없다. 그저 불안함과 긴장을 한데 묶어 자신의 등 뒤에 매달아 놓은 채 그녀는 앞으로 가는 것에만 신경 썼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다. 복도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 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갈림길이 시작되는 복도의 끝에서 소리가 울린다. 그녀의 소총이 어깨에 견착된다. 방아쇠 고리 안쪽으로 손가락이 들어간다. 진주는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곧 다가오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의 조준도 완료되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다. 복도 끝 갈림길에서 누구라도 나올 줄 알고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진주는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간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다가가다 다시 멈춘다. 그래도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왜 도망치지 않았지?”

 

  다시 한 발짝 내딛으려는 진주에게 익숙하면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있구나. 진주는 생각을 멈춘다. 주혁이 여기 있다. 그 의미를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주혁이 살아있다는 의미는 너무나 끔찍했으니까.

 

  “당신이 아직 살아있으니까.”

 

  “호오.”

 

  흥미롭다는 듯 신기해하는 반응. 진주는 예상외의 반응에 기분이 나빴다. 자신을 노리러 온 적에 흥미를 느끼다니. 정상이 아닌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날 죽임으로써 뭘 얻으려는 거지?”

 

  “평화.”

 

  진주의 짤막한 대답에 주혁이 다시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는 작은 생쥐를 보고 그의 행동에 신기해하는 과학자의 모습 같았다. 진주는 목소리밖에 안 들리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행동이 상상되었다.

 

  “평화라. 그럼 날 죽이면 이 세계가 평화로워지나?”

 

  “그건...”

 

  “아니지. 넌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려는 것 뿐. 그것뿐이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너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평화로워질 수는 있겠지.”

 

  “넌센스군. 나로 인해 고통이 줄어드나? 아닐걸.”

 

  비웃음. 주혁의 비웃음이 복도를 울렸다. 진주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의 몸에 총을 때려 박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제호조차 감당못한 위험한 놈이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나의 지배에 있으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지 않나. 밖에 나가서 괴물에게 먹히거나 괴물에게 당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는데 어떻게 평화라 말할 수 있지. 언제 먹힐지 모른다는 공포? 어이없군. 그건 나에게 벗어나도 어차피 똑같은 질문이 아닌가?”

 

  그의 언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감정은 전혀 담겨있지 않다. 그저 소리의 볼륨이 높아졌다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잡아먹는 공포? 그것도 아닐걸? 그 전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짓누르며 성장하는 경쟁 사회 아니었나? 그것이 직접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니 죄책감이 갑자기 생겼나보지? 얼마나 병신 같은가. 서로를 짓누르며 어떤 이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어떤 이들은 배를 불려간다. 강자라는 폭력이 약자를 잡아먹으면서. 근데 그것이 직접적인 모습이 되니 무섭고 공포스럽다? 현실성이 결여된 현대인들의 무지일 뿐이지.”

 

  “헛소리 마. 아무리 그래도 인간을 잡아먹는 행위는 그저 최악의 식인 행위일 뿐이야. 네가 말한 그 사회에서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

 

  “마치 너처럼 말이야, 김진주.”

 

  다시 주혁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우습군. 전화 한 번이면 닭의 목숨이 종이쪼가리, 혹은 플라스틱 쪼가리로 값이 결정이 나게 된다. 닭의 목숨을 사들여 놓고 어떠한 망설임 없이 살을 뜯어먹으며 즐기지. 그건 죄책감이 있나? 결국 이 세상은 다른 존재를 먹어 치움으로써 성장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니 무섭다? 동족상잔을 하는 것이 무섭다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나. 최강이라 불리던, 지구를 지배한다고 불리던 인간이 말이야.”

 

  “너의 개똥철학 따윈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아니 정론이다. 결국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든 먹어치워야 하는 존재인거지. 그것이 이 세계에서 톱니바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난 기회를 줬어. 먹이로 살 것인가 아니면 먹을 것인가. 하지만 자연이 그런 선택지를 줄 거 같나? 아니다. 자연은 그저 약한가, 강한가, 살 수 있는가 없는 가를 실험할 뿐. 그래서 실험결과는 생존 또는 죽음으로 나뉘지.”

 

  진주가 말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주혁이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결국 선택하는 건 자신들이다. 난 선택지를 줄 뿐. 그럼에도 내가 악인가? 아니. 그럼 지금 저 밖에 있는 괴물들은 악인가? 아니. 그럼 괴물과 나를 지우고 너를 잡아먹으려는 곰이 있다면 그건 악인가? 아니지. 악이란 개념은 그저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를 겨냥하기 위해 만든 허수아비일 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저렇게나 격앙되고 언성이 높아졌음에도 그가 전달하는 목소리엔 무언가가 결여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진주가 그의 말을 무시하며 그의 목소리보다 더 높은 언성으로 외쳤다.

 

  “그렇다면 네가 지금 잘하고 있다고 하는 거야!? 네가 말하는 방식 말고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 행위로 서로 잘 살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지. 그저 공포스러운 폭력과 억압으로 상대들을 구속해왔을 뿐이잖아. 넌 그저 미치광이야!”

 

  “넌센스다. 지배도 권력도 화합도 돈도 명예도 과시도 억압도 구속도 음해도 전부 나약한 것들이며 쓸모없는 것들이지. 이건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포장하고 지켜내기 위해 만들어 낸 부산물에 지나지 않아.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준 건 그저 순수한 폭력. 그저 월등하고 파괴적인 폭력일 뿐이다. 그건 공포스러운 게 아니야. 순수하다는 건 그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으니까.”

 

  진주는 그런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당신.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지?”

 

  “당연하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는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취한 행동들도 설명이 된다. 허나, 그럼에도 궁금한 점이 남아있었다.

 

  “근데 왜 밖으로 내보낸 병력들이 돌아오지 않는 거지?”

 

  “당연히 정찰을 갔으니까. 돌아올 리가 있나.”

 

  “뭐? 가까운 곳에 잠복하다 우리가 반란을 일으키면 거기에 맞춰 우릴 일망타진 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질문의 의미가 이상하군.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하지?”

 

  “뭐?”

 

  “내가 여기 있는데 그런 행위를 왜 해야 하지? 시간도 병력도 아깝게 말이다.”

 

  압도적인 자신감. 그건 압도적인 자신감과 더불어서 위압감까지 뿜어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주는 다시 공포를 느낀다. 알 수 없는 말, 알 수 없는 생각. 알 수 없는 자신감. 도대체 이 남자는 뭐란 말인가.

 

  “내가 설마 너희들에게 죽기라도 할 거라 생각했나?”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냐? 이제 이 건물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너와 나 둘 뿐이야.”

 

  “그래서?”

 

  “너무 자만했어. 병력을 다 빼돌리고 우리에게 쿠데타의 기회를 주다니.”

 

  “아, 그건 궁금했거든. 언제쯤 올까, 언제쯤 일으킬까 해서 궁금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혀 미동도 안 하더군. 하도 안와서 그냥 내가 자리를 마련해 준거지.”

 

  “뭐...? 기회를 줘? 자리를 마련해?.. 궁금...했다고?”

 

  “그래.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리고 그 행위에 어떤 의의를 담고 있는가.”

 

  “미쳤어. 당신은... 정말로 미친놈이야.”

 

  “인간은 이해의 범주에 벗어나는 행동이나 행위를 보고 미쳤다고 하지. 그렇다면 이 우주는 미친 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남의 행위를 미쳤다고 하는 건 너무 한다고 보는데.”

 

  주혁이 움직인다. 뚜벅 거리는 발소리가 다시 들린다. 진주가 잔뜩 긴장한 채 앞을 조준한다. 나타나기만 해라. 바로 갈겨주마. 방아쇠 고리 안에 들어가 있는 진주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려온다.

 

  “그리고, 살아 있는 이라고 했던가. 살아있으면 둘이 맞아. 근데 이 건물 안에 사람은 한 명 뿐이야.”

 

  순간, 복도 끝 갈림길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진주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다. 불을 뿜는 총구에서 총알들이 사정없이 나타난 상대를 관통한다. 벽 너머로 피와 혈흔이 튄다. 더불어서 총알들이 벽에 박히며 파편과 먼지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진주의 어깨가 관통한다. 공격한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이런 상황을 이해 못한 진주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그녀의 허벅지가 다시 뚫린다. 그녀가 당황하며 앞을 보는 순간 권총을 든 주혁이 무표정하게 진주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엔 진주의 반대쪽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오른다.

 

  갑작스런 공격, 그리고 통증. 진주가 소총을 놓치는 것은 필연이었다. 진주의 총이 땅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진주가 고통에, 억울함과 분함에 소리를 치는 동안 주혁의 총알은 그녀의 다리를 다시 한 번 명중시켰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았다. 분명 나타난 상대를 사정없이 쏘고 맞췄다. 근데 어찌해서 저 남자가 나에게 태연히 걸어 올 수 있는가? 그녀는 고통스러운 와중에 주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했다.

 

  자신이 쏜 것은 제호였다. 아니, 제호의 시체였다. 제호의 시체가 피 범벅이 된 채 누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혁은 제호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가 제호의 시체를 던진 다음 그것에 진주가 반응한 순간 권총으로 진주의 어깨와 다리를 노린 것이다.

 

  진주는 제호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분노와 증오보다 더 한 슬픔이 그녀의 가슴과 목구멍을 찔러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주혁이 살아있음을 알았을 때 제호는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주혁이 다가와 진주의 머리에 권총을 겨눈다.

 

  “X새끼. 넌 진짜 X새끼야. 이 X발놈아.”

 

  “기만술은 전술의 응용이다. 함정을 설치하고 적과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지. 오히려 적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제대로 전황을 분간하지 못한 너의 불찰 아닌가?”

 

  진주가 눈시울을 붉히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는 고통 때문에,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제호에 대한 마음의 고통, 그리고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보다 더욱 기괴한 붉은 눈으로 진주를 내려다보는 주혁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어, 그래. 이런 상황이면 그 뭐더라. 유언 같은 걸 말하게 하던가? 그래. 죽기 전에 할 말 같은 거? 하게 해주지. 마음껏 말해봐.”

 

  주혁의 말에 진주가 눈을 부라린다. 붉게 충혈 된 눈이 붉은 눈을 바라본다. 그녀는 독기 가득한 시선으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대가리나 터져 뒤져라. 십X끼야.”

 

  “오케이, 오케이. 그럼 바이 바이.”

 

  방아쇠가 당겨진다. 진주의 뇌 파편과 뇌수, 핏덩어리들이 바닥에 퍼진다. 진주의 머리가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주혁은 자신에 묻은 진주의 피를 닦더니 입에 가져다 맛을 본다.

 

  쩝쩝거리며 음미를 하던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몸에 묻은 피를 핥짝 거린다. 그러다 진주의 머리에 생긴 구멍에 손을 갖다 대더니 손에 피를 깊게 묻힌 다음 혀에 가져다 댄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린 주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잘되었군. 넌 유능해. 그래서 분명 이곳을 빠져나가리라 여겼지만. 역시 사랑인가, 연애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에 휘말려 죽음을 자초했지. 궁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해. 벗어날수록 위험을 자초하는 격이지. 하지만 걱정마라. 넌 한 단계 진화했으니까.”

 

  그는 진주의 시체를 타 넘는다. 그는 그녀의 뇌 파편을 짓이기며 말한다.

 

  “체크메이트다.”

 

 

 

  건물 밖으로 나온 주혁이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많긴 하지만 달을 가리진 않고 있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교도소를 비춘다. 그는 달빛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Fly me to the moon. 그의 노래가 아무도 없는 교도소 광장에 울려 퍼진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Feel my heart with song

  And let me sing forever more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In other words, I love you

 

  주혁이 교도소 광장을 걷는다. 그의 노래는 끊이질 않는다. 그의 시선은 하늘, 달에 가있다. 달빛도 그를 향해 비춘다. 어두운 밤이지만 주혁은 어둡지 않다. 그의 붉은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반짝인다. 그가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어떤 것을 공중에 흩뿌린다.

 

  그건 장기 말이었다. 부서진 궁, 차, 포, 마, 상들의 파편들이었다. 그 파편들이 공중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더니 땅으로 떨어진다. 다시 주혁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떤 것을 던진다. 이번엔 부서진 검은색 체스 말 폰들의 파편이었다.

 

  주혁이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런 다음 그가 꺼내서 뿌린 것은 장기 말 졸들이었다. 온전한 형태의 졸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주혁은 그런 졸들을 하나하나 짓이긴다. 졸들을 밟고 부수며 걸어간다. 그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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