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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화의 난
작가 : 어항
작품등록일 : 2019.10.17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죽어간 자신의 종족들을 위해 복수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

 
18
작성일 : 19-10-31 21:38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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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지금 뭐라고 했소. 한 눈에도 당황한 황후가 눈에 보였다. 자란의 행동에도 매화는 태연하게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

 

 "호위무사에게 본보기를 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 설재인!"

 

  보통 날이었으면 품위를 지키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을 황후가 깜짝 놀라 크게 뜬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심지어 그녀는 태후가 봤으면 체통을 지키라고 호되게 혼났을 법한, 몸을 쭉 내미는 자세까지 했다. 자란의 행동에 매화는 웃음을 작게 터트렸다. 그걸 또 본 자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왜 그랬나. 그는 폐하께서 아끼는 무사란 말이다."

 "아끼시는 분이라면 저를 함부로 무시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자란은 황후였다. 황후는 어그러진 을련국의 질서에서도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자 중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무영이 그녀에게 함부로 말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매화는 달랐다.

 

 "마마, 아무리 제가 낮은 품계이기는 하나 저 또한 엄연히 폐하의 부인이옵니다."

 "……."

 "엄연히 호위무사보다 제가 더 높지 않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하자 그녀가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다니. 자신도 보는 눈이 없다 싶었다. 자란의 한숨에도 매화는 모른다는 듯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러나, 설재인."

 "마마께서 신경 쓰실 일도, 해를 입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자란은 더욱 깊은 한숨이 나왔다. 지금 제 목숨이 아니라 남 목숨을 걱정할 때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매화는 웃으면서 자란의 속을 뒤집었다.

 

 "정말입니다."

 "그게 중요한가, 지금."

 "마마, 그게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좋으신 분이다. 자신보다 낮은 품계인 사람에게 이렇게나 존중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은 몇 없다. 비록 모든 걸 품어야 하는 황후라고 할지라도 그랬다. 진정 이타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이타적인 모습은 매화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는 따뜻한 품에서 자라난 을련국 국민들이 싫었다.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간 자신과 다르게 웃으면서 지낸 그들이 싫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 치부해도 좋았다. 그녀는 그들이 싫었다.

 

 "마마, 그럼 다음에는 소재인과 함께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매화는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애써 차가워지는 얼굴을 감춘 채로 웃으며.

 

 

 *

 

 

  그녀는 천천히 배정된 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궁 뒤쪽에 자리 잡힌 작은 정원, 꽃발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곳. 매화는 연못 근처에 앉아 가만히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아주 아름다워. 마치 눈을 닮았구나.'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기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하얀 꽃잎이 눈처럼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하지만 차마 웃을 수 없는 건 이 모습이 그녀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품에 안겨 눈을 맞이하던 자신과 그런 그녀를 보며 웃던 부모님. 떠오르는 추억은 이리도 괴롭다.

 

 '엄마, 눈이 정말 내 머리색이랑 똑같아.'

 '그렇지? 말했잖니. 너는 눈꽃이라고.'

 '예뻐? 응?'

 '예뻐, 내 딸.'

 

  보드라운 뺨에 부비는 뺨은 얼마나 따뜻하고 좋았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 거다. 자신만 기억하고 있는 이 기억이 잔인했다. 되돌릴 수도 없는데, 왜 자꾸 생각날까. 과거에 삼켜지고 있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아, 그러자 누군가 제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매화는 천천히 눈을 떠 말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

 

  아무런 대답도 없었으나 느껴졌다. 아까 문 뒤에 있던 또 다른 기척. 무사와는 다른 기척이었다. 매화는 몸을 돌려 천천히 앉아 인사했다. 그가 일어나란 말은 하지 않아서 한참이고 앉아있었다. 그는 한참 보다가 일어나라고 짧게 명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시퍼렇게 날선 파란 눈동자였다. 그리고 보이는 강대한 기골, 아름다운 풍채. 용안이라 불릴 만한 성스러운 얼굴. 그러나 핏기가 없는 얼굴이었다. 인간 같지 않게 차디찬 얼굴이다. 을련국의 상징이 용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러했다. 체온이 없는 것마저 닮아있었다.

 

 "신첩에게 화를 내러 오셨습니까."

 "화? 그깟 화를 내러 온 것 같은가."

 "아닙니까. 신첩이 무사를 함부로 대해 화를 내러 오신 줄 알았습니다. 설마 하니 무사 하나로 폐하께서 움직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곱게 휘어진 눈이 무사에게 닿았다. 차갑게 식은 눈빛과 다르게 웃고 있는 눈을 보던 무영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무영은 저멀리 숨어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줄 알 줄이야. 무영은 눈을 좁혀 그녀를 바라봤다.

 

 "무영이 어디 있는지 느껴지는 건가."

 "지방 귀족이라고 하나, 무예 가문에 있었사옵니다. 기척은 잘 느끼는 편입니다."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건방이라. 매화는 그 말에 그저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그게 그를 자극하는지 모르고 말이다.

 

 "감히."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인상을 확 찌푸린 그가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큰 손이 그녀의 가는 목을 한 번에 휘어잡았다. 숨이 막혀 켁켁거리면서도 매화는 웃었다.

 

 "신첩이, 쿨럭, 마음에 안 든다면 지금 이 손에 힘을 주시어 죽여 주시옵소서."

 "건방을 떠는 구나."

 "폐하, 소첩은 아무리 신분이 낮다고 하나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폐하의 부인이옵니다."

 "……."

 "저 자는 엄연히 저보다 신분이 낮은 자. 저 자가 제게 날뛰는 모습을 제가 봐야한단 말입니까."

 

  훤은 손에 서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화는 콜록거리면서도 절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다르게 사납게 빛나는 눈빛이 그에게 닿았다.

 

 "모든 것은 다 폐하의 것입니다."

 "……."

 "폐하 마음대로 하소서. 신첩을 매질해도 되옵니다. 지금 당장 힘을 주어 죽이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첩은 계속 말할 것입니다."

 

  그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몇 번이고 폐하께 아뢸 것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곧 그녀의 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깊이 숨을 몰아쉰 매화는 그에게서 한발짝 물러섰다.

 

 "황당하기 짝이 없구나. 지금 행동 보면 살려달라고 비는 것 같은데."

 "폐하께서 놔주실 때 기회는 잡아야죠."

 

  매화는 소매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말했다. 한 번 당해줬으니 그녀 또한 반격을 할 차례였다.

 

 "이 나라에 폐하보다 위인 존재는 없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지금부터 매화는 모든 자들에게 금지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미쳐가는 황제에게는 절대 꺼내지 못할 얘기.

 

 "아무리 나라를 위해 예언을 가져온 태후라고 하나."

 "……."

 "그 태후 마마가 폐하보다 위일 수는 없지요."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폐하."

 

  매화는 그의 역린을 푹 건드렸다. 그에 놀라 무영이 후다닥 뛰어왔다. 미쳐가는 황제.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지만 가장 기형적인 건 모든 권력을 잡고 있는 태후였다. 아무리 태후라지만 이 나라의 태양보다 그녀가 위로 오를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녀는 '섭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묘한 뒤틀림은 황제를 망치고 있었다.

 

 "폐하, 신첩을 매우 치시옵소서."

 "……."

 "하지만 신첩, 폐하만을 위할 것을 감히 말씀 드립니다. 설령 그 어떠한 '압박'이 있을 지라도."

 

  섭정을 하고 있는 태후에게 쏠린 권력. 그렇다면 폐하가 아닌 태후의 말을 들을 신하들. 그를 바라보는 그는 '무력함'을 느끼고 '미쳐간다'. 그녀는 그게 제일 지금 있는 일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사가 더 날뛰며 안절부절 못 한다.

  이렇게 된 이상, 황제를 이용하여 내가 태후의 목을 잘라내겠어. 우선은 그녀가 쥐고 있는 권력부터다. 매화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훤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목이 떨어질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매화는 그 어떠한 곳도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정확히 말해서 황제인 그가 봐준 것이었다.

 

 '돌아가자, 무영아.'

 '폐하!'

 '얼른.'

 '…명을 받듭니다.'

 

  몸을 돌려 나아가는 황제를 매화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과연 자신의 말을 들어줄까. 아니. 그가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한낱 후궁이 한 말에 갑자기 위로를 받는다던가, 충격을 받는다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게 지속되면 어떨 것인가.

 

 '보여줘야겠군. 내가 그의 편이라는 걸.'

 

  매화는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태후의 압박에도 황제의 옆에 설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이게 단순히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야 했다. 시간 싸움이 되겠군. 매화는 톡톡 책상을 두들기며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해야 그에게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까. 건방진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건 지켜보겠다는 의미도 된다. 그 기회를 제대로 써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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