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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루피너스의 축복
작가 : 다락
작품등록일 : 2019.9.1

루피너스 마을의 사랑스러운 소녀, 루루.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 파셔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그녀의 담담하고도 사랑스러운 성장일기.

 
17화. To someone, hazy and to someone, clear
작성일 : 19-10-31 21:16     조회 : 210     추천 : 1     분량 : 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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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님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보면 정말...”

  아덴은 답답한 듯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브래디는 그런 아덴을 보며, 언젠가 하나밖에 없는 조수가 언젠가 지쳐서 도망가버려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브래디는 나이가 꽤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뉴시커들을 싫어해 왔던 만큼 이 시대의 전산망에 약했다. 그는 자신도 잘하는 것은 연구밖에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그래서 어디로 보내셨다고요?”

  “그게... 저장된 주소 목록 중 어딘가로 자동 송신된 것 같더라고...”

  “네?”

  그는 오늘도 사고를 치고 말았다. 보내야 하는 편지를 정성껏 써놓고는 물류 타임-백 서비스를 신청하다가 수신지 선택을 하는 대목에서 또 실수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이미 보내져 버린 편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결국 아덴을 부르고 말았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달려온 아덴은 어이없는 실수를 해버린 브래디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벌써 한숨만 50번째 쉬었다.

  “아직 시간은 여유 있으니까 다시 쓰면 돼. 취소 신청만 부탁해”

  “알겠어요. 그리고 다음 신청할 때는 같이 가요.”

  “그래... 미안하다, 아덴.”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과 연구는 칼같이 처리하는 브래디였지만 이럴 때면 쑥맥처럼 결국 풀이 죽어버리는 그를 보며 아덴은 결국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아덴은 귀밑으로 내려오는 짧은 단발 머리칼을 묶었다.

  “자네 원래 이렇게 머리가 길었나?”

  “아뇨. 기르는 중입니다.”

  “흠... 잘 어울리네.”

  브래디는 한눈을 파느라 아덴의 귀가 빨개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각사각

  브래디는 나무연필을 깎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정리할 생각이 없더라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들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그렇게 숨이 차가워지는 기분을 그는 좋아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뒤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짧게 깎아 올린 머리칼 사이 듬성듬성 빈공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시작하고 가장 놀랐었던 때는 손님들의 예약신청에 서버가 다운되었을 때도, 매달 엄청난 수익을 확인할 때도 아니었다. 그가 그 뉴스를 본 것은 몇 달 전 아침이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뉴시커들 사이에서 올드시커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는 요 몇 년간 급부상하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체험 탓으로 밝혀졌는데요. SNS 등의 통신망으로 많은 뉴시커들이 ‘최고의 경험이었다’, ‘왜 여태까지 이를 몰랐었던가’ 라며 칭찬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W. 브래디 씨로 ...

  아무 생각없이 흘러가듯 뉴스를 듣고 있었던 필요없는 소식을 전하지 않는 뉴시커들의 뉴스에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덴, 방금 나온 뉴스 자네도 들었는가?”

  “아, 네. 그거 제가 허락한 건데요?”

  “정말인가?” “네. 소장님께서 저한테 전부 맡기셨잖아요. 그래서 아직도 콧대가 높을 뉴시커들이 들으라고 보란 듯이 허락해줬어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아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있었다. 브래디는 그저 오, 하고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전화 연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잘했죠, 소장님?”

  한참 정적이 흐르고 난 후 화면을 통해 아덴의 설렘이 묻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브래디는 피식 웃으며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아마도 브래디가 몇십 년 후에 ‘뉴스에 나오다니, 그때로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자랑스러워할 일이 될 것이었다. 그는 뾰족하게 깎아진 연필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다른 연필을 또 집었다. 하얀 종이 위에 쌓인 연필의 살점은 진한 향을 내었다.

  “그건 또 뭡니까?”

  한참을 멍하니 사각거리며 연필을 다듬는 데에 여념이 없던 브래디는 옆에 아덴이 다가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아덴은 한참 전부터 그의 등 뒤에 서서 듬성듬성 비어있는 브래디이 머리를 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브래디는 잘 놀라지 않는 편이라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연필이라는 거네. 나무와 흑연으로 만들어져 있지.”

  “어디서 구한 골동품인 겁니까? 또 아무 곳에서 가져온 이상한 물건이라면 사절입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해치지 않아.”

  브래디는 장난스레 웃으며 덜 깎인 뭉툭한 연필을 들어 보였지만, 아덴은 인상을 찌푸린 채 코 끝에 밀려오는 나무의 향에 조금 킁킁거렸다.

  “구하기 힘들었지. 그런데도 이렇게 깎아내 버려야 한다니 정말 아쉽지 않은가.”

  “영원한 것을 좋아하는 뉴시커들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 물건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영원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그는 다시 연필을 잡은 손을 종이 위에 걸치며 웃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아덴은 탐탁치 않다는 듯 크흠, 하더니 말을 돌려버렸다.

  “편지는 다시 작성하셨습니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덴이 항상 화제를 돌려버리며 회피하는 것을 아는 그였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젊고 어린 아덴의 곁을 언젠가 떠나게 될 그였기에 이따금 일부러 말을 꺼내곤 했다. 브래디는 입안이 까끌거린다고 생각하며 다시 연필을 깎았다. 어느새 과거, 연필이었던 나무들이 수북이 쌓였다.

  “당연하지. 어제 돌아와서 바로 썼다네.”

  “언제 부치러 가실 겁니까?”

  아덴은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다는 듯 서둘러 물었다. 브래디는 그런 아덴과 달리 차분히 생각하더니 여유롭게 웃었다.

  “지금 가볼까?”

 

 -

 

  “자네는 내 연구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하게 되었지?”

  “저는 과거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된 후부터 박사님의 연구 방향이 제가 지향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박사님과 함께 일하게 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덴은 브래디가 아무런 능력도 없고 힘없는 연구원에 불과할 때, 끌어모은 돈으로 마련한 연구소에 당차게 지원했었다. 그는 그때부터 당찼고, 나름의 고집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브래디는 기억했다. 브래디가 처음 아덴을 보았을 때 느낀 것은 젊은 사람만의 열정과 결단력 있어 보이는 표정, 그리고 많은 것들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아마 아덴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브래디는 그를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많아진 그는 생각보다 길어지는 면접시간에도, 길어지는 면접에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는 아덴의 표정에도 한참을 무언가 물어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필요 없는 질문들. 그리고 훗날 브래디가 기억하지 못하는 질문까지도.

  “내가 자네에게 고치길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고쳐낼 자신이 있는가?”

  “네, 당연합니다.”

  아덴은 눈앞의 저 사람이 어떤 말로 그를 떨어트리려 할지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고, 브래디는 장난스레 웃었다. 이미 그를 뽑을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머리를 길러보게. 자네처럼 새하얀 금발은 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릴 듯해.”

 

 -

 

  “자네 덕에 수월하게 처리했구만.”

  “당연하죠. 소장님께서 혼자 왔더라면 또 실수를 했을 거라 장담해요.”

  아덴은 당당하게 거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브래디는 귀엽다는 듯 맞장구를 쳐주었다.

  “세상 모든 일이 보기와는 다른 것 아니겠는가. 쉬운 듯 보이지만 어려운 일도 많은 게지.”

  아직도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더이상 뉴시커들은 길을 걸어 다니는 아덴과 브래디, 그리고 몇몇 사람들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지 않았다. 물류 타임-백 센터에서 나와 한참을 말없이 걷던 브래디는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내가 무지막지하게 타임-백을 해대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네. 요즘을 아예 할 수가 없으니 원. 이렇게 불편하지 않은가.”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요? 소장님의 기술이 있잖습니까.”

  “아덴, 직접 가보는 것과 그렇게 머신에 타서 느끼는 것은 다르다네. 한참이나 다르지.”

  “실제로 타임-백을 해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저는 그정도의 기술에도 만족합니다.”

  아덴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저와 같은 많은 올드시커를 도와주셨잖아요. 박사님은 큰 획을 그은겁니다.”

  “나 혼자 한 일은 아니지.”

  브래디는 웃으며 자신보다 조금 더 큰 키의 아덴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덴은 웃으며 살짝 쥔 주먹으로 가슴팍을 통통 쳐보였다.

  “당연하죠. 저 같은 인재는 흔하지 않으니 제가 소장님을 찾아온 것을 다행히 여기셔야 할 겁니다.”

  “암. 다행히 여기다마다.”

  이 도시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겨우 몇 달에 지나지 않았다. 일을 하느라 그 몇 달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브래디는 어느새 불어오는 바람에 두터운 가디건을 걸쳐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금 싸한 기운이 있는지 열린 옷깃을 여미며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덴?”

  “네.”

  “나는 말이네, 아직 이루고 싶은 일이 많네. 만약 자네가 이 일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게.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메말라가는 것은 그 사람들 탓이 아닐지도 몰라. 배우질 않았으니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게지.”

  아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네. 해가 지는 저녁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나마 눈을 감고 쉬어갈 용기를 가질 기회를 말이네.”

  “좋죠. 그런 기회, 그런 시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운 듯 무거운 듯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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